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聞香), 매화 향기를 귀로 듣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바가 각기 다른 것인데, 늘 가까이에 두고 즐기는 대상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다. 특히 우리 선조들 중에는 지조(志操) 있는 삶을 살고자 치열한 선비정신을 품고 이를 북돋우는 정서를 지닌 매화나무를 지극히 사랑한 분들이 있었다.
사실 매화만큼 올곧은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나무는 없다. 고즈넉한 정원 한 귀퉁이에 홀로 은은한 향기를 자아내며 피어 있는 매화는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 가는 길목에서 화사한 꽃을 피운다. 선비들은 한겨울에 눈 속에서 고아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의 결기가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제 길을 가는 선비를 닮았다고 보았다. 은근하게 배어나는 매화 향기는 사락사락 책갈피 넘기는 소리만 살아나는 지극한 고요함 속에서 더 짙게 느낄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매화 향기를 귀로 들어야 제격이라며 문향(聞香)이라는 말을 지어낸 것도 그래서라고 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삶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라서 결국 그 삶의 의미와 영원한 가치를 묻는 것으로 귀결되곤 하는데, 이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변치 않는 의미를 지닌 가치를 추구하며 이에 자신의 삶을 던져 몰입하여 살아감이 참으로 복된 삶의 길이 아닌가 한다. 이런 면에서 나 또한 문향(聞香)이라고도 불리는 매화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일찍이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와 심은 부여 백강마을의 ‘동매(冬梅)’는 널리 알려져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매화라고 할 것인데, 선생은 이후 귀양길에서는 매화의 그림자조차도 지극히 사랑하여 시(詩)에 남겼으니 과연 그의 매화사랑은 본받을 만하다. 아마도 선생은 매화를 그토록 지극히 사랑함에 힘입어 문향(聞香)의 독서를 이어가면서 인격을 닦아 만난(萬難) 속에서도 올곧은 지조(志操)의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적노과신백거(謫路過愼伯擧) 귀양길에 신백거의 집을 지나며
··································································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
千里江南處處花(천리강남처처화) : 천리 강남 곳곳에 꽃이 피어나고
獨憐梅影照孤槎(독연매영조고사) : 외로운 뗏목 배에 매화 그림자 너무 좋아라.
今來月出山前路(금내월출산전로) : 눈앞에 보이는 산길로 달 떠오르는데
羞過西湖處士家(수과서호처사가) : 서호 처사 그대 집을 부끄러이 지납니다.
백강 이경여 선생이 우의정 시절 소현세자빈 강씨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 진도로 귀양 가는 길에 옛 지인인 소은 신천익(愼天翊)의 집을 지나며 지은 시로 생각된다. 백강 선생이 임금을 잘못 계도함으로 인하여 귀양길에 오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지은 시로 매화 꽃 피는 강변의 이른 봄날의 풍경과 추위를 이기고 피어난 매화의 지조(志操)를 사랑하는 고결한 선비의 기풍이 잘 그리어져 있다.
다만 크게 유감인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매화를 지극히 사랑하며 문향(聞香)을 사랑함으로 인격을 닦아 지조(志操) 있는 행실로 일생을 일관하는 사람이 특히 지도자라고 나선 이들 중에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을 이토록 위태롭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깊은 의미를 널리 가르치지 못하고 지내온 우리나라의 교육이 너무도 한스럽다.
2024.10.29.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