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강론 : 제자들에게 발현(요한 20,19-31) >(4.27.일)
* 부활하신 예수님은 여러 제자에게 발현하셨는데, 사도 요한은 “그분이 구세주이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복음서를 썼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를 청하면서,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지난 주일(4/20) 부활절 점심 소고기국밥을 맛있게 먹고, 사물놀이 공연팀에게 팁을 주고 나서, 사목 총무의 사회와 유대철회의 협조로, 윷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여러 구역, 반에서 주신 음식으로 청년들과 나눠 먹으며 윷놀이를 관전했습니다. 윷놀이는 언제 해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윷놀이 상금은 1등 10만원, 2등 9만원, 3등 8만원, 나머지 4등은 7만원씩 드렸습니다.
윷놀이 경기 중간에 행운권 추첨을 해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3구역 2반이 3등, 3구역 1반이 2등, 5구역은 흰색 티셔츠를 함께 입고 파이팅 해서 1등 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3구역 1, 2반 함께 식사했습니다. 윷놀이 결과가 어떻든 저녁을 먹으려고 했다는데, 다행스럽게 3구역에서 2, 3등을 해서 금상첨화였습니다. 식사 후에는 교우들 몇 명과 함께 산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4월 21일(월)에는 부활 엠마우스로, 사목 평협 대표 13명 함께 호미곶으로 갔는데, 같은 식당에서 후배신부님들 두 팀과 만났습니다. 구미 신평본당 가족 4명, 교구 전산실에서 4명이 왔는데, 본당은 여유가 있으니 괜찮을 거고, 우리 본당 식사비를 낼 때, 전산실 식비도 함께 내줬더니, 나중에 고마워했습니다. 호미곶을 둘러보고, 죽도시장에 있을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소식을 들었습니다.
2013년부터 12년간 14억 명의 가톨릭 신자를 인도하신 교황님은 로마 시각 4월 21일(월) 07:35(한국 시각 14:35)에 88세로 임종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부활절 직전에, 로마 시내의 교도소를 깜짝 방문했고, 미국 부통령을 비공개 면담했으며, 부활절 미사를 드리셨습니다. 안젤로 코마 스트리 추기경이 대독한 강론에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상황이 개탄스럽다.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촉구하고, 인질을 석방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라고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2015년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에 공헌했고, 2017년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로 가서 평화 메시지를 전했으며, 2021년에는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최초로 이라크에 가서 무장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했습니다.
또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전쟁이 발발한 이후, 끊임없이 평화를 주장하셨고,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전쟁에 대해 민간인 희생을 막고 분쟁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이렇게 교황님은 가난, 평화, 환경을 핵심 가치로 두고 활동하셨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후 25년 만인 2014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해서, 124위 순교자에 대한 시복식을 광화문 광장에서 거행하셨고,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 때, 교황님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우리나라 말로 거행했습니다.
교황님 덕분에 천주교 위상이 높아졌는데, 2015년 565만여 명이었지만, 2019년 591만 명, 2023년 600만 명으로 늘었습니다. 이것은 국내 거주 외국인을 포함한 한국 총인구 5312만 1668명 중에서 11.3%를 차지합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태리계 이주민 자녀로 태어난 교황님은 평생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며 청빈하게 사셨습니다. 그래서 교황 이름을 “가난한 이의 성인”으로 알려진,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땄습니다.
2001년 추기경 서임 후, 작은 아파트에 살며, 추기경에게 배정된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셨습니다. 교황이 되신 후에는, 성베드로광장이 보이는 교황 전용숙소인 사도궁전을 마다하고, 사제들 기숙사인 “성녀 마르타의 집” 201호에서 사셨고, 사제들과 함께 직접 식판을 들고, 공동 식당에서 식사하셨습니다.
“순금으로 주조해왔던 교황 반지”를 “도금한 은반지”로 바꾸셨고, 목에 거는 금 십자가는 추기경 때부터 쓰던 철제 십자가를 그대로 쓰셨습니다. 2014년 방한 때는 국빈용 고급 차량 대신에, 국산 소형차 “Soul”을 이용하셨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국가 돈을 자기 것처럼 마음대로 쓰는데, 교황님 유산은 100달러(14만 원)뿐이었습니다. 바티칸의 추기경들은 4,700달러(약 670만 원)의 월급을 받지만, 교황님은 2013년 3월 즉위 후 임종 때까지 무보수로 봉사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무덤도 검소하게 만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간단하게, 특별한 장식 없이, 이름만 새겨달라.”라는 부탁대로, 장식 없는 간소한 목관에 안치되었습니다.
교황님 선종 이후, 교황님을 위한 추모와 애도가 계속되어왔습니다. 장례미사는 4/26(토) 로마 시각 10시, 한국 시각 오후 5시,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거행되었고, 로마 시내를 거쳐, 교황님 유언에 따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지하의 장식 없는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교황이 바티칸 밖에 묻히는 건 100여 년만이고,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안장되는 건 1669년 이후(356년 만에) 처음입니다.
차기 교황 유력 후보 12명 중의 한 명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은 남북한 화해를 모색한 “포콜라레 운동”의 회원이십니다. “벽난로”라는 뜻을 가진 포콜라레 운동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자!”라는 목적으로, 1943년에 창설된 가톨릭 사도직 활동단체입니다. 현재 만 73세인 유 추기경은 만 80세 이하만 참석할 수 있는 교황선거에서 새로운 교황을 뽑을 수도 있고, 교황에 뽑힐 수도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를 위해 성령께서 훌륭한 목자를 보내주시길 바라며 기도합시다! 주님, 세상을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