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을 잡고 과감하게 사족(蛇足)을 잘라내라
수필가 정임표
뱀은 뱀으로 그릴 때 뱀이 됩니다. 오랜 글쓰기를 하신 분들도 자기 글에서 사족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독자가 못 알아먹을까 봐 자꾸 사족을 덧붙입니다. 글쓰기에서 사족(蛇足)의 개념부터 일반 문장, 수필, 이미지 묘사, 그리고 통섭적 글쓰기까지 초심자가 한눈에 이해하기 쉽도록 사족의 류형들을 정리합니다. 참고하시고 작품을 써 놓고 나서 지워도 의미가 통하는 문장은 무조건 지우세요. 지금 우리 수필 계에서 발표되는 수많은 작품들 중에 사족만 제거해도 90% 이상은 명수필이 됩니다.
1. 사족(蛇足)이란 무엇인가?
글이나 말에서 '전체 흐름과 상관없거나, 이미 앞에서 다루어 불필요하게 덧붙인 군더더기'를 뜻합니다. 뱀을 그리는데 발을 덧그리는 격(뱀다리)이라는 뜻으로, 없어도 의미가 통하거나 오히려 글의 완성도와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소를 말합니다.
2. 일반 문장의 사족 유형과 대비
글에서 사족을 없애는 기준은 "의미가 중복되는가?", "없어도 핵심 전달에 지장이 없는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① 의미 중복형 사족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앞 문장의 의미를 굳이 한 번 더 풀어서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예시 원본: "그는 미래를 향해 앞으로 전진하며 앞날의 계획을 세웠다.“
사족 삭제 후: "그는 미래의 계획을 세웠다.“
② 불필요한 주관적 설명형 사족
주장 안에 이미 내포된 당연한 결과를 길게 부연 설명하여 오히려 글의 힘을 빼는 경우입니다.
예시 원본: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실패하면 우리 팀의 명예가 실추되고 앞으로의 회사 생활이 매우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족 삭제 후: "우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③ 뻔한 당연한 소리형 사족
누구나 아는 정의나 모호한 수식어를 덧붙여 글을 늘어지게 만드는 경우입니다.
예시 원본: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로서,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아주 좋은습관이다.“
사족 삭제 후: "독서는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는 습관이다.“
3. 수필(에세이) 문장의 사족 유형과 대비
수필은 독자가 느낄 '여운'을 빼앗는 불필요한 설명이 대표적인 사족이 됩니다.
① 강박적인 교훈과 주제 덧붙이기 (도덕책 식 마무리)
교훈을 직접 말하지 않고 묘사로 여운을 남겨야 독자가 스스로 감동을 느낍니다.
예시 원본: "...할머니의 손때 묻은 찻잔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역시 우리는 부모님과 어르신들께 효도하고 추억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
사족 삭제 후: "...할머니의 손때 묻은 찻잔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차가운 도자기에서 할머니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왔다.“
② 맥락과 상관없는 잡다한 배경 정보 (TMI)
핵심 주제와 관계없는 날씨, 동선, 식사 메뉴 등은 몰입을 방해합니다.
예시 원본 :"그날은 아침부터 지하철이 지연되어 겨우 출근하는 바람에 기분이 언짢았다. 점심으로는 김치찌개를 먹고오후 3시쯤 오래된 서점에 들렀는데, 거기서 우연히 10년 전 첫사랑을 만났다.“
사족 삭제 후: "오후 3시쯤 오래된 서점에 들렀는데, 거기서 우연히 10년 전 첫사랑을 만났다.“
③ 감정의 과도한 '설명' (Show, Don't Tell 위반)
감정 단어를 직접 쓰기보다 행위나 풍경을 보여주어야 울림이 큽니다.
예시 원본: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으며 눈물이 그치지 않고 흘렀다.“
사족 삭제 후: "그 말을 듣는 순간, 쥐고 있던 찻잔 위로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④ 불필요한 자기비하나 변명
필자의 변명이나 겸양은 글의 신뢰도와 당당함을 떨어뜨립니다.
예시 원본: "부족한 나의 글이지만….", "이 글을 쓰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사족 삭제 후: 전문 몽땅 삭제
4. 이미지(묘사) 문장의 사족 유형과 대비
감각적 묘사나 비유에서 겉도는 요소를 말합니다.
① 이미지가 말해주는데, 감정을 또 말하는 경우 (설명적 사족)
묘사 자체에 이미 감정이 담겨 있으므로 추가 감정 설명은 사족입니다.
예시 원본: "바닷가의 붉은 노을이 쓸쓸하게 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니 내 마음속에도 어쩐지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밀려왔다.“
사족 삭제 후: "바닷가의 붉은 노을이 갈대밭 위로 아득히 지고 있었다.“
② 똑같은 의미의 이미지를 겹쳐 쓰는 경우 (감각적 중복 사족)
무거운 수식어를 겹겹이 쌓으면 문장이 과장되어 오히려 감정이 희석됩니다.
예시 원본: :"창밖에는 하늘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듯 차갑고 시린 가슴 아픈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렸다.“
사족 삭제 후: "창밖에는 차가운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렸다.“
5. 통섭적 글쓰기의 사족 유형과 대비
인문학과 과학·학술 지식을 융합할 때, 지식을 뽐내거나 억지로 끼워서 맞추는 사족을 말합니다.
① TMI(Too Much Information) 지식 과시형 사족
과학적 원리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가벼운 촉매제여야 하지, 백과사전식 설명이 되면 안 됩니다.
예시 원본: "가을 낙엽을 보니 문득 삶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낙엽이 지는 이유는 식물이 겨울을 나기 위해 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층을 형성하고, 옥신과 에틸렌 같은 식물 호르몬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카로티노이드 색소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무튼 자연의 섭리는 신비롭다.“
사족 삭제 후: "가을 낙엽을 보니 삶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잎을 떨구어내는 나무의 침묵 속에서 계절의 무게가 느껴졌다.“
② 억지 꿰맞춘 유추 형 사족 (작위적 연결)
일상의 소소한 현상에 거창한 과학 법칙을 억지로 연결하면 글이 인위적으로 변합니다.
예시 원본: 사족 포함: "엄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을 보며 문득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른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우주의 무질서 도가 떠올랐다. 세상 모든 것은 결국 무질서해지는구나.“
사족 삭제 후: "엄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을 보며, 밥상의 시간도 조용히 저물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③ "고로 인간이란…." 식의 거창한 생물학적/진화론적 결론
소박한 개인적 깨달음을 인류학적 거대 담론으로 과장 포장하면 수필의 진솔함이 사라집니다.
예시 원본: "친구의 작은 위로 덕분에 하루를 버텨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인류는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초원에서 무리를 지어 생존해 온 사피엔스 종으로서, 결국 타인과의 연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유전적 본능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인 것이다.“
사족 삭제 후: "친구의 조용한 위로 덕분에 꺾일 것 같았던 하루를 무사히 버텨낼 수 있었다.“
독자의 입장에서 사족이 지네 다리처럼 너덜너덜 달린 글을 보면 읽기가 싫어 집니다. 자기 글에서 사족만 찾아내는 안목만 있다면 훌륭한 수필가라 할 만합니다. 필자가 일반게시판에 <바른 글쓰기 토론 제안>에 올린 <방망이 깎던 노인>을 전범(典範)으로 설명드리면 방망이 하나를 깎으면서도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다시 살펴보고 하는 행위가 사족을 제거하는 명인의 인내이자 살아있는 정신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사족이 달린 글을 쓴다고 해서 강제로 금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니 쓰라마라 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는 것을 밝히며, 다만 좋은 글은 아니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