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자카르타(욕야카르타가 정식 명칭인 듯한데, 예전의 네덜란드식 표기의 영향인지 족자카르타가 더 널리 알려진 것 같다. 현지인들도 대부분 족자라고 하던데 외국인에게만 그러는 건지 자기들끼리도 그러는지는 확실치 않음)는 세계 3대 불교 유적지의 하나로 꼽히는 보로부두르 사원을 비롯하여 많은 역사 유산과 문화 유산(바틱, 연극, 와양 등)을 품고 있는 전통미 물씬 풍기는 도시다.
숙소는 포르투나그란데(FortunaGrande), 족자역과 말리오보로 거리를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멀끔한 3성급 호텔로 잡았다. 300만 루삐아에 5박을 예약했다가 이틀을 연장해서 7일을 묵었다. 하루 5만원 정도.
2024.1.4
워노소보 터미널을 가자고 그랩을 불러 탔는데, 기사는 터미널 입구를 지나쳐 반대쪽 입구 근처에 우리를 내려 주었다. 터미널로 안 들어가냐고 물어봤더니 족자 가는 버스는 여기서 타는 거란다. 주변 상인들까지 나서서 확인을 해 주었다. 이러려면 저 커다란 터미널은 뭐하러 만들었지? 간이 의자가 있어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터미널 쪽에서 버스가 하나 나왔다. 여기 올 때 탔던 것과 같은 그 에어컨 없는 중형 버스다. 바람 통하는 창가에 앉으니 견딜만은 한데, 막상 이 차는 족자까지 가는 버스가 아니었다. 중간 도시인 말렝가에서 내려 족자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이번에는 조금 큰 버스고 에어컨이 있다. 버스 요금은 각각 50리부와 25리부. 족자 터미널까지 가면 시내에서 너무 멀어지겠기에 시내 북쪽에 있는 큰 교차로에서 버스를 내려 고젝카를 탔다.
(체크인을 기다리느라) 호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말리오보로 거리로 나섰다. 인도가 널찍하다. 중국 징홍의 야자나무길 이후에 만난 맘에 드는 인도다. 아,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 거리도 있었구나. 줄줄이 늘어선 바틱(Batik. 인도네시아 전통 염색 기술, 그 제폼) 가게와 박피아(Bakpia. 족자 특산 빵이라는데 재료와 모양은 여러 가지다.) 가게들이 호객을 한다. 우리도 관광객 모드로 구경하며 돌아다니며 바틱 상의도 하나 사고 저녁도 먹으며 말리오보로를 즐겼다.
2024.1.5
보로부두르 사원을 보기 위해서 이틀 전에 입장권을 미리 사 두었다. 예전에는 바닥에서만 구경하는 표에 추가로 사원 위로 올라가는 표를 사는 시스템이었다는데, 언제부터인지 바닥 입장권과 통합 입장권을 따로 팔고 있다. 우리야 당연 위까지 올라가 봐야지. 통합 입장료가 좀 비싸긴 하다. 일인당 4만원 정도.
단기 여행자들은 프람바난 사원까지 묶어 투어로도 많이 간다지만, 시간 많은 우리는 따로따로 천천히 다닐 계획. 그래서 새벽 6시 30분에 출발한다는 미니 버스(담리 버스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데 04;30 06;30 10;00 12;00 네 차례 운행한다고 한다)를 타기 위해 말리오보로 거리가 끝나는 곳에 있는 BI 은행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6시 10분 경에 도착해 보니 서양인 커플 한 팀과 현지인 가족 두 팀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출발 시간이 지나도록 버스가 나타나지 않는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수소문해 보았지만 상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고 여기서 6시 30분에 출발하는 게 맞다는 말 뿐이다. 옆에서 기다리던 현지인 가족 중 한 아주머니는 오히려 나에게 버스 안 오냐고 물어본다. 아니, 아주머니, 외국인이 더 잘 알겠냐고요? 7시까지 기다리다가 서양인 커플과 그랩카를 쉐어해서 보로부두르까지 (우리 몫으로 120리부) 가기는 했지만, 참나, 유명 관광지로 가는 정기 버스가 무단으로 펑크를 내다니, 이게 뭐냐? 남들은 몇만원씩 주고 투어를 가지만 우리는 20리부 짜리 버스를 타고갈 거라고 자랑했던 내 체면은 또 어찌되냐고?
보로부두르 사원은 명불허전, 우선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랐고 디테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복원과 보존 상태도 좋아 보인다.
그런데 관람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미쳤다. 좀 멀리 돌아 가게 만든 거야 산책 삼아 걸으면 되니 괜찮다고 쳐도, 수 천 개에 달하는 기념품 가게들의 호객을 헤치고 지나가야 하는 길은 가히 세계 최고일 듯하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 관광지에서도 많이 보던 시스템이긴 하지만 여기는 차원이 다르다. 짜증이 나는 걸 넘어서, 가게 숫자가 하루 관광객 숫자보다 훨씬 많으니 저 사람들 다 뭐 먹고 사나? 걱정이 될 정도. 그렇지만 기념품은 사지 않음.
보로부두르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작은 사원들(파원,므누트 통합입장권 20.5리부)도 방문을 한 뒤 고젝카를 불러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2024.1.6
오늘은 족자 시내에 있는 왕궁과 따만사리를 돌아보는 일정이다. 왕궁이라고 해도 화려한 건물이나 찬란한 보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시간이 맞아서 (왕궁 후문 쪽에서만 만난 사기꾼이 11시에 공연이 시작되니 어디어디로 가자고 꼬드기는 걸 거절하고 10시에 왕궁으로 들어갔는데 그 시간에 공연이 시작됨) 보게 된 전통극 공연은 망외의 즐거움이었다.
왕궁에서 나와 따만사리로 이동하면서 처음으로 베짝(인력거)을 타 봤다. 30리부 달라기에 흥정할 것도 없이 오케이 했는데 베짝이 따만사리로 직접 가지 않고 다른 길로 돌아간다. 그냥 따만사리로 가자고 재촉했지만 기사는 꿋꿋이 어느 골목 앞에까지 가서 안쪽을 가리킨다. 기사는 영어를 못하고 우리는 뭔 소린지 못 알아듣고, 잠시 대치하다가 따만사리로 갔는데, 돈을 받고는 인사도 없이 화를 내며 가버렸다. 화를 낼 것까지야~
점심은 왕실 음식을 한다는 Bale Raos에서 먹었다. 아주 규모가 큰 식당인데 (그에 어울리지 않게?) 에어컨이 없다. Dendeng Kelem 이란 고기 요리와 파스타?
저녁에는 (반대로?) 모던한 식당 Walter's Coffee & Eatery에서 피자와 연어 샐러드를 먹었다.
2024.1.7
오늘은 인도네시아 최대의 힌두교 사원인 프람바난 사원을 가는 날이다. 프람바난은 굳이 투어나 그랩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트랜스족자라는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다. 버스는 현금 승차가 안 되고 카드가 있어야 탄다고 들었는데 우리는 고페이가 있으니 문제가 없다. 꽤 먼 거리인데도 요금은 3.6리부, 300원이다. 그런데 이 300원 짜리 버스에는 (만원 짜리 시외버스에는 없었던)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프람바난도 대단했지만, 20리부 짜리 전기차를 타고 가 본 불교 사원 세우(Sewu)의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세우 사원은 185m X 165m 부지에 249개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큰 사원이었는데 (프람바난이나 보로부두르보다 먼저인 8세기에 지어진 사원), 므라피 화산의 폭발로 묻혔다가 19세기 초부터 발굴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93년에 주 사원과 두 개의 보조 사원이 복원되었으나 2006년에 지진으로 다시 무너졌다가 재 복원이 되었고 이후 나머지 사원들의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데, 과연 전체 복원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프람바난 입장료는 3만원 정도, 세우 사원은 셔틀 버스 비용 외에 별도 입장료는 없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다가 지도를 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하우스오브라민텐(House of Raminten)이란 유명 식당이 보인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 찾아가 보니 와~ 웨이팅이 대단하다. 식당에 줄 서는 거 좋아하진 않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기다려 봐야지 이름을 적고 40분을 기다려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전통적인 분위기에 구경거리도 많고 (마굿간도 있다던데) 가격도 저렴한데, 유명세 만큼 맛이 대단한 것 같지는 않았다.그냥 괜찮은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