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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좋기에 퍼와 게시하오니 주식업무에 참고하세요.
좋은 주식은 비쌀 수밖에 없지요. ‘우량주’이기 때문이지요. 주식 투자를 잘한다는 건 이런 비싼 우량주를 사서 산 가격보다 더 비싸게 팔 줄 안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11년간 주식 투자를 하며 터득한 것이 오르는 주식, 비싼 주식이 더 오르고, 더 비싸질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거지요. 주식이란 놈은 원래 ‘가는 놈이 더 가는 법’입니다. 비싸더라도 ‘대형 우량주’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대형 우량주 투자 귀재’라 불리는 박진섭(43) 모빅투자자문 대표의 얘기다.
한국 주식시장(코스피, 코스닥)에 상장된 2000여개의 종목 중 10%에 불과한 상위 200여개의 종목을 통상 ‘대형 우량주’라 부른다.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기업들인 이 대형 우량주들은 자본금 규모가 크고, 시장 비중이 높아 이른바 ‘무거운 주식’으로 불린다. 이런 이유로 좀처럼 큰 변동성을 띠지 않는다. 이런 작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년간 대형 우량주 투자만으로 꾸준히 30~40%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는 이가 박진섭 대표다.
투자의 기준은 시가총액 5000억원
박 대표는 “투자는 쉽고, 마음 편히 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유난히 강조한다. 그는 대형 우량주 투자에 있어서만큼은 제도권의 운용 매니저들은 물론이고 쟁쟁한 재야 고수들 사이에서도 첫손가락에 꼽히는 주식 투자의 고수다.
박 대표는 기존 주식판 재야고수들과는 다른 독특한 면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일단 그는 주식 투자 실력도 실력이지만 ‘여수고래’ ‘압구정 교주’ ‘부자 아빠’ ‘무극 선생’ 등 기발하고 별난 별명이나 필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재야고수의 상징처럼 굳어진 별명이나 필명 대신 ‘박진섭’이란 본명으로 활동하면서도 주식판의 실력자로 불리는 것이다.
교보증권의 박병창씨(광화문 지점장)와 더불어 재야와 제도권으로 구분된 투자무대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박진섭씨는 개미투자자로 수익률 대회를 휩쓸며 이름을 날리다 증권사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제도권 투자 세계로 뛰어들기도 했고, 이후 증권사에 안착하며 제도권의 스타로 부상할 때쯤 이번엔 증권사를 뛰쳐나와 재야 주식판으로 다시 돌아오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제도권과 재야를 반쯤 섞어 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새의 투자자문사를 차렸다. 말 그대로 수시로 재야와 제도권을 넘나드는 독특한 주식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피(血)가 재야”라고 말하는 박진섭 대표를 만나 재야와 제도권을 넘나든 그의 주식인생과 투자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 대표의 주식 투자 철학은 코스닥과 중소형 종목은 절대 거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시가총액 최소 5000억원 이상의 코스피 주식에만 투자한다. 코스피에서도 시가총액 5000억원 미만 기업의 주식은 쳐다볼 필요도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우량함’의 훌륭한 척도 중 하나가 현재 기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시가총액이라고 했다.
“시가총액 5000억원을 넘는 상장기업이 약 140여개입니다. 우량주로 구분되는 ‘코스피 200’에 포함된 기업보다도 60여개가 적은 수이지요. 여기에 ‘수급’이라는 또 다른 분석조건을 넣어 20여개 종목을 더 뺀 120여개 종목, 그러니까 코스피200에서도 상위 60%의 종목이 제 투자 가능 주식인 셈입니다.”
이 120여개 종목에 대한 투자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박 대표는 ‘맥(脈)지지선 매매’라고 이름 붙인 자신만의 매매 방식을 말했다.
“주가의 맥을 찾는 겁니다. 이때 맥이라는 건 주가의 추가 상승에 고비가 되는 ‘저항선’과 주가 하락의 낙폭을 막아 바닥임을 확인시켜주는 ‘지지선’을 찾는 것을 의미하지요. 몇 가지 기술적 분석을 통해 저항선과 지지선을 확인하고, 주가가 바로 그 시점에 근접한 순간 매수하거나 매도하는 것이 맥지지선 매매입니다.”
박 대표가 말하는 ‘맥지지선 매매’에 필요한 ‘저항선’과 ‘지지선’의 설정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세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는 이를 ‘3단계 투자법’이라고 했다.
“첫 단계가 120개 종목의 펀더멘털 분석입니다. 재무제표, 산업의 시장전망과 성장성 파악, 경쟁사와의 비교 등 일종의 기본적 분석이지요. 그리고 두 번째가 ‘수급’ 분석입니다. 아무리 좋은 종목이라도 팔고 싶을 때 쉽게 팔 수 있고, 사고 싶을 때 쉽게 살 수 있어야 마음 편한 투자를 할 수 있으니까요.”
3단계 투자법과 맥(脈)지지선 매매
그는 이 두 단계를 거치며 매매 종목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단계가 바로 ‘맥지지선 매매’의 핵심인 저항선과 지지선, 즉 ‘맥’을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이동평균선(특정 기간의 주가(종가), 거래량, 거래대금의 수치를 특정 기간의 일수로 나눈 평균값을 연결한 선)’ ‘볼린저 밴드(일정 기간 주가의 상한점과 하한점을 설정해 그 상·하한점 사이에서 주가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도록 설정한 일종의 주가변동폭)’ ‘직전 고점과 직전 저점’ ‘특정 시점의 거래량 변화’ 등 대여섯 가지 기술적 지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얻어낸 값으로 저항선과 지지선을 찾아냅니다. 일종의 기술적 분석인 셈이지요. 저항선과 지지선을 찾아내면 매수 대상 종목의 과거 주가흐름에 저항선과 지지선을 대입합니다. 이를 통해 가장 적절한 매입, 매도 시점을 찾아내는 거지요.”
하지만 평범한 개인투자자들이 박진섭식 ‘3단계 투자법과 맥지지선 매매’를 이용해 종목을 분석하거나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에 박 대표는 “주식 투자의 분석 툴(tool)을 잘 모르는 개인투자자라 할지라도 어렵지 않게 우량주에 투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5000억원 이상의 대형 우량주를 비주도주와 주도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비주도주의 경우 현 주가에서 상·하로 10%를 저항선과 지지선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시장을 이끄는 주도주의 경우 조정다운 조정을 만나기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해 비주도주보다는 보수적인, 현 주가에서 5%의 상·하 폭이 되는 지점을 저항선과 지지선으로 설정합니다. 저항선과 지지선을 정했다면 일정 기간을 두고 해당 종목의 주가를 관찰합니다. 이 기간 동안 설정한 저항선과 지지선이 무너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주가가 다시 저항선과 지지선에 도달했을 때 매입 혹은 매도를 하는 것이지요.”
그는 “대형 우량종목의 경우 변동폭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매입과 매도 시점만 잡을 수 있어도 충분히 안정적인 수익률을 쌓아갈 수 있다”고 했다.
변동성이 작은 대형 우량주를 고집스럽게 매매해오면서도 생존확률이 채 1%가 안 된다는 주식판 고수로 살아남은 박 대표의 주식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박 대표가 주식과 처음 연을 맺은 때는 1995년이었다. 서울 강남의 주택은행(현 국민은행) 언주로 지점에서 여의도 본점으로 발령을 받으며 증권사란 곳을 처음 가보게 됐다고 한다.
박 대표는 “여의도 증권타운의 다이내믹한 분위기와 함께 여의도에서 근무하던 군대 고참의 영향이 컸다”고 했다.
“여의도 본점으로 옮겨 오면서 지금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는 군대 고참을 다시 만났어요. 공교롭게도 그 고참이 주택은행과 5분 거리에 있던 여의도 신영증권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분하고 점심도 자주 먹고, 근무하던 증권사에 자주 놀러 가면서 ‘아 주식이란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는 군대 고참을 만나러 드나들던 증권사에서 은행과는 다른 주식판의 다이내믹함에 끌렸다고 한다. 그 매력에 가진 돈 2000만원으로 난생처음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다.
“그때는 뭐 주식을 알고 산 게 아니었지요. 막연히 ‘이거 사면 돈 많이 벌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분할매수나 포트폴리오 같은 분산투자란 게 있는지조차 전혀 모르던 때였죠. 제 기억에 그때가 ‘세계경영’ ‘탱크주의’ ‘김우중’으로 대표되던 대우의 전성기였습니다. 증권사 창구 직원이 좋은 회사라고 추천해 줬고, 그 말을 듣고 나름 분석이란 걸 한답시고 신문에 난 대우 관련 기사들 몇 개 읽은 다음 ㈜대우 주식 2000만원어치를 단 한 번에 사버렸습니다. 이것이 첫 주식 투자였어요.”
2000년 전업투자 1년차, 깡통을 차다
그는 “전형적인 묻지마 몰빵 투자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투자의 결말은 비극이었다.
“주가가 점점 내리더니 어느 순간 폭락해 있더군요. 그대로 두면 ‘깡통이 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어요. 그래서 다 팔았지요. 우량주였는데…. 그냥 편하게 뒀으면 얼마 후에 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는데 그땐 그런 걸 몰랐어요. 그렇게 몇백만원을 손해 보고 ㈜대우 주식을 판 후에 이를 만회하겠다고 또 다른 주식을 ㈜대우 때처럼 한 번에 몰빵으로 샀습니다. 이 역시 과정과 결말이 ㈜대우와 똑같았어요. 이후 샀던 몇몇 주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딱 1년 만에 2000만원을 모두 날리면서 제 첫 주식 투자는 비극으로 끝이 난 거지요.”
그리고 5년 후인 2000년, 박 대표는 느닷없이 잘 다니던 은행을 뛰쳐나와 전업투자자로 나선다.
“은행원 6년차 때였어요. 국책은행이던 주택은행의 특성상 직원들이 준공무원 대우를 받았습니다. 웬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중간에 회사를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을 만큼 안정적인 직장이었지요. 안정성 때문인지 마흔 가까이가 돼야 대리가 될 만큼 인사적체가 심했어요. 전문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곳도 아니었지요. 미래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인생의 승부를 걸 만한 곳은 아니란 생각에 사표를 낸 겁니다. 이때 인생의 승부처로 떠오른 게 주식 투자였습니다.”
서른둘,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어정쩡한 나이에 박진섭씨는 은행이란 든든한 직장을 떠나 수박 겉 핥기 식의 주식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주식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3억원으로 시작했는데 계속 잃기만 했어요. 당시가 회사 이름에 ‘디지털’ ‘닷컴’만 붙으면 수십, 수백 %의 수익을 내던 IT버블의 절정기였지요. 근데 저는 겁이 많아서 그런 주식은 손도 못 댔어요. 나름 저평가된 큰 회사를 산다고 했던 게 하이닉스, 현대상선 이런 거였는데, 당시 이런 회사들의 상황이 사실 더 좋지 않았지요. 손실이 이어지면서 급한 마음에 하루에도 10% 정도 쉽게 오르내리던 600~700원짜리 주식에까지 손을 댔습니다. 마구잡이 투자를 한 거지요.”
그는 당시 빨리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생각에 하루에 수십, 수백 번 초단타 거래를 하는 스캘핑(scalping)까지 했었다고 한다.
“전업투자 채 1년이 안 되는 2000년 말쯤 종잣돈 3억원을 모두 까먹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깡통을 찬 거지요.”
박 대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했다.
“빚을 내거나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투자를 하진 않았습니다. 다행이었지요. 잠시 투자를 접고 ‘왜 안 되는 걸까’를 고민했습니다. 주식 투자는 물론이고 기업과 산업 분석 관련 책들을 다시 꺼내 보며 차근차근 되짚어 갔습니다. 이렇게 공부하는 과정에서 제 몸에 맞는 ‘3단계 투자법’과 ‘맥지지선 매매’의 기초가 만들어진 거지요.”
2001년 박 대표는 스스로가 고안한 ‘3단계 투자법’과 ‘맥지지선 매매’를 들고 다시 투자에 나섰다. 그리고 이 투자법으로 발굴한 현대자동차 투자로 첫 대박을 맛보게 된다.
“2000년에 1만원대이던 주가가 2001년에 2만원대로 이미 100% 상승한 주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나름의 분석으로는 ‘폭등은 했지만 충분히 더 갈 수 있는 종목’이란 결론을 얻었습니다. 주가가 오르는 와중에서도 가격이 정체되거나 조금씩 떨어지는 조정시점의 지지선을 찾는 데 온 정신을 쏟았지요. 찾아낸 지지선으로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기계적으로 현대자동차 주식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현대자동차에 투자한 돈이 2억원을 넘었습니다. 분석이 틀리지 않았는지 600%의 수익을 안겨주더군요.”
실전투자대회 수익률 1202%
현대자동차 주식은 박진섭에게 처음으로 목돈을 만들어 줬고, 투자에 자신감도 심어 주었다. 주식 투자에 전환점이 된 것이다.
그런 그가 2005년 각 증권사들의 실전투자대회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2004년의 누적수익률을 보게 됐어요. 약 500% 정도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 이거 한번 나가봐’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투자법을 검증받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나간 주식인생의 첫 실전투자대회였던 대우증권 대회에서 그는 3위에 올랐다. 바로 이어 열린 한화증권 코리아스톡챌린지대회에서는 대회기간 3달 동안 무려 1202%의 수익률을 올리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몇 달 후 삼성증권 대회에서도 2위에 오르며, 단 세 번 나간 대회에서 1, 2, 3위에 입상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철저히 무명이던 그가 주식판의 스타가 된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봤던 동양종합증권에서 그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며 이번엔 제도권으로 뛰어들었다.
“자유롭게 투자하다가 투자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제도권으로 간다는 데 대해 고민했었죠. 그런데 커가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뭘 하는 사람인지 정도는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업투자로는 그 모습을 보여주기도 설명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증권사로 간 것입니다.”
이후 몇 번의 스카우트를 거쳐 메리츠증권과 동부증권에 몸담으면서도 그는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 증권사 소속의 제도권 고수들이 참가하는 ‘스타워즈’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재야에서 터득한 실력을 제도권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2010년 10월, 증권사에 사표를 내고 다시 재야로 돌아왔다. 전업투자를 시작한 순간부터 꿈꾸던 투자자문사를 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얼마 전 꿈꾸던 투자자문사를 열었다. 재야와 제도권의 피가 반쯤 섞인 박진섭의 모습으로 다시 주식판에 돌아온 것이다.
현재 박 대표는 약 300억원의 자산을 자문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돈은 모두 고객의 돈이다. 자문사 설립 이후 개인 계좌로는 주식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투자자에게 투자자문을 해줘야 하는 입장에서 개인 계좌를 운영할 경우 혹시 모를 도덕적 시비에 휩쓸릴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박 대표는 “최소 올 연말까지는 시장 상승세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현재 시장을 이끌고 있는 5대 업종, 즉 자동차, 정유, 화학, 조선, 철강의 상승세가 유효합니다. 일본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한국 산업의 중추인 이 5대 업종의 상승 추세를 더 강하게 이어줬습니다. 다섯 개 업종 모두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던 산업입니다. 이들 업종이 만들어내는 제품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의혹과 두려움이 가시지 않는 한 일본과 세계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한국 기업의 선전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선전한다는 건 결국 이들이 속한 한국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유효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점상’과 ‘대박’은 환상
박 대표는 이 5대 업종 중에서도 화학 업종은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금융위기 이전 한국 시장을 이끌던 업종이 반도체와 LED, LCD 등의 IT 업종이었지요. 당시 이들 업종의 기업들은 당장의 실적보다 미래 성장 프리미엄에 수혜를 입으며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이 성장 프리미엄이 지금은 화학 업종으로 옮겨 왔어요. 금융위기를 전후해 LG화학의 2차전지, OCI와 한화케미컬의 태양광산업 등 한국의 대표적 화학기업들이 굴뚝산업의 이미지를 벗고 변신하고 있습니다. 미래 성장동력을 하나씩 움켜잡으며 예전 IT산업이 그랬듯 성장 프리미엄을 한껏 받고 있는 거지요.”
그는 화학주와 더불어 자동차부품 업종의 성장세가 두드러질 것이란 예측도 내비쳤다. 그리곤 “장기투자라면 화학 업종, 6개월에서 1년 이내 투자라면 자동차 업종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이렇게 좋은 장에서도 늘 잃기만 하는 개인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마지막으로 개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코스닥 투자로 한 번에 10%, 15%를 먹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점상’과 ‘대박’은 환상입니다. 코스닥에 투자해 대여섯 번 상한가를 맛본 사람보다 5~6년 동안 매달 2~3%의 꾸준한 수익을 낸 사람이 주식시장에서는 살아남는 법입니다. 지금이라도 속는 셈 치시고 3~4년 우량주에 투자해 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