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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회보98호
전통주(傳統酒) 글 교무부
꽃향기와 과실향기를 안고 있으며, 봄의 따스함을 전해주고 여름의 더위와 갈증을 씻어주며, 가을의 싱그러움과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하고 겨울의 첫눈처럼 기다림을 주는 술, 그것이 우리의 전통주이다.
술은 인류가 만들어낸 기호품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온 품목이다. 우리나라의 술에 대한 어원을 보면, 열(불)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곡식과 누룩, 물이 섞여져 끓어오르는 현상을 보고 ‘난데없이 물(水)에서 불이 난다’는 생각에서 ‘수─불’ 하였을 것이고, 결국 ‘수─불’이 변형되어 ‘술’로 되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또 ‘물에서 불이 난다’는 생각은 술을 마셨을 때 열이 나고 몸이 뜨거워진 현상을 일컫는 말로서 ‘물에 가둔 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전통주(傳統酒)’라는 말의 엄밀한 해석은 우리 전통문화의 한가지로서, 우리 민족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띤 술을 가리킨다. 조상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전통주는 그 종류가 수백 가지 있지만, 우리의 긴 역사 속에서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현재는 그 명맥만이 조금 이어져 올 뿐이다.
전통주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제왕운기(帝王韻紀)』 「동명성왕 건국담」에서 발견된다. 이 책에는 해모수가 청하(압록강)의 웅심연 연못가에서 유화를 술에 취하게 하여 인연을 맺어 주몽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술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우리의 전통주도 여러 변천과정을 거쳐 왔을 것이다.
『삼국사기』를 보면 초기 고구려는 주조(酒造)기술이 뛰어나 ‘발효(醱酵)의 나라’라 할 만큼 술과 장 등의 발효음식을 만들어 즐겼으며 이때 이미 술누룩[酒麴]과 곡아(穀芽: 곡물의 씨앗)로 술을 빚는 방법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주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술은 1,300여 년전 백제왕실에서 즐겨 음용했던 한산 소곡주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를 살펴보면 백제가 멸망하자 한산 건지산 주류성(현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서는 백제 유민들이 소곡주를 빚어 마시며 망국의 한을 달랬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 주신(酒神)으로 모시는 백제인 인번(仁番)은 일본에 누룩과 술 빚는 법을 전하였다고 하니 이때 이미 백제에서는 상당히 발전된 양조법으로 술이 빚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당대(唐代) 시인들이 칭송하던 신라주의 명성은 고구려로부터 유래된 듯하다. 다른 문화와 함께 고구려로부터 양조기술이 전해진 이후 신라의 양조기술은 국력과 함께 날로 발전하였고,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양조곡주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특히 예주(醴酒: 단술)문화가 정착되어 폐백음식으로도 자리잡았다 한다.
고려시대 전기에는 전대의 곡주류 양조법이 이미 완성되어 양조기술이 한층 발전하였다. 궁중의 양온서(良署: 궁중에서 술을 빚던 관청. 후에 장예서, 사온서로 명칭이 바뀜)에서는 어주(御酒) 및 국가의식용 술을 빚었다. 중국 문헌인 『제민요술』이나 『고려도경』에는 고려의 술 빚는 방법을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주품(酒品)이 등장한다. 이 책에서 귀족층은 청주를 마시고 서민층은 하급청주나 탁주를 마셨음을 엿볼 수 있다.
또 고려시대에 비로소 소주(燒酒)가 전래되었는데,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의하면 소주는 원나라 때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고려시대는 우리나라 술의 3대 분류인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형태가 완성된 시기였다.
고려시대에는 궁중이나 부유층에서 만든 술이 주(主)를 이루는 것과는 달리,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집에서 빚어 만든 가양주(家釀酒)가 대세를 이룬다. 술빚기의 특징으로 술밑(누룩을 섞어 버무린 지에밥)을 사용하여 효모를 증식시키는 기법 등이 발전하였다. 이 시대에 유명했던 술은 무려 3백여 가지에 이르러 이른바 전통주의 전성기였다. 이때 소주도 날로 소비가 늘어 다산 정약용이 전국의 소줏고리(소주를 내리는 데 쓰이는 재래식 증류기)를 거두어 들여 식량난을 예방하자고 상소할 정도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합주류(合酒類: 술에 특별한 재료가 가미된 술)와 과하주류(過夏酒類: 여름철에 맞추어 변질되지 않게 제조한 술)가 출현하여 기존의 탁주, 약주, 소주 외에 혼양주가 덧붙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쌀 부족으로 인해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전통주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멸절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일본이 조선에서 가장 먼저 행한 것은 토지조사와 술에 대한 통제였다. 일제는 조선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쌀로 만드는 조선의 전통주를 금지하고, 대신 값싼 희석식 소주(전통 소주가 아닌 물과 알코올성 음료인 주정의 혼합주)를 대량으로 풀어놓았다.
1945년 해방으로 일제는 물러갔지만 우리의 전통술에 대한 제도와 정책은 일제시대와 전혀 다름이 없었다. 만성적인 식량부족 사태와 술에 대한 과세는 정부 재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전통주의 복원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일부 의식있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의 전통주에 대한 연구 및 개발이 활발히 전개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것이 세계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아가면서 전통주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주 빚기 중국의 대시인이자 술맛 감정에 남달리 뛰어난 감각을 가졌던 소동파(蘇東坡)는 「계주편」에서 “술은 천록(天祿)이다.” 하여 “술은 하늘이 내려준 복록(福祿)으로서, 술이 될 때에 그 맛의 아름답고 사나움으로 주인의 길흉(吉凶)을 안다.”고 하였다. 이에 우리나라의 사대부와 부유층에서 술빚기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고, 이러한 의식은 일반 서민층까지 파급되었다. ‘술로서 주인의 길흉을 알 수 있다’ 함은 곧 과거 잘못에 대한 징벌 또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조짐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조상 제사에 쓸 술이 잘못되면 제사를 받는 선조에 대한 불손·불경·불공의 응징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자녀의 혼인 때 쓸 혼인술이 맛이 없거나 잘못되면 자식의 장래가 불행해 질 것이라고 여겨 술 빚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런가 하면, 술이 시어지면 그 집안에 근심이 생긴다고 여겨 부인은 이러한 사실을 감추고 속성주를 빚어 대체하거나 동네 고을에서 가장 잘 익은 좋은 술을 얻어 붓는가 하면, 팥을 볶아 술독에 넣어 신맛을 고치려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술빚기는 술 빚는 사람들의 혼이 담겨져 있어야 했다.
술을 만드는 기본적인 재료는 쌀과 누룩과 물 세 가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술 빚는 방법을 ‘육재(六材: 여섯 가지 갖추어야 할 재료의 상태)’로 설명한다. 즉 똑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술 빚을 재료를 어떠한 방법으로 처리하느냐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었다. 술을 빚을 때에는 ‘백세침숙대냉(百洗浸宿待冷: 백 번 씻고 하룻밤 담가 차게 식힘)’의 방법을 지키면 제일 좋다고 한다. 이것이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한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좋은 술을 얻기 위해서는 최고의 재료를 장만하고, 그 하나하나의 재료 처리 과정에 남다른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술 빚는 사람의 자세라고 보았다. 우리의 전통주는 조상대대로 가문의 비법으로 대물림하면서 전해져 왔기에 다양성이 특징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전통주의 분류 1. 술을 거르는 형태에 따른 분류 탁주와 청주, 소주(증류주)로 나눈다. 전통주는 대부분이 곡주(穀酒)이자 발효주(醱酵酒)로써 다 익은 술을 어떻게 채주(採酒: 술 찌꺼기를 거르는 일) 하느냐에 따라 청주(淸酒)와 탁주(濁酒)로 나뉘고, 이 청주와 탁주를 증류기(蒸溜器)를 이용하여 소주(燒酒)를 추출한다.
2. 제조방법에 따른 분류 갑작스런 상황을 앞두고 많은 양의 술을 빨리 마련해야 할 때 빚는 술로써 속성주(速成酒)가 있다. 탁한 빛깔에 알코올 도수가 낮고 맛이 박하여 서민들이 즐겨 마셨다.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과 술에 약한 사람들은 대개 감주류(甘酒類)의 단맛을 즐겼다. 알코올 도수가 낮고 단맛이 남아 있어서 술맛이 부드럽고 향기롭다.
꽃이나 과일, 열매 등 자연재료의 향기를 첨가한 가향주류(加香酒類)와 인삼과 당귀, 구기자 등 생약재를 넣어 빚은 약용약주류(藥用藥酒類)가 있다. 여기에는 술이 갖는 고유의 기능 외에 특별한 향기와 약리성(藥理性)을 즐기는 조상들의 지혜와 풍류가 깃들어 있다.
혼성주(混成酒)는 증류주에 과실, 향초(香草) 등의 추출물이나 당류, 향료, 색소를 첨가한 주류를 말하며, 혼양주(混養酒)는 동동주, 청주 등 순곡 발효주와 증류주인 소주를 혼합하여 만든 술이다. 혼양주의 대표적인 술로 과하주(過夏酒)를 들 수 있다.
다음은 이양주(異釀酒)이다. 이양주는 가양주의 성격이 아니라 어느 날 특별하게 얻은 재료를 이용하거나 우연하게 여건이 맞아 빚게 된 술로써 와송주(臥松酒), 송하주(松下酒) 또는 죽통주(竹筒酒) 등 다른 방법의 술빚기로 얻어진 술을 말한다.
3. 술 빚는 횟수에 따른 분류 술 빚는 일을 한 번으로 그치는 술을 단양주(單釀酒)라 한다. 이 단양주에 한 번 더 술을 빚어 넣어 만든 것을 이양주(二釀酒)라 하는데, 이는 밑술(덧술을 빚기 위해 빚는 술)에다 덧술을 더하는 것을 말한다. 이양주에 재차 덧술을 더 빚어 넣는 삼양주(三釀酒), 삼양주에 한 번 더 덧술을 해 넣는 사양주(四釀酒)가 있다. 단양주로는 ‘동동주’로 지칭되는 ‘부의주(浮蟻酒)’가 있으며, 이양주로는 회산춘 등의 순곡주와 가향주류, 약용약주류 등 300가지가 넘는다.
4. 제조시기에 따른 분류 봄철에 빚는 술로써 두견주(杜鵑酒: 진달래술), 한식날 제주(祭酒)로 쓰이는 청명주(淸明酒)가 있으며, 봄철 절기주 가운데 특별한 이화주(梨花酒)가 있다. 여름철의 대표적인 술로 과하주가 있으며, 그 대표적인 술은 막걸리였다. 햅쌀로 빚은 신도주(新稻酒)가 있는 가을철은 연중 가장 풍성한 절기로서 처음 수확한 쌀로 빚은 방문주(方文酒: 맛을 좋게 하기 위해 특별한 재료와 방법으로 빚은 술)로 조상신과 자연신에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또한 국화주는 가을의 대표적인 절기주라고 할 수 있다. 겨울철은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의 세주(歲酒)로 시작된다. 도소주(屠蘇酒)가 있으며 이명주(耳明酒: 귀밝이술)가 있는 절기가 겨울철이다.
5. 밑술 재료에 따른 분류 술 빚기에서 주재료를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술의 맛과 향이 다르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 밑술의 재료로는 죽(粥), 물송편[水松餠], 구멍떡[孔餠], 개떡, 인절미[引切餠], 백설기, 고두밥, 범벅이 있다.
세계의 여러 민족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그 나라의 기후와 자연환경에 맞는 고유의 술재료와 제조법을 개발하여 나라마다 특색있는 술 문화를 만들어왔다.
우리나라에서 술은 혼례를 올릴 때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합환주(合歡酒)의 기능을 하였고, 제사를 지낼 때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제주(祭酒)의 역할까지도 하였다.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면 성인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관례를 올리면서 술을 마셨다. 또한 정월 초하루에 백 가지 병을 예방하는 도소주(屠蘇酒)나 귀밝이술은 어린이나 부녀자도 마시는 우리의 전통문화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통주는 섬세한 맛의 일본술이나 독한 중국술과는 달리 자연스런 빛깔과 은은한 향이 나는 부드러운 맛을 가진다. 또한 한 집안의 내력이 깃든 가양주의 전통이 있어 오늘날 수백 가지 종류의 다양한 술 제조법이 전해져 오고 있고, 사계절이 뚜렷해 계절에 맞는 독특한 맛을 내었으며, 한 잔의 술이라도 건강을 위해 술 재료의 약리성을 활용하여 술을 빚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옛 조상들이 마시던 그 술을 오늘날 우리도 마시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와 애환이 담겨져 있으며, 정성과 숨결이 깃든 전통주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여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최근 웰빙 바람으로 몸에 좋은 전통주와 과실주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건강과 전통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하겠다.
◈ 참고문헌 ㆍ박록담 외, 『한국의 전통명주』, 코리아쇼케이스, 2005 ㆍ박록담, 『전통주』, 대원사, 2007 ㆍ국순당 연구소 홈페이지 자료(http://www.ksdb.co.kr) ㆍ술독닷컴(http://www.sooldog.com) ㆍ김학민 음식 칼럼(blog.naver.com/hakmin8)
출처;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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