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가 들려주는 이완용 외부대신의 4천불 착복
윤치호는 이완용보다 7살이 어렸다. 둘이는 독립협회에서 함께 일하기도 하고 같은 내각에서 임용되어 고종의 총애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윤치호는 이완용의 탐욕을 혐오하였다. 이완용은 닥터 알렌이 학부에 기증한 공금 4,000불을 착복하였다. 그리고 학부협판으로 일하고 있는 윤치호에게 지불 영수증을 요청하였다. 31세의 윤치호는 38세의 노회한 외무대신 이완용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아래는 ⌜만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61쪽과 62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1896년 2월 2일(금요일)
추운편이고 흐린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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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러시아 공사관에 돌아오자, 이완용이 민상호도 있는 자리에서 내게 화를 내며 말했다. “그 영수증을 내놓으시지? 윤 협판이 그런다고 그 돈이 당신 손에 들어갈 것 같소?”
나는 놀라면서도 부드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글쎄요. 학부에서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 4,000불이 어디에 쓰였는지 보여주시기만 한다면 영수증을 써드리지요. 대감께서 그 돈에 대한 영수증을 직접 쓰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자 이 외부대신 각하는 얕잡아 보는 말투로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했다. “내 영수증이라니! 뭐하려고? 당신이 그 돈을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어디 그렇게 맘대로 할 수 있나 두고 봅시다.”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휙 나가 버렸다.
저녁 7시경에 그 일로 알렌 박사를 방문하다. 내가 알렌 박사가 맡긴 돈의 영수증 때문에 이완용과 티격태격한 경위를 애기했다. 내 말에 놀란 알렌 박사는 서류 한 장을 보여주었다. 이완용이 ‘알렌이 학부에 준 그 돈은 내 돈이다’라고 주장한 내용이다. 알렌 박사는 방금 증명이 된 이완용의 뻔뻔스럽게 “명예로운 말”을 듣게 된 것을 유감스러워 했다.
그런데 만일 이완용이 혼란스런 과도기를 이용하여, 그럴싸한 구실을 붙여 상감께서 그에게 4,000불을 내주시게 하든지, 아니면 새로 부임할 학부대신에게 처리하게 한다면 그는 영수증이 없어도 착복한 것을 덮어버리고 말 위인이다.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어찌 되었든 내가 간여할 문제는 아니다.
이완용의 4천불 착복의 이야기는 3월 2일 일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아래는 ⌜만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63쪽과 64쪽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다.
1896년 3월 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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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이완용, 이윤용, 이범진, 이재순 등이 작당해서 새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 물동이에 기름 한 방울 떨군 셈이다. 쉴 새 없이 수근 대며 술책을 부리는 일은 참을 수 없다.
엊그제는, 이완용이 외부의 이 주사를 학부 재무국에 몰래 보내서 “영수증”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학부 재무관 이해덕은 나의 허락이 없으므로 영수증을 써주지 않았다.
이완용은 아주 영리하면서 비열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이완용처럼 탐욕스럽고 영악한 관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윤치호처럼 고위직의 타락과 부패상을 기록하고 있는 공무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면 그의 일기는 50년이나 10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공개될 것이다.
21세기에 살면서 19세기 말의 고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 시대를 이해하니 그 어둡고 음습한 시대, 가난과 고통의 시대, 양반과 관료들만이 사람인 시대에 밑바닥에서 죽지 않고 생명을 부지하여 역사를 이어간 갑남을녀, 장삼이사가 위대하게 보였다.
기록을 남긴 윤치호에게 감사를!
양반 관료들에게 짓밟히며 모질게 살아남은 우리 조상님들께 감사를!
2023년 11월 26일 주일 자시
우담초라하니
참고문헌
윤경남 번역, ⌜만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신앙과지성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