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은 점점 강하게 되면서 왕이 된다 삼상26:10-25, 31:1-6 삼하2:4,7, 3:1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온실같이 태풍도 없고 세찬 비바람도 없는 곳이 아니라 어느 날 예기치 않게 해안가에서 쓰나미가 몰려오고 지진이 나면서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지고 겨란만큼 큰 우박이 갑자기 쏟아져 수확직전 과일이 만신창이가 되고 어느 날 보이스 피싱에 걸려 수천만원이 털리게 되는 것이 우리들 삶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밀레니엄 이후 세계는 자연재앙으로 말미암아 하루하루가 늘 불안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남아나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호주와 하와이의 산불같은 것이 그런 지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개인의 삶속에도 어느 날 갑자기 이런 태풍이 불어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태풍이 불어올 때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 태풍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고백을 하게 됩니다. 자 이런 가장 강력한 인생 태풍을 경험하고 그 태풍을 극복한 인물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겪었던 인생태풍은 성경에 기록된 것만 보더라도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윗왕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을 시작하면서 아브라함자손이며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라고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보다 적어도 천년전에 살았던 예수님의 육신의 조상이라고 하면서 마태복음 1장에는 다윗의 계보를 소개하는데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았다고 마태복음 1장 5-6절의 기록입니다.
사무엘장 16장은 다윗을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시작은
(삼상16:1)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어느 때까지 그를 위하여 애곡하려느냐? 기름을 네 뿔에 채우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나를 위해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한 왕을 예비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무엘 선지자는 어느 날 뿔에 기름을 준비하여 베들레헴에 가서
양치는 목동이었던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그 날 이후로 주의 영께서 다윗에게 임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삼상16:13). 그 후 다윗은 아버지 이새의 심부름으로 전투하는 형들에게 갔다가 그 전쟁터에서 하나님을 모욕하는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보면서 참을 수 없어 소년 다윗은 물맷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골리앗의 칼로 골리앗의 목을 벤 것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에 알리게 되었다. 그날에 사울왕은 다윗이 그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다윗이 지혜롭게 행동하매 다윗으로 하여금 군사들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이런 용맹한 다윗이 블렛셋 사람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날에는 이스라엘 여인들이 기뻐하며 노래하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의 죽인 자는 만만이라 하는 말로 사울왕은 여인들이 다윗을 찬양하는 소리에 시기와 질투가 가득해서 다윗을 죽일려고 합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블레셋 손에 죽이고자 드디어 다윗은 사울 왕의 사위가 됩니다. 지난 날 한 낮 양치기에 불과했던 다윗이 드디어 한 나라의 정치와 군사의 중심에 서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또 다윗이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올 때마다 사람들의 민심이 다윗에게 점점 더 쏠리게 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의 시기와 질투가 급기야는 사울자신의 왕좌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다윗을 죽이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삼상18:10-11) 10 그 다음 날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하매 그가 집의 한가운데서 대언을 하더라. 다윗이 다른 때와 같이 손으로 하프를 켜더라. 사울의 손에 창이 있었으므로 11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니 이는 그가 말하기를 내가 창으로 다윗을 쳐서 벽에 박으리라, 하였기 때문이더라.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사울이 가끔 정신분렬증이 일어날 때 마다 다윗이 악기를 연주하면 사울이 상쾌해지는데 오늘도 사울이 괴로워하므로 사울왕을 위해 악기연주를 하는 다윗을 향해 창을 던졌던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운좋게 피하였지만 미친 왕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하루아침에 나라의 군대장관이며 왕의 사위의 신분에서 도망자 신세가 됩니다. 인간이 권력을 한번 맛보고 나면 사위아니라 자기 자식이라도 죽이는 일들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만큼은 인간이 정말 물리치기 어려운 탐욕입니다.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측전무후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황후가 되기까지》
측천무후는 당(唐) 고종(高宗)의 황후였으나 고종이 죽은 후에 황제로 16년간 재위하였지만 실제로는 50여 년간 집권을 한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이다. 그녀가 어떻게 황제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을까?
그녀는 본래 고종의 부친 태종의 궁녀였으나 아들 이치(李治:고종)는 일찍이 태자 시절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반해 버렸다. 649년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황실의 법도에 따라 무측천은 감업사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무측천이 다시 황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데는 고종의 황후 왕씨(王氏)가 고종에게 무측천의 입궁을 적극 부추켰다. 황후 왕씨의 보살핌 속에서 다시 황궁으로 들어간 무측천은 정성을 다해 황후 왕씨를 모셨지만 한번은 무측천이 낳은 딸을 축하해주기 위해 무측천을 방문했는데 무측천은 왕씨 황후를 제거하고자 자신의 딸을 살해한 후 황후 왕씨에게 뒤집어 씌우므로 무측전은 황후를 제거하고 자기가 황후가 된다. 그 후 무측천은 자신의 권세와 위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친자식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무측천에게는 이홍, 이현, 이철, 이단이라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656년 태자 이충이 폐위되자 무측천의 장남 이홍이 황태자에 책봉되었다. 권력이냐 자식이냐? 이 양자 택일의 중대한 기로에 선 무측천은 비정하게도 675년 24살의 아들에게 독약을 먹여 죽여 버린다. 이홍이 죽은지 한 달 후에 둘째 아들은 다른 사람을 교사하여 태자가 여색을 탐한다고 모함하게 하면서 이현은 태자의 신분을 박탈당하고 684년 무측천은 파주로 사람을 보내어 이현을 죽였다. 이현이 폐서가 된 이튿날 셋째 아들 이철이 태자에 책봉되었다. 683년 고종은 황위를 태자에게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으며, 이로써 태자 이철이 황위에 올랐으니 바로 중종을 폐위시켜 궁궐 깊숙한 곳에 유폐시켰다. 중종을 유폐시킨 후 무측천은 자기의 막내 아들 이단, 즉 예종을 황제로 옹립하였다가 마침내 예종을 폐위하고 직접 황제의 자리에 올라 스스로 성신황제(聖神皇帝)라 칭하였고 국호를 주(周) 연호를 천수(天授)라 하고 준비해 둔 도읍지 낙양으로 천도하므로써 그녀는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가 되었던 것이다. 무측천이 황제에 등극했을 때 나이는 이미 67세였으니, 중국역사상 황제에 즉위한 나이가 가장 많은 황제가 되었다. 세상권력을 한번 맛보면 자신의 자녀들도 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역사는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권력갖지 않은 것에 감사드립시다, 다시 다윗으로 가면 다윗은 졸지에 군대장관이라는 지위를 잃어버리고 이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는 것은 다윗은 한 순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태풍이 불어온 것인데 이것은 다윗 인생가운데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더 큰 인생 태풍이 겹겹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1. 도망자가 된 다윗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것을 사울왕의 아들 요나단으로부터 들으면서부터 다윗은 도망자가 됩니다. 처음에는 다윗은 사울의 왕궁을 떠나려 하다가 그래도 자신과 의형제까지 맺은 요나단에게 마지막 인사는 해야겠다 싶어 요나단을 만나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한다는 것을 요나단에게 알리니, 요나단은 그럴 리가 없다며 펄쩍 뜁니다. 마침 다음날이 월삭(초하루 축제일)이면 가족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그 때 요나단이 사울의 속마음을 떠보기로 합니다. 월삭 이틀째가 되자 사울은 다윗이 어찌하여 그 식사 자리에 참여하지 않았느냐고 묻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가족의 매년제에 참여하기 위해 바쁘게 갔다고 말하자 사울은 그 죽일 놈을 빨리 잡아오라고 호령합니다. 이에 요나단이 사울에게 다윗 같은 충신이 어디 있냐고 다윗을 두둔하자, 사울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아들 요나단을 향하여 창을 던집니다. 이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일 결심을 한 줄 알고 다윗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다윗은 이제 그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도망자의 신세가 됐습니다. 다윗은 월삭 때부터 사흘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정처 없는 방랑의 삶을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기간이 10년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 고통의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릅니다. 어쩌면 영영 그의 삶에 평안이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사무엘은 분명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머리에 기름 부은 후부터 왜 이렇게 자기의 인생이 꼬이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박한 시련이 후일 다윗에게 정금 같은 순전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사울에게 너무 갑작스럽게 왕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번 다윗에게는 아주 강한 훈련을 시키셔서 그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을 이끄는 참된 지도자로 세우시려는 뜻인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그 시련의 기간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믿음으로 그 기간을 잘 이겨냈습니다. 자 지금부터 다윗의 시련과정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성경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성도여러분 혹시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으셨거나, 내 고통은 돌아보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믿으면서 항상 좋은 일만 있어 왔습니까?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며 친아들이 아니라고(히12:8)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분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련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2. 제사장 아히멜렉을 속인 다윗
요나단과 헤어진 다윗은 사울의 위협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도망가는데, 요나단과 처음 만날 때부터 거의 사흘을 굶었던 다윗은 기브아에 있는 사울의 왕궁으로부터 남동쪽으로 4km 떨어진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갑니다. 이미 다윗이 사울의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히멜렉은 두려워 떨면서 어찌하여 군사들 없이 혼자 왔느냐고 묻습니다.
(삼상21:1-2) 1 그때에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이멜렉에게 이르니 이멜렉이 다윗을 만나 두려워하며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아무도 너와 함께하지 아나하느냐? 하매 2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내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어 하게하는 일과 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아무에게도 전혀 알리지 말라. 하시기에 내가 내 종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가라고 지정하였나이다.
다윗은 거짓말로 왕의 비밀 명령을 수행중이며, 군사들에게는 따로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므로 혼자 다닌다고 말하고는 먹을 것과 칼을 구합니다. 이에 안심한 아히멜렉이 제사장이 먹는 거룩한 떡 진설병을 내주고, 다윗이 죽였던 골리앗의 칼을 내어줍니다. 천하의 거인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했던 다윗이었으나 사울에게 쫓겨 정처 없는 방랑자가 되자 그만 두려움이 엄습하여 제사장 아히멜렉을 속이고 진설병을 받아먹었던 것이 앞으로 일어날 비극의 씨앗이라는 것을 모르고 다윗은 유대땅 어디에도 피할 곳은 없으므로 블레셋 땅으로 들어갑니다.
(1) 아히멜렉 제사장을 포함 85명의 제사장들이 살륙당하다
다윗이 블레셋 가드왕 아기스로부터 추방되면서 다윗은 아굴라 굴로 오니 사람들이 400명쯤 모이면서 사울왕도 다윗의 소식을 듣고 다윗을 추척하던 중 에돔 사람 도엑으로부터 다윗이 놉에 와서 아빌멜렉 제사장을 만났던 이야기를 듣고 사울왕이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을 도와줬다는 죄목으로 아히멜렉 제사장과 놉땅의 제사장 85명을 살륙하는 참극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제사장 아히멜렉의 행동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도망치는 다윗을 도와줬던 것만으로 아히멜렉이 모든 가족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놉땅에 있는 85명의 제사장들까지 아니 놉땅에 사는 어린아이들까지 연대책임을 지우면서 놉땅을 씨를 말리는 그 엄청난 살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도망쳐나온 아히멜렉의 아들 중 하나인 아비아달로부터 듣게 되면서 다윗은 자신 때문에 죄없는 제사장과 그 지역이 전멸되었다는 것에 몹시 마음아파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아히멜렉의 일은 그렇다고 쳐도, 다윗의 거짓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다윗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분명 거짓말 그 자체는 나쁜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딛1:2) 영원한 생명의 소망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
(히6:18)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 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말씀은 하나님은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진리를 말할 수 없는 것이 마귀의 속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역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순간,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거짓말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윗도 생각하기를 지금 내가 남을 속이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했습니다. 결국 다윗도 자신의 거짓말이 비극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고백합니다.
(삼상22:22)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그 날에 에돔 족속 도엑이 거기 있기에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 내가 네 아버지의 모든 사람을 죽게 하였도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거짓말로 남을 속여 돈을 탈취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보이스 피싱으로 돈을 잃은 자들은 너무나 많이 있는데 시작은 남을 속이면서 돈을 갈취하는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탐심을 버리라는 다 연관된 계명입니다. 이 모든 사악한 일들은 마귀의 속성인 거짓말을 하면서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이 세상에선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없다고 우리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착한 거짓말입니다. 저도 제 삶을 돌아보니 착한 거짓말은 둘째 치고 온갖 거짓말로 점철된 삶이었기에 부끄러울 뿐입니다. 그래서 과연 거짓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생각나는 것이 주님의 마태복음 말씀입니다.
(마5:37) 오직 너희 대화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 무엇이든지 이것들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느니라.
우리 주님은 조금도 좋으면 괜찮다는 착한 거짓말이면 괜찮다는 식으로 그렇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날마다 우리의 삶속에서 진실을 위해 발버둥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지만 다윗이 속인 이 일로 말미암아 제사장 85명이 사울에게 죽임을 당하고, 제사장들이 살던 놉 성읍 사람들이 완전히 진멸을 당합니다(삼상22:9-22). 그들은 단지 도망치는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연대책임을 지었다고 엄청난 살륙이 일어났던 사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윗은 자신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에 몹시 마음아파 합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아히멜렉과 같이 선한 사람이 악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선한 자의 고통문제는 우리의 시각으로 해결하기엔 켤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모순되는 문제는 우리의 이성적으로 납득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을려고 하지 않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문제는 우리의 생각 보다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분명 오늘 제사장 아히멜렉과 85명의 제사장의 죽음은 사울의 죄악과 도엑의 사악함으로 인해 일어난 죄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아히멜렉과 놉의85명의 제사장의 죽음의 문제를 우리의 시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한 번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아히멜렉은 누구입니까? 사무엘상 22장11절에서 아히둡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히둡은 누구입니까?
(삼상14:3)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이가봇의 형제인 아히둡의 아들이요 비느하스의 손자요 실로에 있던 주의 제사장 엘리의 증손이었더라.
아히야는 비느하스의 손자라고 합니다. 비느하스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여러분, 일찍이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에게 하신 경고가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22절의 말씀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함을 엘리가 듣고 엘리가 아들들에게 경고하였음에도 그 아들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죽이시기로 작정하셨다고 했습니다(삼상2:25)
지금 하나님께서 엘리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악으로 인해 엘리 가문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아히멜렉의 이야기는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잘 납득할 수 없는 일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신 것은 그게 우리에게 좋든, 좋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아히멜렉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고 경외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그리고 내 상황이 불리해 지고 어려워진다고 해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믿음 위에 서야만 합니다.
후일 다윗은 이 일을 크게 후회합니다. 자기의 배고픔을 면하자고 거짓말을 한 것이 제사장 85명은 물론 놉 성읍의 모든 사람들을 죽게 했으니 그 후회와 마음의 고통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이것 또한 다윗이 훌륭한 임금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과정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윗은 이 일로 순간의 어려움을 벗어나고자 적당히 꾀를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하게 배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3.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한 다윗
집요하게 추격해오는 사울왕의 추격 때문에 다윗은 다급한 나머지 다윗은 사울을 피해 놉땅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의 성막으로 도망하여서 거룩한 떡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받아가지고 나온 다윗은 그곳에는 사울의 사람 도엑이 있었음을 알고는 여전히 신변에 위협을 느낀 다윗은 사울의 영향권에서 조금은 더 멀리 떨어질 수 있는 곳으로 피신을 한다는 것이 놉에서 남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블레셋의 한 성읍 가드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땅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다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곳이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이끄는 군대도 없었고 자신의 얼굴을 쉽게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드로 들어갔습니다.
(삼상21: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가 추격해 오니 도망치던 누우나 얼룩말들이 급한 김에 강으로 뛰어들지만 강에는 악어떼가 득실 거리는데 밖으로 나오면 사자 밥이 되고 강에 가만이 있으면 악어의 밥이 되는데 그런 경우처럼 다윗도 사울이 추격해 오니 도망치다 들어간 곳이 이스라엘의 적들이 살던 블레셋 가드라는 곳입니다. 그 미친 사울 왕이 추적해 오니까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숨어 들어갔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선택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 준 사건이 골리앗을 죽인 사건이었는데 다윗이 숨어 들어갔던 곳이 원수들이 사는 불레셋의 가드왕에게로 들어갔다는 것은 정말 총알을 피할려다가 대포알을 맞은 격이고 오토바이를 피할려다가 대형 트럭에 치여 죽는 그런 경우가 실제로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다윗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 다윗도 사람이었기에 허물이 있었고 연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의 신분이 알려진 것입니다.
(삼상21:11)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그들이 춤추며 그에 관해 서로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 다윗은 수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므로
아기스 신하들은 다윗을 알아 본 것입니다. 다윗은 아기스에게 들어갔을 때 아기스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본 것입니다. 다윗은 본능적으로 그 육중한 두려움이 엄습한 순간에 반사적인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미친 사람 흉내를 내기 시작하면서 대문짝에 그적거리고 지저분한 침을 수염에 흘려 내립니다.
(삼상21:12-13)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이 순간이 다윗의 전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위급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여우를 피하다 사자를 만나고, 총알을 피하다가 대포알을 만난 꼴입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흘리매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아기스왕이 미친 다윗을 내 쫓아 버리도록 하면서 위기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 아기스 왕에게 미친 다윗을 쫓아내라는 마음을 갖게 하면서 위기를 극복하였고 그 때의 상황을 시편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시34:4) 내가 주를 찾으매 그분께서 내말을 들으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이 아기스에서 좇겨난 후 지은 시편을 보면 그가 아기스 앞에서 얼마나 두려움 가운데 있었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얼마나 하나님께 간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연약함과 허물은 나를 어렵게 할 때가 있습니다만 때로는 그 연약함 때문에 더욱 하나님을 찿고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악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찿지 아니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자신과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을 통해 다윗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던 시련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블레셋에 갔다가 졸지에 적군의 손에 죽임을 당할 뻔했을 때의 두려움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리판단을 잘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위급한 일을 당했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능력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다윗 역시 이런 직진 본능에 따라 아히멜렉에게 가서 거짓말로 빵조각을 얻고, 다시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가서는 사자 입 안으로 머리를 넣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과 늘 항상 함께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제일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야 했는데 어려서부터 늘 하나님과 동행해왔던 다윗이었으나, 이렇게 두려움에 빠진 순간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오직 두려운 일만 보여서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연이어 두 번이나 하게 된 것입니다. 위기의 때는 또한 내가 가장 연약해진 때이기도 하며 또 위기의 때는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과 더 놀라운 은혜의 세계로 나아갈 기회가 동시에 주어진 때입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두려운 일일수록 더욱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4.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의 탄생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래도 한때는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었고 한때는 사울왕의 사위였고 그 로얄패밀리였던 다윗이 지금은 미친 짓을 하는 다윗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본다면 너무나도 슬퍼서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코메디와 같은 그런 장면입니다. 그래서 아기스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미친놈을 내 칼로 죽여야 마땅하겠지만 미친놈의 피를 내 칼에 묻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만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기스왕에게도 다윗에게 유리하도록 역사하시니 내쫒아 버리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정말 하나님은 다윗을 이렇게 까지 훈련시키실 필요가 있으셨을까요? 그렇게 아기스에게서 겨우 쫓겨난 다윗은, 가드에서 15km쯤 떨어진 아둘람 동굴로 갑니다. 아굴람동굴은 석회암과 사암 지대여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과 인공으로 만든 동굴들도 많은 곳이지만 워낙에 산지가 험하고 황량한 곳이라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다윗이 은신하기에는 오히려 좋은 곳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황량한 동굴 속에 은신하였다는 소식이 알려져서 그의 형제들과 아버지의 온 집안 식구들이 그곳에 왔었고, 이어서 환난 당한 모든 자, 마음이 원통한 모든 자들과 사울의 폭정에 고통당하는 자들이 다윗에게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형편없는 오합지졸들이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다윗은 이들에게 군사훈련과 물론 신앙의 훈련도 시켜서 그들은 후일 명실공히 다윗 왕국의 훌륭한 인재들이 됩니다. 그들 중에서 다윗 왕국의 훌륭한 장군들이 나옵니다. 다윗과 함께 그들이 쓴 시들이 우리가 보는 시편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아둘람 동굴 속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삶의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한숨과 절망 외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은 결국 그 동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했고, 그래서 위대한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둘람동굴은 다윗 평생에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련과 고통 속에서 다윗의 믿음이 빛이 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다윗은 이때 자신을 도우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부른 노래가 바로 시편 34편입니다. 시편 34편의 표제어에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비멜렉이란 블레셋 왕의 직함의 명칭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통수권자를 대통령이라 하듯, 블레셋의 최고 통수권자를 아비멜렉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때의 블레셋 왕 아비멜렉의 이름이 아기스인 것입니다.
(시34:4-6,9-10) 4 내가 주를 찾으매 그분께서 내말을 들으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그분을 바라보고 빛을 받게 되었으며 그들의 얼굴은 부끄움을 당하지 아니하였도다. 6 이 가엾은 자가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그의 모든 고난에서 그를 구원하셨도다. 9 오 주의 성도들아 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그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주를 찾는 자들에게는 모든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둘람의 사람들이 아둘람 동굴에서 고생했다고 해서 저절로 훌륭한 인재가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둘람 공동체가 이스라엘의 위대한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일꾼들이 된 그 핵심에는 고난중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다윗을 통해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승리할 수 있었다.
5.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왕권
아둘람 동굴이 비록 거칠고 황량한 사막 속에 있는 것이기는 해도 지금 다윗에게는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유다 땅도 블레셋 땅도 다 위험합니다. 겨우 숨 돌릴 만한 자리를 마련했는데, 다윗은 사울이 있는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는 선지자 갓의 권면을 따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기는 순간 다윗은 주저하지 않고 두려움의 소굴로 들어갑니다. 다윗은 선지자 갓의 권유를 듣고 곧바로 유다 땅에 있는 십광야 여시몬 남쪽에 있는 하길라 숲속 요새로 들어갑니다(삼상23:19,26:1). 그러자 역시 다윗이 염려한 일이 곧바로 일어납니다. 사울이 군대를 이끌고 그곳으로 온 것입니다. 이때부터 다윗의 삶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만, 그 긴장 속에서 다윗은 날마다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다윗이 유대땅에 있으면서 사울과 두 번이나 만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다시말하면 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기회를 두 번이나 가졌다는 것입니다.
(1) 엔게디 요새에서 사울을 만나다
육백명을 거느린 다윗은 기도하면서 행하는 기도의 용사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고하니 사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를 내게 넘겨주셨다하면서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고을에 갇혔다고 하면서 사울이 온 백성을 소집하여 다윗을 에워싸려는 것을 다윗이 알게 되면서(삼상23:9) 다윗과 그의 사람 600명은 그일라를 떠나 엔게디의 강한 요새에 거하였다. 사울에게 어떤 사람이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고 알려주자 사울이 삼천명을 거느리고 에게디 광야로 왔다. 그 때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있던 굴속으로 사울이 들어와 일을 보게 되었을 때 다윗은 굴 속 깊은 곳에 있었다. 이때 다윗의 사람들은 다윗에게 말하기를 주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손에 넘겨주리니 지금 치자고 하였지만 다윗은 몰래 사울의 옷자락을 베는 것으로 자기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내 주인 곧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이 일을 행하는 것 즉 내 손을 내밀어 그를 치는 것을 주께서 금하시나니 그는 기름부은 자니라고 하였다(삼상24:6). 사울도 굴에서 나갔고 다윗도 뒤따라 굴에서 나간 후 사울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주 왕이여 사울이 뒤를 돌아보니 다윗은 얼굴을 땅에 숙여 절하면서
(삼상24:10,16,19,22) 10 오늘 주께서 왕을 굴에서 내 손에 넘겨주신 것을 이날 왕의 눈이 보셨나이다. 몇 사람이 내게 권하여 왕을 죽이게 하였으나 내 눈이 왕을 아끼어 내가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내밀어 내 주를 치지 아니하리니 그는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니라, 하였나이다. 16 다윗이 사울에게 이 말들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9 사람이 자기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그런즉 네가 이 날 내게 행한 것으로 인하여 주께서 네게 선으로 보답하기를 원하노라. 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되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이처럼 다윗은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으므로 사울을 통해 너는 나보다 더 의롭도다, 주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하면서 오히려 다윗을 축복하고 떠났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한번 일어났었다.
(2) 십광야 여시몬 앞 하길라 산 진지
엔게디 동굴사건으로 화해한 사울은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나아와 다윗이 십광야 여시몬앞 하길라 산에 숨었다는 것을 말하니 이번에는 사울이 삼천명과 함께 다윗을 죽이고자 여시몬앞 하길라에 진을 치게 되는데 다윗은 정탐군들을 통해 사울이 온 것을 알게 되었고 다윗은 밤에 군대장과 요압의 동생 아비새와 함께 사울군대가 있는 진영에 내려가보니 사울이 참호안에서 누워자고 다른 사람들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데 그 때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께서 이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겨주었더니 창으로 그를 단번에 치자고 하였을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를 치면 누가 무죄할 수 있겠느냐 하면서 다윗이 아비새에게 말하기를 그를 멸하지 말라.
(삼상26:10-11) 10 다윗이 또 이르되 주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주께서 그를 치시리니 그의 날이 이르러서 죽거나 혹은 그가 싸움터에 내려가서 멸망하리라. 11 주께서 내 손은 내밀어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주께서 금하시나니 원하건대 다만 이제 너는 그의 베개 옆에 있는 창과 물병만 취하라, 그리고 우리가 가리라, 하고
무사히 진영을 빠져나온 다윗은 사울왕을 보호하지 못한 군대장관 아브넬을 책망하고 다시한번 다윗은 사울왕과 화해하고 사울은 다윗의 두 번째 선행을 알게 되었고 이번에도 사울은 다윗에게 너무 미안함 마음을 갖고 자기 처소로 갔다. 다윗은 두 번 씩이나 사울을 죽일 기회를 가졌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이므로 손을 대지 않았지만 다윗이 말한대로 사울이 싸움터에서 비참하게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었다.
(3) 사울의 죽음
사무엘상 마지막 31장은 사울왕의 죽음에 대해 기록했다. 사울왕과 이스라엘은 블레셋사람들과 길보아 산에서 싸웠는데 이날 전쟁이 너무 치열하였으므로 그날 전쟁에서 사울의 세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멜기수아가 죽임을 당하고 사울도 적이 쏜 화살을 맞고 고통받다가 스스로 자기 칼에 엎드려지면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사울이 죽은 이후 다윗이 자기의 사람들과 유다 땅으로 올라가니 유다사람들이 와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의 집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다고 하였다(삼하2:5,7). 한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도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니 한 나라에 두 왕이 있으니 내부에서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아직도 사울의 세력들이 남아서 일부는 다윗왕국과 전쟁을 하지만 사무엘하 3장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제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오랫동안 전쟁이 있었으나 다윗은 점점 더 강하게 되고 사울의 집은 점점 더 약하게 되니라. 결국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일하면서 통일왕국이 시작 되었는데 7년 6개월은 헤브론에서 나머지 33년 동안은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백성을 통치하는 다윗왕국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실로 불의가 가득한 이 세상속에서 사는 성도들은 숱한 두려운 일을 만나게 됩니다. 경제의 두려움 질병의 두려움 지진의 두려움 전쟁의 두려움 그러한 인생태풍들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주를 경외하며 주께 피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시입니다. 이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하신 주님의 말씀과 일맥 상통하는 말씀이십니다. 인생의 태풍이 몰려오고 비극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 다윗은 좌절하거나 절망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유일한 피난처가 있었는데 주 하나님이 내 피난처이십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시고 나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영원한 하나님 그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오히려 나는 이런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이 고난의 날에 내 인생의 삶을 통해 나는 오히려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였음을 고백하는 다윗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진정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눈물과 고통과 아픔과 고난시간들이 하나님이 자신을 아름답게 사용하시려고 훈련시키시는 시간들로 인식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여러해동안 훈련시키신 후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다윗은 인생태풍에서 넘어질 듯 하였지만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믿었고 경외하였기에 하나님은 다윗의 혈통을 통해 우리들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주님 어렵고 두려운 때일수록 더욱 더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옵소서. 두려움에 빠졌을 때에도 분별력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알 수 없는 시련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다윗처럼 끝까지 이겨서 승리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시련과 고통 중에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