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0] 장영창(張泳暢) - 하늘 길은 슬프다 4. ‘더 웨이 어브 더 월드’와 ‘통일세계’와 ‘주간종교’의 출간 - 2
11 그러다가 나는 또 하나의 출판 관계를 해결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은 1971년 7월 4일에 창간호를 내게 된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범종교 종합신문으로서 출간하게 되었던 주간종교(週刊宗敎)의 초대 편집국장의 책임을 내가 맡게 된 일이었다.
12 당시 우리들은 공무국(公務局)을 수택리(水沢里)의 통일산업(統一産業)에 속하는 건물의 일부분에 설치하는 동시에, 사무실을 종로 5가에 있는 기독교회관의 2층에 두게 되었다.
13 나중에야 알게 된 일이지만, 기독교회관 측에서는 주간종교라는 신문이 통일교회에 의해서 발간된다고 하는 사실을 모르고 방을 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신문이 통일교회에서 발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미안하지만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달라는 이야기였다.
14 우리는 즉시로 그 간청을 받아들일 수가 사실상 없었다. 그래서 상호 간에 옥신각신하는 상태가 계속되어 나갔다. 심지어는 우리가 발간하는 신문을 기독교회관 안에 가지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현관에서 발이 묶이는 일이 있기도 했다.
15 이와 같은 일을 참아 나가기에는, 무한한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만이 아니었다. 우리 신문의 기자들이 기독교계를 취재하는 데에 있어서도 모든 교회에서나 기독교에 속하는 단체들이 취재를 거부하는 일이 일쑤였다.
16 이러한 면에 있어서도, 우리들은 극도로 흥분하는 것이 일쑤였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고 이를 악물고 참아야만 했다. 한번은 다음과 같은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당시 주간종교는 매주 16면의 타블로이드판으로 발간되고 있었다.
17 그리고 나는 매주 꼭 한 번씩 각 종교지도자들을 초빙하여, 종교 문제에 대한 좌담회를 열고, 그 내용을 2페이지에 걸쳐 수록했다. 그런데 한번은 기독교계에서 유명한 한 목사가 그 좌담회에 참석을 했다. 그리고 그 좌담회의 기사가 막 인쇄될 무렵 그 목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18 전화를 한 이유는 자기는 주간종교라고 하는 신문이 통일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인지 모르고 좌담회에 참석을 했던 것인데, 그 뒤에 알고 보니 그것이 통일교회에서 발간하는 신문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자기가 좌담회에 참석해서 한 이야기만은 빼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 수가 없다고 즉석에서 대답을 했다.
19 그러나 그 목사님은 꼭 그 기사를 삭제해 주어야만, 자기의 교단에서 추방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계속 간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크게 놀라는 동시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 그리고 내 편에서도 그 신문이 지금 인쇄에 부치게 되었으니, 신문사의 사정도 좀 이해해 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러나 목사님은 추호도 자기의 주장을 양보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는 젊은 청년을 2, 3명 데리고 와서 함께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