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規樓圖(자규루도)
· 자료명(한글) 자규루도
· 사부분류 사부
· 작성시기 [1791](정조 15년)
· 청구기호 K2-4383
· 마이크로필름 MF35-1726
· 소장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가치정보 귀중본
화자미상(畵者未詳)
· 크기(cm) 63.6 X 48.7
· 판본 지본담채(紙本淡彩)
· 장정 접포(摺鋪)
· 수량 1포(鋪)
· 판식 절(折) 35.0×18.4㎝
· 인장 摛文院
정의
강원도 영월의 子規樓, 淸泠浦, 莊陵을 비롯한 端宗 의 사적을 중심으로 묘사한 회화식 지도이다.
서지사항
표제가 ‘子規樓圖 眞’으로 서명은 표제를 따른다.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것이고, 본문을 접포식으로 접은 후에 표지를 붙여 첩으로 만든 형태이다. 표제는 흰색 비단을 덧붙인 것이다. 본문은 영월의 子規樓와 관련한 지역을 그린 채색한 회화식 지도 1장이다. 지도를 접는 방식은 먼저 세로로 양옆을 조금 접고 다시 가로로 위아래를 접은 후에 마지막으로 책자처럼 세로로 접은 것이다. 지질은 표면이 매끄러운 품질이 좋은 저지를 사용하였는데, 뒷면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배접을 해놓은 상태이다. 책수는 1장 1첩이다. 지도 좌측 하단에 1781년(정조 5) 이후 조선의 역대 임금의 어제, 어필, 전장문적 등을 보관하던 ‘摛文院’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자규루도〉의 화면에는 刀山이 둘러싼 청령포 일대 단종 (1441~1457)의 유배지를 표시한 영조 연간 비각과 금표비, 彰節祠와 拜鵑樓, 觀風軒과 客舍, 子規樓, 영월부의 衙舍, 단종 을 모신 신하들을 기리는 愍忠祠와 錦江亭, 낙화암, 장릉 재실이 묘사되어 있다.
자규루는 영월부의 客館 옆에 위치했는데, 옛 이름은 梅竹樓였다. 단종 이 영월 유배 시절에 청령포의 홍수로 인해 객관으로 옮겨 거처하였을 때 이 누각에 와서 소쩍새 소리를 듣고 「子規詞」를 지었다. 그 가사가 매우 처절하여 영월 사람들이 그 누각을 ‘자규루’라고 이름하였다.
1791년(정조 15) 강원도관찰사 尹師國 (1728~1809)이 子規樓의 중건 사실을 정조 에게 보고하였다. 윤사국 이 고을을 순찰하다가 영월에 도착하여 중건할 계획으로 그 터를 찾아보니 이미 매몰되어 그 자리에 민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이곳에 화재가 나서 객사 남쪽에 있던 집 5채가 불타버리자 자규루의 옛터와 계단이 또렷이 드러났다. 이에 그 터를 찾은 경위를 정조 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다.
정조 는 대신 李福源 에게 그 사실을 기록하도록 하고 대신 蔡濟恭 과 이조판서 洪良浩 에게 자규루의 상량문을 지어 올리고, 강원도관찰사에게 자규루의 모습을 그려 올릴 것을 명하였다. 따라서 이때 정조 에게 강원감사 윤사국 이 그려 올린 것이 〈자규루도〉였을 개연성이 높다.
이를 계기로 정조 는 영월의 고을 안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중 『莊陵誌』에 실리지 않은 것이 있으면 간행본이나 필사본, 혹은 불완전한 글이라도 관계치 말고 수집하여 올려 보낼 것을 명령하였다. 『장릉지』는 1698년(숙종 37) 장릉의 봉릉 이전과 이후 사적을 모아 편찬한 것이고, 『장릉지속편』은 1734년(영조 10)부터 1782년(정조 6)까지 崇奉 修改 후 어제 제문과 전교, 등록에 산재된 자료를 수집하여 편찬한 것이다.
특성 및 가치
1698년 단종 의 복위가 이루어진 이후 정조 연간에 본격적인 사적의 정비 작업이 진행되었다. 〈자규루도〉는 1791년 자규루의 옛터가 화재로 드러나면서 정조 연간에 단종 의 사적을 정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자규루를 중건하게 되었던 사실을 반영한 회화식 지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사료이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권32, 15년 2월 6일(신해)
『莊陵誌』(奎12873)
『莊陵志續編』(K2-4482)
집필자 정은주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장서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