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구려 왕족 인터뷰] 60대 후손 고마 후미야스 (高麗文康)
2021-07-25
[일본의 고구려 왕족 인터뷰] 60대 후손 고마 후미야스 (高麗文康)
2004.08.16
고구려 왕족 약광의 60대 후손 고마 후미야스가 일본땅에 처음 뿌리를 내린 조상을 모신 신사의 본전을 가리키고 있다. 히다카=예영준 특파원
동아시아의 제국으로 군림했던 고구려는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고구려 왕조의 핏줄은 바다 건너 일본땅에서 1300여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나는 중국계 아닌 한민족 후예"
이국땅에 뿌리내린 고구려의 후예는 고려(高麗)란 국호를 성씨로 삼았다. 일본에선 고구려를 고려로 표기하고 '고마'라고 읽는 경우가 많다.
*** 사절로 왔던 조상이 정착
14일 고구려 왕족의 후손을 찾아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로 향했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중 간 갈등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쿄(東京)에서 전철로 한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고마가와(高麗川)에 내리자 역 앞 광장에 우뚝 선 한국식 장승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본 고려씨의 총본산 고려신사(高麗神社)는 여기서 1.5㎞쯤 더 들어간 산기슭에 있다.
"잘 오셨습니다. 저는 고구려 왕족의 60대 후손입니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고구려의 후예란 자부심을 갖고 살아 왔습니다. 저는 한국인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노환으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아들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가 맞아주었다. 그는 아버지 시즈오(澄雄.77)가 맡고 있는 신사의 대표직인 궁사(宮司)를 언젠가는 물려받아야 한다. 후미야스가 들려준 가문의 유래는 이랬다.
"고구려에서 건너온 왕족 약광(若光.일본명 잣코)이 간토(關東)지방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고구려 출신 1799명을 이끌고 이곳에 고려군장으로 부임해 왔습니다. 이 같은 내용은 일본의 고대 역사서인 '속일본기'에 나옵니다. 그는 사절단으로 666년 일본에 왔다가 2년 후 고구려가 망하자 돌아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구려인들은 당시 미개척지이던 이 지방을 개간하고 평화롭게 살았다. 26대까지는 고구려인끼리만 결혼해 혈통을 보존했다. 가마쿠라에 막부를 연 미나모토 요리토모와 혼맥을 맺고 가신이 되기도 했다.
후미야스는 별실로 기자를 데려가 '고려씨계도(高麗氏系圖)'를 보여주었다. 약광부터 60대 후손인 자신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집안의 내력을 기록한 족보였다. "일본에서 이런 계도를 간직한 집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 가문의 자부심은 여기서 나온 겁니다."
*** "고려신사 다녀가면 출세"
고마 가문에 위기가 온 것은 14세기 무로마치 막부 때였다. 정권과 반대편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자칫 멸문의 화를 당할 뻔했다. 고마 가문은 종가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분가해 다른 성씨를 쓰게 됐다. '다시는 전쟁에 나가지 않는다'는 가훈이 내려오는 것도 이때부터다.
고마 가문도 근대 이후 일본에서 행해진 한반도 출신에 대한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한때 결혼 상대를 찾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집안 형편도 궁핍을 면치 못했고 대부분 다른 지방으로 떠났지요." 그래서 지금 고마씨 직계 혈통은 50여명 남짓한 단출한 씨족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 고마씨는 제2의 융성기를 맞고 있다. 고마 신사가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시데하라 기주로(弊原喜重郞) 등 이 신사를 참배한 정치인들이 차례로 총리대신이 되자 약광이 '출세의 신'으로 떠받들어지게 된 것이다. 신사 입구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조부인 마타지로(又次郞) 전 체신장관의 기념식수도 눈에 띄었다. 최근엔 연간 40만명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번창하고 있다.
고마 가문은 자신의 혈통이 맞닿아 있는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매주 목요일엔 신사에서 한국어 강좌를 5년째 계속하고 있다. 후미야스 본인도 일곱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또 매년 10월엔 재일동포 조직인 민단과 함께 마을 축제를 열고 있다.
*** 5년째 한국어 목요 강좌
후미야스는 최근 고구려사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유적을 보러 중국 지안(集安)에 간 적은 있지만 우리 조상이 중국계란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며 "나는 한민족의 후예"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고구려는 고구려사로 족한 것"이라며 "한국이든 중국이든 정부가 국가 간 자존심 싸움에 고구려를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민들에게 "고구려 역사를 잘 전승하고 유물.유적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https://news.joins.com/article/376504
일본천황, 고구려 왕족 모신 고마신사 첫 참배
2017-09-20
[앵커]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오늘(20일) 일본 사이타마현의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신사인 고마 신사를 참배했습니다.
역대 일왕 부부가 고마신사를 찾아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전향적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임혜준 기자입니다.
[기자]
도쿄에서 차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사이타마현 고마 신사.
서기 703년 고구려 유민 무리를 이끌었던 왕족 출신 약광왕에겐 고려왕이라는 성씨가 내려졌고, 이들을 기리는 고마신사는 이후 1천300년이 넘도록 재일 한인들에게 마음의 고향과 같은 역할을 해온 곳입니다.
▲ 고구려마을 주민들이 일왕을 환영하기 위해 나와 고려신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신사 입구에는 돌로 만들어진 장승이 보인다.
일본 내 가장 오래된 신사의 하나인 고마신사는 참배한 이들 가운데 다수의 총리를 배출하며, 연간 40만명이 참배하는 등 학업 성취를 비는 명소로도 잘 알려져있습니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이런 '고마 신사'를 일왕으로는 처음으로 참배했습니다.
사적인 여행이라면서 별도의 설명을 내놓지 않았으나, 그 의미는 적지 않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퇴위를 앞둔 일왕이 한반도와 역사적 인연이 깊은 이 신사를 방문한 건 일종의 반성과 화해의 메시지라는 겁니다.
일왕은 지난 3년 동안 일본의 2차 대전 패전일 희생자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이켜 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해,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화 하려는 아베 총리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지난 2001년 생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간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속일본기' 구절을 언급하며 한국과 연을 느낀다고 발언해 당시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습니다.
또 “무령왕의 아들인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줬다”고도 했고 “한국과의 교류는 이것만이 아니었다”며 “한국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후 3년만인 2004년에는 일왕의 당숙인 아사카노미야(朝香宮誠彦王)가 충남 공주시의 무령왕릉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엔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 ‘한국평화기념탑’에 참배했고, 지난해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던 한국 국보 78호인 금동반가사유상을 관람했습니다.
1년 전 방송을 통해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아키히토 일왕은 이르면 내년 말, 나루히토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줄 예정입니다.
▲ 고려신사 뒤뜰에 있는 고구려 가옥
▲ 고려강이 고구려마을을 가로질러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https://www.yna.co.kr/view/MYH2017092001800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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