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인도 여행(12.5~13) ♣
타지마할, 아그라성
Photo by Madangbal |
▶타지마할 |
델리에서 아그라로옮겨 아그라성 동쪽으로 2km 정도 가다보면 자무나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궁전형식으로 만들어진 묘이다. 이슬람 건축물의 걸작으로
전세계 여행객들은 인도에오면 한번씩 들리는 곳으로서 유명한 곳이다.타지마할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으로, 무굴제국 황제가 뭄타즈마할을 위하여 세운것이다.
18년동안 걸쳐 재정이 기울일 만큼 막대한 예산으로 건축하였고, 미술품과 공예품을 한군데 모아놓았다. 대문을 들어서면 길중앙에 일직선의 풀이 양옆의 나무를 비추어,
마치 녹색물 같고, 우유 빛깔의 대리석과 돔양식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돔내부 중앙에는 황제부터의 묘관을 안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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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된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이다.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의 하나이다. 엄청난 건축비용이
들었지만, 이 하얀 대리석의 웅장한 사원은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간곡한 기념비가 되었다.
1648년에 만들어져 현재는 우타르 프라데시 주(州) 아그라 교외 아그라 성(城)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타지마할(Tajmahal)이란
'마할의 왕관’이라는 뜻을 가지며,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은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명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 사망한 그의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을 위하여 1631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1653년에 완공을 보았다.
사원은 좌우 대칭의 총대리석으로 높이 5.5m, 종횡 94m의 기단상의 중앙에는 높이 58m의 사당, 四遇에는 높이 42m의 첨탑이 세워져있다. 1630년부터 18년 동안
국고를 탕진해 가며 완성하였고, 온갖 재보(財寶)와 미술/공예품을 한데 모아놓았다.
타지마할이 유명한 이유는 그 자체가 건축학적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기도 하지만, 로맨스가 있기 때문. 이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제 5대왕이자, 건축광인 샤자한이
자신이 죽도록 사랑했던 부인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무덤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왕족이 죽으면 일반인들의 10배가 넘는 큰 흙무덤을 만들고, 유품을 함께 넣거나, 아끼던 하인을 함께 순장하던 습성은 있지만,
죽은이를 위해서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몇년이나 걸쳐 지은 적이 없다.
게다가 왕이 아닌 여자인 왕비를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인도인들에게 특히 인도여자들에게 타즈마할은 로맨스의 중심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다.
타지마할의 입장료는 인도의 관광지 중 가장 높은 수준인 750루피(약 1만 5000원)다. 멀리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자태의 아우라를 보니,
비싼 입장료를 치를 만도 하겠다 싶다. 하지만 인도 사람이라고 단돈 10루피(한화 약 200원)를 내고 들어가는 꼴 돈의 무게가 다른 건 알지만...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건축물 무굴 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은 보다 넓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어요. 샤 자한과 함께 원정길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왕비인
뭄타즈 마할도 있었어요. 뭄타즈 마할은 ‘궁정의 선택받은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샤 자한 황제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자한기르가 직접 내려 준 이름이라고 해요.
샤 자한 황제와 뭄타즈 마할 왕비 황제들은 전쟁터로 떠나거나 장거리 원정에 오르면서 훗날 왕위를 물려받을 왕자를 데려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왕비를 전쟁터까지 데려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요. 샤 자한이 왕비를 전쟁터까지 데려간 것은 뭄타즈 마할이 아내인 동시에 정치적인 조언자였기 때문이라고 해요. 하지만
데칸고원 지역에서 샤 자한이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뭄타즈 마할 왕비는 근처의 야외 천막에서 14번째 아이를 낳은 뒤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몹시 사랑했던 왕비가 죽자 전쟁터에서 돌아온 샤 자한은 백성들에게 2년 동안 왕비를 추모하는 기간을 갖도록 했어요. 슬픔에 빠져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왕은 왕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묘를 만드는데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1년에 걸친 고민 끝에 샤 자한은 아그라 성에서 가까운 야무나 강변에 사랑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심했지요. 그렇게 시작된 타지마할 건설은
22년이 걸렸고, 마침내 그 어떤 건축물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22년간 만든 화려한 무덤 타지마할 공사에는 22년 동안 매일 2만여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다고 해요. 공사가 길어지자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타지간지라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질 정도였지요. 여러분은 상상이 가나요? 묘지 하나를 짓는 데 일꾼들이 살 도시가 새롭게 생겨났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또한 타지마할 건설에는 이슬람 건축의 대가인 이스탄불 출신의 이스마일 에펜디, 이탈리아의 피에트로 베로네오와 페르시아 출신의 장인들 등
외국의 이름난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참여했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것은 장인과 노동자뿐만이 아니었어요. 라자스탄 지역의 마크라나 광산에서 캔 흰 대리석을 운반하기 위하여 1000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동원되었어요. 타지마할의 바닥을 다지고 부속 건물을 짓기 위해 파테푸르 시크리에서 가져온 사암과 벽돌은 흰 대리석보다 훨씬 많았다고 해요.
또 샤 자한 황제는 여러 상인들에게 값비싼 보석과 건축에 필요한 각종 재료를 공급하게 했어요. 자이푸르 상인들에게는 다이아몬드를, 바그다드
상인들에게는 홍옥수라는 보석을 가져오게 했어요. 또 아프가니스탄의 청금석, 중국의 수정, 티베트의 터키석, 예멘의 마노, 아라비아의 산호 등 왕비의
묘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때까지 건설된 어떤 건축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보석과 재료를 사들였답니다.
완벽한 대칭을 보여 주는 건축물
22년 동안의 공사 끝에 타지마할은 환상적인 모습을 드러냈어요. 건물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타지마할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완벽한 대칭을 이룬 건축물이었지요.
타지마할은 인공으로 만든 7m 높이의 기단 위에 세워져 있어요. 기단 위에 세워진 건물은 한 면의 길이가 58m 정도이고, 중앙 돔이
세워진 가장 높은 곳의 높이는 65m에 달합니다. 그리고 동서남북의 모퉁이에 세워진 미나레트의 높이도 50m나 됩니다.
중앙 돔을 중심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타지마할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어요. 건물을 보다 환상적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바깥쪽으로 조금 휘어지게 건축한 거예요. 당시에는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이렇게 건축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진이 발생해도
무너지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되었답니다.
타지마할을 둘러보다 보면 우아한 꽃과 코란(이슬람교 경전), 독특한 문양의 조각, 반복적인 문양으로 장식된 다양한 작품들을 볼 수 있어요.
눈이 부시도록 하얀 대리석 위에 새겨진 꽃과 코란, 조각, 문양은 아름다우면서도 하나같이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장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건물 안에는 가지각색의 돌로 아름답게 꾸며진 묘가 있어요. 건물이 완성될 당시에는 뭄타즈 마할의 묘만 있었지만
현재는 샤 자한 황제와 뭄타즈 마할이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물론 화려하고 우아한 꽃으로 장식된 관은 모형이고, 실제 시신은 타지마할의
지하에 있어요. 황제와 왕비가 잠들어 있는 묘지 주변은 나지막한 칸막이가 둘려 있어 묘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답니다.
기하학적인 공간들 타지마할 동쪽과 서쪽에는 타지마할을 향해 같은 모양의 건축물이 세워져 있어요. 동쪽 건물은 나라에 중요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머무는
영빈관으로 사용하였으며, 서쪽 건물은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로 활용했지요. 하지만 두 건물을 지은 진짜 목적은 타지마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타지마할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붉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지어진 영빈관과 모스크도 매력적인 건축물이에요. 두 건물의 정면과 중앙 부분의
대리석에 새겨진 아름다운 꽃과, 벽과 천장을 장식한 조각들은 섬세함과 세련미를 자랑하고 있어요.
정사각형 모양의 타지마할 정원은 기하학에 기초를 두고 있어요. 거대한 정사각형 정원은 수로와 길을 따라 크게 넷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공간들은 다시 4등분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커다란 정사각형 안에 16개의 정사각형 정원이 자리한 모습입니다. 전체로 보건 작게 쪼개
보건 정사각형의 형태를 드러나게 만든 것은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기하학적인 생각에서 나온 거랍니다.
타지마할에 들어가려면 2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해요. 먼저 동쪽, 서쪽, 남쪽의 출입문을 통과한 뒤 안쪽의 커다란 문을 통과해야 정원에 이르게 됩니다.
안쪽에 위치한 출입문은 타지마할 동쪽과 서쪽에 세워진 영빈관, 모스크와 비슷한 건축물이에요. 다만 영빈관과 모스크는 건물 위쪽이 돔 모양이지만,
이 출입문은 인도의 이슬람 건축에서만 볼 수 있는 차토리(돔 모양의 작은 탑)로 장식되어 있어요. 차토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우산을 의미하는데 모양은
둥근 원에 가깝고 크기는 돔보다 작습니다.
제국주의에 의해 훼손된 타지마할
환상적인 꽃무늬 조각으로 장식된 타지마할 타지마할 건설에 열정을 쏟아 부었던 샤 자한 황제는 아버지가 아들을 대하듯 신하들에게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말년에는 신하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막내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 성에 갇혀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낙으로 살았습니다. 샤 자한 황제가 죽자 아우랑제브 왕은 아버지의 시신을 타지마할 지하 묘소에 안장했고, 황제는
왕비와 함께 타지마할에 잠들게 되었다.
타지마할은 처음 완성되었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아름답고 호화로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화려함 때문에 끊임없이
약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요. 타지마할에 장식된 값비싼 보석들은 도굴꾼과 침략자들에 의하여 사라졌다.
그 대표적인 나라로 영국을 들 수 있어요. 인도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거대한 돔을 장식하고 있던 황금을 모두 떼어내고 그 자리를 구리로 덮었으며,
은으로 된 출입문을 녹여 가져가고 대신 청동 문을 달았어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타지마할은 옛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보석이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의 박물관과 개인 저택, 문화 공간을 장식하고 있다.
타지마할의 위기 타지마할은 요즘 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해 때문이다. 자동차들이 내뿜는 엄청난 매연과 200여 곳의 주물 공장에서 뿜어내는
공해와 이산화탄소는 지구촌 가족들에게 감동을 전해 줄 타지마할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 건설할 당시 심어놓은 나무들이
크게 자라나 약간이나마 매연으로부터 건물을 지켜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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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인도의 대표 관광지인 타지마할 더이상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百聞而 不如一見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