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기업 발굴 비법'을 말하다
템플턴자산운용 모비우스 회장
이머징마켓의 인디아나 존스
"남들 다 가는 곳에 가지말라"… 60년대부터 신흥 아시아 시장 개척…
年 250여일 출장… "휩쓸리면 안돼"…
"남들 다 보는 것에 의존말라"… 기업 재무보고서만으로는 알 수 없어…
직접 방문… 사람 만나본 뒤 투자결정…
"40년 넘는 경험이 최고 경쟁력… 늘 正道를 걸어라"
남의 돈 빌려 쓴 적 없고… 파생상품ㆍ공매도 절대 안해…
부자들은 낙관적이고 검소
▲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
그는 별명을 여럿 갖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의 브로커나 펀드매니저들은 그를 '대머리 독수리(Bald Eagle)'라고 부른다. 그의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빗댄 것이다.
그가 삼성전자의 주식을 매수했다고 치자.
그럼 순식간에 "대머리 독수리가 삼성전자에 내렸다"는 말이 전 세계 증시에 퍼진다.
그럼 채 1분도 안 돼 삼성전자에 해외 투자자들의 매수 주문이 쏟아질 것이다.
독수리가 내린 곳에는 뭔가 괜찮은 먹을거리가 있다는 얘기니까.
'이머징마켓의 아버지'라는 좀 점잖은 별명도 있다.
일본이 이머징마켓 취급을 받던 1960년대부터 그는 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투자 기회를 찾았다. 이머징마켓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은 1970년대 국제금융공사(IFC)의 투자담당관이었던 앙트완 반 악트멜(van Agtmael)이었지만, 실제로 이머징마켓이 투자할 만한 곳이고 엄청난 기회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한 것은 바로 그였다.
하지만 많은 별명 중 그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이머징마켓의 인디아나 존스'가 아닌가 싶다. 세계적인 펀드매니저라고 하면 멋진 사무실에서 명품 정장을 걸친 채 보고서를 읽는 30~40대의 젊은 엘리트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올해로 74세인 이 노신사의 일상은 정반대다.
이머징마켓의 숨은 유망기업들을 발굴해 장기간 투자하는 투자 기법으로 유명한 그는 일년 중 250여일을 전 세계 방방곡곡의 유망 기업을 직접 방문한다.
그 와중에 비행기가 논바닥에 불시착하기도 하고, 쏟아지는 총탄 사이를 가까스로 빠져나오는가 하면, 정글 한가운데서 길을 잃기도 한다.
그야말로 숨겨진 보물을 찾아 나선 탐험가의 모습이다.
마크 모비우스(Mark Mobius) 템플턴자산운용(Templeton Asset Management Ltd.) 회장은 이런 사람이다. 미국의 한 경제 전문지는 그를 "이머징마켓이라는 거대한 처녀지를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개척해낸 파이오니어"라고 표현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펀드매니저 중 한 사람이자, 세계 최초의 이머징마켓 전문 펀드매니저이고, 세계 최고령 펀드매니저 중 한 사람인 그를 Weekly BIZ가 지난달 23일 만났다.
홍콩 센트럴(Central)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였다.
창문 너머로 홍콩의 마천루와 바다, 그리고 카오룽(九龍)의 초현대식 건물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보였다. 1967년 그가 홍콩에서 일하기 위해 처음 왔을 때는 대부분 없던 건물들이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안녕하시오, 기자 양반!"이라며 인사를 건네왔다.
70대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활기가 넘쳤다.
그는 "전날 밤늦게 출장에서 돌아와 쌓여 있던 결재를 하느라 약간 늦었다.(정확히는 4분 늦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연중 3분의 2를 출장으로 보낸다고 들었습니다. 힘들지 않으신지요?
"물론 힘듭니다. 시차는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자는 것 외에는 특별한 해결책이 없어요.
가끔 잠을 잘 자려고 멜라토닌을 먹기도 하죠. 그래서 가능하면 밤에 비행기를 많이 탑니다. 비행기 안에서 푹 자려고."
―이 시간 이후 스케줄을 공개한다면?
"오늘부터 홍콩에 4일 머문 뒤 싱가포르로 가서 5일간 있을 예정입니다.
다음은 두바이로 갑니다. 거기서 3일 있다가, 또 루마니아로 가서 3일, 그리고 런던에 가서 5일간 있을 예정입니다.
남미에도 한번 가 봐야 하는데…. 일정이 빡빡해서 12월쯤이나 돼야 갈 것 같아요."
그는 건강 유지의 비결이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제야 작지만 탄탄해 보이는 그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1987년부터 CEO로 있는 템플턴자산운용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그룹 중 하나인 미국 프랭클린템플턴인베스트먼츠의 자회사로 이머징마켓에만 특화해 투자하고 있으며, 3월말 기준 운용 자산이 366억달러(약 41조원)에 이른다.
―왜 직접 기업들을 찾아다니나요?
"보고서만으로는 그 회사에 대한 모든 것(whole stories)을 알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경영자와 직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실제로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냥 재무보고서만 보고 주식을 산다면 다른 평범한 투자자들과 다를 게 없죠.
장기 투자를 표방하는 저로선 특히 재무 수치보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기업을 직접 방문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야말로 제 리서치의 핵심입니다. "
―출장을 많이 다니다 보면 별의별 일을 다 겪을 것 같은데요.
"1988년 12월 필리핀 마닐라에 갔다가 호텔로 날아든 쿠데타군의 총탄에 맞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키노 대통령이 마르코스 정권을 밀어내고 들어선 이후 무려 일곱 번째 쿠데타였죠.
주변에서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투자를 하겠느냐고 말렸지만, 저는 투자를 강행했고, 결국 3년 만에 원금 대비 두 배의 수익을 냈습니다. 브라질 상파울루 교외에서 댐을 시찰하러 가다가 권총 강도를 만나 돈과 차를 모조리 뺏긴 적도 있습니다.
휴대폰도 안 터져서 산길을 세 시간이나 걸어가야 했어요.
한번은 아프리카에 갔다가 사바나 한가운데서 차가 고장 나 노숙을 한 적도 있고요."
■훌륭한 펀드 매니저의 최고 경쟁력은 '경험'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골라내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대단한 건 없는데…. 업계의 다른 투자자들처럼 우리도 리서치를 열심히 합니다. 단, 차이가 있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세세한 부분까지, 아주 꼼꼼하게 본다는 거죠.
여기에 업계 최고의 축적된 경험이 더해집니다.
우리 리서치 스태프의 평균 경력은 9년이 넘습니다.
한 산업만 20년 이상 판 사람도 있습니다.
가만있자, 우리 팀에 1987년에 들어왔으니까…. 올해로 24년째군요."
모비우스 회장은 인터뷰 내내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의 최고 경쟁력도 '경험'이라고 했다.
그는 1967년 홍콩에서 마케팅 컨설턴트로 자리를 잡은 이래 40년 넘는 세월을 아시아 이머징마켓에서 보냈다. 당시 일본은 1964년 도쿄(東京)올림픽의 성공 이후 경제 대국의 길로 질주하고 있었다.
태국과 홍콩, 필리핀 등도 이미 유망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한국은 여전히 전쟁의 상처로 신음하는 후진국이었다.
그는 "70여년을 살면서 참 많은 일들을 겪었고,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경험했다"면서 "오랜 경험을 통해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나름의 도(道)가 트인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자신감은 그가 운용하는 템플턴이머징마켓펀드(지역별 50여개 펀드로 나뉜다)의 실적으로 증명된다. 모비우스 회장이 이 펀드의 운용을 맡은 1987년부터 2007년까지 20년간 누적 수익률은 3만6000%에 육박한다.
1987년 당시 대졸 사무직 직원의 월급인 40만원을 투자해 지금까지 계속 보유했다고 가정하면, 2007년에는 1억4000만원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장수하는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뭡니까?
"첫째는 경험, 둘째는 장기 투자에 대한 철학입니다.
장기적 시야를 갖지 못한다면, 펀드매니저로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오래 투자를 해보면 '시장과 시간을 다투면 안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울 수 있습니다."
―최근 이머징마켓에서 큰 사건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태국의 정치 소요나 칠레와 중국의 지진 등 말이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럴 때야말로 경험이 큰 힘이 됩니다.
이런 사건들은 이미 예전에 한두 번씩 다 겪었던 일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나중에 다 회복이 됐죠.
이런 사실들을 경험해 보면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야말로 당신의 투자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수 있는 투자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장기 투자의 자세지요."
그는 "단기적 시각을 가지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마치 부모가 못된 짓을 일삼는 자녀를 안타깝게 타이르듯. 그는 "단기적 시각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은 짓을 하게 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장의 출렁임에 휩쓸려 샀다가 팔았다를 거듭해 결국은 한 푼도 못 버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에 다른 할 일도 많은데 왜 그런 짓을 하느냐"면서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고수익을 올리려면 남들이 모두 팔려고 할 때 사고, 남들이 모두 사려고 할 때 팔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젊은 펀드매니저들에게 조언한다면?
"첫째, 항상 열심히 공부하세요. 결코 배움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둘째,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귀를 기울이세요. 겸허해야 합니다.
셋째, 참을성을 기르세요. 훌륭한 펀드매니저는 꾸준하고 한결같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오락가락하다가 시장의 일시적 분위기에 휩쓸리게 됩니다."
▲ 프랭클린템플턴 인베스트먼츠 제공 |
■오직 정직한 투자만이 가치있는 투자다
―너무 경험칙을 확신하는 것 아닌가요.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는 말도 있습니다만.
"아주 유명한 말이죠. 그런데 왜 자꾸 그 말이 회자될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게 바로 인간의 역사예요."
―회장님도 파생상품에 투자하시나요?
"전혀(Not at all)! 우리 주식형 펀드는 파생상품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템플턴의 채권 펀드는 일부 파생상품을 활용하지만, 내가 관리하는 템플턴이머징마켓펀드는 파생상품을 배격합니다. 우리는 레버리지(leveraged·차입) 투자도 하지 않습니다."
―파생상품을 이용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지 않나요?
"그만큼 많이 잃게 되죠. 파생상품은 수익뿐만 아니라 손실의 폭도 크게 늘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파생상품은 리스크를 줄여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는 파생상품이 일으키는 착각(fake)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앞으로 30년간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일정 폭에서 움직일 걸로 보고 통화 파생상품에 가입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검은 백조(black swan·극단적인 예외여서 발생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가 등장하는 거죠. 그럼 당신은 망하는 겁니다."
―그럼 공매도(short selling)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금지되어야 합니다. 사실 내가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판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주식 투자란 어떤 주식이 맘에 들면 사고, 내가 갖고 있는 주식이 맘에 안 들면 파는 겁니다. 간단하죠.
그런데 왜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파는 공매도 같은 짓을 하나요?
이 산업(금융산업)에는 이런 식의 거래로 만들어지는 돈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지금처럼 전산화된 주식 거래 환경에서 공매도는 특히 문제가 많습니다.
공매도가 이뤄지는 시각과, 주식을 빌리는 시각 간에 시간 차가 생기면서 아직 빌리지도 않은 주식을 파는 이른바 '네이키드 숏 셀링(naked short selling)'이 벌어집니다. 실제 매물이 나올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매물이 나와 주가가 급락할 수 있습니다. "
―존 폴슨(미국 주택시장 붕괴에 베팅해 큰 돈을 번 헤지펀드 매니저)도 공매도 기법으로 큰돈을 벌었는데요.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과거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원래 그가 가장 먼저 찾아간 투자은행은 베어스턴스였는데 베어스턴스는 '윤리적이지 못하다'면서 폴슨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폴슨은 그래서 골드만삭스를 찾아갔던 거죠. 진짜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윤리적 결정을 내렸던) 베어스턴스가 파산했다는 점입니다. 왜 그랬을 것 같으세요?"
갑자기 그는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황한 기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이 노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몰락한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당시 골드만삭스의 최대 경쟁사들이 누구였는지 생각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그는 연이어 "당시 재무장관이 어디 출신이었는지, 골드만삭스의 고문이 누구였는지도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골드만삭스가 배후라는 얘기였다.
그는 미국 금융계의 '골드만삭스 마피아'들이 골드만삭스를 위한 정책들을 펼치면서 작게는 월스트리트의 경쟁사들이, 크게는 미국 국민과 세계 금융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빙긋이 미소를 지으면서 "나는 그저 생각해 볼 힌트를 줬을 뿐"이라고 했다.
■세계는 낙관주의자들의 것
인터뷰는 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쯤 되니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실례지만, 헤어스타일이 독특한데…본래 대머리신가요?
"하하. 아닙니다. 나름 사연이 있죠. 40여 년 전 홍콩에서 살던 집에 불이 나 머리털이 심하게 그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밀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중국 속설에 불난 집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부자가 된다.
특히 대머리 남자는 유복해질 운명'이라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이 스타일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제 머리는 제가 직접 면도하고 있습니다."
―돈을 분명히 많이 벌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쓰시나요.
"솔직히 개인 재산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돈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데 많이 씁니다. 좋은 시계나 반지 같은 데도 투자하죠.
시계와 반지가 한 스무개씩 있어요. 시계는 세계 시간이 표시되는 아날로그 손목시계를 좋아합니다." (이날 그가 차고 온 시계는 '파텍 필립'의 월드 타임 시계였다.)
―개인 재테크는 어떻게 하나요?
"절반은 금융상품에, 절반은 부동산이나 귀금속 등에 투자합니다.
금융 투자는 물론 프랭클린템플턴의 펀드에만 투자하죠.
개인적으로는 템플턴이머징마켓펀드를 가장 좋아합니다. 장기 수익률이 좋아요.
저는 지금껏 누구에게도 돈을 빌려본 적이 없습니다.
딱 번 만큼만, 갖고 있는 만큼만 썼죠. 우리 부모님도 열심히 저축했고, 남에게 한 푼도 돈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내게 없는 돈을 쓰고, 투자하는 행위(buying, investing with the money I don't have)가 버블을 일으키고, 금융위기를 낳습니다."
―수많은 부자들을 만나봤을 텐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은 누구였나요. 또 그들의 공통점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템플턴 펀드를 창시한 존 템플턴 경(2008년 작고)입니다. 그는 자신의 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의 부(富)를 키워줬고, 고객들에게 전 세계를 보고 꾸준히 투자하라는 장기 투자의 비전을 전수했지요.
세계적인 부자들의 공통점은 겸손(humble)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실수를 인정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리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죠. 이들은 또 매우 검소한 삶을 산다는 것도 공통점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녀들도 그렇게 키우죠. 한번은 세계 최고 부자인 카를로스 슬림과 그의 자녀들을 만났는데, 너무나 검소한 차림이어서 놀랐어요.
내가 입고 있던 옷과 시계가 훨씬 화려했죠."
―회장님의 인생철학은 뭔가요.
"낙관주의입니다. 우리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죠.
제 아버지는 독일, 어머니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이민자였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낙관하는 개척자로서의 삶을 살았고, 저도 지금 이머징마켓의 개척자로 살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낙관주의자들의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지금껏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이머징마켓과 결혼했다"고 말했다.
일년 내내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결혼할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은퇴 계획을 묻자 "은퇴? 그게 뭔가?(Retirement? What is that?)"라며 받아쳤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미리 준비했던 5만원짜리 국산 인삼 코냑을 선물했다.
그가 가끔 술을 즐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안 그래도 인삼을 좋아하는데 고맙다"며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이 술 만든 회사가 어딘가요?"
모비우스 회장의 투자 경험
최고의 투자는 현대산업개발… 최악은 인도네시아 제지회사
모비우스 회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최고의 투자로 한국의 현대산업개발을 꼽았다. 2003년에 약 2000억원을 투자해 2007년까지 3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한때 전체 주식의 20% 를 사들이기도 했다.
반면, 최악의 투자는 인도네시아의 제지 회사인 아시아펄프앤페이퍼(Asia Pulp and Paper)였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 회사가 도산하면서 투자액의 71%, 액수로 따지면 7200만달러를 잃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NHN, 현대백화점을 꼽았다.
―이머징마켓의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앞으로 좀 더 기대를 걸어볼 만한가요?
"작년보다는 못하겠지만, 올해도 충분한 투자 기회가 있을 겁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로 더 많은 돈이 몰리고 있습니다.
우리 같은 자산운용사들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죠. 아시아는 세계의 생산뿐만 아니라 조만간 세계의 소비 시장도 선도하게 될 겁니다.
특히 중국과 인도, 브라질을 유심히 보세요.
이들 국가는 내수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고, 경제 개발의 토대가 되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열심입니다. 앞으로의 10년은 중국과 인도, 브라질의 시대가 될 겁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은 이들 국가의 가장 큰 수혜국 중 하나죠.
이들 국가의 풍요가 한국을 더욱 살찌울 겁니다.
한국은 높은 교육열과 축적된 기술, 인터넷 활용도가 높은 장점을 극대화해 이 기회를 살려야 해요. 한국은 거의 한 세대 만에 극빈 상태를 딛고 일어나 부(富)를 일군 경험이 있습니다.
이 경험이 중국·인도·브라질 같은 국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겁니다."
―요즘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투자처는 어딘지요?
"리비아, 알제리, 케냐, 남아공 등 아프리카 지역, 두바이. 카타르 등 중동 지역, 이밖에 카자흐스탄. 루마니아. 베트남 등입니다.
한마디로 프런티어(frontier) 마켓이지요. 상대적으로 해외 투자자들이 관심이 높지 않은 곳입니다. 유망한 기업과 주식을 골라내면 매우 싼 값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경제 상황이 엉망인데….
"경제가 나빠도 발전하는 기업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휘발유 가격이 오르면, 에탄올 휘발유를 만들어 파는 기업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경기가 나빠도 (사탕수수로 만드는) 에탄올 생산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이죠.
아프리카 경제의 장기적 전망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는 자원이 풍부하기도 하지만, 중국·인도·일본 등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죠. 지금까지 서구 국가들의 투자와 다르게, 이들 국가의 투자는 사회간접자본을 중심으로 매우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발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봅니다."
―중국은 어떤가요. 부동산 버블 붕괴로 경제에 충격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많은데.
"중국에는 발전 속도가 천양지차인 수많은 성(省)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버블이 있고, 어떤 곳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게다가 중국 금융기관들은 막대한 예금을 갖고 있고, 가계 부채 비율도 매우 낮습니다. 또 중국 정부가 부동산 과열 문제에 매우 영리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금리 인상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중국 정부는 적어도 2010년에는 금리를 올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규 대출 규제, 지급 준비율 인상 등 유동성을 조절할 다른 방법도 있으니까요. 저는 중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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