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는 엄정한 신분사회였지만 관계의 친밀성이 제도화됐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도 중세
천년의 역사가 만든 관행에 빚진 것이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했던 시절이라, 사회는, 신체나 가족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전체로 엮인
유기체였고, 전체의 유지를 위해 행하는 기능에 따라 역할이 주어진 개인은, 신이 부여한 위계질서 속에 태생적으로 편입됐었다. 위와 아래는 상호적
책무에 묶여 있었으니, 아래는 노동으로 위에 봉사하고 위는 외적에 맞서 앞장서 싸울 뿐 아니라 최소한의 복지를 공여함으로써 아래의 생존을
지켜냈다.
중세를 암흑으로 채색한 것은 계몽주의 세례를 받은 18세기 유럽문명이었다. 개인과 이성을 기치로 내건 정신이
계시를 앞세운 신적 질서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분적 족쇄가 해체되면서 관계의 친밀성 또한 사라지자, 이제 개인들은
시장질서(cash-nexus)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생존을 스스로 책임지는 고독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중세적 질서로의 향수가 고무한
보수주의에는 인간의 본래적 불평등에 대한 승인과 더불어, 저 ‘평등 없는 친밀성’(intimacy without equality)을 관계의
중심에 복원하려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서유럽 보수정당들이 진보계열 정당들 못지않게 복지국가발전에 기여해 온 맥락도 이 점에 닿아있다.
‘평등 없는 친밀성’
그럼에도 불구하고(지대, 부역, 세금 등 농노계급의 탈취가 일상적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중세사회의 친밀성이 권력적 위계를 전제했다는 점만은 바뀔 수 없다. 가령 오늘날에도 영국 중산층이 가장 애송하는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이 영국 제국주의를 옹호하며 주창했던 ‘백인의 책무’(white man’s burden) 개념에는 제국인들이 현지인들을 향해 품었던 양가적
태도, 곧 일상의 친밀성과 더불어 인종과 신분에서 기인한 불평등의 정서가 두루 서려 있다.
‘평등 없는 친밀성’이란 조어가
문학적 담론에 등장한 것은 평론가 크리스토퍼 홀리스가 친구인 작가 조지 오웰의 사상과 작품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장치로서 배치하면서였다. 이튼의
우등생이었던 오웰은 그곳 졸업생들이 통상 거치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식민지 버마(미얀마)의 제국경찰을 자원하지만, 5년이
채 안 돼 사직서를 던지고 영국으로 영구 귀국한다. 가해의 최전선에서 백인경찰로서 경험했던 죄의식과 수치심이 커갈수록 제국체제에 대한 증오와
무력감을 못 견뎌 했던 탓이다. 영국인과 현지인 간의 일상적 친밀함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틀 안에서 이 둘 사이의 진정한 우정은 불가능했으니,
‘평등 없는 친밀성’이 지닌 본래적 한계를 절감했던 것이다. 그에게 버마체험은 가해자 입장에서 권력의 실상을 들여다봤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고, “부끄러워해야 할 무엇으로서의 권력” 개념을 내면화하는 전환적 계기였다. 이후 오웰의 삶과 글쓰기는 버마시절 형성된 죄의식의 속죄와
해원을 위한 긴 여정,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삶 속으로 내려가 그들의 일원이 됨으로써 인간관계의 친밀함 배면에 똬리를 튼 권력관계의 폭력성을
파헤치는 일에 바쳐지게 될 터였다,
친밀함, 가해와 위선의 그늘
관계의 친밀함은 공감이 축적되는 과정, 대체로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형성된다. 실은 일상은
관계 속에서 공유되기 이전에 그 차제로 우리 몸과 근육을 길들인다. 변태성욕자의 연쇄살인을 다룬 헝가리 영화 『누명』에서 교수형대로 끌려가는
범인은 “신발이 너무 조여” 답답하다고 불평하며, 오웰이 버마시절을 배경으로 쓴 에세이 ‘교수형’에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물웅덩이를 애써
피해가는 죄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처럼 일상은 때로 죽음마저 잊게 만드는 괴력을 지닌 것이지만, 문제는 일상의 친밀성이 관계의 폭력성을
은폐하는 경우다.
가령 최근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폭로된 온갖 범죄적 행위도, 술자리, 합숙, 촬영여행 등 예술행위를
빙자하거나 그 연장으로 일상화된, 다분히 작위적인 관행들(routines)의 친밀함-“너 참 곱구나. 어디 이리 와봐라”-속에서 자행됐다.
(하긴 ‘구조의 큰 그림을 보는 통 큰 사람들’에게 사적 윤리나 개인의 고통 따위는 얼마나 거추장스런 것이었으랴) 모든 헤게모니적 권력이
행사하는 내밀한 폭력들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해 경종을 울려야 할 사람들이, 솔선해서 친밀성의 그물을 치는 가장 교활하고 가증스런 방식으로 가해의
검을 휘두른 것이다.
대학졸업장이 없던 오웰에겐 평생 스승으로 부를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낡은 타자기와 완강한
신념에 기대 홀로 주류적 편견에 맞서 싸웠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은 우리 모두 잠재적 범죄자라는 섬뜩한 사실을 일깨우지만,
실은 폭력은, 드러나고자 하지 않을 뿐, 크고 작게 일상에서 이미 적나라하다. 기어이 차이를 만들고 우월한 지위를 확인한 후라야 비로소 친밀함을
용인하되, 그 친밀함의 그늘에 숨어 끝끝내 폭력적 근성을 드러내고 마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오웰에 따르면, “사람은 권력이 없을 때만 품위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