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백의종군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파직 이후에 백의종군할 것을 명맏고 서울에서부터 전주~남원~운봉~통영에 이르는 총 640km으로 합천의 도원 수부를 찾아가는 여정을 복원한 길이다.
구룡계곡
구룡계곡은 지리산 국립공원 북부지소가 있는 주천면 호경리에서부터 구룡폭포가 있는 주천면 덕치리까지 펼쳐지는 심산유곡이다. 수려한 산세와 깍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으로 이어지는 이 계곡은 길이가 약 3㎞이다. 정상에 오르면 구곡경의 구룡폭포가 있다. 남원 8경 중 제1경인 구룡폭포 아래에는 용소라 불리는 소가 형성되어 있는데, 옛날에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구룡폭포의 높이는 10m이며 경사를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의 길이는 약 30m이다. 남원팔경 중에서도 제1경으로 꼽히는 절경으로서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친 다음 미끄러져 내린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굽이쳐 흘러내리는 폭포수를 보고 있으면 무섭기까지 한데, 물거품을 날리며 떨어지는 폭포 주위에 햇빛이 비치면 오색의 무지개가 아롱거리는 장관도 볼수 있다. 폭포 아래쪽에 형성된 작은 소(沼)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용 두 마리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교룡담이라고도 한다.
원천천(元川川) 상류 구간인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로, 원천폭포라고도 부른다. 구룡계곡의 아홉 절경을 구룡구곡(九龍九曲)이라 하는데 구룡폭포는 그중 제9곡으로 구룡구곡의 백미로 꼽힌다.
춘향묘(春香墓)
무덤 입구에 한자로 '춘향묘(春香墓)'라 쓰인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지나 3단으로 구성된 100여 개의 계단을
오르면 커다란 봉분을 갖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는 '만고열녀 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라고 쓰인 비석과 망주석, 상석이 놓여 있다. 춘향묘 앞으로는 육모정(六茅亭)이라는 정자가 있고, 구룡계곡이 흐른다.
육모정(六茅亭)
지리산 국립공원 구룡탐방지원센터 근처의 구룡계곡 옆에 있는 정자로, 육각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육모정(六茅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572년(선조 5) 남원도호부 관내에서 만들어져 현재까지 유지·계승되고 있는 원동향약 관련 유적으로, 향약계원들이 모임을 하던 곳이다.
육모정 근처에는 용호정과 춘향묘, 용호서원 등이 있다.
용호서원
용호서원은 1927년 원동향약계에 소속된 유림의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서원이다. 설립 당시에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자(朱子)의 영정을 봉안하고 주자를 배향하였으나 이후 한말의 우국지사 연재 송병선을 비롯하여 남원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덕행을 펼쳤던 영송 김재홍(金在洪), 입헌 김종가(金種嘉)로 배향 인물이 바뀌었다. 서원 건물들은 1974년 보수되었으며, 현재 정면 3칸·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사우(祠宇)인 경양사, 동재·서재 건물인 목간당(木澗堂)과 수성재(須成齋) 그리고 솟을 삼문의 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원원동향약(源洞鄕約)
유형문화재146호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
원동향약(源洞鄕約)은 선조 5년(1572)에 설립되어 420여 년간 계승된 것으로, 인조 16년(1638)에 작성한『향약록(鄕約錄)』과 숙종 원년(1675), 영조 21년(1745), 정조 4년(1780)에 만들어진『표창록(表彰錄)』등 20여 권이 전하고 있다. 각 권은 한지로 만들어졌는데 창호지가 많으며, 크기는 조금씩 다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원천향안(源泉鄕案)』,『원천동약중수안(源泉洞約重修案)』,『원천원동수안(源泉元洞修案)』,『동약중수안(洞約重修案)』,『원천동향약안(源泉洞鄕約案)』,『위원연기(慰元宴記)』,『원천재계안(原泉財契案)』,『원동계안(源洞契案)』,『용호계안(龍湖契案)』,『용호정중건계안(龍湖亭重建契案)』,『원동계안(源洞契案)』,『원동향약계중수안(源洞鄕約契重修案)』,『용호계(龍湖契)』,『용호계시사(龍湖契詩社)』,『원동계용호시사(源洞契龍湖詩社)』,『시도기(時到記)』,『애감록(哀感錄)』, 『부의록(賻儀錄)』등이 있다. 이것들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까지의 사회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자유인 조동화 그는 누구인가?
전쟁의 포성이 한창인 6.25 시대에 태어나, 인생의 삶이 무엇인가 고뢰하며 즐거운 인생을 꿈꾸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자유인 조동화의 신조는 삶의 여로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부질없다” 하면서 그냥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자유인 조동화는 인간의 삶을 영상을 통해 구현해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삶이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왔으니 삶에 이유가 없고,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정답없는 인생, 내가 하고자 하는것 하면서 행복 느끼며 살면 그것이 행복아닐까 생각해본다.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기 위하여 나날이 최선을 다하자.
사기와 억울한일로 얼룩진 세상만사를 영상을 통해 권력만행의 기록을 더듬어 보자.
건강관리 잘하시고 무궁한 행운을 기원합니다.
나의 초년인생 경험담
1970년 鐵道에 入門하여 40여년을 철도에 젊음을 불사르고, 무엇하나 만족스럽게 이룩 한 것 하나 없이 흘러간 歲月!
1970년2월20일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 초임발령으로 사회 초년생이 되어 목포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철도는 증기기관차(영국의 조지스티븐슨 1829년발명)의 운행에서 디젤전기기관차로 동력이 바뀌어가는 과정에 있었으며, 목포-광주간을 운행하는 몇 개열차는 증기기관차사업이 있었으므로 신규발령된 기관조사에게는 증기기관차승무로 지정되어 기관사1인 본무기관조사1인 보조기관조사1인 3명이서 하는 근무형태로 기관사는 운전만담당하고 기관조사는 교대하여 석탄을 투척하여 증기를 가열시켜 증기기관차가 움직이므로 석탄을 투척하는 작업이 기술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힘을 쓰는 작업이었기에 어려운 작업이었다.
칙칙폭폭, 철컹철컹 한밤의 정적을 깨며 기적소리를 직접울리면서 달렸던 추억어린 시절이 있었음을 추억삼아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시골의 어른들은 기차소리에 깨어 많은 자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허구한 이야기는 아닐것이요, 그래도 인정있고 살기가 좋았던 시기는 그때 그옛날이 좋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순천철도국 목포기관차사무소 기관조사의 사회초년생은 2년6개월의 반복되는 임무후 1972.8.29. 군에 입대, 전주 35사단에서 6주간 훈련을 마치고 후방기 교육을 춘천에서 2주간의 훈련후 강원도 인제 현리 공병부대 의무실 위생병으로 자대 배치되었다.
군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35사단 훈련병때 모악산KBS송신소 건설 작업시 모악산아래에서 세멘 한포대씩 등에 메고 정상까지 오르던일이 가장 내인생에서 힘들었던 일이었답니다.
자유인 趙東和는 黃金萬能主義의 核家族 개인주의 세상에서 옛시절의 인정은 찾아볼수 없고 하루면 수도없는 갖가지 사건사고 홍수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속에 나자신도 예외가 될수 없듯 바쁜일상으로 어영부영 하루가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