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림 숲을 둘러보며
안 종 문
참기 어려운 더위가 이어졌던 며칠 전이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천 년의 세월이 숨 쉬고 있는 숲으로 여행을 가보자는 아내의 권유에 군말 없이 동행하였다. 함양에 있는 상림 숲이었다.
차량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가까이 왔음을 알려주자 차창 밖의 교차로 곳곳에서도 함양 산삼 축제 홍보 현수막이 바람에 너풀거리고 있었다. 행사장을 알리는 애드벌룬이 하늘 높이 떠 있었고, 현장에는 가을 운동회처럼 만국기가 펄럭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 축제에 뒤질세라 잠자리들도 너울너울 갖은 곡예비행을 하며 축하비행을 하였다.
타고 온 차를 숲에서 멀찌감치 세워두고 숲 속에 먼저 들어 가보았다. 과연 장관이었다. 아름드리 참나무들이 어린나무들과 잘 어울려서 바람 춤을 추고 있었다. 곳곳에 정자도 세워져 있었다. 숲 속에는 물길도 만들어놓아서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천 년의 세월을 말함에 부족함이 없었다. 곳곳에 죽은 나무들이 잘려 있어서 우리 인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도 있었다. 왕머루와 칡 등이 얽히어 마치 계곡의 자연 식생을 연상시킨다는 인터넷 검색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왔었지만 그대로였다.
숲길을 걸으며 감상할 수 있는 산책길이 여러 갈래로 잘 꾸며져 있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고, 연인들도 손잡고 거닐었으며, 가족들이 유모차를 밀며 찾아와서 숲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숲의 끝 부분 외딴곳에는 옛 초가집이 당그랗게 남아있었다. 모퉁이에는 물레방아도 쉼 없이 세월을 돌리고 있었다. 숲 가운데 만들어 놓은 물길 건너는 돌다리에는 다슬기도 물살을 이겨내며 세월을 노래하고 있었다. 이동문고 책도 진열되어 있었고, 운동 기구도 갖추어져 있어서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 씀씀이가 마음에 쏙 들었다.
행사장으로 가는 길옆에는 특화사업의 하나로 연밭이 이어져 있었다. 형형색색의 연꽃이 만발해 있었다. 한 줄기의 연꽃에는 연꽃잎도 하나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오롯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껏 연꽃을 대수롭지 않게 보아왔던 탓이다. 사람의 눈은 그 사람의 심정에 따라 보이는 것이 그래서 각각 다른가 보다.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내 고향 ‘진갱빈’ 아카시아 숲이 눈앞에 어른거려 마음이 울컥했다. 삼십오 년 전에 불도저에 깔아뭉개진 고향 ‘편덕’(편편한 언덕)의 숱한 나무들이 아직도 내 가슴속에는 잊지 못할 흉터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고향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국 방방곡곡에 이런 곳이 많이 남아 있어야 마땅했다.
고향 마을 ‘편덕’은 강변에 조성된 자연이 선물해준 천연 정원이었다. 망태기 들고 소 풀하려 다녔던 동산이요, 소꿉동무와 소를 친구삼아 뛰놀았던 동산이었다. 자갈과 잔디가 어우러져 온갖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던 자연학습장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일장을 걸어서 다녔던 고향 사람들이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한숨을 돌렸던 곳이었고, 아카시아 꽃이 만발하였을 때는 청춘 남녀가 만나는 데이트 장소였다.
보존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진 까닭을 생각해보았다. 자식들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어떤 방법이든지 개간을 하여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모들의 욕심이었다. 가난은 먼 훗날을 내다볼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상림 숲과 같은 위용으로 마을을 길이길이 빛내주었을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던 까닭이다. 그 당시의 가난은 조상의 혼이 가득 묻은 귀한 유물마저도 고물장수에 헐값에 팔았던 그야말로 배고픈 때였음을 내 눈으로 보고 살았기에 이해는 한다.
대봉산 기슭 민박집에 일행들과 하룻밤을 자면서 계곡 물의 맑은소리와 산속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으로 마음을 씻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 모두가 그때 그 시절의 다소 허망할 수밖에 없는 마음속의 그림들이다. 하지만 살아생전 다시 그때의 모습으로 만들어놓고 싶다. 그 일을 못다 이루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이튿날 새벽 산책을 하면서 인근에 있는 대봉산 자연 휴양림을 보고 돌아왔다. 생태 자연학습장도 곁에 있었다. 짐을 꾸려 돌아올 때는 일행 모두에게 도 보여주고 싶어 차에 탄 채로 둘러보았다. 젊은이가 떠난 산골의 묵은 들판을 보며 내 가슴은 내내 아팠다. 차창 밖으로 더위를 이겨내며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는 아낙네를 보았다. 참으로 숭고한 모습이요, 순박하기 이를 데 없는 시골 농부들이다. 문득 병상에 누워계시는 어머님의 옛 모습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곰곰 생각해보았다. 작금의 농촌문제 해결 방안은 없을까? 하루빨리 과학의 발달이 눈부신 열매를 맺어 지능로봇에 의한 기계 영농으로 노령화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들판에 엎드려 흘렸던 젊은 시절의 땀이 적지 않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상림 숲을 둘러보았다. 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와 다르게 인적이 드물어서 한결 숲의 본래 모습을 잘 볼 수 있었다. 새들도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쪽 구석에서는 무인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고 있었다.
또 다시 천 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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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림 숲 : 함양읍 서쪽에 있는 위천(渭川)강가에 있는 숲이다. 통일신라 진성여왕(재위 887∼897) 때 최치원 선생이 함양읍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으나 이 숲의 가운데 부분이 홍수로 사라짐에 따라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게 되었다. 하림은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있고, 상림만이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갈참나무·졸참나무 등 참나무와 개서어나무류가 주를 이룬다. 사람이 조성한 숲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숲이라는 역사적 가치와 함께 홍수의 피해로부터 농경지와 마을을 보호한 지혜를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첫댓글 어제 오후 4시부터 그 불볕 더위에도 아랑곳 없이 경고테니스 8월 월례대회가 열렸지요. 집사람과 저 모두가 결승전에 진출해서 40여명의 참가자들로부터 축하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함께 준우승에 머물렸지만 한 때나마 행복하였더랬습니다. 더운 날씨에 모든 가족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참 부럽다.
고맙습니다. 형님께서는 몇 백 명 먹여 살리시니 더욱 값진 삶을 사시고 계시고요.. 이 더운 여름 건강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