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하는 주간입니다.
아랫동네는 벌써 비가 온다는데, 이곳은 비올 생각이 아직도 보이진 않네요. 언제쯤 올까요?
맑은 하늘 아래, 모들이 잘 자라고 있는 오늘 입니다.
9시 15분,
오늘은 어르신이 앞에 나와계셨습니다. 필요한 것이 바로 생각이 나셨나봅니다. 이것저것 고르시더니, 돈이 조금 부족하십니다.
"얼마 남았어?" 하시는 어르신.
"남은 돈은 올려놔~ " 하시며 필요하신 것들을 골라가십니다. 조합원은 아니지만, 외상은 반드시 갚아주시는 어르신이기에 신뢰로 바로 해드립니다.
9시 30분,
불가리스 어르신들, 기억이 깜박깜박하신 어르신께서 불가리스 주문을 또 실수하셨습니다. 한 번 미리 전화를 주셨으면 좋으셨을텐데...
또 까먹으셨겠지요. 불가리스를 사는 주민이 많이 않다보니, 어르신들이 사지 않으면 해당 제품은 거의 팔리질 않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해결하곤 합니다. 이해를 하고 넘어가야하지만, 때로는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다보니 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지만, 제가 부담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안되다보니..어쩔수 없이 정기배달은 잠시 중단하기로 합니다. 다음주에 어르신과 만나거든 방법을 재 논의 해봐야겠습니다.
9시 45분,
마을을 나가는길 한 어르신이 붙잡습니다.
"울집에 누가 갖다 놨소?" 하시는 어르신.
지난주 두유 선사를 받으셨던 집이었습니다. 선사하신 어르신은 저희 조합원도 아니거니와 비밀로 해달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단지, 무 한 포대 받은 어르신이었다는 것만 기억했죠. 어르신께 자초지종 설명을 하니 알겠다고 하십니다. 집에 물건이와도 바로 이를 다시 확인해서 그 마음을 보답하고자 하시는 어르신들입니다.
9시 55분,
어르신들이 약 칠 준비하십니다.
"저 높은것들, 따긴 힘들지만, 울 아그들 먹을거니깐.."
감나무에 감이 적당히 떨어진 후, 약을 합니다. 약을 하지 않으면 벌레와 새들이 다 먹어서 감나무에서 먹을 감이 없습니다. 내가 따진 못하지만, 자식들 먹을 생각에 경운기 이끌고 약하러 가는 노부부 어르신들. 힘이 닿는한 그 감나무에서 감은 계속 열리겠구나 싶습니다.
10시 20분,
오늘은 어르신께서 지난번 공병수거 한 것으로 물건을 구입하고자 하셨습니다.
지난번 수거한 맥주 68개, 소주 29개.
맥주는 한 병당 130원, 소주는 한 병당 100원 하면 11,740원.
어르신은 술 병으로 두부와 콩나물을 바꿔가시곤 다음주에 또 오라고하십니다.
어르신들께서는 술도 많이 주문해주시지만, 술병을 잘 모아두었다가 저희로 반납을 잘 해주십니다. 저희는 반납한 술을 다시 잘 정리해서 광주에 도소매마켓으로 반납하면, 술을 구매할 때 해당 병값만큼 술값을 차감해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공병 제공으로 인하여 저희가 금전적으로 남는것은 없지만, 공병 환원을 통해 재활용율을 높이고 어르신들에게 작은 생필품이라도 전달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꾸준하게 공병수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11시 20분,
한 어르신이 점빵차를 보시곤 집 마당으로 오라고 하십니다. 무슨일인가 싶었는데, 면사무소에서 지원을 받고 있었던 어르신이었습니다. 지난주 제가 없었을 때도 마당까지 차가 올라가서 물건을 고르셨다고합니다. 면사무소 맞춤형복지팀은 긴급생계로 어려운 세대를 찾아 1년에 50만원, 1회에 한하여 긴급생계비를 지원합니다. 당사자에게 직접 제공하지 않고 저희 점빵으로 선결제를 해놓으면, 당사자가 필요한 물품을 고르는 형태입니다.
기존의 긴급생계 지원은 제공하는 주관 기관이 판단해서 필요한 물품을 정하여 주기 때문에 선택권이 없지만, 저희 지역은 당사자의 선택권을 최대한 존중하고, 또 낙인감을 없애는 형태로 지원하기에 당사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어르신들께서 물건을 한참 고르시고나선, 다음주에 또 와달라고하십니다. 만족해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저도 기분좋게 드리고 옵니다.
11시 40분,
전화가 왔습니다.
"잎새주 댓병 4개 꼭 놓고 가~ 놓칠까봐~"
무엇을 하실련지 여쭤보니 어르신께서는 2년치 술을 한 번에 담그신다고 합니다. 보해 25도 소주로 6병으로 하면, 딱 2년을드신다고 합니다. 요양보호사가 함께 나와서 술 외에도 다른 반찬거리들을 다 주문하십니다. 근
어르신께 물건 전해드리고 오던 찰나, 어르신의 걸음이 더 안좋아지신것을 보았습니다. 지난번 봤을 때까지만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양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를 못하실정도가 되셔서 말씀드리니 어르신께서는 손을 꼭 잡아주시며 괜찮다고 하시곤 천천히 가십니다.
어르신께 술은 조금만 드시라고 말씀드리니, 고맙다며, 또 보자고 하시는 어르신. 홀로 사시는 어르신 집에 요양보호사가 없는 시간동안 어르신은 무엇을 하고 계실지.. 염려가 되었습니다.
13시 40분,
회관 안, 핸드폰으로 골똘히 무엇인가 보고 계시는 어르신. 무엇인가 싶어 여쭤봤더니,
"울 사위여~ 사위~" 하십니다.
영상 조회수보니 300만이 넘는 엄청난 유튜버였습니다. 나중에 더 여쭤보니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사위. 그런 사위가 하는 말을 보고 흐뭇하게 듣고 계셨습니다. 사위가 그렇게 멋지게 잘 나가는데, 안좋아하실 장모님이 안계시겠지요~
14시,
지난주 물을 주문하셨던 삼촌, 집에가도 안나오길래 들어가보니, 술 취해 자고 있었습니다. 집 안에는 술 냄새가 찐하게 나고 있었네요.
조심히 들어가서 깨우니 놀라며 바로 나간다고 하십니다. 필요한것들 사고 돌아가며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괜찮다고 다시 말씀드리며 다시 나섰습니다.
14시 20분
3천원만 있어야할 어르신 댁에 8천원이 있었습니다.
우린 늘 두부 2모를 약속했는데, 5천원이 더있다는건 어르신께서 중멸치를 주문하셨다는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관계.
하지만, 중멸치가 5,500원으로 올라 나머지 500원은 어르신의 포인트로 차감하고자 했습니다. 꾸준하게 구매해주시는 어르신의 포인트는 어르신의 자투리돈을 차감하고도 남을만큼 있었습니다.
14시 25분,
"어.. 다시 돌아와줄 수있어요?" 아까 술마셨던 삼촌 전화였습니다.
무엇인가 필요하시겠거니 싶어 다시 차를 돌렸습니다.
"미안해요~" 하시는 삼촌, 그러곤 반찬 거리를 추가로 더 사셨습니다. 술을 사시는 줄 알았지만, 안사서 다행이었습니다.
삼촌에게는 술 배달하는 일은 우리 직원들이 안하기로 했음을 말씀드리니, 삼촌도 그건 실례가 되는 줄 안다고 하시며, 전화 한통에 다시 돌아와줘서 고맙다고 하시곤, 웃으며 다시 들어가셨습니다.
14시 40분,
두유 어르신, 어르신께 두유 하나를 갖다드리며 부탁을 하나 하였습니다. 윗집 어르신 밑반찬 전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직접 전달하기엔 멀고, 또 해당 집 어르신은 두유 어르신 댁에 종종오니, 두유어르신 집에 밑반찬 가방 2개를 놓을테니, 오면 전달해달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번 밑반찬을 전달드리는 과정에 인지가 조금 떨어진 어르신의 오해가 있었습니다. 낯선 사람이 집으로 방문하는 과정이 어르신에게는 불편했었던 것이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해당 어르신 아드님께 전화드려 사정을 설명한 후 다시 서비스 제공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아랫집 어르신께 부탁을 드리니, 흔쾌히 괜찮다고 하며 그러라고 해주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늘 도와주시려는 어르신 덕분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15시,
이젠 닭들이 이렇게 나와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자유롭게 놀다가 또 집으로 들어가겠지요? 어르신도 닭을 믿고 계시니 이렇게 풀어 놓으시구나 싶습니다.
15시 10분,
오늘도 어르신 집에 들려보니, 어르신께선 평소보다 이야기를 더 잘 못들으셨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선 아마 뒤에 일하고 왔을거라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은 아니라고 하시는데, 어르신 손을 보니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깨를 심었는데, 풀 조금 멧다고 하시는 어르신. 걷기도 힘든데 그 넓은 밭 다니며 일을 놓지 못하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참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르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그러실까요?
15시 20분,
회관에 어르신들이 많이 모여 계십니다.
통 갖고 앉아 들어가니 남자어르신이 만원 한 장을 주십니다. 말씀 안하셔도 잎새주 6팩 1개인지 바로 알아챕니다. 그걸 보곤 어르신들이 재밌다고 깔깔 웃으십니다. 그러곤 옆에 계신 어르신은
"나 지난번 공병있지요? " 하시며 샤프란 하나 달라고 하십니다. 남은 돈은 어르신 포인트에서 제하기로 합니다.
그덕에 어르신은 공짜로 샤프란 한셋트 받아가십니다.
장사하는 동안 옆에선 어르신들이 수박 썰어주십니다. 괜찮다고 했지만,
"지비 와서 지비 먹으라고 써는겨~ 어여 먹어~~" 하십니다.
어르신 덕분에 수박으로 배채우고 당보충, 수분 보충하며 이동합니다.
16시,
마을로 들어가는 길, 길 옆 밭에 불을 크게 지릅니다. 의용소방대 함께 동행합니다.
담날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어서 그런지 바로 다 태우시나봅니다. 잡초와 벌레, 마른 잎들이 싹 타고 나면 더 비옥한 땅이 될려나요.
잠시 구경하고 올라갑니다.
16시 15분,
지난주 밑반찬 못받은 집에 가보니 어르신 혼자 계셨습니다. 어르신께 상황을 여쭤보니, 남편 되시는 어르신은 병원에 갔지만, 이제 돌아오진 못한다고 하십니다. 어르신도 얼굴이 더 헬쓱해져서 어쩐일인지 여쭤보니 최근 병원에가서 턱 아래쪽 혹을 더 떼냈다고합니다. 반찬 먹는것은 무리가 없으신지 여쭤보니, 더 얇게 썰으면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었습니다. 이젠 혼자 계실 어르신인데, 누군가 집에 자주 들여다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16시 25분,
오늘 마을회관에서 잔치를했다고 합니다. 상반기 끝나고 평가를 하는 겸해서 오리탕과 오리다리 튀김을 사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간만에 회관 옆에 차가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영광읍에 오리 튀김을 잘하는 "꼬꼬통닭"에서 사오셨다며, 간만에 많이 모이셨다고 합니다. 우리 총무님은 마을 내 간병을 하는 어르신댁 곳곳을 다니며 오리튀김을 전하셨나봅니다.
그러고보니, 좀 전에 들린 집은 어르신이 혼자 누워계셨는데... 평상시에도 마을분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시는것 같아 더 신경이 쓰이게되네요. 총무님 부녀회장님께 여쭤보니 안그래도 집에 들렸다 오셨다고 합니다. 동네분들하고 더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 싶은데... 함께 할 수있는 구실들을 더 찾아봐야겠다 싶습니다.
집집이 방문을 하니 오늘 이동장터는 조금 더 늦어졌습니다. 마을에 어려운 분들 근황을 바로 바로바 공유하고, 위기 상황이 있지 않도록 해야겠다 싶습니다. 다음주에도 다시 방문해봐야겠다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