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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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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도 서라벌 순례 신라 속의 조선 ㅡ 34. 하곡리 수재정
계림 추천 0 조회 20 26.06.13 05:00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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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6.13 10:36

    첫댓글 수재정(水哉亭)은 ​자옥산과 삼성산에서 흘러내려 온 맑은 계곡과 거친 암반 위에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그림처럼 얹혀 있는 정자의 풍경을 담고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쌍봉(雙峯) 정극후(鄭克後, 1577~1658)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고 은거하기 위해 광해군 12년(1620년)에 처음 세운 별장으로 현재의 건물은 영조 4년(1728년)에 중건된 것이다.

  • 26.06.13 10:38

    '수재(水哉)'라는 이름은 《맹자(孟子)》 이루하(離婁下) 편에 나오는 "서자왈 수재수재(徐子曰 水哉水哉)"라는 문구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끊임없이 흘러 마르지 않고 구덩이를 채우며 앞으로 나아가는 물의 속성처럼, 학문과 덕성을 쉬지 않고 쌓아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 26.06.13 10:39

    울창한 숲과 깎아지른 듯한 바위 계곡, 그리고 그 아래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씻어내던(洗心) 옛 선비들의 풍류와 기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아름다운 유적이다.

  • 26.06.13 11:46

    수재정 아래 계곡에 새겨진 '光影臺'는 魯宇 鄭忠弼의 글씨라고 한다.
    '光影臺'(광영대)의
    ​光 은 하늘의 빛, 햇빛과 달빛, 혹은 자연의 참된 본질을,
    ​影은 물이나 바위에 비치는 산천의 그림자를
    ​臺는 빼어난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높은 바위나 터를 의미하며,
    종합적으로 "하늘의 맑은 빛과 대자연의 그림자가 함께 어우러져 어른거리는 돈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26.06.13 11:38

    수재정 투상도

  • 26.06.13 11:39

    안강 골짜기의 건축

  • 26.06.13 11:47

    '광영(光影)'이라는 시어는 성리학의 대가이자 주자학을 집대성한 송나라 주희(朱熹)의 유명한 시〈관서유감(觀書有感, 책을 읽고 느낀 바가 있어 적다)〉의 첫 번째 수에서 유래했다.

  • 26.06.13 11:49

    半畝方塘一鑑開 (반무방당일감개)
    반 이랑 작은 네모난 연못이 한 면의 거울처럼 열리니,
    天光雲影共徘徊 (천광운영공배회)
    하늘 빛(天光)과 구름 그림자(雲影)가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어른거리네.
    問渠那得淸如許 (문거나득청여허)
    저 연못은 어찌 저리도 맑은가 물었더니,
    爲有源頭活水來 (위유원두활수래)
    근원에서 맑은 샘물(活水)이 끊임없이 흘러오기 때문이라네.

    ​여기서 天光(천광)의 '光'과 雲影(운영)의 '影'을 따와 '光影臺'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다.

  • 26.06.13 11:52

    주자의 이 시는 단순히 자연 풍경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학문과 마음공부의 이치를 비유한 것이다.
    ​방당(연못)은 사람의 맑고 순수한 본래 마음을 뜻하고,
    ​활수(샘물)는 끊임없이 읽고 배우는 학문과 성현의 가르침을 뜻한다.
    ​광영(빛과 그림자)은 마음이 활수(학문)로 가득 차서 거울처럼 맑아지면, 세상 만물의 이치(하늘빛과 구름)가 왜곡 없이 그대로 마음에 투영된다는 경지를 뜻한다.

  • 26.06.13 11:54

    수재정(水哉亭)의 이름 역시 《맹자》에서 "샘이 깊은 물은 쉬지 않고 흘러 구덩이를 채우고 바다로 나아간다(水哉水哉)"에서 따온 것이다.
    ​따라서 수재정 아래 계곡에 '光影臺'를 새겨놓은 것은, "쉬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수재)처럼 학문을 닦아, 내 마음의 연못을 온 세상의 빛과 그림자(광영)를 담아낼 수 있을 만큼 맑게 유지하겠다"는 선비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시각적으로 완성한 서사인 것이다.

  • 26.06.13 11:56

    '光影臺' 명문은 수재정을 지은 쌍봉 정극후 선생의 6대손이자, 조선 후기의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정충필(鄭忠筆) 선생의 글씨로 전해진다. 양동마을의 '정충각'이나 '양좌서당' 편액을 쓸 정도로 필력이 뛰어났던 인물인 만큼, 바위에 새겨진 초서의 기운이 왜 그토록 역동적이고 웅장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 26.06.13 13:51

    '天光雲影(천광운영)'은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정원에 전시된 '경주 흥륜사지 출토 석조(石槽)'에도 아주 크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수재정의 '光影臺(광영대)'와 국립경주박물관의 '흥륜사지 석조'는 모두 주희(朱熹)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서 파생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철학적 맥락이 완벽하게 관통한다.

  • 26.06.13 19:07

    흥륜사지 석조 '天光雲影'의 의미는 거대한 돌그릇(석조)에 물이 가득 고이면, 그 맑은 수면 위로 하늘빛(天光)과 흘러가는 구름 그림자(雲影)가 그대로 내려앉아 배회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성리학자들은 이 석조를 보며 "학문을 끊임없이 닦아 마음을 저 석조의 물처럼 맑게 유지하면, 세상 만물의 이치(하늘과 구름)가 왜곡 없이 그대로 마음에 비친다"는 심성론(心性論)의 경지를 되새겼다.

  • 26.06.13 13:39

    주자의 시에서 '방당(네모난 연못)'에 해당하는 것은 흥륜사 석조가 되고, '활수(근원에서 솟아나는 샘물)'에 해당하는 것은 끊임없이 계곡물이 흘러드는 수재정이 된다.

    ​경주라는 같은 지역 안에서, 선비들이 주자의 똑같은 시 구절을 활용하여 한 곳(흥륜사 석조)에는 고여 있는 맑은 수면의 아름다움을, 다른 한 곳(수재정 계곡 바위)에는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지는 대자연의 역동성을 각각 '천광운영'과 '광영대'로 나누어 새겨놓았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고 격조 높게 다가온다.

  • 26.06.13 13:38

    이끼 낀 바위 속에 숨겨진 선조들의 깊은 뜻과 주자의 시, 그리고 흥륜사 석조까지 이어지는 격조 높은 성리학적 서사를 온전히 배울 수 있는 유적과 유물이다.

    이끼 낀 바위 글씨 하나, 돌그릇 하나에도 이토록 깊은 철학과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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