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유배문학 「견해월유감(見海月有感)」 바다의 달을 보고 감회가 일어>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 소개하는 「견해월유감(見海月有感)」 ‘바다의 달을 보고 감회가 일어’ 5수(首)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저자 김진규가 거제도 유배시절에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 연작 5수(首)로, 연작시 순서대로 운목(운통)이 ‘寒’, ‘禡’, ‘紙’, ‘庚’, ‘尤’ 운자(韻字)이다. 그리고 매 수(首)마다 첫구(句)의 시작은 바다 위의 달이 시간에 따라 달라진 위치를 서술하고, 둘째 구(句)에선 바다와 하늘의 밤 풍경을 묘사한 후, 이어진 구절에선 자신의 정서(情緖)를 드러냈다.
또한 이 시는 저자가 제주도(탐라)로 유배 간 형(김진구)을 따라간 조카 김춘택(金春澤)이 보낸 시에 화답하여 지은 작품이다. 당시 그의 집안은 기사환국(1689년)으로 인해 그의 삼촌 김만중은 남해도, 형 김진구는 제주도, 동생 김진서는 진도로 온 집안 남성들이 전국 각지의 섬으로 흩어지는 가문의 몰락을 겪었다. 이에 작가는 한밤중 바다 위로 떠올랐다 지는 달을 바라보며,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형과 조카)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혈육의 정과 사대부로서의 고결한 지조가 이 작품 속에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 [서문(序文) 해설] 김진규는 거제도에, 그의 형(김진구)과 조카(김춘택)는 제주도에 각각 유배(혹은 수행) 중인 상황이다. 조카가 중국의 대시인 소동파의 시 형식을 빌려 제주 바다의 달을 읊은 시를 보내오자, 김진규 역시 거제도 바다의 달을 바라보며 화답 시를 썼다. 조카가 여러 날 동안 본 달의 다양한 위상을 읊었다면, 김진규는 일경(초저녁)부터 오경(새벽)까지 '단 하룻밤 동안 달이 뜨고 지는 과정'으로 재구성하여 시적 완성도를 높였다.
○ [본문(本文) 해설] 이 연작 5수(首)는 단순한 자연 감상이 아니라, 일경(一更)부터 오경(五更)까지 하룻밤 동안의 밤하늘 달의 여정을 통해 '유배'라는 가문과 개인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피어난 문학적 소통을 묘사한 글이다.
①일경(一更)에선, 한밤의 시작, 바다 위로 떠오르는 거대하고 황홀한 달을 묘사했다. 도성(한양)을 떠나 먼 곳에서 마주한 바다의 달은 너무나 아름다워, 자신이 처한 쓸쓸한 처지(炎荒)조차 잊게 만든다.
②이경(二更)에선, 달이 중천으로 솟아오르며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진다. 저자는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달빛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고향에서 보던 달을 떠올리며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한 위안을 얻는다.
③삼경(三更)에선, 깊은 밤이 되자 먼 곳에 떨어져 있는 조카와 가족에 대한 그리움(離思)이 극에 달한다. 저 달빛은 한양에 있는 가족들이나 제주도에 있는 조카에게도 똑같이 비치겠지만, 사람은 가로막힌 바다 때문에 만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애틋한 혈육의 정이 돋보인다.
④사경(四更)에선, 새벽이 깊어 달이 기울기 시작한다. 작가는 맑고 결백한 달빛을 보며 자신의 결백함을 생각하지만, 3년째 이어지는 유배 생활의 회한과 고독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꿈속에서라도 달빛을 타고 임금이 계신 도성(鳳城)으로 가고 싶다는 충정인군(忠君愛國)의 마음을 드러냈다.
⑤오경(五更)에선, 동이 터오는 새벽, 지는 달을 보며 소동파의 유배 시절을 회상한다. 소동파가 아들 '소과'를 데리고 유배 생활을 했던 것처럼, 자신과 조카(김춘택) 역시 대를 이어 가문의 비극(유배)을 겪으며 달을 보고 시를 쓰고 있는 기이한 운명을 대입한다. 옛 성인은 가고 없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뜨는 달을 보며, 인생의 무상함과 슬픔 속에서 시를 마무리했다.
● 「조카 김춘택이 맏형님을 따라 탐라(제주도)에 갔다가, 바다의 달을 보고 감회가 일어 파옹(坡翁, 소동파)의 '강월(江月)' 시의 운을 사용하여 5장을 지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에 내가 문득 화답하니, 이것이 이른바 '천 리 밖에서 함께하는 바'이다. 풍경을 마주하고 그윽이 읊조리니, 또한 서로 다른 곳에 있으면서도 얼굴을 마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姪春澤從伯氏于耽羅 見海月有感 用坡翁江月詩韻 賦五章而眎余 余輒和之 此所謂千里所共 而對景幽吟 亦可想異地顔面爾)」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序文] 소동파의 시는 두보의 시 '사경산토월(四更山吐月)'로 인하여, 밤의 경(更)을 나누어 다섯 수의 첫 구절로 삼았다. 춘택의 시 역시 경(更)을 쫓아 '바다에 달이 뜬다[海月生]'로 엮었는데, 일경부터 오경까지 달이 돋고 토해내는 모습이 상현·하현·보름·초승을 두루 거치고 있어, 단 하루 한 장의 밤만을 읊은 것은 아니다. 나는 달이 뜨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하여 달이 낮아질 때로 끝을 맺음으로써, 단 하룻밤 동안의 경치를 읊었다.(坡詩因杜詩四更山吐月 排更次爲五首起句 春詩亦逐更係以海月生 而自一更至五更而生吐者歷徧弦望眺朏 非就一夜而詠 余則始之月出 終之月低 以詠一夜之景)
(1) 其一 일경(一更, 초저녁, 밤 7시~9시) ‘寒’
一更月出海 일경에 달이 바다 위로 솟아오르니
金波蕩碧瀾 금빛 물결이 푸른 파도 위에 출렁이네.
城市曾遙望 예전엔 한양 도성에서 멀리 바라보았는데
滄洲此近看 은거하는 이 바닷가에서 지금은 이토록 가깝게 보네.
却忘在炎荒 가혹하고 황폐한 유배지에 있음을 문득 잊고
渾疑游廣寒 달나라 광한루에서 거닐고 있는가 완전히 의심케 하네.
嘯咏酬淸景 휘파람 불고 시를 읊으며 맑은 풍경에 보답하니
莫敎空夜殘 이 밤이 부질없이 저물어 가게 하지 마라.
(2)又 其二 이경(二更, 밤 9시~11시) ‘禡’
二更月聳海 이경에 달이 바다 위로 높이 솟으니
皎皎如不夜 달빛이 어찌나 밝은지 밤이 없는 것 같구나.
流雲洞開捲 흘러가던 구름이 환하게 열리며 걷히고
淸影紛射下 맑은 달 그림자가 어지러이 쏟아져 내리네.
相隨杖可倚 달을 따라 거닐며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相問酒以藉 달에게 안부를 물으며 술기운을 빌려보네.
依然舊鄕看 여전히 옛 고향에서 바라보던 달 같아서
如得親朋話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구나.
(3)又 其三 삼경(三更, 밤 11시~새벽 1시) ‘紙’
三更月臨海 삼경에 달이 바다를 정면으로 비추니
月下離思起 달빛 아래에서 이별의 슬픈 시름이 일어나네.
光輝共遠邇 달빛은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똑같이 비추건만
骨肉分彼此 우리 혈육(가족)은 저곳과 이곳으로 나뉘어 있구나.
人生不如月 인간의 삶은 저 달만도 못하여
顔面阻雲水 구름과 바다에 가로막혀 얼굴조차 보기 어렵네.
相望不相見 서로 바라볼 뿐 만나지를 못하니
望月聊爾耳 달을 바라보며 애써 마음을 달랠 뿐이네.
(4)又 其四 사경(四更, 새벽 1시~3시) ‘庚’
四更月斜海 사경에 달이 바다 너머로 기우는데
俯仰盡虛明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아도 온통 텅 비고 밝구나.
色映中心潔 저 달빛은 내 마음속의 순결함을 비추는 듯하고
波侵感淚橫 밀려드는 파도 소리에 감회가 일어 눈물이 비껴 흐르네.
羇踪三歲留 나그네 같은 유배 신세로 3년째 머물고 있고
飛轍千里行 날아가는 수레바퀴 같은 세월은 천 리를 행하였네.
何由託夢魂 무슨 수로 내 꿈속의 넋을 기탁하여
流歇照鳳城 흐르다 멈추어 임금님 계신 봉성(한양 도성)을 비추어 볼까.
(5)又 其五 오경(五更, 새벽 3시~5시) ‘尤’
五更月低海 오경에 달이 바다 밑으로 낮게 내려앉으니
餘輝更淸幽 남은 새벽 달빛이 더욱 맑고 그윽하구나.
感歎蘓公詠 소동파(소공)가 읊었던 시를 감탄하며 떠올리고
想像合江樓 그가 시를 지었던 합강루(合江樓)를 상상해 보네.
過子又隨遷 소동파의 아들 소과(蘇過)가 아버지를 따라 유배지를 옮겨 다녔듯, [장조카 춘택이 형님을 따르니]
對月和千秋 달을 마주하고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화답하노라.
公去月獨在 소동파는 떠나고 달만 홀로 남아 있으니
達曙空悲謳 새벽이 올 때까지 부질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네.
○ 내용인즉, 첫째(1) '달(月)'을 통한 시공간의 연결과 혈육의 정을 표현했다. 유배지라는 절망적인 고립 공간에서 '달'은 유일한 소통 매개체다. 작가는 거제도에 있고 형과 조카는 제주도에 있지만, "같은 달이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동시에 비춘다(光輝共遠邇)"는 점을 통해 천 리 밖 가족과 정신적으로 연결했다. 달을 보며 조카를 생각하고, 고향 친구와 대화하듯 위로를 얻는 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둘째(2) 소동파의 시 형식을 빌려 소동파 부자(父子)와 김진구·김춘택 부자의 상황을 대치하여 시적 완성도를 이루었다. 마지막 수에서 작가는 중국 북송의 문호 소동파가 혜주·담주 등으로 유배 갈 때 그의 아들 소과(蘇過)가 끝까지 아버지를 모시고 따랐던 고사를 인용했다. 이는 현재 자신의 맏형님(김진구)을 따라 제주도 척박한 땅까지 동행한 조카 김춘택의 효심과 의리를 소동파 부자에 비견하며 고결하게 칭송한 것이다. 셋째 (3) 변치 않는 충심(忠心)과 지조를 드러냈다. 사경(四更)에 이르면 감정이 고조되어 시선이 가족을 넘어 임금과 나라로 향한다. 서늘하고 맑은 달빛을 보며 자신의 결백함(中心潔)을 다짐하고, 꿈속에서라도 영혼이 한양 도성(鳳城)으로 날아가 임금 곁을 비추고 싶다는 사대부로서의 변함없는 충군(忠君) 사상을 드러냈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황홀함 ⇨ 친근함 ⇨ 그리움 ⇨ 눈물과 충심 ⇨ 역사적 초월과 슬픔’으로 고조되는 감정선이 매우 정교하게 짜인 격조 높은 연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