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다대포 해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8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조각상의 모습이 아주 신기하고 초 현실적이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보면 완전히 여자인데 반대편에서 보면 남자 같기도 하고 옆에서 보면 반쪽인데 다시 돌아가서 보면 온전한 조각상이다. 그리고 신기하게 앞에서 봐도 뒷모습이고 뒤에서 봐도 뒷모습이다.
낙조가 환상적인 다대포 해변에서 넘어가는 일몰을 즐기는 침묵의 거인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그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지난해 여름 리움 미술관에서 미술계의 거장 김범 작가의 개인전이 있었다. 우리가 평소에 보는 사물들을 회화해서 전혀 다른 소재를 만들에 낸 기발한 작품전이었다. 누가 봐도 라디오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라디오가 아니라 다리미였고, 주전자처럼 생겼는데 그게 오히려 라디오였다. 또 산을 그린 것으로 생각했는데, 산이 아니라 열쇠의 날을 그린 것이었다.
그날의 전시회 제목은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였다. 그랬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내 생각과 경험에 의해 굳어지고 고정되어버린 소위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때론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어리석게 한다. 늘 하던 대로, 늘 가던 길만 가다가 한 번도 새로운 세상을 만나지 못하고 고정관념과 편견에 벽에 갇혀서 자기 마음대로 재단하고 그렇게 또 고착되고, 마침내 스스로 주눅이 들어서 생을 끝내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간다.
돌아가 다대포 해수욕장의 거인상을 생각해 보자. 나는 이 거인 상을 보면서 김범 작가의 개인전과 같은 제목을 붙여 보았다.
“당신이 보는 것인 전부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면은 단 한 면 곧 단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섣불리 전체를 보지도 않고, 단면을 보고 판단해 버리고 상대방을 공격함으로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전체를 본다면 분명 부끄러워해야 할 그런 실수를 하는 것이다.
사람도, 사물도, 일도, 사랑도 일면만 보고 결정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그 모든 상황을 다 들여다보고 결정한다면 후회 없고 훨씬 나은 결정을 할 것인데 섣부른 판단으로 일을 그르치고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은 없는지 다대포 해수욕장 거인상을 보면서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지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