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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산 도솔암 낙조대 천마봉
2022년 10월 29일, 다섯째주 일요일.( 8˚도 ~ 22˚도)
특별산행 / 대둘 선운사 가을 단풍나들이
10월 29일 아침 08:00 시청역 1번 출구 집합
코스 : 선운사 주차장-송악-선운사-도솔계곡-도솔암/마애불-커다란 굴-천마봉-도솔길-주차장
난이도 : 왕복 10km 채 안됨. 난이도 하, 4 - 5시간 소요예정
산행안내 팀장 : 샤넹 / 박찬인
사진 청마(靑馬)
선운산은 도솔산(兜率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한다.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며, 예로부터 도솔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백제 때 창건한 선운사가 유명해지면서 선운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선운산은 고창의 서부 해안가에 인접하여 자리한 잔구성 산지로 서쪽으로는 서해에 면해 있고 북쪽으로는 곰소만을 지나 변산반도와 마주한다. 선운산도립공원은 천왕봉(336m)을 중심으로 경수산,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구황봉 등이 선운산의 동쪽으로 흐르는 선운천의 골짜기만 살짝 남겨둔체 말발굽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선운산의 주봉은 선운사의 서쪽 봉우리에 해당하는 도솔봉이며, 수리봉으로도 불린다. 제일 높은 봉우리는 경수산의 경수봉이다. 선운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선운천을 따라 주진천에 합류하고, 서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궁산저수지와 해리천을 통해 서해로 흐른다. 선운천은 저평한 계곡을 흐르지만, 산지는 해발고도에 비해 경사가 심한 편이다. 선운천 주변으로는 선운산 야영장, 선운산 생태숲, 숙박업소, 식당 등이 들어서 있을 정도로 평지가 많다. 입구에서 약 4㎞에 걸쳐 동백나무숲이 자리하고 있으며, 4월과 5월에는 동백꽃이 꽃 병풍을 이룰 정도로 아름답다.
송악은 눈보라 치는 매서운 추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늘푸른 덩굴나무다. 따뜻한 남쪽 섬 지방과 서남해안을 따라 인천 앞바다까지 흔하게 자란다. 그러나 내륙으로는 고창 선운사 일대가 자랄 수 있는 북쪽 끝자락이다.
선운사 주차장 옆 선운천 건너편에는 천연기념물 367호로 지정된 송악 한 그루가 절벽에 붙어 자라고 있다. 이 송악은 굵기는 물론 나무 길이와 나이까지 모두 우리나라 최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작은 절벽의 아래쪽에 뿌리를 박고 절벽을 온통 뒤덮고 있다. 줄기는 지난 세월의 험난함을 말해주듯 아래서부터 구불구불하게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바위에 오랫동안 붙어 있다 보니 색깔마저 바위를 닮아버린 줄기는 이리저리 용트림으로 이어간다. 땅 위 약 5미터 정도부터 비로소 가지가 나와 잎 달림을 한다. 갈래줄기를 합친 땅에 닿은 밑 둘레는 0.9미터이고, 뿌리에서부터 절벽 꼭대기까지 걸쳐 있는 나무의 길이는 약 15미터이며, 가지가 퍼져 있는 너비는 12.8미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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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산관리사무소는 탐방객들의 방문시간에 맞춰 평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주말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폭포를 운영한다. 도솔폭포는 선운산 도솔제 앞에 솟아난 천연바위 위에 하천수를 끌어올려 높이 50미터의 장대하고 웅장한 물줄기를 연출한다. 선운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도솔암 올라가는 길에 있는 연리목
도솔암 진흥굴
선운산 사자암 앞에 있는 굴이다. 진흥굴은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태자 때부터 불교에 뜻을 두었다가 끝내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로 와서 승려가 되어 좌변굴에서 수도 정진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후세에 이 굴의 명칭을 진흥굴이라 개칭했다. 진흥왕은 승려가 된 후 이름을 법운자(法雲子)라 칭하고 사랑하는 공주 중애를 위하여 중애암(重愛庵), 왕비의 별호 ‘도솔’을 따서 도솔암(兜率庵)을 건립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도솔암 장사송(兜率庵 長沙松)
198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23m이며, 가슴높이둘레가 2.95m로, 지상 2.2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져서 자란다. 수관폭은 동서가 16.8m이고 남북이 16.7m이며 수령은 600년이라고 보고 있으나 단순한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외관으로는 소나무같이 생겼으나, 지상 40㎝ 정도에서 갈라져서 자라는 동안 높이 2.2m쯤에서 다시 합쳐진 것으로 반송(盤松)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창 주민들이 장사송(長沙松)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호하게 됨으로써 장사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진흥굴 앞에서 자란다. 주변에는 다른 소나무와 더불어 자생수종들이 자라고 이 나무에 얽힌 전설도 있음직하지만 아직 밝혀진 것이 없다.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長沙縣)에서 유래하여 붙은 이름이다. 옛날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진흥굴 앞에 있다 하여 진흥송이라고도 불린다. 장사송의 나이는 약 600살, 높이는 약 23m에 이른다. 장사송은 가슴 높이 둘레 3m에 동서남북 17m로 가지가 퍼져 있으며, 지상 40㎝쯤에서 가지가 난 흔적이 있어 키가 작고 가지가 옆으로 퍼진 소나무인 반송(盤松)으로 분류되고 있다. 나무줄기가 지상 2.2m 높이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 위에서 다시 여덟 갈래로 크게 갈라져 자라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 팔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듯 수려하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답고 생육 상태가 양호하며, 보기 드물게 오래된 소나무로서 보존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장사송의 옆에 있는 돌 비석의 뒷면에는 장사녀(長沙女)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장사녀는 고려사(高麗史) 등에 전해지는 백제 가요 선운산곡(禪雲山曲)에 나오는 인물이다. 선운산곡에서 장사녀는 선운산에 올라가 정역(征役)<조세(租稅)와 부역(賦役)>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노래를 부른다고 전해진다.<현지 안내문>
선운사 도솔암(禪雲寺 兜率庵) 극락보전
선운사 도솔암(禪雲寺 兜率庵)
선운사 도솔암(禪雲寺 兜率庵) 내원궁 범종
선운사도솔암마애불(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200호. 백제의 위덕왕이 선사 검단(黔丹)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조각하고, 그 위 암벽 꼭대기에 동불암(東佛庵)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이 불상은 낮은 부조(浮彫)로 된 장대한 크기의 마애상으로서 결가부좌 (結跏趺坐)한 자세로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뾰족한 육계(肉髻)가 표현된 머리는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불분명하다. 이마에 백호(白毫: 부처의 두 눈썹 사이에 있는 희고 빛나는 가는 터럭)가 돋아 있는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다. 하지만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앞으로 쑥 내민 듯한 두툼한 입술 등으로 인하여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두 귀는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15호)이나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에서처럼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는데 힘이 없다. 목은 머리와 몸체가 거의 맞붙어 드러나지 않으나 가느다란 선으로 된 삼도(三道)가 표현되어 있다.
좁고 평평한 어깨에 걸쳐 입은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옷주름 선이 선각(線刻)으로 지극히 형식화되어 있다. 입체감이 결여된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선명하면서도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 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펼쳐 아랫배에서 서로 맞대고 있는 큼직한 두 손은 사실성이 떨어져 있다. 손 아래에 드러나 있는 두 발 또한 손과 마찬가지로 크게 조각하였는데, 양감 없이 선각화되어 있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은 대좌의 상대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다. 하대는 매우 간략화되고 형식화된 복련화문(覆蓮花文)을 표현하였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다. 머리 위를 비롯한 이 불상의 주위에는 수많은 네모난 구멍들이 패어 있다. 이것은 아마도 서울 북한산 구기동 마애여래좌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불상 앞에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목조전실(木造前室)의 가구(架構) 흔적으로서 마애석굴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체에 비하여 머리와 손발이 커진 경향, 육계와 머리의 구별이 없이 육계가 뾰족한 점, 가슴 아래로 가로질러 새겨진 네 가닥의 군의의 띠 매듭 그리고 탄력성이 줄어들고 세부 묘사에 있어 정교함이 결여된 불상 양식 등에서 고려시대 조각의 전통적인 수법을 보이고 있다.
도솔천내원궁(禪雲寺兜率庵內院宮)
천인암(千仞岩)이라는 기암 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 위에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물은 작은 규모이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통일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년(1817년)까지 몇 차례 보수한 것이다. 서쪽 암벽 밑에는 석불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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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禪雲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本寺)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영산전·관음전·팔상전·명부전·만세루(萬歲樓)·산신각·천왕문·대방(大房)·요사(寮舍) 등의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대웅전은 정면 5칸의 맞배기와집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만세루는 보물 제2065호로 지정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279호인 선운사금동보살좌상(禪雲寺金銅菩薩坐像), 보물 제280호인 선운사지장보살좌상(禪雲寺地藏菩薩坐像),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인 영산전목조삼존불상(靈山殿木造三尊佛像)을 비롯하여 약사불상(藥師佛像)·삼존불좌상·보살입상(菩薩立像)·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십육나한상(十六羅漢像)·판관상(判官像)·녹사상(錄使像)·사자상(使者像)·십대왕상(十大王像)·동자상(童子像)·판관상·호법신장상(護法神將像, 仁王像)·팔상전석가불좌상 등이 남아 있다.
그리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인 6층석탑, 제31호인 범종, 그리고 중종과 부도(浮屠)·탑비(塔碑) 등이 남아 있다. 이들 중에서도 금동보살좌상과 지장보살상 등은 미술사적으로도 주목되고 있다. 동불암(東佛庵)의 마애불상(磨崖佛像)은 높이 13m, 너비 3m이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와 탑비 중에는 김정희(金正喜)가 쓴 백파대사사적비(白坡大師事蹟碑)와 채제공(蔡濟恭)이 쓴 설파대사사적비(雪坡大師事蹟碑)가 있고, 절 아래 마을 입구의 오른쪽 밭 가운데 「선운사동구」라는 시를 새긴 서정주(徐廷柱)의 시비(詩碑)가 서 있다.
이 밖에도 이 절 주변에는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검단선사에게 쫓긴 이무기가 당황하여 바위를 뚫고 나갔다는 용문굴(龍門窟), 조망이 뛰어난 만월대(滿月臺),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 등의 명소가 있다. 19세기 전반기까지는 이 절에 속한 산내(山內)의 암자가 무려 50여 곳이나 있었다. 곧,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상도솔(上兜率)·기출암(起出庵)·천리암(泉利庵)·수선암(修善庵)·연대암(蓮臺庵)·성대암(聖臺庵)·수다사(水多寺)·동암(東庵)·도성암(道成庵)·청풍암(淸風庵)·천등암(千燈庵)·광정암(廣井庵), 1618년에 인해(印海)가 창건한 내원암(內院庵), 1665년 학철(學哲)이 중창한 석상암(石床庵), 1666년에 학철이 창건한 청련암(靑蓮庵)이 있다.
또 1674년에 영조(靈照)가 창건한 백련암(白蓮庵), 1672년 사준이 창건한 상남암(上南庵), 1676년 처인(處忍)이 창건한 중남암(中南庵), 1693년 천성(天性)이 창건한 동운암(東雲庵), 1658년 한해인(韓海印)이 창건한 하도솔(下兜率), 1702년 거사(居士) 최태신(崔太信)이 창건한 북도솔(北兜率), 1699년 명우(明祐)가 창건한 미륵암(彌勒庵), 영조가 창건한 수도암(修道庵), 1596년 정도암(鄭道巖) 등이 창건한 고암굴(高巖窟), 1573년 상일(尙日)이 중창한 은선암(隱仙庵)이 있다.
또 1576년 상조(尙照)가 중창한 은적암(隱寂庵), 1582년 경신(敬信)이 중창한 상암(上庵), 1583년 성문(性文)이 중창한 월출암(月出庵), 1575년 철심(哲心)이 중창한 의경암(義敬庵), 1710년 해운(海雲)이 머물던 명심암(明深庵), 1709년 경문(敬文)이 창건한 한산전(寒山殿), 1707년 지휘(智輝)가 창건한 백운암(白雲庵), 1713년 태경(太敬)·응묵(應默)·봉흠(峯欽) 등이 창건한 성도암(成道庵) 등의 30여 암자와, 이름만이 보이는 20개 암자가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동운암·석상암·참당암(懺堂庵)·도솔암 등 4개의 암자만이 남아 있다. 특히 도솔암의 내원궁(內院宮)에 봉안된 선운사지장보살좌상은 보물 제280호이고. 선운사참당암대웅전은 정사각형 맞배집으로 구포(九包)장식의 건축양식이 독특한데 보물 제80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함께하신 회원님들 수고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