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대봉(1704m). 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촛대봉-세석-영신봉- 칠선봉 -선비샘-덕평봉 -벽소령-형제봉-연하천- 화개재-삼도봉-노루목-임걸령-노고단-성삼재.
'지리산 능선 상 많은 봉우리와 고개마루들.'
촛대봉은 지리산 주능선에서 자연 훼손이 가장 심각. 그러나, 지리산에서 가장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한 곳. 촛대봉 암봉들은 등산로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촛대봉은 세석평전에서 천왕봉 방향의 봉우리.'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영신봉을 마주 바라보는 위치. 천왕봉 웅장함과 발 아래 도장골 풍경이 조화를 이룬 곳. 촛대봉 아래 40분 거리, 그곳은 지리산 나물 최대 군락지.
이곳 등산로가 산꾼들에게 알려진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내대 거림마을 사람들이 나물과 약초를 뜯으려 다녔던 길, 1950년대에는 지리산 빨치산이 환자후송병원의 환자 비트
'아직 자연환경이 살아 숨쉬고 인적이 드문 등산로.'
밀금폭포 아래 위 용소, 와룡폭포, 들돌골, 시루봉골 촛대봉골 아직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비경들을 품은 촛대봉. 지리산에 아직 이런 코스가 남아 있다는 것은 산꾼들에게 축복.
거림마을 들머리 매표소에서 오른쪽 200 m 숲속의 길상사. 도장골에서 유일한 시설물이고 그 이외엔 희미한 등산로들. 촛대봉 계곡과 연하봉 계곡이 만나는 바로 아래에 와룡폭포.
이곳까지 오기 전 500 m 쯤에서 시루봉으로 오르는 왼쪽길. 시루봉골 옆을 지나 촛대봉 능선까지 오르는 데도 1시간 30분 세석산장에서 촛대봉 샘은 20분 거리, 이정표는 어디에도 없다.
촛대봉 정상에 서면 먼 산등성이들이 파도치듯 춤춘다. 발 아래 사막처럼 펼쳐진 세석평전 따라 흘러내린 암릉. 점점이 촛대처럼 솟은 바위봉우리들 틈새로 붉게 핀 철쭉.
광활함일까? 황량함일까? 기이함일까? 절묘한 조화일까?
촛대봉에서 영신봉으로 이어진 애틋한 전설은 지리산의 백미. 세석평전과 아울러 음양샘에 얽힌 비화가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그중에서도 <촛대봉의 전설> 지리산이 품고 있는 신비함의 절정.
'과연, 촛대봉은 어떤 전설과 신비를 간직한 곳일까?'
<촛대봉 독립 산행코스>
의신 - 대성골 - 큰세개골 - 영신대 - 세석산장 - 촛대봉. 거림 - 도장골 - 촛대샘 - 촛대봉 - 세석산장1박 - 음양수 - 거림, <밤 11시 50분 서울역 출발 - 진주행 무궁화 호 기차- 구례구 하차.>
.................촛대봉의 전설.............................
촛대봉에는 '음양샘의 비밀'에 관한 전설이 있다. 지리산에 최초로 들어와 살았다는, '전설 속 연인'. 호야(乎也)와 영신( 일명 : 연진아씨 라고도 부른다).
두 사람은 대성골에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펴고 정착. 그들은 지리산의 대자연 속에서 인간적인 자유를 찾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했던 사랑은 너무도 짧게 끝나 버린다.
'결국, 촛대봉의 전설로 남은 애틋한 사랑.'
지금부터 그 애틋한 촛대봉의 전설 속으로 들어가보자. 호야와 영신은 산나물과 과일을 따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는 한 가지 아쉬움이 따랐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 호야가 집에 없을 때 영신에게 찾아온 곰이 알려준 음양샘의 비밀.
"세석평원에 아이를 낳게 해주는 신비의 샘이 있어요."
영신은 남편과 상의할 틈도 없이 음양샘으로 달려가 샘물을 마신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나빴던 호랑이 그 사실을 산신령에게 고해 바친다.
산신령은 음양수의 비밀이 인간에게 누설된 사실을 알고 크게 분노하며 곰은 토굴에 갇우고 호랑이는 '백수의 왕'으로 만든다.
한편, 음양수 샘물을 훔쳐 마신 영신에겐 무거운 형벌. 그날부터 영신은 세석평전에서 혼자서 철쭉밭을 가꾼다. 세석 철쭉꽃이 그녀 손끝에서 흐른 피로 붉게 물들 때까지.
그리고, 영신은 밤마다 촛대봉에 촛불을 켜고 잘못을 빌었다. 산신령에게 잘못을 빌다가 영신이 돌로 변한 곳이 '촛대봉 정상' 그곳에는 한 여인이 기도하듯 무릎 끓고 앉아 있는 모습의 바위.
촛대 모양 암봉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촛대봉. 촛대처럼 뾰죽한 암봉들이 기이한 형상으로 서있다. 촛대봉 고개마루 길가 암봉이 영신이 돌로 변한 곳. .............................................................................
촛대는 중국 진나라 당시부터 유래된 밤을 밝히는 불. 진시황은 촛불로 아방궁을 밝히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하여, 촛불로 신방을 밝히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성행한다.
한반도는 고대사회로부터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지역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촛불의 유래는 진나라와 차이가 없을 듯. 하여, 촛대봉 이름으로 전설의 시대적인 배경을 찾긴 어렵다.
촛불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상징한다. 촛불은 지상에 사는 사람의 뜻을 하늘에 전하는 매개체 이 때 촛불은 신단수, 솟대, 탑 등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다.
'화촉을 밝힌다'는 말은 부부 합궁을 뜻한다. 촛불의 흰 빛은 신랑 신부의 순결을 상징한다. 촛대는 남근의 상징이며 촛불은 여성을 의미한다. 촛대봉의 전설을 보면, 영신은 촛불의 상징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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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신이 무릎 꿇고 앉아 잘못을 비는 것은 석고대죄. 석고대죄는 거적 깔고 앉아 벌을 기다리는 궁중법도. 순결을 지켜야 할 신분의 여인이 사랑에 빠진 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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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령의 노여움을 샀던 음양샘 전설의 여 주인공.' 마치,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 이야기 같기도 하다. 영신이 음양샘을 마시기 전까지 대성골은 에덴 동산.
영신과 호야 두 사람 만이 행복하게 살았던 지상낙원. 그러나, 영신이 음양샘을 마신 후 그 낙원은 사라진다. 마치 에덴동산 선악과를 아담 이브가 따먹고 난 후처럼..
'죽음보다 혹독한 형벌을 받는 영신과 호야.'
고해성사를 하는 여인의 모습과 같은 촛대봉. 그곳에서 석고대죄를 하던 끝에 돌로 변한 모습. 죽은 후에도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의 형벌'.
'영신이 죄를 빌다가 돌이 되었다는 촛대봉.'
호야가 죽은 영신을 찾아헤메다 돌로 변한 영신봉.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촛대봉과 마주보이는 위치. 호야가 죽은 곳이지만 영신의 이름을 본따..영신봉.
'멀리 떨어져 마주보며 그리움만 삭이는 연인.'
.......................촛대봉의 형태.............................. 촛대봉은 넓은 구릉에 올망졸망 뾰족뽀족 선 바위 군락. 멀리서 보면 작아 보여도 가까이 다가서면, 큰 바위 숲. 그곳 큰 바위 암봉들은 목숨을 위협할 만큼 높고 험하다.
그곳 큰 바위 숲은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어 접근이 어렵다. 길따라 울타리로 막혀 있어 그곳 큰 바위 숲은 잘 보존된 듯. 고산지대의 희귀식물 자생지는 한번 망가지면 회생이 어렵다.
일반 등산로는 인파에 짓밟히고 패여 사막과도 같은 분위기. 촛대봉 정상 팻말 옆 바위에 잔돌로 쌓은 탑들이 눈길을 끈다. 그곳 위에 앉은 모습으로 돌이 된 영신의 슬픔을 달래주려는 듯..
촛대봉은 영신봉을 마주보며 세석을 품은 곳. 광활한 세석평전 양끝에서 마주보는 연인인듯.
처녀의 순결한 피로 물들인 듯한 세석평전 철쭉꽃. 촛대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연이어 있는 암봉 숲. 마치, 촛물이 흘러내린 듯하여 유래된 이름, 촛대봉. .........................................................................
봉우리마다 날카로운 바위 표면이 살을 찢는 촛대봉. 겉보기엔 부드러워 보여도 칼날을 품은 듯 한 암봉들. 온몸의 피부는 물론 여린 속살까지도 사정없이 파고든다.
아득한 태고에는 바닷가의 갯바위였을 것 같다는 느낌. 그것은 광활한 세석평전에 깔린 잔돌들도 역시 마찬가지.
지리산은 6천 5백만년 전에 화산 폭팔로 형성되었단다. 3천만년간 용광로처럼 용암이 끓다가 식은 후 빙하시대. 한반도는 1억 2천만년전 공룡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곳.
한반도는 공룡 서식처일 만큼 열대 우림지역. 세석의 갯바위는 태고에 이곳이 바다였던 흔적. 오랜 세월 지각변동으로 바다에서 솟아오른 고원.
칠,팔천년전 빙하가 녹아 세석평전의 표면을 깍아내린 듯. 그곳에 남은 갯바위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부서져 흩어진 듯. 얼마나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환경의 변화일까?
세석의 잔돌들은 오랜 풍화작용을 거쳤어도 날카롭다. 영신은 세석평전 철쭉을 가꾸며 열 손가락이 찢겼을 듯. 밤이면, 촛대봉 날카로운 바위가 속살까지 파고들었을 듯.
촛대봉은 잠시 앉아 머물기에도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운 곳. 음양샘을 마신 죄에 비해, 산신령 노여움은 지나치다는 느낌. '영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했던 형벌이 아니었을까?'
촛대봉에서 내려다보면 시야 가득 펼쳐진 세석평전. 영신의 피에 물들어 붉은 듯 세석평전 가득한 철쭉꽃. 온 몸에 피를 다 쏟고 속죄의 기도 끝에 돌이 된, 영신.
영신의 슬프고도 애달픈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촛대봉. 아직도, 촛대봉 높은 곳에서 삼신봉을 내려다 보는 영신. 영신은 돌이 되어서도 아직도 그곳에 무릎꿇고 앉아있다. 당장 달려가면, 만날 거리에서 돌이 된 연인 '영신과 호야'.
'이 보다 잔인한 형벌이 어디에 또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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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봉의 전설은 불교 교리에서 유래된 것 아닐까?'
지옥은 저주받은 영혼들이 형벌을 받으며 거주하는 곳. 환생할 때까지 생전 악행 만큼 마귀들에게 고통받는 곳. 망각의 국을 마시고 윤회의 수레에 오르기 전 머무는 곳. 망각의 국을 마시면 지옥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잊게된다.
원시 종교에서 죽은 영혼의 종착지는 어두운 지하세계 외딴 섬 또는 지하세계의 깊은 심연(그리스 타르타로스)
기독교의 지옥은 유대교 개념이 밑바탕인 '저주의 장소.' 마귀와 그 휘하의 악한 천사들이 지배하는 불타는 지역 원래, 지옥의 개념은 불교에서 시작되어 유래된 듯 하다.
촛대봉은 불교에서의 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다. 촛대봉은 바늘방석과 뜨거운 지옥 불구덩이를 상징.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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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열 지옥
<등활지옥>은 몽둥이로 얻어맞고 살이 찟겨 죽음에 이르렀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살아나 똑 같은 고통을 되풀이해야만 하는 지옥을 말한다.
<흑승지옥>은 검정 오랏줄이 살을 갈갈이 찢는 지옥. <중합지옥>은 인간의 모든 고통을 한꺼번에 겪는 지옥. <규환지옥>은 고통에 못이겨 짐승처럼 울부짖게 되는 지옥. <대규환지옥>은 규환지옥 고통보다 강도가 한층 더 심한 지옥.
<초열지옥>은 불길에 휩싸여 살이 타는 고통을 겪는 지옥. <대초열지옥>은 초열지옥에 비해 한층 견디기 뜨거운 지옥. <무간지옥>은 한 순간도 멈춤없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 지옥.
8한 지옥.
<알부다지옥>은 너무 추워 온몸에 수포가 퍼져 고통겪는 지옥. <나랄부타지옥>은 온 몸의 수포가 터지면서 더욱 고통겪는 지옥. <알타타지옥>은 살을 에는 추위에 떨며 "알타타"를 외쳐대는 지옥.
<하바바지옥>은 더 심한 추위에 못견뎌 "하바바"를 외쳐대는 지옥. <호호바지옥>은 "후후바"라 겨우 외쳐댈 만큼 추위에 시달리는 지옥. <올발라지옥>는 혹한에 살이 벗겨져, 청련화(범어)처럼 보이는 지옥.
<발특마지옥>은 혹한에 살이 찢겨져, 마치 홍련화처럼 보이는 지옥. <마가발특마지옥>은 혹한에 온 몸이 찢겨, 큰 홍련화처럼 보이는 지옥.
8열 지옥은 칼날이 촘촘하게 박힌 길을 걷는 지옥. 칼날 잎사귀 나무 숲속을 걸어가야 하는 지옥이다. 이 숲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면 살점이 잘려 나간다. 이 때 숲 속 점박이 개들이 그 살점을 주워 먹는다.
그리고, 큰 쇠못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숲속의 지옥. 이 지옥의 옥졸들을 피해 도망다니면 살점이 찢긴다. 더구나, 나무 위에는 쇠부리가 달린 새들이 살고 있어, 사람의 눈, 심장, 간을 쪼아 먹어 숨 돌릴 틈조차 없다.
아직도 지옥의 길은 멀고도 험하며 고통스럽다. 펄펄 끓는 물에 삶아지며 살과 뼈가 녹는 지옥 끓는 물에서 나오지못하게 무서운 옥졸들이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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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가르치는 불교 교리에 비해 무서운 지옥.'
불교의 교리는 인간의 성욕을 금기로 여긴다. 특히, 여성의 애욕은 전생의 죄악으로 여긴다. 하여,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은 비구보다 많다.
촛대봉의 전설은 불교의 교리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남자인 호야보다는 여자인 영신에게 유독 가혹한 벌. 그러나, 전설 내용은 영신과 호야는 수도자가 아니다.
따라서, 애욕으로 인한 형벌로서는 해석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영신이 잔인한 형벌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세석평전과 영신봉까지 살펴보아야 그 의문점이 풀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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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평전의 철쭉꽃은 여전히 해마다 피어난다. 마치 돌로 변한 영신의 피맺힌 한에 붉게 물든 듯. 촛대봉의 주변은 인파로 훼손될 만큼 풍경 좋은 곳.
그곳의 능선 등산로는 지리산 전체가 보이는.. 전망대. 동쪽은 가까운 듯 멀리 천왕봉, 서쪽은 아스라히 반야봉. 남쪽은 도장골, 청래골, 북쪽은 한신계곡, 하동바위 능선.
인적 드문 먼 계곡 아래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길가엔 구상나무, 가문비 나무, 침엽수들의 억센 둥치. 모진 풍파에 견디느라 부대낀 듯 한결 같이 키가 작다.
'분재와도 같은 주능선 길가 또는 바위틈 나무들.'
수천년 세월을 그 자리에서 태어나 스러지고, 다시 태어난 그들. '나무마다, 풀 한포기마다..아름답고도 신비 가득한 '꽃말의 전설'. 마치, 자연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유래 및 전설을 속삭이는 듯. 오랜 세월동안 모진 풍파를 겪으며 영신과 함께 아픔을 나눈 듯.
촛대봉을 닮은 듯.. 뾰죽한 모양과 침엽을 갖고 있는 구상나무. '88 올림픽 나무'로 선정되었던 우리나라 고유의 향토수종이다. 지리산 능선마다 볼 수가 있고, 높이 18m까지 자라는 상록교목. 마치, 이곳의 구상나무 숲은.. 촛대봉 유래와 전설을 말해주는 듯.
세석산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세석평전이 한눈에 보이는 곳. 세석평전은 그 둘레가 12㎞이고 약 30만 평 면적의 넓이이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은 일본식 표기이므로 세석고원이 좋을 듯.
촛대봉의 전설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을 연상하게 한다. 손끝찢는 세석의 잔돌. 핏빛 처녀의 순결, 촛대봉 형벌. 왜인 조상이 한반도에 거주할 당시에 남긴 전설이 아닐까?
한반도 민족이나 일본 민족은 그 뿌리가 하나인 '몽골리안' 일본은 칼 잘쓰는 기마족, 우리 민족은 활을 잘쏘는 유목민. 세석평전은 고대국가에서부터 말 달리고 칼 쓰는 심신 수련터.
지금과 같은 세석의 모습은 약 100 년전 산불 탓이라고도 한다. 15 세기 이곳을 찾은 김종직, 김일손의 기행문에도 이곳은 평원. 1983년에 처음 건립된 세석산장은 66 평방미터 60 여명 수용 규모.
이 산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故 허우천 씨가 살았던 옛 산장 터. 세석평전 중앙에 있었지만 지반이 튼튼하지 못해 철거된 바 있다.
산이 좋아 홀로 산속에 들어와 살았던 우천 허만수(宇天 許萬壽). '지리산신령'으로 더 알려졌던 그의 보금자리는 쓰러져가던 움막. 흘러가는 흰구름, 눈보라, 비바람 속 야생화를 벗삼아 살아갔던 그.
22에 결혼한 부인을 홀로 두고 31세에 산속으로 들어가 살았던 그. 산을 잊어달라고 애원하던 부인을 뿌리치고 영영 혼자서 살다 간 그 산을 사랑했기에 산에 들어와 산을 가꾸며 산에 오르는 이의 길잡이.
어림잡아 7 만명의 등산객을 안내하고 수많은 인명을 구조했던 그 . 조난자를 찾아 헤매기 20년..조난자 시신을 찾아 집으로 돌려 보낸 일. 부상자를 안전하게 옮겨 치료한 일, 지리산 일대의 고아들을 보살핀 일.
지리산의 살아있는 전설이었고 사라진 이후에도 전설. 추모비는 법천골 입구에서 법천교 다리 지나.. 칼바위 전. 세석에서 철쭉꽃처럼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1976년 6월 홀연히 자취를 감춘 그는 어디로 사라진걸까?'
1972년부터 매년 철쭉이 만발하는 시기에 진주산악회 주최로 '철쭉제' 이곳은 천왕봉, 한신계곡, 도장골, 거림골, 삼신봉, 청학동의 길목이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즐겨 찾는 산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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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 산 325 1995 년에 면적(653㎡) 수용인원 240 명 일박에 사용료는 7,000원이고, 담요는 1,000원
현재 주능선 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장이 들어서 있는 곳. 지리산에서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이용하는 산장이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양지바른 위치'에 있다는 것이..'장점'.
2층 창문으로 세석평전의 남사면의 설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산장. 장터목 산장과 벽소령 산장을 관장하는 분소장 외 5명 직원들이 관리. 2층 칸막이가 된 가족실은 5∼8 명의 단체가족일 경우에 한해 빌려준다. 자가발전 난방시설이 있고 밤 10시에 소등, 산장 아래 50m 지점에 샘물.
매점에는 초코파이, 비스킷, 건전지 라면 가스연료 부식을 판매한다 지리산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직영하는 산장이라 술은 팔지 않는다.
사전 예약없이 이곳을 찾는 인파가 몰려들면 발 딛을 틈도 없다. 하여, 산장 건물 아래.. 지상 1m도 안되는 틈새 안까지, 비박 인파. 인파가 몰릴때면 산장의 복도와 계단 아래 구석까지도 새우잠 인파.
예약 없이 산장에서 일박하려면,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50세 이상 여성은 1순위>이고 <60세 이상 남자는 2 순위>. <50세 이상 남자는 3 순위>이고 그 이외에는 같은 조건이다.
제44조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설립) 국립공원을 보전하고 자원에 대한 조사·연구, 시설의 설치·관리, 자연공원의 청소, 공원 이용에 관한 지도·홍보와 그 밖의...'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통령 긴급명령 악천후 일기예보...(폭설 태풍 호우) 이 때 제 44조 법령을 어기면 50 만원의 벌칙금이 고지. 관리공단직원들 만류를 어기고 야간산행을 강행할 경우. 벌금을 내더라도 몸만 무사하면 천만다행한 경우가 많다.
벽소령산장에서 세석산장까지는 '마의 구간'.
세석산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등산로는 조난사고가 빈번한 곳. 거림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짧지만 그곳도 길이 끊기면.. 위험. 가벼운 마음으로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특히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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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석산장에서 취사할 때에, 독초와 뱀을 조심해야 한다. 세석평전 등산로 주변 개울가에서 가장 흔한 <동의나물>....노란 꽃 미나리아재비과인 동의나물은 나물이란 이름의 독성식물.
특히, 산나물로 꼽는 곰취와 구별이 쉽지 않다는 사실. 곰취인줄 잘못 알고 먹고는 식중독 걸리는 경우가 많다. 하여, 동의나물과 곰취를 구분방법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꽃이 지면 동의나물과 곰취는 구분이 힘들다. <곰취>는 잎에 털이 있고 테두리에.. 톱니 무늬. <동의나물>은 잎에 털이 없고 테두리가 밋밋하다.
<곰취>는 잎자루에 골 따라 양쪽에 자색 무늬 <동의나물>은 잎자루 골 따라 무늬가 없다는 점.
<동의나물의 꽃>은 사실 꽃잎이 아니고, 꽃받침이 꽃잎처럼 보이는 것 뿐이이란 점.
'하얀꽃이 세석평전에 저렇게 많이 피어 있을까?' <꽃황새냉이>. 양귀비목 십자화과 쌍떡잎식물. 두해살이풀, 냉이꽃 닮은 큰 4 꽃잎. 꽃은 긴 꽃대에 달린 꽃이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한여름까지 핀다.
산소결핍 상태로 인해 급하게 일어나는 호흡곤란에 대한 진정효과. 중추신경 억제재 수면제 원료로 쓰였으나 요즘은 몰핀으로 대신한다.
이곳에서 흔한 <쥐오줌풀꽃>은 진정 진경제, 담배의 가공 향로. 연분홍꽃이 모여 핀 꽃술 위로 벌 나비가 모여들 만큼 꿀이 많다. 예전에 쥐오줌 풀은 약재 원료로 쓰였지만, 현재는 사용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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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초가 많은 초원은 맹독성 독사 종류의 서식처. 특히, 꽃뱀은 철쭉꽃으로부터 독을 공급받는 독사. 정해진 등산로에서 이탈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세석평전
<지리산 제 7 경 - 세석평전의 철쭉. > 해발 (1,500m)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 위치.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넓고 경사 완만한 평원. 5~6월 철쭉 꽃 장관이 아름다운 '남녘 최대의 고원'.
마치, 티벳 고원을 연상하게 하는 세석평전.
티벳고원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황하강 발원지 우리나라 민족에게는 마음의 고향이자 영혼의 고향. 티벳 유목민 후손답게 이곳에서 말을 달린 옛 화랑들.
세석은 이름 그대로 잔돌이 많고 30리에 걸친 대평전. 처녀의 핏빛 투명한 속살처럼, 분홍 色 고운 철쭉 바다. 절정기에는 산악인들의 물결로 발디딜 틈 없는 세석평전.......3만9천여㎡
세석은 촛대봉(1,704m)과 영신봉(1,652m) 사이의 고산평원. 잔돌이 많은 평야와 같다 하여 불리어 지게 된 이름..세석평전 해마다 5월 말~ 6월초 철쭉이 만개할 때이면 인파로.. 인산인해
세석의 초원과 철쭉 군락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세석평전에는 계절 따라, 야생화가 다투어 피고 진다. 신라시대 노고단과 함께 '화랑의 심신수련장'이었던 곳. 구한말 동학 농민군, 일제 징용 징병 거부자들의 피난처,
빨치산 남부군들의 근거지이자, 6.25 전후 화전민들의 보금자리.
1972년부터 매년 6월 첫째 주말에 열어왔던 철쭉제. 진주 산악회 주최 산상 축제는 88년까지 5년간 중단. 공식행사가 중단한 동안에는 진주 산악회에서 산신제.
철쭉제 중단후, 세석의 자연환경은 거의 회복.
89년 6월 3일 18회 철쭉제는 5년만에 부활되었고, 산상축제도 자연보호 경진대회로 성격이 바뀌었다. <지리산 제 모습 찾기운동> 및 <미스 철쭉 선발대회>
'시인 김석(金汐)의 표현을 인용하면..'
세석 계곡 가득히 피어있는 철쭉꽃, 그 사이사이로 울고 있는 뻐꾹새 소리,
훈풍이 꽃 사이로 지날 때마다 꽃들의 환상적이고 화사한 흔들림,
그것은 남녘 나라 눈매 고운 처녀들의 완숙한 꿈의 잔치.
................................................. ................................................. 철쭉은 처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 철쭉꽃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 ...................................................
음양수.
지리산에서 가장 길고 깊은 계곡이 대성골. 그 대성골의 발원지가 작은 샘물인., 음양수. 작은 샘 하나가 흘러 흘러 거대한 계곡을 형성.
'그렇다면, 음양수는 어디에 있는 샘물일까?'
지리산 종주를 하다보면 음양수를 놓치기 쉽다. 주능선에서 벗어나 남부능선 방향에 있기 때문. 거림 방향에서 올라와야 제일 쉽게 만나는 샘물.
세석평전 직전 고사목지대 양지바른 바위숲. 음양수 위쪽 너른 바위엔 곱게 쌓인 돌 제단. 예전에 화전민들이 십여 가구 쯤 살았던 흔적.
그곳 돌절구가 화전민 마을이었음을 뒷밭침해 준다. 책상만한 바위에 원통형의 구멍을 파서 절구로 이용. 사람이 살았고 농사를 지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인 셈.
김점분 외12명의 여성 빨치산들이 토벌대에 포위되자 13명 전원이 권총으로 장렬하게 자결했던 곳이 음양수. 전설적인 여성 빨치산 김점분이 생을 마감한 음양수 주변.
1953년 여름, 토벌대에 쫓긴 김점분 外 15명의 여성 빨치산. 음양샘 가에서 포위되어 더 피할 곳 없자 모두 권총으로 자결. 이어, 1952.1.17 토벌대와 미군 합동군이 대성골 빨치산을 공격.
대성리 마을 뒤에 수많은 시신들이 흩어지고 3일 동안 대성골 계곡 일대에는 피가 흘렀다. 음양수는 반란의 역사 격전지였던 곳 중 하나.
'김정분 외 12 여성 빨치산은 왜 자살했을까?'
전쟁 중 적군의 여성 포로는 정복할 공격목표. 적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한., 심리전술. 전쟁 중에는 성윤리가 표류해 강간 겁탈이 급등.
2차 대전 당시 정신대를 피해 절에 숨은 여성들. 6.25 당시 정절을 지키려 산속으로 피신한 처녀들. 정절을 유린 당하느니 죽음을 선택한 당시 유교관념.
수복지 산간 마을마다 "색씨"를 찾던 일부 미군들.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은 목숨보다 소중한 정조 관념. 그녀들의 자살은 정절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인듯.
'과연, 공산주의를 위해 목숨을 끊었을까?'
단지, 살기 위해 도망치다가 맞이한 그녀들의 최후. 그녀들은 죽음으로서 정절만은 지키려 했던 듯 싶다. 비록 빨치산이지만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순결관념.
'조상대대로 뿌리깊었던 유교관의 영향인듯.'
이념과 사상을 초월해 마음이 숙연해지는 곳. 그 고귀한 정조 관념 앞에 고개 숙여지는 곳. 그 가엾은 넋들을 기리기 위한 음양수의 돌탑.
음양수에서 대성골까지 수많은 돌탑들. 오늘날 그곳 돌탑들은 무속신앙의 상징. 하여, 철거되었다가 다시 쌓여지길 반복.
큰 바위 아래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음양수. 그 석관수를 자세히 살펴 보면, 놀라운 풍경. 마치, 하리수를 연상하게 할 만큼 고혹적이다.
'남녀 양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음양수.'
큰바위 하나에서 흘러나오는 두 줄기 석관수 큰 바위 앞 웅덩이에 고였다가 다시 흘러간다. 음양수 주변은 양지바르고 따듯해 편안한 휴식처.
들여다보면 볼수록 오묘한 느낌이 드는 음양수. 그 샘물은 주변을 적시며 다시 대지로 스며든다. 마치, 대지 위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듯한 광경.
'하여, 음양수라고 부르는 걸까?'
지리산 주능선과 남부능선이 만나는 곳의 샘물. 남부능선은 대성골과 거림골 사이로 뻗어 내린다. 하여, 세석평전 골짜기 '음'과 남부능선 '양'의 만남.
남부능선은 세석평전의 골짜기를 파고드는 산세이다. 엎어진 골(자빠진 골)따라 올라오면 한벗샘이 나온다. 한벗샘 지나 남부능선따라 세석평전 가까이 가면 음양수.
'음양 기운이 합쳐져 하나를 이루는 음양수.'
하여, 음양수를 마시면 아이를 갖일 수 있다는 전설. 특히,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이 찾아온다. 음양수는 들여다 보면, 볼수록.. 의미심장한 이름이다.
세석산장 남쪽 2 km 아래, 거림으로 가는 길가에 있다.
남부능선 마지막 고비의 갈증을 달래주는 음양수. 이 샘에는 사랑하는 남녀의 슬픈 전설이 담겨있다. 마주보는 <촛대봉>과 <영신봉> 두 이름 유래의 산실.
불교에서 인간으로 태어남은 윤회설에 의한 하늘의 뜻. 하늘의 뜻을 어기고 인간 뜻대로 아기를 갖는 행위는 죄. 그 천기를 누설했다는 전설이 실감나게 느껴지는 '음양샘'.
이곳 샘물을 마시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의 샘.> 그 이유만으로도 은밀히 불임여성들이 찾는 샘이기도 하다. 음양수는 지리산에 있는 옹달샘 중에서 가장 진수를 품은 샘.
이곳에 얽힌 역사적 사실 역시 지리산의 전설 중에서 절정이다. 전설의 실체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듯 모를 듯, 미궁 속 신비. '도대체 <음양수의 전설> 속에 숨겨진 비밀의 실체는 무엇일까?'
.......................<음양수 전설>................................. 아득한 옛날 지리산의 인간은 호야와 영신이란 남녀 뿐. 세석평전에 초막을 짓고 나무 열매를 먹으며 살고 있었다. 원앙처럼 금슬이 좋았던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호야가 다래를 따러간 사이에 반달곰이 영신에게 음양수 샘물을 마시면 자식을 낳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영신은 곧바로 음양샘으로 달려가서 음양수 샘물을 마셨다.
그러나 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호랑이 그 사실을 지리산 산신령께 고해 바쳤다.
산신령은 천기를 발설한 곰을 토굴에 가두고,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의 왕이 되도록 했다.
산신령은 샘물을 몰래 마신 영신에게도 무거운 벌을 내려 철쭉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세석평전 철쭉을 가꾸도록 했다.
영신은 낮에는 철쭉을 가꾸고 밤에는 촛대봉 정상에 올라가 촛불을 켜놓고 산신령께 자기의 죄를 빌다가 바위가 되었다.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영신의 몸이 굳어진 모습이라 전해온다.
한편,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영신을 찾아나선 호야. 영신이 촛대봉의 바위로 변한 사실도 모르고 헤메인다. 결국, 그리움에 지쳐 호야가 바위로 변한 자리가 영신봉. ....................................................................................
바위로 변해 영원히 마주보며 만날 수 없게 된.. 두 연인. 촛대봉과 영신봉은 세석평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봉우리. 넓은 세석평전 은밀한 곳에 옛부터 전해져 온 '음양샘의 전설.'
오늘날까지 아이 낳기를 염원하는 여성들 영신봉 자락 세석평전까지 찾아오는 음양수. 음양수는 오랜 세월간 대성골을 빚어낸 발원지.
'과연 그 샘물을 마시면 효험이 있긴 있는걸까?'
오랜 세월을 전해내려온 전설에 깃든 역사. 그 숨은 역사가 없다면 전설의 가치는 없다. 하여, 전설은 그 배경 역사 만큼 가치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유서 깊은 <음양수 전설>.
<음양수 전설>은 <촛대봉의 전설>과 유사.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5가지.
1. 두 연인의 보금자리가 대성골 아닌 세석평전인 점. 2. 영신이 바위가 되어버린 사실을 호야가 몰랐던 점.
3. 호야가 영신을 찾아 헤메이다가 지쳐 죽어버린 점. 4. 호야가 죽은 자리에서 솟아오른 바위가 영신봉인 점. 5. 세석평전을 마주보는 두 봉우리를 연인에 비유한 점.
'음양수 전설'에는 납득하기 힘든 의문점이 있다. 하여,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상상력을 갖게 한다. '음양수 전설'에 관한 의문점은 대략 6가지로 요약된다.
1. 샘물을 몰래 마신 영신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인 점. 2. 낮에는 철쭉이 빨갛게 물들도록 가꾸고 밤에는 속죄한 점. 3. 영신은 촛대봉에서 속죄하다가 죽고 호야도 바위로 변한 점.
4. 영신은 촛대봉..호야는 마주 보이는 영신봉에서 돌로 변한 점. 5. 호야가 죽은 곳 지명을 '호야'가 아닌.. 영신봉이라고 부르는 점. 6. 영신과 호야가 그곳에 살았다지만, 음양수 위치를 몰랐다는 점.
'혹시 영신은 '산신령의 애첩'이 아니었을까? '
영신과 호야는 산신령도 모르게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 반달곰은 영신과 호야의 관계를 산신령에게 숨긴 존재.
호랑이는 두 연인 관계를 산신령에게 고해 바친 존재. 하여, 산신령은 곰의 괴쌤죄를 물어 토굴에 가두었다. 한편, 호랑이에게는 '백수의 왕' 칭호를 내린 산신령.
해마다 봄이면 철쭉꽃으로 뒤덮이는 세석평전. 처녀의 피빛 투명한 속살같이 아름다운 철쭉꽃. 영신이 호야를 죽도록 사랑했던 피 같은 그리움.
베일 속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간직한 음양샘. '죽어도 말 못할 여인의 비밀'이 담겨져 있는 듯.
결국, 영신을 찾아나선 호야도 산신령으로부터 형벌. 산신령의 분노로 호야가 돌로 변해 죽은 곳이 영신봉. 서로 사랑하는 사이면서도, 말못할 사연을 간직한 듯.
영신은 죽는 순간까지 산신령에게 참회의 기도를 올린 점. 영신은 호야를 살리려고 '산신령이 내린 형벌'을 감수한 듯. 두 연인의 비련이 담긴 음양수 전설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혹시, 음양수는 가락국의 상징 아닐까?'
음양수는 영신대 아래 위치 영신봉은 낙남정맥의 시발점. 낙남정맥은 가락국의 옛 영역.
가락국은 호랑이를 토탬으로 여기는 나라. 곰을 토탬으로 여기는 고조선과는 적대관계. 양왕이 된후 국골에 살았다는 가락국의 구형왕.
신라와 가락국이 평화 합병 이후에 왕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기에 양왕.
양왕이 된 구형왕은 옛 가락국 영역을 통치.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골 추성산성은 백제와 전쟁 당시의 격전지.
'국골 바로 옆에 있는 계곡이 칠선계곡.'
칠선계곡은 '선녀탕 전설 속 7선녀에서 유래된 지명. 칠선계곡의 7선녀는 '구형왕의 여자'일 가능성이 있다. 칠선계곡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는 세석평전.
'음양수 전설' 속.. 영신. 혹시, 구형왕의 여자였을까?
영신과 호야가 대성골에 살았다면, 칠선계곡으로부터 사랑의 도피행각(?) 너무 가까운 거리라 그럴 가능성이 희박.
음양수 전설 속 영신과 호야는 어떤 신분일까? 아이를 갖일 수 없었다면, 궁녀와 내시였을까? 아니면, 영신은 신라 화랑을 이끈 원화였을까?
이조 때 궁녀일 가능성도 한번 가정해보자. 전설 속 두 연인은 대성골에 살았다고 한다. 한반도 역사상 법도가 가장 엄했던 이조시대.
국법을 어긴 중죄인은 삼족을 멸하거나 죽도록 귀양살이. 이조 국법은 목숨걸고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릴 만큼 지엄. 고려 및 이조시대 은둔자들은 속세를 떠나 지리산에서 은둔.
그 누구도 찾지 못할 곳으로 숨어 유배 형벌을 모면했다. 하여, 이조는 '반역의 산.' 지리산을 전라도에 귀속했다. 한편, 지리산은 이조 시대 이상향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곳.
남녀가 평등할 수 있는 이상향. 전란과 형벌을 잊고 살만한 곳. 양반 상민 신분 구분이 없는 곳.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고민하는 연인들 예나 지금이나 지리산은 '사랑의 도피처.' 특히, 대성골 일대는 사랑의 도피처 명소.
덧 말.
이조시대 궁녀는 궁을 떠나도 결혼을 못하는 신분. 순결한 처녀라도 왕과 혼례를 치룬 '왕의 여자'인 탓. 이조시대 궁녀들은 한 방에 2명 씩 거주하며 궁궐 생활.
상궁은 정 5 품 명예를 누릴 수 있는 신분. 그러나, 외로움을 견디지못해 동성애가 성행. 궁녀가 성욕을 해소할 방법은 오직 동성애 뿐.
외로움 달래려 담배도 많이 피웠던 궁녀. 정 5 품이면, 어지간한 고을 원님과 동격. 춘향에게 숙청을 강요한 남원 원님도 정5품.
정 5 품 신분이라도 숙청들 관비가 많았던 원님. 궁녀는 왕의 성은을 받지 못하면 평생 처녀의 몸. 법도를 어기고 외간 남자와 살을 섞은 궁녀는 죽음.
임금 말고는 사랑에 빠질 수 없었던 궁녀. 궁녀가 사랑을 이룰만한 곳은 어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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