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까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한국인의 여성상은 신사임당과
육영수 여사로 대표된다.
육영수 여사가 역대 여느 영부인들보다 국민들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데에는 아무리 가난하고 천한 직업을 가진 이들
이라도 차별하지 않았던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실천 때문일
것이다.
1939. 1. 1. 배화여고시절 육영수(오른쪽에서 두번째).
배화여고 시절 고 육영수 여사님.
광부들과 함께한 고 육영수 여사님.
불우 아동들과 함께.....
장병들을 위로하시는 고 육영수 여사님.
나환자촌을 방문한 고 육영수 여사님.
교도소를 방문하신 고 육영수 여사님.
가난하고 병든사람,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소외된 사람들
편에서서 진심으로 그들을 도우려 애쓰셨던 고 육영수 여사님.
한국인의 대표 여성상인 고 육영수 여사님.
아들을 월남전에 보내고 홀로 지내는 파월장병 가족을
찾아 위문품을 전달하며 위로하시는 육영수 여사.
나환자촌을 방문한 여사는 뭉그러진 환자의 손을 거리낌없이
감싸 잡았을때 환자촌은 그만 감격의 울음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이날 청와대로 돌아왔을때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고귀한것이라도
만지듯 영부인의 손을 꼭 감싸 주셨다.
여사님은 이렇게 전국 나환자촌을 골고루 방문하시고, 그들의
자활사업을 지원 하셨다.
1938년 4월, 당시 서울로 유학을 온 육영수는 배화여고에
입학을 하였으나,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하여 수예와 재봉질에
관심이 많은 학생 이었다.
지만군과 함께....
식목일날. 자녀들과 함께 묘목을 심고있다.
육영수여사의 사랑과 봉사의 정신은 남달라, 항상
헌혈운동에 앞장 서시곤 하셨다.
노인들을 공경하고 위로하는 일에 여사님은 언제나 앞장서
주셨다. 항상 "많이 잡수세요.", "많이 드시고 건강하세요."
이런 정겨운 말한마디가 노인들을 얼마나 감동케 했을까.....
소매를 걷어 올리고 평범한 가정주부와 마찬가지로 노인들의
시중을 드는 여사의 서민적인 인간미.................
노인들을 위하여 경로잔치를 열고, 음식을 대접하는 육여사님.
양지회가 마련한 수재민돕기 행사에 초청인사로 참석한
박대통령이 입구에서 육여사와 다정히 악수를 하고있다.
1950년 12. 12. 박정희-육영수 결혼사진.
학창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앞줄 가운데).
강릉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찍은 군복차림의 육영수 여사님.
서독 방문중 환영식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육영수 여사님.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호남쪽에 방금 비가 내렸대요." 육여사님이 대통령에게
귓속말로 오랜 가뭄에 시달리는 호남지방의 단비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당동 난민촌 방문(1967년 4월 13일.)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연설을 마친 대통령에게 육여사님이
한 농부의 진정서를 전해주고 있다(1966. 9. 30.)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고, 불우한 처지를 서러워해 주신분,
인정의 샘물이 언제나 가득차 있었기에 국민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이고, 고아원, 시장, 불우가정 등
서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나타나 그들의 생활을 살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던 분...........
아!... 세월을 돌이킬수만 있다면 다시한번 그분을
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