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등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했다.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차이나프리카(Chinafrica)란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아프리카 국가 내의 중국의 영향력이 커져간다. 이미 서구 주도의 원조와 개발모델에서 실패를 겪고 실망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달콤한 ‘묻지마’식 중국 원조에 빠져든지 오래다. 너도나도 만병통치약처럼 중국식 개발모델을 도입하면서 최근 몇 년 새 중상주의적 중국식 모델이 가져오는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이제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오히려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2013년 시진핑에 이어 올해 아베의 연이은 아프리카 순방은 아프리카 국가와의 협력에서 전략적 관계 구축이 중시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양의 논리로 접근하는 중국식 패키지형 개발원조는 한국식 개발협력의 모델로 삼기엔 적합하지 않다. 오랜 시간 봉사단을 파견하며 인도주의적 접근을 해온 일본식 개발원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외교역량과 실질적 효과를 고려한 한국식 개발원조 전략 개발이 필요한 이유다.
국민들의 인식은 양호한 수준
양적으로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도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다. 기획재정부의 2014년 예산안에 따르면 ODA는 전년도 2조1000억원에서 2014년에는 2조3000억원으로 늘어났다. 현재 국민총소득 대비 ODA 비율은 0.16%다. 국민 1인당 3만5천원 정도를 개도국 발전에 공여하고 있는 셈이다.
양적성장에 그치지 않고 이명박 정부 때는 세계평화 발전에 기여하겠다며 기여외교를 위한 ODA 확대를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신뢰받는 모범국가로서 2015년까지 국민총소득 대비 ODA 비율을 0.25%로 늘리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긴 쉽지 않아보인다.
고무적인 사실 한 가지는 ODA에 대한 국민의 인식수준이 상당히 양호하다는 것이다. ODA가 세금으로 형성된 자금인 만큼 이에 대한 국민의 의식은 중요하다. 2013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중 9.4명은 국제사회의 개발도상국 지원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한국 정부의 대외원조 제공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87.3%가 찬성했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제공하는 주요 동기는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가 47.3%로 가장 높았고, 뒤이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과 의무’(40.4%)’, ‘국제적 평화와 안정유지’(33.0%), ‘개발도상국의 지원 요청에 대해 돕기 위해’(32.0%) 순으로 나타나며 국제개발이슈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설문에 응답한 국민 대부분이 경제적·외교적 목적의 개발협력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한국 국민이 전통적 공여국인 유럽 국가들의 납세자들과 달리 국제적 보편가치와 수원국의 경제·사회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다. 아프리카를 향한 국민의 관심은 특히 높았다. 정부가 대외원조를 중점적으로 제공해야할 지역을 묻는 질문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71.7%를 차지해 아프리카 개발문제에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아프리카 지역 청소년들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기가 어렵다. 사진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북부 카보 난민캠프의 임시초등학교. | |
표류하는 대아프리카 ODA이런 국민의 요구와 달리 한국의 대아프리카 ODA는 지지부진하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25년만에 북아프리카 3개국(이집트, 나이지리아, 알제리)을 순방하고 한-아프리카 포럼을 개최하는 등 아프리카 국가와의 관계 구축에 노력을 기울이는 듯했다. 하지만 정권교체 때마다 아프리카 순방을 계획하던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자원외교를 앞세운 이명박 대통령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눈을 돌려 전세계 지하자원 매장량 3분의 1을 보유한 사하라 이남 국가에 주목했다. 2011년엔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 에티오피아를 순방하면서 국제사회에 ‘녹색성장’이라는 한국식 개발모델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되면서 녹색성장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녹색성장은 이미 박근혜 정부의 관심 밖이다. 박근혜 정부는 녹색성장 대신 새마을운동 세계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롤모델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세웠다. 얼마 전 한국 정부는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될 예정이었던 ‘제1회 지구촌 새마을지도자 대회’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 행사에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정부 관계자들과 유엔개발계획, 세계은행 관계자 등 국내외 인사 800명이 참석하기로 돼 있었지만 세월호 사건 여파로 무기한 연기됐다.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한국 개발원조의 초점은 온통 새마을운동에 쏠려 있다. 작년 국정감사 보고에 따르면 1990년대부터 2013년까지 전체 새마을운동에 투입된 개발원조 예산은 3160억원이다. 최근 3년 간 새마을운동에 집중된 액수만 해도 1389억원에 달한다. 2014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새마을 운동 세계화에 배정된 국가예산은 전년도 111억원에서 227억원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35억원이 더 추가돼 총 262억원이 올 한해 새마을운동 전수에 쓰여질 예정이다.그러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이 저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표준화된 개발원조 모델을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부푼 희망은 새마을운동의 원조 효과에 의구심을 들게 한다. 온갖 프로그램이 중구난방으로 추진되는 것도 문제다. 현재 개발원조 자금으로 새마을운동을 시행하고 있는 정부 부처만 해도 안전행정부,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 경상북도청 등 포함해 10여 곳이 넘는다. 이들의 프로그램은 체계가 제각각이고 중복되는 내용이 많아 효과 자체에 의문이 들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새마을 정신을 퍼뜨리겠다는 프로그램 대다수는 대학생 자원봉사단 파견이나 아프리카 지도자 초청 연수에 집중돼 있다. 해외에서 개발도상국 빈곤퇴치에 쓰여야 할 개발원조 예산이 대한민국 내에서만 돌고 있다는 얘기다.아프리카와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그동안 시행된 새마을운동 프로젝트가 기존 비영리 민간단체의 개발협력 사업과 별 차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의 서구 공여국이 시행했던 ODA 방식에서 차별화를 모색하고 한국식 ODA 방식을 전세계에 보급하겠다는 의지는 높이 살 만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던 기존 개발협력 프로그램과의 차이를 더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새마을운동 프로그램의 투명성이다. 투명한 개발원조가 중시되는 최근 추세와 달리 새마을운동에 대한 자료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효과와 투명성이 검증되지 않는 한 새마을운동 전수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