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초나흘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 십이월이 시작된 첫 주 수요일이다. 어제는 주중 화요일이었다만 하루 병가를 내어 창원에서 치과 진료를 받았다. 내가 수업에 드는 3학년들이 학교 바깥으로 창의적 체험학습을 떠나 교실에 들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다. 본디 연가를 내려고했더니 교감이 치과 진료이니 병가를 써도 된다고 해 월요일 퇴근 후 창원으로 갔다. 어둠이 내린 캄캄한 밤이었다.
거제로 와 근무하면서 주중 공휴일이 있어도 창원으로 가질 않고 거제에 머물렀다. 몸이 여기저기 불편한 아내는 주중 하루 집으로 돌아와도 반겨주는 눈치가 아니었다. 치과 진료는 오후에 예약되어 오전은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새벽부터 지난번 함안 자양산 임도에서 따와 베란다에 말려둔 산수유열매 씨앗을 깠다. 양이 제법 되어 그걸 까는데 새벽부터 한낮까지 해도 못다 깠다.
오후엔 예약된 시각 다니던 치과에 가 진료를 받았다. 연전에 임플란트를 했더니 그게 잘못 되어 지난 봄 탈이 났다. 내가 사는 동네 치과라 기술력이 부족한지 모를 일이다. 가을부터 여러 차례 다니는 치과인데 앞으로 몇 번 더 나가야되지 싶다. 치아가 부실하니 금전도 부담되려니와 시간 내기가 여간 귀찮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더 튼튼한 치아를 기대할 처지도 못 된다.
평소는 일요일 늦은 시간 고현 가는 시외버스를 탔는데 화요일 오후 팔룡동 터미널로 나갔다. 평일 저녁 시간대는 승객이 많지 않아 빈자리가 많았다. 잠깐 잠이 들어 깨고 보니 녹산터널을 지난 항만 근처였다. 가덕도에서 거가대교를 지났다. 연륙교 사장교에 조명이 밝게 들어왔고 진해만은 칠흑바다였고 간혹 지나는 배에서 불빛이 비쳤다. 저 멀리 옥포와 능포는 불빛이 더 환했다.
고현에 닿아 연사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정류소 내려 편의점에 들려 곡차를 두 병 샀다. ‘부산 생탁’이 아닌 ‘서울 월매’였다. 와실에 들어 보일러를 켜두고 노트북을 둔 서안에 곡차 병을 올려 잔을 비웠다. 몇몇 지기들에게 평소는 왕종근이와 대작하다 월매가 따라주는 잔을 든다는 문자를 날렸다. 부산 생탁 광고는 그 방송인이 생긋 웃는 얼굴로 나왔다. 금방 잠에 들었다.
한밤중 잠을 깨어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두부된장국을 끓여 무짠지와 비벼 이른 아침밥을 해결했다. 모직 헌팅캡을 쓰고 목도리를 둘러 와실을 나섰다. 그때가 아침 여섯 시 조금 지날 때였다. 날이 덜 새어 골목은 어둠이 짙었다. 내 뒤를 따르는 발자국소리들은 조선소로 출근하는 사내들이었다. 어둠 속에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그들은 통근버스를 탔고 난 들녘으로 나갔다.
진행 방향 곁으로 전조등을 켠 차량들이 고현에서 옥포로 달렸다. 난 농로로 들어 들판 한복판으로 나갔다. 겨울 새벽 연사 들녘 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어선지 추운 줄 몰랐다, 들녘 복판에서 둑으로 올랐다. 아직 날이 덜 밝아온 냇물엔 밤을 샌 오리들이 푸드덕거렸다. 물살을 갈라 자유롭게 헤엄치는 녀석도 있었다. 둑에는 산책객이 드물게 지나갔다.
들녘과 둑길을 걸어 학교와 가까운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 즈음 날이 거의 밝아와 내가 머무는 연사리와 그 뒷산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교정으로 들어서니 배움터 지킴이가 차를 몰아 나나타났다. 인사를 건넸더니 추운 날씨에 무척 일찍 출근한다고 했다. 외벽에 걸린 시계는 일곱 시를 가리켰다. 교무실로 들어 실내등과 난방기를 켰다. 자리에서 노트북을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고현은 섬 거제에서 진동만과 마주한 북향이라 창원과 접한 곳입디다. 날씨도 창원과 비슷해 오늘은 겨울답게 좀 추운 날이군요. 주중 머무는 연초는 고현에서 가까운 내륙입니다. 아침 여섯 시 조금 지나 와실을 나서 연사 들녘을 걸어 출근했습니다. 더 추워질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알고 지내는 몇 사람에게 여명의 들녘 사진과 함께 문자로 안부를 나누었다. 19.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