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갯벌작가상 유영애 시인 작품평]
한국적 정서를 아우르는 인간 회복의 노래
한 기 홍 (갯벌문학회장)
1. 프롤로그 - 인간 회복의 노력은 시작詩作으로부터
현대인들은 작금의 사회현상을 바라보면서 종종 위기감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라고 뇌까리며 잃어가는 자아를 찾기 위해 암중모색들을 한다. 이러한 현대인의 상실의식은 말라 비트러진 인간성의 고갈로부터 탈출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비록 풍요로운 물질과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첨단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역효과로서 발생된 인간정신의 후퇴는 상실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빈곤하고 삭막해진 인간성 회복을 갈망하는 내면의 소리들이 내밀한 절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과 시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갈증을 해소시키고, 고갈된 내면의 정서에 생명수를 붓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물질문명과 정신세계의 충돌에서 튀어 오르는 에너지를 개인의 생산적 정신문명으로 아우르는 시작(詩作)에의 몰두야말로 잃어버린 인간성의 조화를 회복하는 마중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마르쿠제(H.Marcuse)와 하버마스(J.Harbermas) 같은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현대의 과학기술이 인간성을 조정 통제한다고 비평하고 있는데, 실상 과학의 노예화로 이끌고 있는 주체는 인간의 가치관들로서 인간 스스로인 것이다.
유영애 시인의 창작세계는 이러한 인간회복의 단초로서 역할 할 수 있는 서정의 울림이 있고, 진한 한국적 정서로 유인하여 독자로 하여금 훈훈한 시맛을 흡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시인의 작품들은 가곡으로도 만들어져 국내유수의 성악가들의 CD에 수록되기도 했는데, 이는 시인의 시 창작역량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예술 다방면에 능하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유영애 시인은 현재 갯벌문학회의 기획이사로서 열정적인 활동을 보이고 있다. 각종 모임과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창작활동과 문단활동 양면을 잘 보완하고 있는 중견 작가다. 특히 쾌활하면서도 정직한 성격으로 함께하면서, 오류(誤謬)에 대한 진지한 지적과 성찰의 모습도 있어 문단에 활력을 일으키고, 처음만난 사람도 시인의 인상을 깊이 기억하게 하는 유쾌한 작가다. 이번에 2014년도 갯벌작가상 수상자로 결정되어 한 차원 더 깊은 시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시인에게 복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서술한 인간회복을 위한 창작정신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작가로 예견되어 고무적이다. 그래서 유영애 시인이야말로 인간성 회복의 진실을 그려낼 수 있는 작가로서 기대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2. 한국적 정서에 깃든 녹록치 않은 눌함(吶喊)
껍데기라고 얕보지 말라 함부로 얕보지 말라 정월이라 대보름날 오곡밥에 아홉 가지 묵은 나물 중에 시래기가 으뜸 아니던가 대관령 맑은 바람, 햇살이 키워온 고운 속살 다 내어주고 남겨진 푸른 자락 헛간에 걸려서 찬바람 맞다가 된장과 눈 맞은 속 깊은 사랑이라 푹 삶아야 한다 잘 우려내야 한다 널부러진 무청등짝 뒤척이어 행궈 낸 잎사귀 어머니의 허기진 삶처럼 눈물같이 달라붙은 시래기 한줌 질긴 껍데기 벗겨내고 갖은 양념 더하여 아침상에 내놓으며 여보, 한 번 잡숴 봐 얼매나 맛있는디 모진 세월 지내면서 어머니의 주름 같이 굵게 패여 출렁이는 고향의 푸른 맛이여 - 대표시 ‘시래기’전문
‘시래기’는 유영애 시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 본부가 있는 ‘에피포도’ 에서 주최하는 에피포도문학상은 이 시를 15회에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시인의 시적 역량과 열정적인 활동을 인정한 ‘에피포도’는 시인을 에피포도한국지부장으로 임명하였다. 당시 이 시에 대한 심사평 일부를 인용해보면,
“ ~ 인간의 진정한 삶의 내면에 호소하는 깊은 울림이다. 만약 세상이 우리가 관심 없는 것, 지나치는 것, 우리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영역, 그것으로 인해 무시되는 인간성 실존에 대한 회복의 항변이다. 유영애의 시는 변혁적이며, 우리가 보듬고 가야될 세상의 가치에 대한 의미를 회복하고 있다. ~ ”
라고 말하고 있다. 심사평에 일백프로 공감한다. 서두에서 필자가 제기한 인간성 회복을 위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작가로서의 유영애 시인의 진면목이 이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인간의 진정한 삶의 내면을 호소하는 작품으로서 ‘시래기’는 손색이 없다. ‘껍데기라고 얕보지 말라/ 함부로 얕보지 말라’는 시인의 눌함(吶喊)은 사금파리처럼 파열된 기존의 가치관과 인간성을 망실한 세태의 ‘같잖은 권위’에 직격탄을 날리는 통렬한 펀치다. 또한 세련됨으로 위장하여 토속적인 것을 배척하고 경멸하는 수입사대주의(輸入事大主義) 경향에 대한 한국적 정서의 호쾌한 반격이기도 하다. 시래기는 무청이나 배추 잎을 말린 것으로 새끼 따위로 엮어 말려서 보관하다가 볶아 먹거나 국을 끓이는 데 쓴다. 가난했던 시절, 구황 식재료로 빈곤한 서민들이 배고픔을 이기고자 먹었던 고단했던 한국의 상징중 하나다. 그래서 시인은 힘겨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어머니의 허기진 삶처럼/ 눈물같이 달라붙은 시래기 한줌/ 질긴 껍데기 벗겨내고 갖은 양념 더하여/ 아침상에 내놓으며/ 여보, 한 번 잡숴 봐 얼매나 맛있는디’라고 눈물겨운 시어로 어머니를 회상한다. 시래기는 하잘 것 없는 식재료로 치부되다가 요즘엔 다이어트 특식으로 인기가 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이 눌함으로 제시하고 있는 시래기의 힘은 고단했던 시절의 구황 식재료로서가 아니다. 고급화로 치닫는 영악한 물질문명으로 부터의 탈출과‘우리 것’을 보전확장하려는 진지한 우국지사적 사유마저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아름다운 성심으로 창작한 수작이라고 평가한다.
3. 은일(隱逸)한 추상으로 이끄는 인간회복의 노력
그 바다에 가면 이름 모를 얼굴 하나가 푸른 섬으로 서 있다
숱한 세월에 부서지는 포말 낮은음자리표 그리며 수없는 연서 쓰다가 흩어지고 있다
진실은 방파제에 부딪히고 숱한 표정으로 다가서는 우리는 하나의 섬
산 그림자 한적한 그 바닷가 말없이 내려와 가슴 조리며 부르다가 지친 그 빛이여
- ‘파도에 새긴 연가’ 전문
아마도 시인에게는 은밀하고도 내면에 깊이 각인된 아름다운 청춘의 기억이 존재하나 보다. 누군들 젊은 시절에 애틋하고 가슴 뛰는 추억이 없으랴마는 시인의 시에 상징된‘푸른 섬’은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사랑의 표상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헤아릴 수 없는 연서를 쓰고, 가슴 졸이며 그리워한 그리움의 당사자는 누구일까. 중년의 세월까지 때묻지 않은 풋풋하고 청신한 이미지로 가슴에 간직되어진‘첫사랑’의 순박한 청년의 얼굴일까. 그렇다. 현재 중년의 세대들은 한국전쟁의 전후세대로서 고단했던 유소년기를 겪고, 급속히 발전한 국가경제에 힘입어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랄 초과학 시대에 살고 있다. 불과 3,40 년 만에 이룬 놀라운 한국경제는‘몇 십 년 전에만 해도 짚신에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구한말 분위에서, 갑자기 외국 브렌드의 옷을 치장하고 여가를 즐기는’시대로 진입하였다. 가난이 죽도록 혐오스러웠던 옛 시절이 아이러니하게도 순수한 추억의 표징으로 역류되어 삭막한 물질주의에 찌든 현실을 위안하는 현상으로 중년들의 내면에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곧 소중한 추억으로 승화되어 탑재된 소년기의 기억들은 이른바‘자기고백과 성찰’의 형상화로 발전된다. 이러한 경향은 문단에서도 예외 없이 분출되어 이른바 자아성찰의 문학으로 통칭되는 수필문단을 발흥시켜, 중년이면 누구나 수필가가 되고 싶어 하는 현상을 만들고 있는데 중년세대의 에세이 발표가 홍수를 이루는 현금 문단의 실증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진실은 방파제에 부딪히고/ 숱한 표정으로/ 다가서는 우리는/ 하나의 섬’에서 시인의 내밀한 흐느낌과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애틋한 정서가 묻어난다. 얼마나 사무친 연사(戀事)였기에 결국은 하나가 되는 섬이었지만, 연인의 사랑과 진실 앞에서 고뇌하고 처절히 번민의 시간을 죽여야 했단 말인가.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말로 남녀의 끝내 뱉지 못할 각혈로서 심안에 고이 간직된다. 곧 개인의 첫사랑 역사로서 아름답고 고아하게 각인되어 일생을 끌어안고 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영애 시인의 서정은 순박한 추상을 어루만지면서 현실과 당면한 일들에 서 파생되는 고뇌로부터의 절제된 탈출을 꿈꾸고 있는 점도 엿보인다고 하겠다. 시인의 의도는 시의 결구부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산 그림자 한적한 그 바닷가/ 말없이 내려와/ 가슴 조리며 부르다가/ 지친 그 빛이여’. 그러나 시인의 꿈꾸는 서정으로의 일탈은 어찌되었든 인간회복의 대명제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봄빛 환하게 내리던 날 산에 오르면 연분홍 산벚나무
객혈한 얼굴로 겨울 이겨낸 새순 사이로 말없이 고개 내밀어 바람이 일러 준 소리에 가슴 흔드는 그 빛 옛 생각에 젖어 마음 흔들리다가 꽃비 흩어지는 작은 길 걷는다
풀빛 그리움 감도는 그 길 따라 바람 같은 세월
봄빛 흩어지는 산자락 나만의 비밀 하나 걸어놓고는 혼자 꺼내보는 기쁨이여
- ‘비밀 하나 걸어놓고는’전문
‘객혈한 얼굴로/ 겨울 이겨낸 새순 사이로/ 말없이 고개 내밀어/ 바람이 일러 준 소리에/ 가슴 흔드는 그 빛’얼마나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시어인가. 파편화되고 난해한 유래불명의 경향시들에 식상한 작금의 시단 일곽에서, 모처럼 한모금 청량수를 들이킨 감흥이다. 이런 순수서정이야말로 유영애 시인의 시세계를 살찌우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시언어의 정조(情操)를 고수하면서 쉼 없는 서정을 노래하는 시인. 시인의 내공이 깊어감에 따라 독자들의 즐거움도 배가되리라 믿는다. 요즘 시단에는 따뜻한 시가 없다는 말이 들린다. 그러나 유시인의 창작열이 가열되는 한 시단의 온기는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슨의 지적이 연상되어 기술해본다.
4. 최상의 허구(Supreme Fiction)로서의 서정
윌러스 스티븐슨(Wallace Stevens)이 주장하는 추상개념을 살펴보면, 현실은 고안된 세상(invented world)이며 보람 있는 최상의 세상을 구현하는 것과 연결 지어 있다. 또한 최상의 허구란 즉 ‘시와 현실’, ‘상상력과 현실’ 간의 상관관계를 이격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이 곧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공간을 남긴다. 만일 현실보다 상상력이 더 상위를 가질 때에는, 불균형이 초래되며 마침내 상상력은 파괴적인 속성을 갖게 된다는 경고도 하고 있다. 그래서 ‘최상의 허구’(Supreme Fiction)란 상상력과 현실이 궁극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명제를 말하고 있다. 또한 스티븐슨은 “현실보다도 더 위대한 것은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말과 함께 “상상력만이 유일한 창작 능력이다” 라고도 했다. 이것은 현실과 상상력의 균등관계를 말한 것이리라. 결국 스티븐슨이 주창하는 ‘최상의 상상력’이 적시하는 바는~ 요즘의 시단에서 횡행하는 촌철살인의 시언어나, 상상력에만 몰두한 채 언어의 서술이 정형적인 틀을 도외시하고, 모순과 갈등, 모호한 서사, 기호를 빙자한 암호의 남발, 개인적 아집의 난립성 노정(露呈)등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스타일상의 다양함만을 주장하게 되면 결국 이질적인 요소만 남게 되는데, 이를 ‘사망한 언어’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언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명제로서 유추해 볼 때, 유영애 시인의 시언어는 ‘진실한 허구’이거나, ‘순수한 상상력’으로 분석 될 수 있는데, 스티븐슨이 주장한 ‘최상의 허구’ 개념과 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시인에게는 단순 명쾌하면서도 문학향수를 자극하는 묘한 시적 감각이 있다. 그에 더해서 다원화, 복층화, 계량화 되어가는 현실에서 인간회복의 정신이 깃든 서정을 투사하는 시인의 노력이 돋보임은 매우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일이다.
갯벌 위를 흩날리는 혼불 기다림 끝자락 삶 깊숙이 영글어 빛나고 설렘으로 들뜬 포구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운다
- 시 ‘눈꽃’ 중 2연
5. 나가는 말 - 유영애 시인의 회귀법(回歸法)
유영애 시인을 곁에서 바라보면 인간적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성품이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주고 있다 할 수 있다. 모호한 처세를 하는 자칭 중용론자(中庸論者)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으면서도 나름대로의 주관도 뚜렷한 시인이다. 동참하는 모임이나 문학마당에서도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능동적인 행동으로 좌중을 이끈다. 아울러 그녀의 문학세계는 섬세하고 정갈하며, 따뜻한 온기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정신의 회복을 느끼는 구원한 문학의 회귀법을 읽을 수 있다. 시인의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시세계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기엔 시 몇 편으로는 언어도단이다. 본 서술은 시인의 2014년도 갯벌작가상 심사 후보작 중 몇 편을 고구(考究)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앞서 열거한 몇 편의 시작에서도 시인의 강렬한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시인의 이상세계가 그 몇 편에도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시래기’에서는 ‘얕보지 말라’는 단호한 질타로 비주류를 백안시하는 작금의 사회풍토에 대한 통렬한 사자후의 반격이 있었고, ‘파도에 새긴 연가’에서는 순박한 추상으로 이끈 탁월한 서정을 보여줬다. 이러한 시인의 서정은 중년이상 세대에게 잊혀져가는 향수에 대한 회귀법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첨단 모바일 시대의 IT강국인 한국. 봉인(封印)되어가는 정통문학의 현장에서 유영애 시인의 시적 창조력과 시언어의 울림은 그 반향이 점차 증대되어 가리라 믿는다. 첨언하자면, 향토색 그득한 시어채택도 유영애 시인의 취사선택에 맞을 것이다. 사투리 없는 표준말은 시에 있어서 폭력적 언어에 가까운 것이라고 누군가 말한바 있다. 구수하고 맛깔 나는 향토시어는 시나위(산조) 가락을 듣는 듯 정겨웁다. 시인에게는 한국적이며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배어나온다. 우리 고유 언어의 미학적 접근으로도 훌륭한 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 유영애 시인이 가능한 영역이요, 인간회복을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응당 섭취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지브란은 “작품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내 속에 있는 최선의 것들을 모두 끌어내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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