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강의실에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만학도 한 명이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멀리 울산에서 이곳 금산까지 다니며 공부하는 국어국문학과의 시인 학생이었다. 강의를 2~3일로 몰아서 듣고, 숙소는 근처 모텔을 이용하였다. 나는 교통비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장학생을 만학도에서 선발하기로 하였다. 정년 때까지 31명이 되었다.
늦은 나이에 간호사가 된 그녀는 다행히도 본가가 있는 서울에서 취직이 되었다. 장학회의 모임은 내가 정년을 맞이하고 나서도 1년에 두어 차례씩 이어졌다. 그녀는 정해진 날짜에 못 오면 그 후에라도 꼭 찾아오는 성의를 보였다. 참 기특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졸업을 앞두고 주고 간 선물이 있다. 찾잔이다.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깊은 배려가 느껴진다.
컵의 안쪽과 컵 받침에는 12월(December)이라고 새겨져 있다. 겨울에 피는 장미이기도 하지만, 선물한 12월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ㅡ 「겨울 장미」 중에서
ㅡ 원준연 수필집, 『빨간 페도라』, 도서출판 이든북, 2026년 8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