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
이정하*
일곱 살 되던 해 겨울,
눈보라치는 들판을 건너가기 위해
아버지는 처음 내게 등을 내주셨다
심한 고열로 밤을 꼬박 새웠던 나는
아버지 넓은 등판에 뺨을 댄 채 잠이 들었고
읍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내 병은 말끔히 나아 있었다
객지에 계신 아버지가 집에 오는 것은
일 년에 어쩌다 한두 번
그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고 싶어 하셨고
나는 그때마다 부리나케 도망쳐
혼자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곤 했다
막노동 탓에 표시나게 굽어 있는 등을
세월이 한참 흘러
아버지와 함께 간 동네 목욕탕
그때도 나는
늙고 말라빠진 아버지의 몸을 외면했다
야야, 쓸데없는 돈 말라꼬 써
등만 밀어주면 되는데
세신사에 이끌려가며 힘없이 남긴
아버지의 말씀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세월이 더 흐르고 흘러
아들과 함께 간 동네 목욕탕
자식새끼의 등을 때수건으로 벌겋게 밀며
나는 소리 없이 눈물 흘렸다
샤워기 세차게 틀어놓고 목 놓아 울었다
어릴 적 그 따스했던 아버지의 등
이제는 밀어드릴 수도 없는 아버지의
그 굽은 등이 간절히 생각나서
*62.대구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87.경남신문 신춘 등단
"마치 사랑을 위해 태어난 듯, 사랑에 대해서 한이 맺힌 듯,
이정하의 테마는 '사랑'에 편중되었고,
동료 작가의 표현처럼 사랑에 대한 감성 또한 천부적이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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