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 매트릭스 ⑦_165_요한계시록 2장 12~17절 – 당시 존재했던 초대교회인 버가모 교회의 배경/역사/의미(AD 2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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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매트릭스 ⑦: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역사와 과학으로 해석
파트 2.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2:12~17 –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 믿음/순교의 교회, 그러나 우상숭배 위기에 처한 교회(To the Church in Pergamum, Faith/Martyrdom, but the Church in Crisis of Idolatry)
요한계시록 2:12~17 – 당시 존재했던 초대교회인 버가모 교회의 배경/역사/의미(The background, history and meaning of the church in Pergamum that existed at AD 27~100)
○ 버가모(Pergamum)라는 이름의 뜻은 '성채(citadel), 견고한 요새(strong fortress), 높은 성, 높여졌다(exalted)'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버가모의 현재 이름은 베르가마(Bergama)이다. 버가모는 해발 3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의 도시(ancient Greek city)로, 제정 로마제국(BC 27~AD 394) 지배 중 아시아 전체를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된 총독부(Government-General)가 있을 만큼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요, 20만 권의 장서를 가진 대규모 도서관이 있는 문화의 도시였다.
○ 로마 황제 - 어느 황제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음, 그러나 ChatGPT, Bing, Bard에게 물으니 답이 제각각 임, 티베리우스/디베료 황제(Tiberius Julius, AD 15~37), 클라우디우스(Claudius, 41~54), 트라야누스(Trajan, 98~117), 마르쿠스(Marcus Aurelius, 161~180), 카라칼라(Caracalla, 211~217) 등 답이 다 틀림) - 는 총독에게 자신의 검인 글라비(glaive or glave 혹은 라틴어 gladius)를 하사했다. 이 글라비의 검은 외날 검(the single-edged sword)이었다. 황제의 외날 검에는 언제든지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사형 집행권이 주어져 있었다.
○ 그러므로 그 검을 가지고 있는 총독은 언제든지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버가모는 소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형 집행권을 가진 도시로 유명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형 집행권이 있는 총독의 검을 두려워했다.
○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총독의 외날 검과는(the single-edged sword) 비교가 되지 않는 “좌우에 날선 검(the sharp double-edged sword)”(요한계시록 1:16, 2:12) 즉 쌍검을 갖고 계신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심을(마태복음 28:18, 요한복음 5:22, 5:27, 9:39)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권세자나 통치자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까지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를 의미하는 것이다.
○ 이곳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Zeus) 신의 탄생지라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높이 12m나 되는 장대한 제우스 신전(Temple of Zeus)을 비롯하여, 이교의 신전이 많이 있었으며, 로마제국의 '황제 예배 신전(Emperor Worship Temple)'이 세워져, 기독교에 있어서는 초대교회 때부터 싸움의 도시였다. 그래서 사단의 위/보좌(Satan has his throne)가 있는 곳이다(요한계시록 2:13).
○ 버가모 교회의 건물은 다른 신전들이 높은 곳에 지어진 데 반해 낮은 곳에 위치한 하천 위에 지어졌다. 실제 교회가 있던 곳의 지하에 가면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 건물은 AD 300년경에 기독교인의 교회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1453년 이후에는 폐허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