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순서]
64장(기뻐하며 경배하세)으로 삼위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사도신경]으로 한국교회와 함께 신앙을 고백 하겠습니다.
357장(주 믿는 사람 일어나) 찬양하시며 ‘로고스(말씀)’로 오신 주님께 나아갑시다.
[공동체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믿음 없고 패역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내던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존재도 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는 저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오직, 여호와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
하루 2천원으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이 ‘코로나19’이후 1억 명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2천명(전체 98% 자본을 독점한)의 억만장자들의 재산은 27.5%나 급격히 증가했다고 합니다(세계은행). 이 땅에서 절대 빈곤층으로 살아가는 7억 명이 넘는 당신의 백성들을 기억해 주시고, 굶주리는 절반의 인류가 일용할 양식으로 흡족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도 경제정의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가진 소유를 나눌 수 있게 하소서.
우리 아빠들도 얼마나 땀 흘리고 노력하는지 모릅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주셔서 소중한 가족을 지키고 자신들 앞에 있는 산(山)같은 장애를 옮길 수 있도록, 꼭 해야 하지만 못하고 있는 일들을 다 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경제인들이 노동의 결실을 충분히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소중한 존재가 세상에서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주 앞에 무릎 꿇고 엎드리는 심정으로 기도하여 이 소중한 것들을 지켜나갈 수 있게 하소서.
11월 7일에는 사랑하는 은혜자매의 1차 임용시험일입니다. 그동안 준비한 것이 극대화되는 날이 되게 하사, 원하는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목매지 않고 하루하루를 하나님나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기적 같은 집중력과 건강을 주셔서 잘 감당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을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 갈 수 없다고 솔직히 고백합니다. ‘디테일러 명(明)’이라는 사업장을 기억하시고, 당신의 은혜가 가을볕처럼 내리는 복된 성소가 되게 하소서.
오늘도 간질병을 앓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심정으로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말씀하시고 고치소서. 주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 보시겠습니다.
201011
믿음으로 산을 옮깁시다(마17:14-20)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14)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15)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17)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18)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19)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
예수님과 제자들은 높은 산(변화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리들에게 가셨고, 그 가운데 간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쳐 달라고 제자들에게 갔으나 소용이 없자, 예수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청합니다.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한탄하시며 귀신을 꾸짖자 귀신은 나가고, 그때부터 아이는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께 여쭙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께서는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대답하시고,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고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0).
소중한 사람이 불의 위협과 물의 위험에 빠져있습니다(15).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의 아들은 간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져 만신창이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죠. 아버지는 이 아들을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16)”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을 예수께 걸고 그 앞에 꿇어 엎드려 간청합니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묘합니다. 병을 고쳐주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꾸짖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18). 그러자 신기하게 이 아이에게서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그때부터 건강해졌습니다.
아버지에게 자녀만큼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도 누군가의 자녀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옆에 있는 배우자와 자녀도, 교회도.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중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물의 위험과 불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늘 베풀기만 하는 자연은 차치하더라도 우리의 교회가, 내 자녀와 배우자가 물불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위하여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14)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꿇어 엎드려 기도해야 물불의 위험에서 우리의 소중한 사람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꿇어 엎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그러면, 우리의 소중한 사람들이 어떻게 물불의 위험에 노출되었을까요? 본문에 나오는 이 아이는 간질 때문에 이런 위험에 노출되었고, 간질은 “귀신” 때문이라고 마태복음은 말합니다. 간질병을 고쳐 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예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귀신”을 꾸짖으십니다. 즉, 우리의 소중한 사람을 물불의 위험에 빠뜨린 것은 다름 아닌 “귀신”(어둠의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탐욕에 사로잡혀, 광신적 신념에 사로잡혀, 성공에만 눈이 멀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빛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잃고 어둠에 종노릇하게 된 근본 원인은 “귀신”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표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위험과 위협에 불나방처럼 달려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숭배’입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기 위해 자신의 자녀까지 희생시킵니다(몰렉 혹은 몰록, 레20:4). 자녀를 몰렉에게 바칠 뿐만 아니라 자연을 물불의 위험에 빠지게도 합니다.
이런 우리를 예수께서는 꾸짖고 계십니다(18).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겸손한 사람들이라면 그 꾸짖음을 듣고 가던 길을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회개하면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어둠의 세력들은 쫓겨 가고, 우리는 자유롭게 될 것이며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존재(사람에서 자연까지)가 물불의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우상숭배’ 탓입니다. 결국은 우리 잘못이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우리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위험으로 뛰어 드는 우리를 꾸짖고 계십니다.
회개하고 돌이킵시다. 그러면 우리자신뿐 아니라 고통당하던 우리의 소중한 존재들도 회복되어 강건해 질 것입니다.
이 세대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입니다(17). 여기서 패역한 세대를 “삐뚤어진 세대”라고 새번역과 공동번역에서는 번역합니다.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부성(父性) 앞에서, 제자들에게 데려 왔지만 능치 고치지 못하였다고 말하는 실망하던 아버지 앞에서 예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한탄하십니다. 즉, 믿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있는 믿음도 삐뚤어져 있다는 말이죠.
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왜,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까요?(제자들의 질문, 19절)
먼저, 삐뚤어진 믿음(패역한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인류역사에는 늘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고대에도 그랬고 포스트모던시대에도 그렇습니다. 겉모습만 달리 할 뿐이죠.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아버지께 직접 대면하여 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중개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자들도 건강한 믿음으로 귀신을 꾸짖었다면 귀신은 쫓겨났을 것이고 아이도 건강해 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도, 제자들도 삐뚤어진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고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삐뚤어진 믿음의 예를 한 가지만 더 들자면 로마제국으로부터 식민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다윗의 왕국을 이 땅에 회복할 예수님, 다윗왕국의 영광을 정치적으로 회복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그것입니다.
이제 믿음 없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도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믿음이 있더라도 믿음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이죠(20).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큼의 믿음이 있었더라도 귀신을 쫓아 낼 수 있었고 아이는 건강해 질 수 있었습니다. 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믿음도 제자들에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을 옮길 수 있고, 꼭 해야 하는데 못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를 이 믿음으로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삐뚤어져 있고, 있더라도 “겨자씨 한 알”보다 작습니다(20). 그러니 우상숭배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 결과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존재도 물불의 위험에 노출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삐뚤어진 믿음을 버리고 건강하고 참된 믿음을 “겨자씨 한 알”만큼만 갖게 된다면 물질만능주의에서, 탐욕에서, 광신적 신념에서, 세속적 성공에서 자유롭게 되어 더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보다도 더 작기 때문에 우리 앞에 있는 장애를 극복할 수 없고 무기력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믿음을 가집시다. 돈이 없어도 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탐욕을 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 주실 것입니다. 광신적인 신념을 버려야 우리에게 참 믿음이 생깁니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달라고, 그래서 우리 앞에 있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을 참되게 섬길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엎드려 간청합시다. 그때 우리의 소중한 존재들은 어둠의 세력(귀신)에서 놓여 강건해 질 것입니다.
397장(주 사랑 안에 살면) 찬양하시겠습니다.
[주님의 기도]로 공예배를 마치겠습니다.
첫댓글 요약; 지금 우리의 소중한 존재와 일상이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의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겨자씨 한알 만큼만 믿음을 가집시다, 그러면 우리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것을 구할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생각해 봅시다]
1.우상숭배는?
회개란?
2.우리에게는 얼마만한 믿음이 필요한 걸까요?
☆아직도 다른 희망이 있습니까?
제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무릎꿇고 엎드립니다.
1.물질만능주의. 탐욕.광신적신념,성공을 추구함으로써 진정한인간성을 상실하는 것,
회개란 말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서 바른길로 가려고 하는것
2.겨자씨만한 믿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이번시험에 합격할수 있다.
시험에 불합격하더라도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행복한 일터가 있을 것이다.
노산이 될지라도 안전하게 출산할수있고 돈이없어도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행복한 가정을 만들수있다는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이은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