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 남원만행산을 답하고와서 ㅡㅡ
산 행 지 ㅡ 남원만행산(천황봉,909.6m)
산 행 일 ㅡ 2020,01,19(일)
누 구 랑 ㅡ 지인과 답사산행
산행코스 ㅡ 용평제주차장-애기천황봉-천황봉-상서바위-전주손씨묘지-보현사-용평제주차장
이동거리 9.4km 소요시간 3시간56분 이동시간 3시간49분 휴식시간 07분 평균속력 2.33km/h
오름1,137m 내림1,214m 출발도착지해발 330m
ㅡㅡ 산 행 지 도 ㅡㅡ
ㅡㅡ 산 행 기 ㅡㅡ
어제 덕유산(무룡산)산행에 이어 오늘은 남원에 있는 만행산(천황봉)으로 답사산행을 간다
원래 천황봉의 옛이름은 만행산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하나의 산을 놓고 지도상의 표기도 각각다르고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남원 보절면에서는 한결같이 만행산이라 하고 남원산동면에서는 천황봉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연유도 알아볼겸 답사차 가는 만행산은 900m급 산으로 낮은 산은 아니라 능선길에는 눈이있을 거라 생각하며 오늘 날씨가 흐리니 상고대가 형성될것이라 기대하며 어제못본 설화를 볼기대감에 출발한다
(07;00)롯데마트을 출발하여 공룡휴게소에 들렸다 간다 연일산행으로 누적된 피로가 엄습해오는지 졸리기도 하여 지그시눈을 감고 지나가는 차창밖에는 지금이라도 쏟아질것 같이 잔뜩흐린날씨가 산에서 눈을 만날것 같아 보인다
(09:50)차량은 용평제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준비한다 용평제란 저수지는 2002년 착공하여 건설된것이다 경관이수려했던 용동폭포와 용호정이 함께 수몰(水沒)되어 아쉬움을 남기고2019년 남원시와 한국농촌공사의 협조로 용호정과 용호터(址)의 복원을하였다고 한다
(09;55)용평제 주차장을 출발하여 시멘트포장길(임도)따라 1.2km를 올라간다 가파른 오름길에서 모두가 지쳐 버리고 만다 주변의 풍경도 없는 길이라 그런지 쉽게 지치는것 같다
(10;26)시멘트포장길(임도)를 버리고 전형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지 앞서가면서 독도가 흐려지기도 한다 흐미하게 나있는 산길은 가파르고 미끄럼도 심하다 스틱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올라서기가 힘들정도이다 코가땅에 다일정도로 급경사오름길이 계속되고 등언저리에는 땀으로 헌건하다 한동안 굽이치던 경사로가 끝나고 올라선능선에 묘2기가 앞뒤로 쓰여져있고 여기가 애기천황봉인가 하고 지도를 확인하니 무명봉이다 능선따라 한참을 가니 이정표가 서있는 애기천황봉이다 이정목에는 보현사/다산마을/천황봉0.4km을 안내한다 남원의 명산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11:08)만행산(천황봉909.6m)에 올라섭니다 정상에서는 지리산과 덕유산이 조망된다고 했는데 오늘은 칠흑같은 운무속의 암흑천지입니다 여기는 산정수리마다 또 능선마다 묘가 유달리 많다 여기가 그렇게 낮은 산도 아닌데 최근에도 묘를 계속해서 쓰고 관리하는것을보면 필시무슨이유가 있으려나 이산줄기가 9명의 정승이난다는 자리란다 하기야내가 여기서 바라보아도그런생각이드니 그래서 이난리인가 또예전에도 발복(發福)을 위해 이산에다가 평장을 하고 그이유(理由)로 가뭄이들면 시신을 파내고 하였다는 동네분들의 전하는 말이다 이제는 정승의 시대는 지났으니 좀자제했으면 어떨까 하기야 오늘날이 더했으면 더했지 ~~~~ 개동산만 보더라도 복묘롱서의 음택이 있다하여 괴복산 또는 묘복산이라 하다가 후에 복구혈(伏狗穴)이 있다는 명산이라는 의미로 개동산이라고 했고 상서산,상사바위,천황산, 이줄기들이 다그런것 같다 천황봉의 근방에있고 칠상동이 장군대좌(將軍臺座)명당이 있으며 그바위에서 상(賞)을 하사하는 곳이라서 상사바위(賞腸巖)라고 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만행산이라불렸다고 하는데 지형도에는 천황산으로 나와있고 여기표지석에는 만행산 천황봉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산이 남원시 산동면과 보절면에 걸쳐 있는데 산동면 사람들은 천황산으로 보절면사람들은 만행산으로 부른다고 한다 천황산의 본래 이름은 만인이 다녀 갔다고 해서 만행산 또는 보현봉이라고 불렸으며 용성지(誌)나 남원지(誌)에는 천황봉 일명 보현봉은 보현방에 있다 산봉우리가 구름위에 나와 있으며 봉우리 위아래를 통칭해서 만행산이라 한다는 기록(記錄)이 보인다고 하고 그리고 천황산 동쪽에 있는 귀정사 사지(寺誌)에는 만행산과 귀정사의 유래를 이렇게 적고 있다 "만행산천황봉은 주산 대성산(大聖山)은 청룡,승상봉(丞相峰)은 백호의 형상이고 물줄기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구십구곡수가 한곳으로 모여 흘려간다 " 원래천황봉은 만행산이였고 귀정사는 만행사(萬行寺)라 했다 삼한시대에 어느임금이 태자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이사찰에 찾아와 고승의 설법을 들으며 3일간 머무르면서 정사를 살피고 돌아가서 귀정사라했고 그 임금이 죽고 살기를 고승과 같이한다(生之梭之我師同之)고 했다고 한다 또고려말 이성계가 이 고을을 거쳐 고남산아래 운봉황산벌에서 왜장 아지발도를 물리치고 회군길에 귀정사에서 고승의 법문을 듣고 돌아 갔다가 임금이 된뒤에 다시만행사에서 3일간 정치를 하고 돌아갔다 해서 귀정사라 명명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사찰에 임금이 3일간머물며 산이름과 지명도 바꾸었다는 설(說)이 있고 법당 뒤산인 만행산은 임금을 상징하는 천황봉,왼쪽봉우리는 태자봉,앞산은 승상봉,남쪽고개를 남대문재(南峙) 북쪽산골을 북대문재(北峙) 병사들이주둔한곳을 둔병치(屯兵峙)사찰아래마을은 3일동안 당나라 요순시대와 같다하여 요동(요골)이라 했다고 한다 어째든 지형도에는 천황산이라 표기돼 있기는 해도 만행산 천황봉이라 표기함이 정석이지 않을까 생각 된다 정상에서 상서바위 방향으로 내려 섭니다 200m내려서니 애기천황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올라오는 길과 만납니다 급경사 테크계단길이 지나고 능선길로 접어듭니다
(11;59)상서바위에 도착합니다 여기는 아무런 안내표지판도 없습니다 전해오는말에 의하면 처녀가 상사병에걸려서 이곳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설과 바위가 사서럽게 생겨서 붙은 이름이라는설이 있던데~~~~
내려서는 길은 우측북서면으로 내려서는데 잔설이 많아 미끄럽이 심하여 아이젠을 싣고 내려섭니다 능선길을 한참가다가 묘지가 잘관리되고 있는 봉우리에서 고구마 하나먹고 점심 때웁니다
(12;47)진주손씨묘지는 얼마전에 쓴묘같아 보이면서 그석물들은 헬기로 운반하지 않으면 안될정도로 거대한 석물인데 이높은 봉우리에 지금도 이렇게 묘를 쓴다니 의아해 집니다 내려서는 길에는 솔향기 그윽한 솔잎양탄자 길을 내려섭니다 그래도 급경사로 이라서 신경쓰이는 길입니다 50여분을 급경사길을 내려서니 계곡이 나타나고 임도가 나오면서 평탄한길로 변합니다
(13;39)보현사에 도착합니다 보현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으로 고려 충숙왕원년(1314년)에 창건하고 숙종18년에 중창했으나 화재로 전소된것을 다시중창하여 현재건물이라한다
(13;47)용평제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종료 합니다 만행산(天皇峰)기우제(祈雨祭)의 유래를 읽어본다 산명수청(山明水淸)한 만행산(萬行山)은 명산(明山)이라 일찍이 이곳에 명당(明堂)이 있다 하여 풍수객(風水客)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남원지역(南原地域)에 한해(旱害)가 극심하면 남원부사(南原府使)가 이곳에 와서 천황봉(天皇峰)제(祭)을 지냈다 한다 제가 끝나면 남원지역에 비가 내려 한해(旱害)를 극복하였다고 전한다 또한 천황봉에 장군대좌(將軍臺座)명당(明堂)이 있어 이곳에 암장(暗葬:몰래 묘을씀)을 하면 비가 오지 않는다 하여1990년대 까지도 가뭄이 극심하면 이곳 주민들은 괭이와 호미를 들고 천황봉에 올라 암장유골(暗葬遺骨)을 파 헤쳤다고 하며 이때 돌아오는길에 비를맞고 왔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제를지낼때읽는 축문도 기록되어 있어 읽어보고 간다 축문은 한자로 되어 있어 미물인 내로서는 이해하기 어러워서 그만 갑니다 오늘답사산행은 너무힘들고 가파른 지형이고 지형도도 잘맞지 않고 이정표가 절반이상은 없어 안내 산행은하기가 어러울듯 합니다
ㅡㅡ 산 행 사 진 ㅡㅡ
용호정 용평제건설로 수몰된것을 이곳에 다시 설치 하였답니다
용평제 저수지주차장에서 산행출발 합니다
임도시작지점의 이정표
임도 중간의 이정표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접어 듭니다
천황봉으로 바로 가는길과 작은 천황봉을 거쳐 천황봉을 가는삼거리 우리는 작은 천황봉방향으로 갑니다
애기(작은)천황봉
만행산 천황봉 정상
상서바위
835봉에 있는 묘지
보현사
용평제
만행산(천황봉)기우제를 지내는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