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출발
체서피크 배이 해양 박물관 (Chesapeake Bay Maritime Museum)에서 크루즈를 탑승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케임브리지 등대 주변의 구경을 마치고 세인트 마이클(St. Michaels)로 향했습니다.
메릴랜드 333번과 322번 도로의 교차로를 지나 US 50번 국도로 접어들자, 동부 쇼어(Eastern Shore) 특유의 평온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길가에는 작은 타운들이 이어졌고, 오래된 상점과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카페가 간간이 나타났습니다.
여름의 체서피크 베이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이동하는 차량,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도로를 따라가는 여행객, 그리고 작은 마을에서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까지—도로 주변은 한적하면서도 여행의 활기가 함께 느껴졌습니다.
들판과 농장지대가 이어지는 풍경 속에서 US 50번 국도는 곧게 뻗어 있었고,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메릴랜드 동부 쇼어의 여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길가의 풍경을 즐기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세인트 마이클(St. Michaels)에 가까워졌고, Chesapeake Bay Maritime Museum(CBMM)에서의 크루즈 탑승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세인트 마이클 도착
Chesapeake Bay Maritime Museum(CBMM)에 도착하자, 마치 작은 대학 캠퍼스에 들어온 듯 넓고 푸른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서피크 베이의 해양 문화를 담아낸 22개의 전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오래된 조선소 건물부터 등대, 보트 제작소, 해양 교육관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저마다의 역사와 역할을 품은 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세인트 마이클의 옛 정원과 통나무집에서 만난 해양 마을의 역사
CBMM 캠퍼스 안에 있는 작은 정원과 통나무집으로, 체서피크 베이 지역의 전통 정원 문화와 초기 정착민들의 생활 방식을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Heirloom Garden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재배되던 전통 작물(heirloom varieties)을 심어 놓은 작은 정원입니다. 허브, 채소, 꽃 등이 자연스럽게 자라며, 옛 농가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합니다. Log House 19세기 초반의 통나무집을 복원한 건물로, 당시 어부·농부·정착민들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보여주는 전시 공간입니다. 내부에는 옛날 생활도구, 난로, 침대, 목재 구조 등이 남아 있어 “살아 있는 역사”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등대 주변에는 과거 항해 안전을 위해 사용되던 ‘안개 신호용 종(Fog Bell)’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짙은 안개 속에서도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10초마다 울리던 이 종은, 당시 등대지기의 삶과 해양 문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전체가 하나의 살아 있는 해양 마을처럼 느껴져,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크루즈 탑승 시간이 다가오면서 CBMM 내부 전시관은 둘러보지 못했지만, 박물관 앞 선착장에는 이미 크루즈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Patriot Cruises 탑승
케임브리지 항구에서 탑승한 Patriot Cruises는 단순한 관광 유람선이 아니라, 체서피크 베이 지역의 해양 문화를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역사 깊은 크루즈입니다.
Patriot Cruises는 원래 지역 주민이 운영하던 소규모 영리 관광선으로 시작했지만, 2023년, Chesapeake Bay Maritime Museum(CBMM)에 인수되면서 박물관이 운영하는 비영리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었습니다.
CBMM은 미국 연방정부에 등록된 501(c)(3) 비영리 해양 박물관으로, 체서피크 베이의 역사·생태·해양 문화를 보존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Patriot Cruises가 박물관의 프로그램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지역 해양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교육적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승무원들도 대부분 은퇴한 선장, 지역 주민, 박물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리 목적의 관광 회사라기보다 지역 공동체가 함께 운영하는 따뜻한 비영리 크루즈라는 느낌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Patriot Cruises는 일반 관광뿐 아니라 Wedding, Anniversary, Special Events 같은 특별 행사도 진행하며 지역 사회와 여행객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영리 기관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배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기부금(donations)이 중요한 재정 기반이 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탑승했던 Patriot Cruises는 바로 이러한 지역 공동체의 정성과 역사적 배경이 담긴 크루즈였으며, 체서피크 베이의 바람과 물결 속에서 지역 문화와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항해 중 돌핀 관찰
Patriot Cruises가 잔잔한 물결을 가르며 베이 쪽으로 나아가자, 선장은 방송을 통해 오른쪽을 바라보라고 안내했습니다. “지금 돌핀 두 마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 위로 스치듯 지나가는 두 마리 돌핀의 꼬리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체서피크 베이의 생동감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장면이었습니다.
크루즈가 조금 더 항해하자 오른쪽으로는 물가에 자리한 고급 주택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장은 이 지역의 집들은 대부분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부유층의 주거지라며, 아름다운 경관 덕분에 영화 촬영도 종종 이루어진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물결 위로 반사되는 햇살과 고요한 주택가의 풍경이 어우러져, 체서피크 베이의 여름은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조타실 체험
천천히 항해하던 크루즈의 선실에서 가족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베이의 경치를 즐기고 있을 때, 객실장으로 보이는 직원이 다가와 선장과 조타실을 구경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했습니다.
우리는 흔쾌히 따라갔고, 선장의 역할과 조타 장치를 손자와 손녀에게 직접 설명해 주며 아이들이 실제로 키를 잡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간식을 판매하던 매점 직원이 워싱턴 D.C.의 종합병원에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시행된 심장이식 수술에 참여했던 수 간호사 출신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비영리로 운영되는 이 작은 관광선에 그런 경력을 가진 인물이 근무하고 있다니, 만약 바다 한가운데서 승객에게 비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즉시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신기하고 든든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장의 이름은 Mike로, 미 해군 장교로 은퇴한 뒤 이 관광선을 조종한 지 2년째라고 했습니다. 그의 침착한 태도와 친절한 설명에서 오랜 항해 경험이 느껴졌습니다.
놀랍게도 이 관광선은 최대 150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는 규모임에도 자동 항법 장치(Automatic Pilot)가 설치되어 있어, 배가 스스로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디지털 화면에는 배의 움직임과 방향이 실시간으로 표시되어 있었고, 그 정교한 시스템에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체서피크 베이의 잔잔한 물결 위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전문성이 함께 어우러진 이 크루즈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사람과 이야기, 그리고 삶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항해였습니다.
동영상/사진/글 손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