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편 묵상
2024년 11월 15일 금요일 (연중 32주간)
제삼권
제 88 편
(지휘자를 따라 '마할랏' 가락에 맞추어 부르는 코라 후손의 찬양시, 에즈라인 헤만의 시)
1 야훼, 내 구원의 하느님, 낮이면 이 몸 당신께 부르짖고 밤이면 당신 앞에 눈물을 흘립니다.
2 내 기도 소리 당신 앞에 이르게 하시고 내 흐느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3 나의 영혼이 괴로움에 휩싸였고 이 목숨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습니다.
4 땅 속에 묻힌 것과 다름없이 되었사오니 다 끝난 이 몸이옵니다.
5 살해되어 무덤에 묻힌 자와 같이 당신 기억에서 영영 사라진 자와 같이 당신 손길이 끊어진 자와도 같이 이 몸은 죽은 자들 가운데 던져졌사옵니다.
6 저 어둡고 깊은 곳 저 구렁 속 밑바닥에 나를 처넣으시오니
7 당신의 진노에 이 몸은 짓눌리고 몰아치는 물결에 뒤덮였습니다. (셀라)
8 친지들도 나 보기가 역겨워서 멀리 떠나가게 만드셨습니다. 빠져날 길 없이 갇힌 이 몸,
9 고생 끝에 눈마저 흐려집니다. 야훼여, 내가 날마다 주님을 부르옵고, 이 두 손을 당신 향하여 들어 올립니다.
10 당신은 죽은 자들에게 기적을 보이시렵니까? 혼백이 일어나서 당신을 찬양합니까? (셀라)
11 주님의 사랑을 무덤에서, 주님의 미쁘심을 저승에서 이야기하겠습니까?
12 어둠 속에서 당신의 기적들을 알아줍니까? 망각의 나라에서 당신의 정의가 드러나겠습니까?
13 야훼여, 내가 당신께 부르짖고 새벽부터 당신께 호소하건만
14 야훼여, 어찌하여 내 영혼을 뿌리치시고 이 몸을 외면하시옵니까?
15 어려서부터 기를 못 펴고 고통에 눌린 이 몸, 당신 앞에서 두려워 몸둘 바를 모르옵니다.
16 당신의 진노가 이 몸을 휩쓸고 당신의 두려움에 까무러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무서움이 홍수처럼 나를 에웠고
17 한꺼번에 밀어닥쳐 나를 덮쳤습니다.
18 이웃들과 벗들을 나에게서 멀리하셨으니 어둠만이 나의 벗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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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탄원 시편으로 분류되는 88편은 마무리를 ‘어둠’으로 끝을 맺습니다. 희망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 시편은 가슴을 치게 하는 탄원이고 가장 순수한 기도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죽음의 두려움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 시편을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많이 읽었습니다. 시편의 내용이 버림받고 고통 속에 죽어가신 예수님의 이야기와 많이 닮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의 내용을 묵상하며 전통적인 탄원 기도와 결이 다름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고통 가운데서 하느님께 탄원하면 결국 들어 주실 것이라는 희망의 표현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느님께 부르짖지만 응답을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듯한 절망마저 느끼게 합니다. 학자들은 오늘 시편을 ‘가장 암울한 시편’ 혹은 ‘부재하신 하느님과의 대화’로 부르기도 합니다.
시편에 깊이 머무르다 보면 우리 역시 이러한 경험이 떠올라 몸서리쳐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부르고 애원해도 허공에 소리치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경험도 있으실 것입니다. 기도 전통에서는 이런 경험을 ‘영혼의 어둔 밤’이라 표현합니다. 좀처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온종일 씨름하듯 하느님께 기도하지만 더디 오는 응답과 먹먹함을 느끼던 체험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영혼의 깊은 어둔 밤을 경험하며 헤쳐 나갈 때 필요한 것은 기도의 나침반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의지할 것은 작은 나침반이듯이, 우리를 밝은 곳으로 인도할 때도 거창한 것이 아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의 기도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마냥 슬픈 일만은 아닙니다. 그분의 수난은 곧 부활을 예고하는 나팔 소리요, 승리의 영광으로 가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난과 두려움은 기쁨과 감사의 축복으로 가는 통로입니다. 반드시 지나야 할 어둠이라면 기도의 나침반을 의지하여, 그 인도대로 천천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 끝에 부활이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에, 영혼의 어둔 밤 끝에 영광의 빛이 있음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지나야 할 길임을 알고 기도에 의지하여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2. 내 기도 소리 당신 앞에 이르게 하시고 내 흐느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영혼의 깊은 어둔 밤을 경험하며 헤쳐 나갈 때 필요한 것은 기도의 나침반, 그분의 수난은 곧 부활을 예고하는 나팔 소리, 승리의 영광으로 가는 문,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난과 두려움은 기쁨과 감사의 축복으로 가는 통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