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 병산(竝山) 이원영 교수는 큰 꿈을 꾸는 사람이다. 병산은 지구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서울에서 로마까지 장장 9,000km를 걷고 있는 21세기의 순례자이다.
병산이 순례를 하는 목적은 전 세계에 있는 450개 핵발전소의 방사능 유출과 사고위험을 감시하는 새로운 민간 기구를 종교인들이 연합하여 만들자는 것이다. 1979년 미국의 쓰리마일 원전사고,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이어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원자로가 녹는 엄청난 사고가 났다. 원전 사고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바다를 오염시키고 토양을 오염시키고 사람들과 다른 생명체들은 강력한 방사능을 쬐고서 죽어간다. 원전 사고가 나면 국경선을 넘어서 전 지구의 생태계에 피해를 준다. 그러므로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이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UN이 나서야 하는데, UN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속수무책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UN이 미국, 소련, 중국 등 강대국에 의해서 휘둘리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수립되자 에너지 정책으로서 ‘탈원전’을 선언하였다. 공식적으로는 ‘에너지 전환’이라고 표현을 바꾸었지만 내용은 똑같다. 주변에서 보면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의 친구들도 대부분 탈원전은 너무 성급하며 경제성 있는 대체 에너지를 충분히 보급할 수 있을 때까지 원자력 발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탈원전과 관련하여 꼭 지적할 사항이 하나 있다. 현 정부의 탈원전은 지금 당장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중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 정부의 정책은 현재 가동 중인 23개 원전은 설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사용한다는 정책이다. 다만 현재 건설 중인 5개의 원전은 공사를 계속하되 추가로 원전을 건설하지는 않겠다는, 말하자면 연착륙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현 정부의 정책이 계속 유지되면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소가 모두 멈추는 것은 지금부터 60년 후인 2079년이 될 것이다.
2011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54,000명이 피난민 생활을 하고 있으며 녹아내린 원자로의 폐로 작업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에 있다. 담당 회사인 도쿄 전력조차도 원자로의 폐로 작업이 완료되려면 30~40년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원전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수명이 다한 원전은 폐쇄해야 하는데, 폐쇄가 매우 골치 아픈 문제를 제공한다. 우리 정부에서는 수명이 다하여 2017년에 폐쇄된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을 원자로 1기당 3200억 원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는 방사성 폐기물 처리 비용을 포함되지 않은 추산이며, 환경단체에서는 고리 1호기의 폐로 비용이 최대 9860억 원이 될 것이라고 추산하였다.
지금까지 원전의 경제성을 분석할 때에 폐로 비용은 고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성 분석을 다시 해야 한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은 어떠한 방법을 써도 안전하게 처리할 수는 없고, 깊은 땅 속에 10만년 정도 묻어두고서 방사능이 약해지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원전은 결코 안전한 에너지가 아닌 것이다. 폐로 비용까지 고려하면 원자력 발전이 ‘경제성 있고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라고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은 이제는 가짜 뉴스로 변해 버렸다. 마치 석면이 처음에는 ‘값싸고 절연성이 높은 좋은 건축 자재’로 평가받다가 이제는 ‘제거해야 할 심각한 환경오염물질’로 변한 것이나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원전을 많이 건설할수록 우리 세대는 후손에게 위험한 방사성 폐기물을 많이 물려주게 되고, 우리는 후손의 원망을 들을 것이다.
병산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그리고 미래 세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민간 기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큰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양의 종교지도자인 달라이라마와 서양의 종교지도자인 교황이 만나서 협력하면 가능하다는 것이 병산의 주장이다. 전자 메일이나 편지 쓰기, 또는 기자회견을 해서 이러한 주장을 발표한들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국제 여론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병산은 9000km를 걸어간다는 어찌 보면 돈키호테 같은 순례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실천해 가고 있다.
병산은 큰 꿈을 이루기 위하여 순례 중간에 지나가는 여러 나라의 종교인들을 만나서 호소하고 달라이 라마를 만나서 호소하고 최종적으로 로마 교황을 만나서 호소할 것이다. 지난 1월 어느 날, 인도를 걷고 있는 병산에게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2019년 2월 25일 다람살라에 계시는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는 일정이 확정되었으니 친견에 동참하자고 병산이 제안하였다.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병산은 2017년 5월에 서울 광화문을 출발하여 지금까지 358일 동안 5,000km를 걸어서 어렵게 다람살라에 도착하였다. 나는 두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하루 만에 쉽게 다람살라로 갔으니, 병산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2019년 2월 22일에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8일 동안 다람살라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여행 중간에 사진을 찍고 휴대전화에 메모를 남긴 것을 여행이 끝난 후에 정리하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필요한 자료를 보충하였다. 이번 여행은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서 여기 저기를 부지런히 방문하는 관광 목적이 아니고 다람살라 한 장소만 방문하는 단조로운 여행이다. 나는 여유 시간이 많을 것을 예상하여 636쪽이나 되는 묵직한 책을 한 권 가지고 갔다. 「사피엔스」는 이스라엘의 히브리 대학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가 2011년에 쓴 책이다. 이 책은 히브리어로 출판된 이래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국제적인 베스트셀러이다. 작년 교수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니, 대학 교수들이 추천하는 책 10권 중에서 첫 번째가 바로 이 책이었다. 「사피엔스」는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시사점을 주는 인문학 책이다. 나는 「사피엔스」를 작은 여행 가방에 집어넣고서 인천 공항에서 인도의 델리 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라탔다.
<인천공항에서 사진을 찍어주는 로봇과 함께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