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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원 신부(토마스 아퀴나스,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남미는 거의가 가톨릭 국가들 아닌가요?” 대부분의 신자 혹은 비신자들이 내가 남미 페루에서 선교사목을 하고 잠시 한국에서 사목하고 있다고 하면 곧잘 되묻는 말이다.
직접적으로 얘기하자면, 왜 선교사가 거기에 필요하냐라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선교’라는 말을 들으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중세적 의미만을 떠올리는 듯하다.
이밖에 우리는 ‘선교’에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을까? 90년대 초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한국 진출 60주년을 맞이해서 주변 성당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본부를 개방하고 ‘선교’에 대한 그림 그리기 대회를 진행한 적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선교’하면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그리도록 했는데, 몇 시간 후 그림을 모아 벽에 전시를 하고 보니 그림들 사이에 공통점이 보였다. 그게 뭘까?
남미는 대부분 가톨릭 국가인데 왜 선교를 하나요?
그것은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아프리카 흑인이나 사막을 그렸다는 점이다. 슈바이처 박사의 위인전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일까? 그러나 이것이 어린이들만 지니고 있는 선입관은 아닌 듯하다. 신자들 중에는 심지어 페루가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어서, 내가 페루 리마 북쪽 카라바이요교구에서 선교사목을 하다 왔다고 하면 대뜸 “그곳 날씨 많이 덥죠?”라고 할 때가 많다.
요즘도 가끔 그런 분들을 만나곤 하는데, 예전에 골롬반회 신부님들이 본당사목하실 때 신자들에게 아일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등지에서 왔다고 하면 어떤 분들은 거기가 미국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물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것은 내가 페루에서 일할 때 많은 페루 사람들에게 나는 아시아에 있는 남한(Corea del Sur)에서 왔다고 하면 그게 중국 어디에 있는 거냐는 말을 들은 것과 비슷한 경험이다.
우리는 같은 복음 말씀을 듣고 같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선교사업에 부르심 받았으면서도 무의식중에 수많은 선입관과 문화적, 사회적 무지를 지닌 채 선교지로 파견되고 있지 않나 싶다.
몇 년 전부터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파견하는 한국 선교사(사제, 수녀, 수사, 평신도)들을 위해 종교적, 영성적, 문화적, 사회적인 준비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지금은 한국 교회 안에서 많은 호응을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직도 우리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또는 무언가를 주려고만 선교지로 가고 있지 않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미에 ‘한국의 순교 영성’을?
몇 년 전 페루 리마에서 한국을 떠나 막 도착한 선교사가 ‘저는 한국의 순교 영성을 이곳에 심어보고자 왔습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 왜? 꼭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 역사와는 달리 페루 잉카 원주민들은 역사적으로 300-400년간 스페인 식민지 치하에서 세례를 받지 않으면 사람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스페인 군인들이 세례 받지 않은 잉카 여성을 강간하면 짐승과 성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수많은 잉카 여성들을 강간하기 전 세례를 받게 한 사례도 있다.
세례를 거부하면 부족 전체가 죽음을 당하기도 했기에 할 수 없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됐다. 그러기에 아직도 남미에서 잉카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원주민들은 군인, 사제, 백인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남미 성소 부족의 진짜 이유
남미에는 왜 사제, 수도 성소가 부족한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개방된 성문화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페루 리마에서 가난한 원주민 출신 젊은이들에게 사제/수도자 성소를 권하면 많은 젊은이들이 놀라며 “에이 농담하지 마세요! 제가 어떻게…”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뭐라고 말해줄 것인가?
실제 남미 일부 국가나 교구에서는 최근까지도 스페인계 피가 흐르지 않는 순수 잉카 원주민 출신 젊은이들에게는 사제 성소가 허용되지 않았다. 중남미 국가들의 주교님들과 교구 사제들의 사진을 살펴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부 중남미에서 시작된 소수 극보수주의 수도회, 선교회들의 홍보용 자료들을 봐도 아직도 회원들 대부분이 백인계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원주민 출신 사제가 아예 없다는 말이 아니라, 예전에도 지금도 되도록이면 스페인계 백인 계통에서 성소자를 뽑는다는 말이다(혹 이것에 대해 인종적인 편견을 가지고 바라봐서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적어도 내가 본 것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처럼 슬픈 배경을 지닌 이들에게 ‘한국 순교 영성’을 갖고 다가간다는 한국 선교사의 말이 내게는 너무 어이없게 또는 그렇게 밖에 준비가 안됐나 하고 안타깝게 들렸던 것이다.
남미에 필요한 진정한 선교사의 모습
“남미는 가톨릭 국가가 아닌가요?” 맞다. 남미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가톨릭 국가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지금 ‘재선교(Re-Mission)’가 필요하다.
여기서 ‘재선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재선교를 실천하는 선교사의 모습이 1492년 정복을 목적으로 도착했던 콜럼버스와 함께 왔던 침략자로서, 군림하는 특권계층으로서의 모습, 또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파견되는 선교사의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오로지 남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선교사,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선교사들이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도 소외된 사람들과 우선적으로 함께 하셨던 것이지 않은가?
선교사로서 한국 사람들이 살지 않는 동네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산다는 것, 한국 음식이 아닌 그들이 먹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 그 일은 여기 한국에서 볼 때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실제는 결코 쉬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루카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