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리(項里) 투장(偸葬) 사건을 다룬 1876년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②>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지면에는 1876년 「병자년(丙子年)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 2편을 소개하겠다. 19세기 조선말기 당시 항리(項里, 구조라) 주민들이 병자년(1876)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을 1차, 2차, 두 차례나 걸쳐 청원했다. 내용인즉, 인근 지세포 마을의 세력자가 항리 마을의 중요한 지점에 몰래 무단으로, 불법 묏자리를 써서 장사를 지낸 ‘투장(偸葬) 사건’을 다루었다. 항의를 하자 처음에는 가해자 정갑출(丁甲出)이가 이장(移葬)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기한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않자, 이에 동민 17명이 연명으로, 이장이 호소하는 소장 등장(等狀)을 보내어, 조치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관사(官司)에서는 주민들의 청원을 수락하여 이를 옮길 것을 명하고 있다.
그러나 불법 묘지 설치에 대한, 수령(使道主)의 제사(題辭, 관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정갑출이 명령을 무시하고 버티자, 항리 주민들이 다시 이행을 요청하는 2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을 제기하며 관의 직접적인 공권력 행사를 요청한다. 이는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개인에 맞서, 주민들이 정의를 구현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호소문이다. 이러한 「등장(等狀)」은 당시 작은 권력에 대해서도 무력(無力)한 어촌 항리(項里) 주민들의 곤고(困苦)한 생존 현장을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조선 후기에 들어, 조상이 세상을 떠난 후에 명당(明堂)을 찾아 묘소를 세우는 풍습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그런 가운데 거제도에서도 ‘항리(項里)’라는 동명(洞名)의 유래가 투장(偸葬) 사건과 관련하여 제기된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 2편의 자료를 통해 명확히 나타난다. 즉, “우리들이 태어나고 사는 땅의 근원이 되는 지맥(地脈)이 자세히 보면 사람의 목과 같아서, 마을 이름이 곧 항리(項里)다(矣徒等生居之地源脈 細若人項 故洞名卽項里也)”라고 하여, 이들 동민들이 사는 마을의 원맥(源脈)이 마치 사람의 목과 같이 생긴 가느다란 지형이어서 이로부터 동리 이름이 연원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게다가 마을 분들은 이곳 최요지에 묘소를 쓰게 되면 항리(項里) 마을에 병이 들게 되며 나아가서는 동리의 원기(元氣)를 탈취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믿었다.
● 1차 등장(等狀) 1876년 「병자년(丙子年)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
다음 1876년 11월, 1차 「병자년(丙子年)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은 투장(偸葬) 사건에 대한 항리(項里) 동민(洞民)들의 저항을 작성한 진정서인 등장(等狀)이다.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지세포진(知世浦鎭)의 이방(吏房) 정갑출(丁甲出)이 마을의 중요한 지점에 무단으로 묘를 쓴 데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관아의 처분을 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등장(等狀)은 마을 주민들이 지방 관청에 올린 공식적인 민원 서류로, 핵심 내용은 “마을의 생명줄과 같은 중요한 최요지 땅에 권세 있는 자가 몰래 묘를 썼으니, 약속대로 즉시 이장(移葬)하도록 관청에서 조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정갑출이 투장한 묘소의 굴이(掘移, 이장)를 요청하게 되었고, 이에 정갑출은 병자년(丙子年, 1876년) 11월 27일까지 이묘할 것을 약속하였지만 기간이 지남에도 세력을 믿고 힘없는 백성(殘民)들을 무시하면서 이를 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에 동민 17명이 연명으로, 이장이 호소하는 소장을 작성하여 관청에 접수하였다. 이 문건은 1876년 1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이었다. 따라서 관사(官司)에서는 주민들의 청원을 수락하여 이를 옮길 것을 명하고 있다.
1) **「병자년(丙子年) 1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
오른쪽에 삼가 소원하는 바의 조항을 아뢰옵니다. 우리들이 태어나고 사는 땅의 근원되는 지맥(地脈)이 자세히 보면 사람의 목과 같아서, 마을 이름이 곧 항리(項里)입니다. 그런데 이달 초파일 밤에 지세진(知世鎭)의 이방(吏房) 정갑출(丁甲出)이라는 자가 마을 원맥 중 가장 요긴한 땅에 나와서 몰래 장사를 지냈습니다. 이는 비유하자면 사람의 목을 병들게 하여 그 근본 원기를 빼앗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즉시 묘를 파내 옮기라고 책망하고 타일렀더니, 그들 말이 '이달 27일까지 묘를 옮기겠다'는 뜻을 담은 수표(手標, 약속 증서)를 작성하여 바쳤습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한이 지났는데도 옮기지 않는 것은, 저들이 그 권세를 믿고 의지하여 불쌍한 백성을 업신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이미 죽은 사람의 마른 뼈로 살아있는 백성들에게 재앙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에 저희 백성들은 즉시 그 수표(手標)에 따라 묘를 파내고자(掘移) 하오니, 다 함께 소리 높여 현명하신 사또(明政)께 우러러 호소합니다. "청컨대 이 뜻을 참작하시고 상의하시어 윤허하신 후, 즉시 묘를 파내 옮기도록 조치하시어 이 불쌍한 백성이 마을의 터전을 보존할 수 있도록 처분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부디 도주(道主, 지방장관)께서는 이 일에 대한 교시를 내려 처분하여 주시옵소서." 1876년 11월 동민(洞民) 17名 수결(手決).
[右謹陳所志事段 矣徒等生居之地源脈 細若人項 故洞名卽項里也 今月初八日夜知世鎭吏房丁甲出偸葬於村中源脈最要之地 此是病其項而元氣將奪者也 卽日內掘移次責喩則渠矣言內今二十七日移墓之意成手標納侤是乎置…. 到今過限不移者 彼憑恃其勢侮視殘民 然以旣亡之枯骨 作孽於方存 ○ 民乎卽欲從手標掘移之意 齊聲仰訴于明政之下爲白去乎 參商敎是後立旨成給卽爲掘移使此殘氓保存此村之地 處分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 使道主 處分 丙子十一月 日. 洞民 17名 (手決)]
[주1] 투장(偸葬) : 남의 산이나 묏자리에 몰래 장사를 지냄
[주2] 항리(項里) : 경남 거제시 일운면 구조라 마을 옛이름. 지형의 특징(목)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주3] 지세진(知世鎭) : 항리 마을 인근 지세포에 있었던 조선시대 수군진영.
[주4] 이방(吏房) :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육방(六房) 중 하나로, 호적, 세금, 토지 등을 담당하던 아전의 우두머리. 좌수와 더불어 향촌 최고의 실권자.
[주5] 수표(手標) : 오늘날의 각서나 합의서와 비슷한 개념으로, 약속 이행을 증명하는 문서다.
[주6] 명정(明政) : '밝은 정치', 또는 현명한 정관(政官, 사또)을 높여 부르는 말.
[주7] 입지(立旨) : 신청서 끝에 신청한 사실을 입증하는 뜻을 부기(附記)하는 관부(官府)의 증명
[주8] 도주(道主) :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최고 지방 장관을 말함.
◉ 이 항리(項里) 등장(等狀)은 17명의 마을 주민(矣徒等)이 연명하여 작성[사진 참고]했으며, 주민들의 피해를 호소하고 행정적 구제 조치를 요청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당시 어촌 지역에서 풍수지리(風水地理)적으로, 땅의 기운이 마을의 안녕과 주민들의 생존에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묘지가 '사람의 목(項)'에 비유되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들어섰다는 것은 마을 전체의 존립이 위협받는 심각한 문제로 간주되었다. 가해자 '지세진 이방 정갑출(丁甲出)'은 권세를 가진 지방 관아의 아전(衙前)으로, 자신의 지위를 믿고 법을 무시했다고 비판한다. 처음에는 이장에게 약속하고 '수표(手標)'라는 문서까지 작성했으나, 기한이 지나도 이행하지 않아 분쟁이 심화되었다. 결국 고을 수령에게 진정서인 등장(等狀)을 올려, 억울함을 호소하고 관아의 처분을 구하였다.
● 1876년 12월 「병자년(丙子)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 2차 등장(等狀)
다음 1876년 12월 「병자년(丙子) 2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은 앞서 소개한 1876년 11월 「병자년(丙子年) 1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과 같은 해에, 거제시 항리(項里) 마을의 주민들이 정갑출의 불법 투장(偸葬) 문제 때문에 올린 2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이다. 불법 묘지 설치에 대한, 이전 명령 불이행을 다시 고발하고 관의 직접적인 개입을 강력하게 촉구하였다.
○ 그러나 지난번 1차 등장(等狀)에 의해 이루어진 수령(使道主)의 제사(題辭, 관부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갑출(丁甲出)이 이행을 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동민들은 다시 이행을 요청하는 2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을 작성하여 제출하게 된다. 여기에서 지난번 1차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 때 제소 내용을 기초로 작성한 사도주(使道主, 고을 수령)의 제사(題辭, 관부의 판결)가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땅히 잡아들여 이굴(移掘, 이장)토록 할 것이지만 연유를 보아 특별히 용서하는 것이니 명령을 받는 즉시 이묘할 것이며, 이를 지키지 않아서 만약 다시 소송이 있은 즉, 날마다 엄형(嚴刑, 엄한 형벌)하며 굴이(掘移)하게 할 것이니 이를 양지(諒知, 살펴서 앎)하라는 내용의 제사(題辭)가 내려졌다.
따라서 이방 정갑출에게 잔약한 어촌 동민들이 사력(私力, 개인의 사사로운 힘)으로는 그를 실행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다시 갱소하면서 관(官)의 힘으로 어촌의 잔민(殘氓)들이 이 동리를 보존하여 갈 수 있도록 조처하여 달라고 호소하였다.
3) **2차 「병자년(丙子) 항리거민등장(項里居民等狀)」 내용**
삼가 소원하는 바의 조항을 아뢰옵니다. 무릇 극심한 아픔과 고통이 있을 때 부모를 부르는 것은 사람의 정(人之情)입니다. 이처럼 원통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기에 다시금 글을 올려 부모(사또를 비유)의 마음(父母之意)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저희 마을 안에 몰래 묘를 쓴 자는 '정갑출(丁甲出)'이라는 사람의 소행입니다. 앞서(이전에) 제출했던 청원서를 통해 이미 명백하게 심사하시고 판단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전의) 관청 회신(題音, 제음) 내용에 이렇게 하교하셨습니다.
[“이미 봉분을 완성하고 기한을 어겼으니, 이는 핑계를 대며 질질 끌려는 계책인가? 마땅히 죄인을 잡아들이고 파묘(破墓, 무덤을 파헤침)를 독촉해야 할 일이다. 우선 이번에 한하여 특별히 용서할 터이니, 이 회신이 도착하는 즉시 묘를 옮기도록 하라. 만약 다시금 소송에 이르게 한다면, 즉시 매일 엄한 형벌을 가하여 파묘를 기필코 집행할 것이다. 이 뜻을 잘 헤아려 처리하라.“]
이러한 하교가 있었기에, 저희가 그 회신을 받들어 정갑출에게 가서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본래부터 완고하고 오만하여 관청의 명령을 업신여기고, 묘를 옮길 뜻이 전혀 없으며, 실로 시간을 끌며 미루는 계책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들 사사로운 힘으로는 강제로 파묘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다시 소송을 제기하오니, 부디 헤아려 처분해 주시길 바랍니다. 바라건대, 관부에서 즉각적으로 나서서 강제 파묘를 집행해 주시어, 이 미약한 백성들이 마을의 터전을 보존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사또께서는 처분해 주시옵소서. 1876년 12월. 동민(洞民) 17名 서명.
[項里居民等狀. 右謹陳所志事段 夫疾痛之極必呼父母 人之情也 冤痛之地如是更呈亦呼父母之意也 矣等洞中偸葬者丁甲出之所爲 前呈所志已所明審是在果 題音內[旣成標違限則 因推而支過爲計耶 事當捉囚督掘是矣 姑觀來頭特恕 到題卽時移掘是矣 如至更訴則 斷當逐日嚴刑期於掘移矣 以此諒處事]敎是故 奉題音往喩則 彼素以頑慢之凌侮 官題萬無掘移之意 實因推而支過之計也 以矣等之私力難可掘移乙仍于 緣由更訴爲去乎 參商敎是後自官卽刻掘移使此殘氓保存此村之地 爲白只爲 行下向敎是事 使道主 處分 丙子十二月 日” 洞民 17名 (手決)]
[주1] 등장(等狀) : 여러 사람이 이름을 잇대어 써서 관청(官廳)에 올려 하소연함. 또는 그 일. 주민들의 공식 상소문(所志)이다.
[주2] 부모의 마음(父母之意) :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부모처럼 여긴다는 유교적 통치 이념을 반영하여 사또를 '부모'에 비유했다.
[주3] 제음(題音) : 관청에서 아랫사람의 소지나 장계에 대해 내리는 공식적인 회신이나 지시를 뜻한다.
[주4] 추이(推移) 및 지과(支過) : 핑계를 대며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추이(推移)는 일이나 형편(形便)이 차차 옮아 가거나 변(變)해 감이고 지과(支過)는 살림을 가까스로 지탱(支撐)하여 살아 감을 의미한다.
[주5] 잔맹(殘氓) : 자신들을 낮추어 부르는 겸손한 표현으로 '미약한(힘없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 이 문건은 조선시대 백성들이 지방관(사또)에게 억울함을 호소할 때 사용하던 전형적인 행정 소송 등장(等狀)으로, 오늘날의 민원 신청서나 고소장에 해당된다. 사실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묘지 관련 분쟁이 매우 흔했다. 이 문서에는 '정갑출'이라는 인물이 다른 사람의 땅이나 마을 공동 소유지에 무단으로 묘를 쓴 불법 투장(偸葬)이 문제다. 주민들이 1차 민원을 제기하여, 이장(移葬)을 명하는 '제음(題音, 관의 공식 답변, 명령)'을 내렸으나, 기한 내 이장을 하지 않았다. 정갑출이 명령을 무시하고 버티자, 주민들이 2차 등장(等狀)을 제기하며 관의 직접적인 공권력 행사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결국 법과 질서를 무시하는 개인에 맞서, 주민들이 정의를 구현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절박한 호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