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뮤(Albert Camus)-에서, 이를 소화해 내려면 끈질긴 해독력과 고민의 긴 피로를 맛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통찰력의 매력에 穿鑿하게 되는 것은, 삶의 영감을 부여받는 順理를 把握하기 때문이리라.
우리 인간은 실제 ‘터무니없는 삶’을 부여받았다. 그냥 느닷없이 던져진 것이다. 그래서, 「부조리(不條理)」란 유 무형의 流刑地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며 비비대고 있다. 시지프 신화의 인물 상황-이나 그 시츄를 오늘의 우리들 삶에의 비유에 공감이 넘쳐 날 것이다.
그렇다! 솔직히 동서양-어느 곳에서나 인간 삶에 대한 비유의 신화나 전설이 없는 곳이 어디 있나?
부조리의 *추론- *인간- *창조-의 챕터에 이어-‘자살’의 첫 챕터 화두와 부조리로 전개된다.
‘시지프 신화’(세문집-민음사, 김화영 역) 챕터는 179~185페이지 7쪽수다. 수많은 신화의 한 장르일 뿐이다.
그러나 통열하고 치열한 탐색은 세기적 지성의 에세이로 쓰여져 독자들 가슴에 깊은 공명으로 와닿게 된다.
그 신화가 인간 창조 시부터 생겨 난 것도 아니고, 인간의 思惟가 언어나 문자 또는 그림으로 소통 함으로써 생사의 의미에 접근해 認識을 결정해 보고자 함일 것이다. 그렇다고 솔직히 골때리는 인간의 생태와 그 삶이 도통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렸다. 그런데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다시 굴러떨어지곤 했다. 신들은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끔직한 형벌은 없다고 보았는데 그것은 이유있는 생각이었다.」
시지프는 신들의 비밀을 누설했고, 아내의 사랑을 시험해 보려해-신들로부터 수차례의 소환 분노 경고에도, 여러 해 동안 소환에 불응하고 눈부신 바다, 미소 짓는 대지를 보며 살았다. 신은 그를 쾌락에서 끌어내어, 끌어 올릴 바위가 준비된 지옥으로 압송했다.
시지프는 ‘부조리’한 영웅이었다. 그는 바위를 산 위에 올려놓았다가 굴러 떨어지면 또 올려놓는 肉身의 전율 고통을 반복한다. 쥐어짜는 고통과 완성의 기대가 없는 에너지의 소멸!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기 위해-내려오는 시간만이 그의 ‘의식의 순간’이었다.
「諸神의 소굴을 향해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휴식과 각성과 성찰의 시간으로 바꾼다.
순간이 될 수 있는 下山의 과정을 자유로움으로 전환하여 내려 올수도 있다. 운명에 복종하는 ‘오이디푸스’(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것을 알고는 자신의 눈을 뽑았다.)- 기막힌 음성이 들린다.
“그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나의 老齡과 나의 영혼의 위대함은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이 좋다고 판단하게 만든다” -‘삶의 노예로 살 것인지 주인으로 살 것인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부조리의 승리로 고대의 叡智가 현대의 영웅(?)주의와 만난다.
「우리는 항상 그의 짐 무게를 다시 발견한다.」
「山頂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한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자살의 의미 부여란 맥락과 부조리를 “초월”하고 신보다 ‘우월’한 인식에 인간의 존엄성 도달해야 한다고 하는 탐구의 길 -도대체가 이기 가능이나 한 일인가?
-터무니 없는 무의미한 삶의 영원한 반복 투쟁을 과연 행복하다고 상상 이나 해야 하는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통하는 자기 위안의 박제가 되어가는 과정인가?
그렇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어수선하고 난해하다! 동서 문화와의 비교 배경이 감성 이탈화 되어 이질성이 있고, 환경 풍화에 따른 神과 英雄들의 모티브에 혼미를 느껴 책장을 덮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 로마의 신화들은 예술, 철학, 문학, 영화, 게임, 등에 기반으로 하여 철학, 문화의 -르네쌍스로 꽃피워 왔다. 지상의 모든 인류는 인간의 궁극적인 질문을 여기서 찾고 답을 구하고 해석하려 한다.
- 늙어 왔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은 덧없다.(Life is fleeting)-
End-
첫댓글 개개인의 삶의 방향이 있기에 난제입니다.^^
그렇죠! ^-^
一切惟心造 -
46세의 젊은 영혼 Camus-교통사고(부조리)로 1960년에 사라지다.
이곳 대구는 더위로 지글지글 입니다! 건강하세요!
바람새 역시 익은 파김치되었습니다.
젊은 날엔 여름이 좋았는데
노년엔 봄이 좋군요.^^
느릿느릿 노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강건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