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소개
유지혜의 투명한 문장들
낯선 도시를 통역하는 유지혜의 투명한 문장들
지금 이곳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늘 서로의 곁에 있다
『쉬운 천국』,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로 유일무이한 이십대 작가의 탄생을 알렸던 유지혜 작가가 단단하게 균형 잡힌 삼십대의 이야기로 돌아왔다. 결핍을 간절히 채우고 싶었던 끝에 그 답을 우정에서 찾은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 『우정 도둑』이 놀에서 출간되었다.
유지혜는 메일링 구독 서비스 ‘유지혜 페이퍼’를 시즌15까지 운영하며 스스로 자신을 알린 92년생 젊은 작가다. 사진 한 장, 글 한 줄로도 또래 여성들의 공감을 자극하며 전폭적 지지를 받아왔다. 이십대 초반 유럽과 뉴욕을 여행하며 첫 책을 쓴 그녀가 보여준 여행은 삶의 환희에 가까웠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여행 작가를 넘어 본격적인 에세이스트로 발돋움한 『쉬운 천국』과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며 유지혜의 감수성이 무엇과도 비슷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독자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저자는 그간 자신에게 영향을 준 배움을 모아 삼십대의 첫 책을 출간한다.
우정은 비단 사람뿐 아니라 보다 넓은 세계와의 연결을 뜻한다. 한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세우는 걸 도와준 고집스러운 서재 꾸리기, 가난 때문에 스무 번이 넘게 이사했다는 사실이 상상되지 않을 만큼 밝게 웃어 보였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명랑한 진지함, 혼자 있음을 견디지 못해 연인과 꼭 붙어 지내던 작가가 성장을 위한 고속도로를 홀로 달리기까지 필요했던 시간들을 이야기한다. 『우정 도둑』은 자기 자신을 배우고 그 자산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려 움트고 있는 유지혜 작가가 서로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쓴 에세이다.
👩🏫 저자 소개
유지혜
스물네 살의 나이에 『조용한 흥분』과 『나와의 연락』을 출간하며 독자들에게 ‘낯선 여행자이자 인스타그래머’로 각인되었던 유지혜 작가. “무슨 일을 하세요?”라는 물음에 그저 “학생”이라고 대답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글 쓰는 사람’이라는 단단한 자아를 보석처럼 발굴하는 시간을 보냈다. 뉴욕, 런던, 파리, 베를린, 비엔나… 스물여섯부터 스물아홉까지 4년간의 여행을 담은 『쉬운 천국』과 팬데믹 시절 일상을 재발견한 과정을 써내려간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는 출간 즉시 에세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정기 메일링 서비스‘유지혜 페이퍼’현재 시즌 15를 마쳤다.
📜 목차
1.고독과 산책
대체로 답장이 늦는 연인 015
고독은 아름다운 억울함 023
나는 시간을 보려고 이 시계를 산 것이 아니다 032
춤 없는 작가들 041
연필이 슬픈 사람들 050
Pink is serious 060
책과 거미줄 070
욕망 082
초대 093
두 번째 산책 096
2.대화와 새벽
모마 119
경험 없는 세대 125
버튼과 창문 141
메시지의 도시 153
슬픔이여 안녕 164
“이렇게, 이렇게” 174
서재 만들기 184
아이 194
말 없는 노래 201
첫 번째 로큰롤 206
NW8 210
우정 224
쌓이지 않는 눈이 내린다 233
3. 네가 되는 꿈
채식주의자 249
30대 여자들 256
아이들을 위한 방 하나 있어요 269
파이 알라 모드 281
특권1 298
특권2 309
정원의 무덤 321
뒷걸음질도 춤으로 보였다 336
📖 책 속으로
부재를 예측한 문장은 한층 더 입체적이다. 빛과 소금의 노래 제목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가 내 마음처럼 들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내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떠나가지 말라는 말로 표현하는 사랑. 네가 없는 세상을 미리 그려보고, 그 세상의 허무함을 미리 깨달아 더 충실히 붙잡아 놓는 사랑. 부재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만이 존재를 감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일에는 부재를 끌어안을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대체로 답장이 늦는 연인」중에서
연인과 부재에 대한 오해를 쌓으며, 서운함을 주고받으며 생각했다. 친구 같은 사랑이 이 모든 사랑의 끝이기를 바란다고. 당연한 듯 서로를 원해도 그 사이 자리한 기다림이 비참해지지 않는 사랑. 어릴 때 좋아했던 노래 가사처럼―Part-time lover, Full-time friend―파트 타임으로 애인, 풀타임으로 친구인 사이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관계의 모양이다. 그 사랑이 뜨겁지 않다는 것은 흔한 오해일 것이다. 미지근해 보이는 그 사랑은 사실 낮은 온도로 가장 오래 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닮고 싶은 연인들은 죽고 못 사는 애인이라기보다 친구에 가까워 보였다.
---「대체로 답장이 늦는 연인」중에서
고독은 아름다운 억울함이다. 우리의 내면은 의미심장한 상태를 유지하고, 우리의 가장 좋은 점은 결코 발설되지 않는다. 서로 끝내 알지 못할 미지의 세계, 그 안에서 우리는 몰래 아름답다. 공개된 곳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결코 다 담지 못한다.
---「고독은 아름다운 억울함」중에서
나는 워낙 밝은 애니까 슬픔도 밝게 포장하는 데 익숙했어요. 친구들에게 항상 인기 있었고 그런 내가 웃는 얼굴로 늘어놓는 나의 고생담은 고등학생의 나이에 벌써 무용담이 되어 있었죠. 나는 그걸 무용담으로 웃어넘길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는데도. 웃어넘기는 게 지겨워요. 그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는 거예요. 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어요.
---「춤 없는 작가들」중에서
갖고 싶은 것은 비슷하게 다 가질 수 있게 되었는데도 왜 조금은 가난하다고 느낄까요. 여전히 내 방에 소파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거든요. 누군가에게 당연했던 삶이 나에게는 너무 크고, 아직도 어색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조금은 허탈하고……. 책 판매고로 축하 문자를 받아도,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도……. 우리 아빠는 의사나 판사가 아니기 때문일까요. 버는 돈을 전부 빚 갚는 데 써서 그럴까요.
동경. 자기가 버는 돈이 없이도 부유했던, 어릴 적 넉넉하게 자란 사람들에 대한 끝을 모를 동경 때문일 거예요. 나는 아직도 언니가 부러워요. 넓은 아파트에서 살며 방학이면 어학연수와 여행을 다녀오던 언니의 유년기가 끝도 없이 부러워요. 방과 후에 빙수와 피자를 먹으며 최신식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삶, 용돈으로 이것저것을 사고 저축도 할 수 있는 삶. 나는 지금이 아니라 그때로 돌아가 그때부터 행복하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언니는 이제 내가 살던 그 아파트에 살아요. 세월이 지나고 그렇게 됐어요. 그는 이제 자기 능력으로 평수를 넓혀야 해요. 그런데 30대에 시작된 언니의 위기를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유년기에 풍족하게 자라다가 성인이 되어 집안이 기운 사람과, 항상 가난했던 시절을 거쳐 지금은 살 만해지는 것. 어떤 게 더 나을까요? 아니, 그 전에, 언니는 정말 그때 내 상상처럼 행복하게 자란 걸까요? 왜 나는 언니가 불쌍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영원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춤 없는 작가들」중에서
이 영화는 분홍색을 검은색으로 바꿔서 성공하는 내용이 아니다. 분홍색이 성장해서 결국 검은색이 되는 내용도 아니다. 그는 사랑스러운 분홍빛 진지함으로 점잔 빼는 검은색을 압도하며 승리한다. 잇몸이 다 보이게 웃는 그를 보며 확인한다. 밝은 사람에게 깊이 한 스푼을 더하면 그 힘이 얼마나 센지. 어떻게 모두를 녹여버리는지. 그는 분홍색 승리의 첫 사례가 된다. 그 모습을 다시 경험한 작가는 환희하며 노트에 이렇게 적는다.
Pink is serious. 분홍은 진지하다.
---「Pink is serious.」중에서
당신 정말 진지해 보여요, 그 진지한 웃음을 잃지 마세요. 멋대로 재단하는 냉소에 맞서 더 활짝 웃어요. 특히나 이것만큼은 절대 잊지 말아줘요.
너는 원래 깊었고, 이미 아름다웠어요.
---「Pink is serious.」중에서
나는 스스로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얻으려 애쓰던 어린 나를 떠올렸다. 나는 그 방 안에서 모든 옷을 입어보고 수많은 포즈를 취해보았으며 혼자 기뻐하고 실망했다. 몸에서 옷가지를 빼내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머릿속으로 이번 달 정산된 알바비와 저번 달 받은 세뱃돈을 끊임없이 계산하면서,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었을 때 밀려오는 실망감과 신체적인 수치심을 비밀스레 느끼면서. 20대의 피팅룸 안에는 실패가 있었다.
시간이 쌓이면 혼자 쇼핑을 하게 된다. 어떤 옷이 내게 맞는 옷인지, “완전 네 거야”라는 친구의 호들갑이나 최신 잡지의 도움 없이도 안다. 옷을 알아서가 아니라 나를 알아서 가능한 일이다.
---「욕망」중에서
🖋 출판사 서평
“가장 귀한 것을 훔치고 싶었다.
허전함을 채우고 인생을 바꿔버릴 무언가를.”
『우정 도둑』에는 한 사람이 소중한 것들의 범위를 넓히고 공존을 배우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핍된 것은 자기 바깥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작가는 그때마다 어떤 것을 열렬히 흠모했다. 그러고 나면 훌쩍 자라 있곤 했다. 스스로를 ‘대충 좋아하는 법은 모르는 사람’으로 명명하는 작가는 마음이 가는 곳으로 몸을 옮기며 살아왔다.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열네 시간을 날아간 유럽에서 친구에게만 귀 기울였고, 다시 만나지 않을 이와의 대화에서 강렬한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 태엽을 감아야 하는 골동품 시계 상인을 만나 시간의 의미를 배우고, 명품의 로고를 숨기는 파리지앵을 보고 진정한 스타일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서로의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지만, 작가는 확신한다. 우정으로 세상은 가느다랗게 연결되는 법이라고. ‘나’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었을 때, 삶은 다가오지 않았다. ‘내 인생이 이래서는 안 되는데. 내가 너무 가여워.’ 나를 잊고 세계로 관심을 돌리니 행복이 있었다. ‘저 나무는 멋져. 이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 작가는 다시 세계와 연결되기로 결심한다.
전작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에서 사랑을 예찬하던 작가는 한결 미지근하고 선선해진 온도로 우정을 말한다. 우정은 사랑보다 오래가며, 때때로 영원하다. 우정은 투명한 사랑에 가깝다. 일순간 가치가 폭락하는 사랑과 달리 차근차근 가치가 쌓인다.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때로 부재한 시간을 인정하는 관계, 훌쩍 자라서 다시 나타났을 때 흔흔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관계. 바람이 통하는 사이, 그 선선함은 영원을 뜻했다. 작가는 그래서 훔치기에는 사랑보다 우정이 낫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사람이라면, 우정에서 배운 덕이다. 매번 새롭게 연결되는 그 마음 덕분에 인생은 새로워진다는 것을, 『우정 도둑』을 통해 전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연결되는 일’
모든 우정에서 최대한의 영향을 받아 흠뻑 적셔지는 일
1장 ‘고독과 산책’은 작가가 내면으로 침잠했던 혼자만의 시간을 담았다.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과 연결되어야 했다. 어린 시절엔 돈을 모아 옷을 하나씩 사보고 실패하면서 자신을 표현해 갔다. 이제는 누가 “딱 네 옷이야!”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어떤 옷이 어울릴지 안다. 옷을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을 알아서 가능한 일이다. 책과 글쓰기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내면을 충만하게 했다. 자기 삶의 가능성에만 관심을 둘 뿐 타인을 진정으로 궁금해하는 법을 모르던 작가는 자신의 삶이 수백 년 전 낯선 언어로 쓰인 소설에 그대로 나타나 있음을 목격하고 놀라워한다. 인생은 이토록 가지각색으로 다르면서도 비슷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비슷한 상처를 공감할 수 있다.
2장 ‘대화와 새벽’에서는 세상을 향해 건너가는 다리가 되어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십대를 여행으로 보낸 작가는 언어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삶을 편견 없이 흡수한다. 뉴욕에서 자살로 어머니를 잃은 친구를 사귀었을 때, 작가는 그 땅의 사람들에게 배운 위로를 건넸다. “안아줄까?” 그렇게 나이를 먹을수록 이해할 수 있는 슬픔이 많아진다. 섣불리 그 마음 안다고 말하지는 않으면서 치유와 회복을 응원할 줄 알게 된다. 나아갈 힘은 언제나 영혼이 맞닿는 대화에서 왔다. 작가는 누구보다 절실히 관계의 힘을 믿는다. 좌절해 본 적이라곤 없는 아이처럼.
3장 ‘네가 되는 꿈’에서는 자신을 알 만큼 알게 되고 균형을 찾은 삼십대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독일에서 만난 또래 P와는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 서른 살 남짓 살아오며 그린 궤적이 비슷했던 덕분이다. 친하지 않아도, 심지어 모르는 사이라 해도 사람들은 연결되어 있다. 작가는 베를린에서 그 연대를 매일매일 목격한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채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난민을 자기 집에 재워줄 수 있다는 문구를 써서 기차역에 마중 나가는 베를린 사람들. ‘너’와 ‘나’의 구별을 까먹을 때,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충만해질까? 갈 길이 요원하지만, 작가는 다시 한번 확신한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연결되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