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마고할미(麻姑婆婆)/지리산성모(聖母)에게 신고하러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雲峰]

<2021년 12월 8일>

국립공원공단에서 산불통제를 위해 대부분 등산로를 잠정 폐쇄했으나, '백무동 → 하동바위 → 장터목 → 천왕봉 → 중산리' 구간은 365일 개방이라 선택의 여지없이 이 코스로 오를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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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국립공원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은 3개도(경상남도, 전라남·북도), 1개시, 4개군, 15개 읍·면의 행정구역이 속해 있으며, 그 면적이 483.022㎢로서 22개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지리산(智異山)을 글자 그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 이라 한다. 이 때문인지 지리산은 여느 산보다 많은 은자(隱者)들이 도를 닦으며 정진하여 왔으며 지리산 골짜기에 꼭꼭 숨어든 은자는 그 수를 추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민족적 숭앙을 받아온 민족 신앙의 영지(靈地)였다. 지리산의 영봉인 천왕봉에는 1,000여 년 전에 성모사란 사당이 세워져 성모 석상이 봉안되었으며, 노고단에는 신라 시대부터 선도성모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다. 반야봉, 종석대, 영신대, 노고단과 같은 이름들도 신앙을 상징한다.

지리산국립공원 및 주변은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중생대 쥐라기의 화성암류 및 제4 기층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지리산지의 중앙 부분 가운데는 반상화강암이 분포되어 있고 주변에는 화강암질 편마암이 두루 분포하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의 지질 특성을 관찰할 수 있는 지질명소는 천왕봉 일대, 뱀사골-피아골 계곡, 노고단 일대 등이 있다.

지리산 일대는 높은 봉우리가 많으면서도 웅장하고 유려한 계곡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주 능선의 거리가 25.5km로 60여 리가 되고, 둘레는 320여 km로 800리쯤 된다. 지리산의 너른 품 안에는 1,500m가 넘는 20여 개의 봉우리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의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20여 개의 긴 능선이 있고 그 품속에는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 피아골, 뱀사골 등 큰 계곡이 있으며, 아직도 이름을 얻지 못한 봉우리나 계곡이 많다.

이렇게 넉넉한 지리산의 웅장하고 아늑한 산세는 영·호남의 지붕으로서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며, 생명의 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리산의 북쪽으로는 만수천-임천-엄천강-경호강-남강-낙동강이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흘러 생명수를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천왕봉 바로 아래 있는 천왕샘을 비롯하여 주 능선 곳곳에서 끊임없이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산은 사람을 가르고, 강은 사람을 모은다." 고 했다.

경남의 하동, 함양, 산청,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 이렇게 3도 1시 4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풍부한 동·식물만큼 그 문화는 동서간을 이질적이면서도 다양한 문화권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지리산은 단지 크고, 깊고, 넓은 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다른 매력이 있는 산이다. - 국립공원공단

지리산성모(智異山聖母)

『여지승람 輿地勝覽』 진주목 사묘조(祠廟條)에 의하면, 지리산 천왕봉(天王峰) 마루턱에 성묘사(聖廟祠)가 있고, 그 안에 성모상이 있다고 한다. 이 신을 성모라고 하는 것은 여신임을 의미하며, 이 신의 영력(靈力)이 컸다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예컨대, 성모상의 이마에 칼자국이 있는데 그것은 왜구들이 이 성모가 자기들을 돕지 않았다고 칼로 치고 간 것이라 하거나, 이 산신에 빌어 비를 그치게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많은 사람이 지리산성모의 신비성을 기술하고 있는데, 특히 민간에서는 고려 태조의 어머니라고 하여 숭상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 於于野譚』에는 원근에서 무당들이 숭배하였다고 하며, 또 이승휴(李承休)는 『제왕운기 帝王韻紀』에서 천연(天然)이라는 시승(詩僧)이 음사(淫祀)의 본거지인 성모사(聖母祠)를 부수어버렸다고 한다. 이는 이 산신이 무속적 신앙의 대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키바(秋葉隆)는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무속고 朝鮮巫俗考』를 인용하여 무조전설(巫祖傳說)을 주장하였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자 미상의 『무녀고 巫女考』라는 사본에 ‘신라 중엽에 함양에 법우화상(法祐和尙)이 딸을 여덟 두어 팔도에 보내어 무당으로 삼았다고 하나 그 진실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무조전설의 하나로 법우화상에 관한 이야기는 『조선무속고』에서 세상에 전하기로 지리산 엄천사(嚴川寺)에 법우화상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자주 도행(道行)을 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산간을 보니 비는 오지 않는데 안개가 끼어 그 길을 찾아 올라가서 천왕봉 꼭대기에 올랐다. 거기서 키가 크고 힘센 여자를 만났는데 그녀는 자칭 성모천왕으로서 하늘에서 인간세계로 내려왔는데, 당신과 인연이 있어 물의 술수를 써서 중매가 되어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하였다. 이에 집을 짓고 살아 여덟 딸을 낳았다. 자손들이 번성하여 무술(巫術)을 배웠고, 방울과 부채를 들고 아미타불을 부르면서 법우화상을 외치며 방방곡곡으로 다니며 무업(巫業)을 하였다. 세상에서 이를 큰무당이라고 하여 ‘지리산정에 올라 성모천왕을 맞아 신을 내린다.’는 등의 구절이 있고, 또 고려 ‘박전지(朴全之) 용엄사중수기(龍嚴寺重修記)’에 ‘성모천왕은 지리산신’이라 하였고, ‘지금 산 아래에는 백무촌(百巫村)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전설은 고대 산신신앙과 불교 무속이 융화된 것을 의미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14년 4월 지리산 피아골 대피소>

2012년 건강상의 이유로 그동안 간헐적으로 해오던 산행을 매 주말 다니기 시작하며, 집에서 멀지 않은 근교 산을 다녔다. 산에 못 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원교 산은 교통의 불편함과 약간의 두려움 때문에 찾지 않는 산 생활을 이어오다가, 이제는 북한산을 비롯한 주변 산은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안 가본 코스가 없을 정도가 돼 슬슬 지겨워지는 와중에 우연히 친구와 옛이야기를 나누다가 과거 학창 시절 같이 갔던 피아골 대피소 얘기가 나왔다. 둘 다 옛 추억에 젖어 2014년 4월 아무 준비 없이 무턱대고 구례로 향해, 버스로 피아골 마지막 마을인 직전마을로 간 후 피아골 대피소를 다녀왔다.

<2014년 8월 아들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

산행이라 부르기도 뭐한, 2014년 4월 피아골 대피소까지의 산행이 중요한 이유는 별생각 없이 시도했다가, 문득 깨달았다. 집 주변 산이 아니라도 시간 계획만 잘 세우면 당일에 대한민국의 웬만한 산은 다 다녀올 수 있다는 것과 종주도 어렵지 않다는 걸. 해서 그해 5월 다른 친구와 둘이 두려움을 가지고 먼저 지리산 세석 대피소에서 1박 하는 성중종주에 도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 바로 8월에 중학생이었던 아들과 성백종주를 했다. 옛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갔던 피아골 대피소가 트리거가 되어 그해에만 지리산을 여섯 번 방문했다. 이후 많은 해는 여섯 번, 적은 해는 두 번 지리산을 탐방했는데, 세 번 방문했던 2017년 빼고는 한 번은 꼭 천왕봉에 올라 마고할미에게 신고했다.

<2021년 11월 6일 지리산 목통골[산행기]>

아무 생각 없이 이산 저산 다니다가 목표를 세워 산을 찾아다닌 후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올라야 할 산이 많아, 지리산 방문을 위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리산을 간다고 해도, 잘 알려진 능선이나, 봉우리가 아니라, 미지의 능선과 계곡을 찾아다녔다. 현재는 천고지 산행에 미쳐 어떻게 빨리 목표를 달성할까에 집중하느라 내년 1월 말까지 산행 계획이 잡혀있다. 해서 아쉬우나 작년에 다녀왔으니, 연례행사인 마고할미에게 하는 신고는 건너뛰고 내년 초에 신년 산행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2020년 마지막 산행인 운달 산행기의 끝에 "2020년 천왕봉에 오르지 못한 해로 기록!"이라는 글을 발견했다[산행기]. 응? 작년에 지리산에 6번이나 갔는데, 마고에게 신고를 안 했어? 올해도 안 하면 2년?! 그래서 올해 하는 일마다 꼬인 건가?

그런데, 벌써 11월 말이라, 남은 날이 별로 없어, 급하게 천왕봉 산행 계획을 세우고 적당한 날짜를 찾았으나, 12월 말까지 주말은 이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오를 기회가 생길지 기약할 수 없는 산행이 다라, 별수 없이 평일에 신고하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4일 토요산행, 12일 일요산행으로 비는 날이 가장 많은 12월 2주 차인 7일 심야에 출발해 8일 천왕봉에 올라 마고에게 신고하고 중산리로 하산해 귀경하는 일정이다. 일정이 확정되자 마자 서둘러 11월 26일 동서울발 백무동행 심야버스와 원지발 남부행 버스를 예매했다. 원지발 남부행 버스는 평일임에도 거의 매진에 3시 50분 버스만 두 자리가 비어 아차 했으면 산행 자체를 연기해야 할 뻔했다.

산행 하루 전, 정확히는 심야버스로 들머리인 백무동으로 향하는 날. 산행 준비는 평소와 다름없으나, 무박 산행이고 합법적인 취사가 가능한 장터목 대피소가 있어, 오랜만에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카메라는 여분의 배터리가 있는 좀 무거운 거로, 대신 렌즈는 작고 가벼운 거로. 가장 큰 문제가 산행 당일의 날씨라 산악기상예보를 확인해 본바, 12월 4일, 지난 토요일 다녀온 경북 보현산과 면봉산과 다를 바가 없고, 국립공원 공단에서 제공하는 지리산 실시간 영상을 확인했으나, 눈이 쌓인 거 같지는 않아, 방한 장비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지리산 최고봉이라, 아이젠과 스틱은 챙겼다. 그리고 예매한 버스가 28인승 우등 1인 좌석이라 혹시 2인 좌석이 많이 남아 있으면 자리를 변경하기 위해 예매 현황을 확인했다. 12월 7일 버스 출발 8시간 30분 전인 3시 30분경 팔린 자리는 1좌석에 불가했다. 이 상태라면 기사와 둘이 가는 여행이라 굳이 자리를 변경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긴 산불통제를 위해 거의 모든 등산로가 잠정 폐쇄된 가운데 평일 천왕봉에 오를 등산객이 몇 명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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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듯이 거의 모든 등산로가 폐쇄된 평일이라 그런지, 동서울터미널에서 심야버스로 지리산으로 출발하는 등산객은 나를 포함 4명에 불과했다. 새벽 3시 15분경 백무동에 도착해 4시 정각에 탐방센터를 통과할 수 있어 30분간 탐방로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산행을 시작해야 했다. 지난 목통골 산행 시 1시간 정도를 기다린 것에 비하면 양호한 건가[산행기]? 어쨌든 등산로는 언제 내렸는지 알 수 없는 눈 때문에 하동바위 코스의 참샘부터 천왕봉까지 아이젠 없이는 오를 수 없을 정도라 겨울 산행이라 걸 실감했다.

애초 장터목 도착 목표는 9시였으나, 2시간이나 빠른 7시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시야를 가리는 게 아무것도 없는 탁월한 조망에 감탄을 연발하고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다. 이후 대피소 취사장에서 라면과 영양밥으로 아침을 먹고 8시경 장터목을 떠나, 9시가 조금 넘어 천왕봉에 도착했다. 장터목에서의 조망에 감탄했으면, 천왕봉에서의 조망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더 좋았던 건 천왕봉에 아무도 없었다는 거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천왕봉에 오르기 시작해 수십 번을 올랐으나, 바람도 불지 않는 천왕봉에 혼자 덩그러니 있는 건 처음이다. 해서 평소에는 생각도 못 했던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주능선, 남부능선, 서부능선, 중봉에서 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저 멀리 사량도, 백운산, 함양의 기백산 등, 물론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다양한 각도에서 인증도!

대단히 만족한 가운데 천왕봉을 떠나, 마고할미/지리산성모에게 신고하기 위해 중산리로 하산 중 대낮에 이 구간으로 하산하는 건 2014년 종주 산행 후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해서 남는 건 체력과 시간이라, 이 기획에 평소 지나치기만 했던 법계사를 둘러보기로 하고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왼쪽 가운데 기둥에 있는 의외의 그림에 깜짝 놀랐다. 마고할미다. 오른쪽에는 백호! 그리고 별생각 없이 대웅전으로 갔는데, 적멸보궁이다. 응? 그럼 하고 뒤를 보니 바위 위에 삼층석탑이 있었다. 진신사리 여부는 모르겠고, 탑 근처로 가 사진을 찍고 돌아 내려오는데, 야외에 좌불이 있는 거 같아 유심히 보니 부처가 아니라, 쪽 찐 머리에 한복이다! 깜짝 놀라 올라가 보니, 마고할미/지리산성모 좌상이다. 일주문에서 초상을 봤을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거대 좌상이라니.

천왕봉에 올랐던 목적이 마고할미상/지리산성모상을 보기 위함이니, 다른 성모상이기는 하나 내가 왔음을 신고하고 중산리로 하산해 성모상이 있다는 천왕사로 향했다. 천왕사는 중산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1km 정도를 더 가야 했다. 고로 정류장 기준 2km가량 왕복해야 한다. 천왕사까지는 이정표가 없어, 폰의 앱에 의지해 찾아가니, 대웅전 공사가 한창이고, 그 공사장 옆으로 난 계단 위에 꽤 크고 넓은 간이 건물이 있는데, 그게 산신각으로 성모상을 모셔 놓은 곳으로 보였다. 당연히 계단으로 산신각을 행해 가는데 의외의 동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뱀이다. 계단에 버티고 꼼짝을 안 한다. 겨울잠 자는 시기를 놓치고 햇볕 땃땃한 계단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건지, 지리산성모의 수호 동물이라, 과거 타 종교인에게 수모를 겪었던 성모상을 지키고 있는 건지.

뱀을 지나쳐 계단 정상에 도착해보니, 거의 강단 수준의 산신각과 공사 중인 대웅전을 대신해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임시 대웅전이 있었다. 먼저 대웅전 창으로 보이는 본존불에게 신고 후 산신각으로 들어가니, 평소 꽤 많은 신자가 모여 제를 올리는지, 규모가 대단했고, 바위를 파서 마고할미상/지리산성모상을 모셔 놓은 쪽은 벽이 없는 적멸보궁과 비슷한 구조였다. 말로만 들었던 성모상의 실체를 보는 순간이다. 할미에게 내가 왔음을 신고하고 주변을 둘러본 후 산신각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며 뱀을 찾았다. 올라갈 때는 계단 중앙에 버티고 있던 애가 내려오며 보니, 한쪽 옆으로 비켜나 있었다. 해서 '가서 자라'고 권하자, 바위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러 가는 건지, 수호 동물의 임무를 완수하고 철수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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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주위에 있는 식당 중 그래도 평일임에도 서 있는 차가 몇 대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입구에는 크게 "더덕구이 정식"을 크게 써놓은 게 있어, 당연히 그걸 주문하려 했으나, 2인분 이상 가능이라, 시래기 국밥과 안주로 도토리묵을 주문했다. 당연히 '좋은데이'도! 먼저 국밥이 나와 밑반찬과 함께 안주 삼아 소주를 들이켜고 있으니, 주방에서 직접 묵을 들고 와 '날씨가 추울 때는 따뜻한 묵이 좋다'며 건네주는 걸 받아 식탁에 놓으면 감사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하나 집어먹다가 다시 뱉을 뻔했다. 소금 덩어리다. 마땅한 안주가 없어 최대한 간장을 털어내며, 멸치볶음 위주로 ‘좋은데이’ 두 병을 마시고 2시 5분 원지행 버스를 타기 위해 1시 50분경 식당을 나왔다.

좋은데이 두 병을 마시고 혹시 원지를 지나칠까 봐 잠도 못 자고 창밖의 경치를 감상하며 2시 50분경 원지에 도착해, 혹시 서울행 버스가 있나 확인했다. 모바일로 구매가 가능한 가장 가까운 버스는 3시 50분 차로 이미 서울에서 예매한 차고, 혹시나 현지에서만 구매 가능한 좀 이른 시간의 버스가 있나 해서 물었다. 물론 없었다. 거의 비는 한 시간 동안 뭘 할까 고민하다가 술을 더 마셨다가는 서울에 가지도 못할 거 같아,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 후 3시 45분에 터미널로 돌아갔다. 예상대로 5분 정도 연착한 버스 짐칸에 배낭을 넣고 자리에 가 앉아 바로 잠이 들었다. 서울에 가까워 잠이 깼고, 7시 10분경 남부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며 보니, 카메라가 없다! 깜짝 놀라, 다시 자리로 돌아가 봐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원지 터미널 승차장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사진을 폰으로 전송하고 있다가, 버스가 도착하자, 카메라는 의자에 두고 버스 짐칸에 배낭에 넣고, 바로 버스에 탔다. 고로 카메라는 의자 위에 있다. 당연히 내가 가진 사진은 핸드폰으로 전송한 몇 장에 불과하다. 카메라는 아깝지 않은데,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는 최고의 전경을 찍은 사진을 잃은 게 심히 속이 쓰리다.

애초 계획대로 '백무동 → 하동바위 → 참샘 → 아래소지봉 → 윗소지봉 → 장터목 → 제석봉 → 천왕봉 → 천왕샘 → 법계사 → 칼바위 → 중산리 → 천왕사 → 중산리'의 18.02km(트랭글), 9시간 31분의 마고할미상/지리산성모상 탐방 산행이었다. 이동 8시간 27분, 휴식 1시간 4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최고의 날씨에 등산은 겨울, 하산은 여름, 두 계절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산행이었다.

그 탁월한 조망을 다시 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으나, 2022년 비슷한 시기에 올해와 같이 진행해볼 생각이다.

카메라는 아깝지 않으나, 수많은 사진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애초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산행기를 안 쓸 생각이었으나, 다음 산행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