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옛길 부산~서울 걷기 기행록(3)
- 수려한 낙동강변길 걸어 양산에서 삼랑진에 이르다(양산 읍성 - 삼랑진 안태마을 27km)
9월 29일(수), 아침 7시에 양산시 중앙동의 모텔을 나서 시내로 향하였다. 잠시 걸으니 양산읍성 표지석이 있는 중심가에 이른다. 표지석에 새긴 읍성의 소개, 양산읍성은 현 중앙동 주민센터의 평지에 쌓아올린 성으로 신라시대부터 성곽이 있었다고 추정되며 본격적인 축성은 고려말에 왜구침입이 계기가 되었고 성종실록에 의하면 성종23년 (1492년)에 축조되었다. 오랜 역사의 전통이 서린 곳. 중심가를 지나 물금 방면으로 걸어가니 웅장한 규모의 양산종합운동장, 그 옆에 자리한 양산대종이 새롭게 발전하는 도시의 풍모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웅혼한 기상의 양산대종을 배경으로
큰 다리 건너 물금방향에 접어드니 곧장 물금읍 경계, 가지런히 정비된 공원길이 운치 있다. 아침에 문을 연 식당이 없어 편의점에서 사온 삼각김밥과 우유 등으로 공원벤치에 앉아 간편조식, 공원길 끝나니 도시바람길 숲이라 명명한 큰 도로변의 보도가 물금역까지 5km 이상 이어진다. 두 시간여 걸으니 물금역, 이 지역 일대를 황산이라 일컫기도. 물금역에서 삼랑진까지 강변자전거길, 도중에 식사할 곳이 없다는 박해용 선생의 제안으로 물금역 근처의 맛집에서 이른 점심을 들고 오전 10시 지나 강변길에 접어들었다. 강변길은 낙동강 종주 자전거길이 400여km 이어지는 환상코스, 삼랑진까지 20여km 이길 따라 걷는다. 강폭이 상상하던 것보다 넓은 낙동강 하류의 강이름은 황산강, 처음 듣는 이름이다. 설명에 의하면 신라시대 낙동강 이름이 황산강, 끝없이 펼쳐지는 강주변의 경관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여러 해 전 삼랑진에서 부산 가는 열차 안에서 살핀 낙동강의 풍광이 아름다워 감탄한 적이 있는데 그 풍광을 여러 시간 걸으면서 살피는 감흥이 뭉클하다. 경부선 철길을 끼고 이어지는 강변 곳곳에 역사와 문학에 등장하는 비문과 표지판이 수두룩, 부산 출신 유명한 소설가 김정한의소설 수라도(修羅道)를 새긴 석비 옆에는 1739년(영조 15년)에 세운 화제석교비가 눈에 띄고 가야진사 공원의 넓은 평원에서 조용히 내리는 빗줄기 끝에 피어오른 산봉우리의 안개구름은 선경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곳의 지명은 가야진사, 나루터신을 모시고 있는 삼국시대부터의 제당(祭堂)이자 가야진의 용신제를 지낸 곳이란다.
수려한 경관의 낙동강 풍광
가야진사에서 잠시 더 걸으니 낙동강자전거길 양산구간이 끝나고 밀양구간에 접어든다. 그곳에는 영남대로의 잔도(棧道, 험한 벼랑에 암반을 굴착하거나 석축을 쌓아 낸 도로)가 여럿 남아있기도. 잔도의 흔적들을 살피는 사이 어느새 강변길 벗어나 삼랑진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작원관지(鵲院關址, 영남지방의 남과 북을 연결한는 교통의 요지에 세운 숙박과 검문을 위한 시설로 낙동강 가의 작원진이라는 나루터를 오르내리는 사람과 하물을 검문하던 곳)에 이른다. 그 주변에서 휴식 중 공원을 관리하는 직원이 우리 일행을 향해 등산객인가 묻는다. 조선통신사 옛길 걷는 중이라며 삼랑진에 숙박할 곳이 있는지 물으니 가는 길목 20여분 거리의 안태마을에 괜찮은 모텔이 여럿 있다고 일러준다. 우리 일행이 답사한 바로는 삼랑진에 마땅한 숙소가 없어 밀양까지 열차 이동을 예상했던 터라 반가운 정보, 곧장 안태마을로 향하니 막바지에 빗방울이 굵어진다. 숙소에 이르니 오후 4시, 걸은 거리는27km. 방을 정하고 바로 식당행, 이른 점심 후 간식도 없이 강행군한 터라 앞당긴 저녁상이 꿀맛이다.
삼랑진 초입의 작원관지 경관
오전부터 흐리다가 간간이 비를 맞기도 하였지만 쨍하게 내려쬐는 햇볕보다 걷기에 쾌적한 날씨여서 다행이다. 수려한 강변 풍광에 피곤한 줄 모르고 잘 걸은 이틀째 여정이 뿌듯하구나. 남은 때도 그러하기를.
첫댓글 여정을 너무나 정갈하게 잘묘사하며 다니셨네요
축하드립니다.그리고 수고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