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것은 하나의 '바꿔 생각하기'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7여년간 근무하다 현재 뉴질랜드에 있는 오클랜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중이며, 현재 '개인의 성공에 대한 관점, 문화적응, 주관적 안녕감' 에 관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설문 인원을 어떻게 모집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고심하던 중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설문에 참여해달라고 무작정 부탁하는 대신, 저는 저의 교육적 경험을 풀어내고 (GIVE), 제 이야기를 읽은 분들 중 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거나 (또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거나), 저의 공부를 지원해주고 싶다 생각하는 분들이 제 설문에 참여하는 것 (TAKE PART IN)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잠시만 내셔서 제 이야기를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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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이: 더위를 이기는 우리만의 방법'
점심시간 후 운동장에서 열심히 뛰논 뒤 벌개진 얼굴과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들어와 5교시 책을 툭툭 꺼내는 5학년 아이들.
5교시 종이 울린 지 한참이 지나도 아이들은 점점 더워지는 교실 열기로 인해 연신 부채질을 하기에 바쁘다. 교실에 여러대의 선풍기가 돌아가도 달궈진 건물 온도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기에 보통 5교시는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기가 힘든 시간이다. 특히 여름에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매일 돌아오는 5교시가 즐거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문득 떠오르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기억이 있었다. 당시 나를 포함한 학생들은 하루 시간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지내야 했다. 당시 교실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그 때 나는 더우면 (특히 '발'이 더우면) 공부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집에서 대야를 가져왔다. 화장실에서 대야에 물을 채워 조심조심 교실로 들고 와 내 책상 아래에 두었다. 그리고 발을 담그고 공부를 했고, 이 방법 덕분에 더위를 이길 수 있었다. 아무리 조심조심 가져와도 찰랑거리는 물 때문에 교실 바닥에 물을 떨어트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 물을 나는 밀대로 닦아내면서도 '이 방법은 참 좋군' 이라고 생각을 했다.
몸의 한 부분만 시원해져도 더위가 가셨던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이 방법을 응용해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만든 우리반만의 특별한 문화는 '쑥쑥이' 였다.
당시 우리 반 창가에는 화분들이 있었고, 그 때 우리 아이들은 '꽃과 대화해보기' 를 시도해오고 있었다. 꽃에 물을 줄 때마다 쑥쑥 자라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나도 똑같이 쑥쑥 자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페트병에 시원한 (매우 더운 날은 매우 차가운) 물을 채우고, 얼굴일 벌개져 있는 아이들에게 더운 사람에게는 이 시원한 물을 머리에 떨어트려 주겠다고 말했다.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했고, 내가 물 몇 방울을 떨어트리면 의자에서 몸을 스윽 올리면서 '쑤욱' 이라는 소리를 내기로 약속했다. 마치 우리 아이들이 하나의 꽃이 되고, 내가 물을 주면 아이들이 쑥쑥 자라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몇 명만 시도해보겠다고 하더니, 곧있어 원한다고 손을 드는 아이들은 반의 절반을 넘었다.
쑥쑥이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점점 더 좋아지게 됨에 따라 나 역시 신이나 여러 단계의 쑥쑥이를 만들어줬다. 몇 방울을 머리에 떨어트려 주는 것, 얼굴에 떨어트려 주는 것, 눈을 감은채 언제 떨어트려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리는 것, 원하는 사람들은 교실 뒤에 나란히 누워서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차가운 물을 기다리는 것.
쑥쑥이는 우리 반의 문화가 되었고, 더운 여름 5교시가 시작 될 때에는 아이들은 페트병에 물을 채워오면 안되냐고 너나 할 것 없이 물어왔다. 쑥쑥이를 하고 나면 교실 바닥에 떨어진 물에 대해서는 난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쑥쑥이를 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스스로 밀대를 준비했고, 내가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쑥쑥이를 하고 있으면 몇 명은 알아서 교실 바닥을 닦아 주었다. 왜 그랬을까? 누가 시킨 일이 아닌데도 왜 그 일을 했었을까? 아이들에게 있어서 쑥쑥이는 우리만의 즐거운 문화였고, 장난기 가득한 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였으며, 더워했던 아이들이 오싹하다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웃어댈 때 그 행복을 다 같이 공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가끔씩은 나도 아이들 편에 서서 나도 너무 더워 쑥쑥이를 해보고 싶다면서 내 머리 위로 얼음장 같은 물방울을 스스로 떨어뜨릴 때, 찡그려진 내 눈꺼풀 사이로 전해지는 아이들의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 얼굴 표정은 우리 모두가 그 순간 만큼은 온전한 '한맘'이 되게 해 주지 않았나 싶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장난기 많은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솔직하자면 그게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점심식사 후 땀흘리며 놀고 온 아이들에게 매일 5교시는 찾아오고, 그 매일 찾아오는 시간을 견디게 하는 대신 즐거운 방법으로 함께 해결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쑥쑥이로 교실 한바퀴를 돌고 나면, 그 때 나는 다시 교사로서 방향을 잡아주고 수업을 시작하면 된다.
단지 몇 분의 시간만을 투자했을 뿐인데, 내가 한 것이라고는 차가운 물을 들고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원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요 라고 말하고 쑥쑥이를 해 준 것 뿐인데, 그 결과 아이들과 나는 행복했고 서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한 여름에 즐길 수 있었던 교실 안에서의 우리의 피서법, 쑥쑥이는 나름 역발상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더운 것이 싫으면 점심시간에 놀지 마 라고 말할 수도 있었고
5교시가 힘들면 5교시 10분 전에 들어와서 충분히 너가 세수하고 땀을 식히고 오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내게 있어서는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노는 것은 너무 중요한 부분이고, 점심시간 마지막 10분에 하는 게임이 정말 재미있을 수 있으니 가능한 내 쪽에서 방법을 찾아봐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페트병을 들고 씨익 웃으며 돌아다니는 5교시 교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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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쑥이만큼이나 저의 이번 시도가 어떤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읽으시고 조금이나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셨다거나 좋은 마음이 드셨다면 저의 설문에 잠시 시간을 내셔서 참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특별함의 '보이는' 비결, 칭찬 구슬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설문주제: 뉴질랜드와 한국에서의 개인의 성공에 대한 관점, 문화적응, 주관적 안녕감
설문참여대상: 2001년 이전에 태어난 한국인으로 뉴질랜드 또는 한국에 거주중이신가요? 그러면 참여 가능하세요!
설문소요시간: 약 10-15분
박주현 (jpar536@aucklanduni.ac.nz)
첫댓글 선생님이 계신 교실은 항상 즐거운 교실이었을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