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소니뮤직 홍보 담당자가 약간 수줍은 듯 하얀 책자를 내밀었습니다.
볼이 발그레한 소녀 둘,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이들은 짧은 반바지 차림을 하고,
아이스크림 모양 장난감을 들고 있습니다.
신인 걸 그룹인가.
제목은 순수.
그래, 순수하게 생겼네...
'사진집이에요'
뒤에 CD도 있고요'
앳된 얼굴에 육감적인 몸매.
일명 '베이글'(얼굴은 베이비, 몸은 글래머)녀의 화보입니다.
아이 같은 옷차림에 비교적 노출은 심하지 않네요.
간혹, 야릇한 포즈를 취할 뿐, 롤리타 콤플렉스가 떠오르는 이 사진들은 사진작가 로타의 작품입니다.
외설도 예술도 아닌, 다소 심심한(?) 사진이라 생각하는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미소녀 전문 포토그래퍼죠'라고 합니다.
그는 로타의 사진이 매우 인기가 높으며, 남성뿐 아니라 여성팬도 많단느 부연설명 후에 떠났습니다.
미소녀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음악을 부록처럼 곁들인 이 상품은 지금 팝 음반 판매 1,2위에 올라 있습니다.
폴 매카트니, 비욘세, 아델, 레드 핫 칠리 페페스, 라디오 헤드의 신보를 모두 제치고 말입니다.
한때는 가요를 포함한 전체 순위 2위까지 올라 엑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죠.
팝 시장에 일어난 이 흥미로운 사건, 즉 '순수'의 돌풍 뒤엔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없는 음반시장 불황이 존재합니다.
디지털 음원 시장에 점령 당한 음반은 이제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인데요.
특히 팝은 가요가 밀려 입지가 더욱 좁아진 상태입니다.
소니뮤직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컴필레이션(모음ㅈ비) 앨범을 시도해왔는데요.
전문적인 선곡이 관건이라 여겼습니다.
음반사 직원이 고른 '내 인생을 바꾼 불후의 명곡' 라디오를 활용한 '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록페스티벌 유행에 맞춰 '페스티벌 제너레이션' 등을 발매했지만 성과는 그럭저럭, 결국 비팝 마니아(정확하게는 다른 종류의 마니아)에게 눈을 돌렸죠.
최근 여행 안내서에 '여행 중 듣기 좋은 음악'을 끼워 넣더니, 그빅야 미소녀 사진집을 출사하게 된 것입니다.
소니뮤직 관계자는 ''순수' 구매자는 기존 팝 팬이 아니라서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선곡에 신경을 썼다.
새로운 소비층 형성을 기대한다'고 전했습니다.
주객전도 형태에 대한 우려가 있고, 사진 자체에 대한 호불호도 나뉘지만 잠잠한 팝 시장에 신선한 자극임엔 틀림없습니다.
객이 돼버린 음악을 이제야 소개합니다.
리스트는 휼륭합니다.
'손에 손잡고'의 작곡자 조르조 모로더, 노르웨이 DJ 카이고, P&B 신성 티나셰 등 음악성에 초점을 맞춰 엄선된 33곡이 실렸습니다.
이렇게 '순수한' 만남도 없지요.
문득, 걱정도 큽니다.
사진집을 산 남성들이 CD는 뺴서 다른 이에게 줘버리지 않을까.
뭐, 아무렴 어때요.
누군가는 음악을 듣습니다. 박동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