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꼰대질 >
문하 정영인
전철을 탔다. 3호선을 탔다. 경로석에 앉았다. 내 앞에는 할머니가 앉아 있다. 바로 다음 칸 통로 쪽이다. 어떤 할아버지가 통로를 통해서 그 할머니 앞을 지나갔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문 닫고 가세요.”
그 소리를 들은 할아버지는 마뜩찮은 눈빛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문을 열고 들 어온 게 열린 문을 지나온 것이요. 그러니 문을 연 사람보고 닫으라 하세요.”
그 노인네는 횡 하니 앞으로 갔다. 할머니는 구시렁거렸다. 그러면서 문을 닫지 않고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그 할머니 목에는 작은 금십자가가 번쩍거렸다.
피장파장이고 도긴개긴이다. 일종의 꼰대질이다. 나도 꼰대족이긴 하다.
가끔, 전철 안에서 젊은이들 앞에 서서 자리를 양보 안하다고 투덜거리는 노인네들을 본다. 한번은 경로석 앞에 사람이 많아 젊은이 앞에서 서 간적이 있다. 앞에 앉은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했다. 나는 괜찮다고 극구 사양했다. 젊은이는 자꾸 앉기를 권했다. ‘제가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면서….’ 나는 되도록 경로석 앞에 서서 간다.
하루는 지하철역 지하 3층에서 지상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에는 한 무리의 남자 노인네들과 여노인네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나도 그속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리바리한 할머니 한 분이 탔다. 엘리베이터는 ‘만원 초과’라 올라가지 않았다. 그 뒤늦게 탄 할머니는 그 상황을 빨리 파악하지 못했다. 그랬더니, 먼저 탄고 있는 남자 늙은이들의 빈정거림이 쏟아져 나왔다. ‘눈은 어따 두고 다니느니, 뭣도 모른다느니….’ 결국 상황을 파악한 여노인네가 내렸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갔다. 또 남자 꼰대들의 육두문자로 그 여자 노인네를 향해 쌍소리까지 해댄다.
나는 속에 갇혀서 내가 내리지 못했다. 그 노인네들은 무리 지어 어딘가를 같이 몰려다니는 것 같았다. 노인네들을 상대로 하는 ‘떴다방’ 같은….
길어야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차를 가지고 그렇게 야단들이다. 아마 먼저 탄 노인네들은 굉장히 먼저 가야 하는 엘리베이터 탑승 권한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나 보다. 그러니 여노인네가 그들의 권한을 크게 침해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것이 다 꼰대질이다. 한국인은 ‘~질’를 잘한다. 친목회원 끼리 마구잡이로 집단행동을 하는 친목질, 남자들이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하는 계집질, 갑의 을에 대한 갑질, 남을 시기하는 이간질, 있는 자들의 돈질이나 권력의 낙하산질!
무조건 반대질도 그렇고, 남을 헐뜯는 뒷담화질이나 악풀질도 여간 아니다. 결국 그런 것들은 남의 생명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무조건 공짜가 좋다는 무상복지질이나 다 같아야 한다는 평등질도 그렇다. 거기다가 한국 국회의원들의 분탕질.금권을 가진 자들의 돈하마질도 우리 마음을 들끓게 한다.
하기야, 역사적으로 우리 서민들은 나으리질에 진절머리쳤다. 참으로 서민들은 나으리들이 하는 갑질을 해보기 힘들었다. 늘 을의 입장이던 사람들이 조그만 갑질을 해보자고 하는 것 같다. 노인네들의 경로질 등도 역사적으로 뼈아프게 각인 되어 온 트라우마일 것이다.
젊은이들은 부모가 금수저인 덕분에 불로속득으로 분탕질하는 자식들을 보고 헬조선을 안 외치겠는가? 뒷심 부모 덕에 군대를 안 가거나 편한 곳에서 꿀보직에 근무하는 권력질에 불만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원정분만의 이중국적으로 군대를 안 가는데 누가 충성질을 할까?
그래서 우리 사회는 개꼬리만한 권한이나 자존심을 침해 당했다고 생각하면 열불이 터지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사달이 일어난다.
같이 대접 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 단초가 아마 이즈음 해 보지도 않고 말도 많은 ‘김영란 법’인지도 모른다. 마치 수학 공식 같은 ‘3 - 5 - 10’ 을 밀당하면서 말이다. 사실, 서민들은 1인당 3만원하는 식사를 하기가 버겁다. 선물도 그렇다. 이번 추석에 그리도 많이 택배로 실려오건만…. 경조사비는 특수한 경우 아니면 5만원이다. 하기야 다 주변머리 없는 인간의 넋두리다.
원래 자본주의란 모든 평등주의와 거리가 먼 것이다. 서민은 평균질 속에 그저 묻어가는 것이리라. 여기에는 항상 돈질이 작용한다.
이즈음 인터넷 떠도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노인네들의 꼰대질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그간 못해본 조금만 갑질을 해보고자 하는 욕망은 나부터 꿈틀거린다.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써 있다는 “요즘 젊은 것들은!”에 “요즘 늙은 것들은!” 이라는 말도 타임캡슐에 함께 넣어야 하겠다.
어차피 나도 역시 꼰대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