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은 위로가 빠지면 안 되는 위로의 맛질(?)이다.
혼자 먹는 밥이니 거나한 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빠른 속도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 아니면 천국 간판을 도용한 김밥집에서 라면 한 그릇에 김밥 한 줄, 라면의 영양학보다는 라면의 경제학 그리고 스피드, 애써 숟가락 동석을 챙기지 못한 쓸쓸함에서 벗어나는 일이 맛보다 더 중하다. 4명이 앉는 테이블에 홀로 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는 거 쥔장 눈치 안 볼 수 없다. 그래서 내 돈 내고 사회 경제활동하는 일 중에서 '을' 이되는 유일한 타임, 혼밥에만 존재하지 않을까?
허구 많은 직업 중에 먹고 놀며 돈 버는 직업이 제일 부럽다. 먹고 놀고 돈 벌고 얼굴값하고... 맛 칼럼니스트가 우연히 지방 어느 식당에 갔다가 잊지 못할 맛을 두고두고 기억으로 다시 우려먹고 돈 벌듯, 누구에게나 맛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혀의 간사한 꾀임에 빠진 나 같은 미천한 중생이... 9월 광주(호남) 출장길에 일을 마치고 보도블록에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를 요리조리 피하며 식당을 찾았다. 식당에서 똥 밟은 손님 오셨다 주인으로부터 시말서 쓰고 밥 먹게 될까 봐... 이른 점심, 혼밥을 하려 두리번거리다가 찾은 순두부집. 광주 지하철 양동 재래시장에서 녹동 방향으로 금남로 5가 빌딩 골목 뒤편에 있다. 역세권이다. 점심시간 전이라 종업원 두어 명이 테이블에 밑반찬을 열심히 세팅하고 있다. 벽에 걸린 메뉴판엔 그냥 기본 순두부부터 매운 순두부, 흰 순두부, 등등 순두부만 여덟 가지. 혼밥이니 고른다고 구박받을까 봐 기본 순두부를 주문했다. 밑반찬으로 생두부 넉 점이 양념간장과 함께 나왔다. 고슬고슬하게 밥 냄새가 모락모락 나는 하얗고 찰진 돌솥밥이 모처럼 식욕을 돋운다. 갓 지어낸 생두부의 고소한 콩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얕은 창밖에 고층 빌딩이 경쟁하듯 하늘로 치솟은 욕망의 스트레스가 후미진 골목 뒷길로 빠져나가고 있다. 김영림 순두부란 간판도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고 숨었다. 틈틈이 빌딩을 빠져나온 샐러리맨들의 저녁 모습이 그려진다. 밥상 위에 올려진 배추김치는 짜지도 맵지도 않은 심심한 맛, 순두부 뚝배기가 싹싹 비워지게 만들 만큼 양도 적당했다. 돌솥 하얀 밥을 빈 밥그릇에 덜어내고 얇게 물을 부어놨다가 노릇노릇 해진 누룽지는 감칠맛을 더 해 숟가락을 놓고도 입맛을 다시게 한다,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면서 여기서도 종업원이 혼자 왔다고 하니 구석 2인용 테이블로 안내한다. 그러나 이런 맛이라면 점심 한 끼 칠천 원, 아낌없이 맛집 혼밥 추천을 닥치고 꾹꾹 눌러주고 싶다.
그나저나 맛 칼럼니스트들은 먹기 전에 경건하게 사진부터 찍어둔다는데 난 그 직업이 아니므로 하이에나같이 먹고 나서 빈 밥그릇을 두고 사진을 찍었다. 리얼하지 않은가? 맛집 소개를 했으니 이쯤 되면 '갑' 측에서는 이 글에 댓글을 다시고 다음에 오시면 공짜로 한 그릇 주겠다는 스폰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애석하게도 그 집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러니 틀렸거나 기대를 말자. 맛있는 집이라고 한번 가겠다고 예약하지 마시라. 혼밥은 예약이 없다는 게 '을' 의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숙명이자 리스크다. 불평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인권위에 진정서를 넣자니 그나마 마지막 내 인권의 보루일 것 같아서 참고 다음에 써먹기로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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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혼밥끝나고,작가와함께 떠나는 맛기행에 참여하고 싶네요~~ㅎㅎ
형님 글솜씨는 참 탁월합니다 같은 일상인데 어쩜 그렇게 표현이 다르 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