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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들의 벗 '요셉의원' 개원 25주년 맞아 고(故) 선우경식 원장 기념실 개관 및 기념 미사 열려
2012.09.02 문양효숙 기자
“좋아요.”
9월 1일 오전 11시 서울 대방동성당에서는 영등포 쪽방촌에서 노숙인들과 함께해 온 무료진료소 요셉의원의 개원 25주년을 기념하는 미사가 봉헌됐다. 조규만 주교(서울대교구 보좌주교)가 집전한 이 기념 미사에는 자원봉사자와 관련자 1500여 명이 참석했다. 조규만 주교는 강론을 통해 고(故) 선우경식 원장을 추모하며 “슬플 때도 눈물이 나지만 아름다운 것을 봐도 눈물이 나는데 선우 원장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선우 원장이 심은 한 송이 꽃은 두 송이가 되고 열 송이가 되어 이제 수많은 꽃들이 피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조규만 주교는 “50년, 100년 후에 우리 사회가 아무리 어둡고 험해진다 해도 이 수천 수만의 꽃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할 것”이라며 요셉의원을 후원하고 돕는 많은 이들의 평화와 축복을 빌었다. 이날 미사 중에 요셉의원 측은 오랜 시간 요셉의원을 지원한 각 단체 및 개인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하고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온 봉사자들에게 봉사상을 수여했다. 25년, 20년, 15년, 10년 동안 봉사해 온 이들에게는 각각 서울대교구장상, 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상, 가톨릭사회복지회장상, 요셉의원 병원장상 등이 수여됐다.
이날 병원장 상을 받은 변수만 씨는 부인인 유밀 씨와 함께 요셉의원에서 10년 넘게 봉사했다. 총무과에서 봉사하는 그는 매일 12시에 나와 오후 6시 30분까지 병원을 지키며 회보를 만들고 전화도 받는다. 요셉의원을 찾는 이들 가운데는 알콜 중독자가 많아서 간혹 욕을 하거나 기물을 부수는 경우도 있고, 10분 정도 기다리면 “무료환자라고 무시하냐”며 난동을 피우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설립자인 고(故) 선우경식 원장이 생전에 하던 말을 떠올린다고 했다. “저 사람들은 아기다. 아기가 와서 엄마한테 젖 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여기서만 그러는 거다. 받아 줘라.” 그런 마음으로 다독이면 노숙인이 갑자기 아기처럼 얌전해지며 우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간혹 변수만 씨도 같이 울 때도 있다고. 그는 “몸은 조금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신앙적, 정신적인 면에서는 늘 활력을 얻는다”고 말했다.
청담성당 김진아 씨도 고(故) 선우경식 원장의 강의를 듣고 무작정 홀로 요셉의원을 찾아와 봉사한지 10년이 넘었다. 그는 “힘들다거나 쉬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 봤다. 일주일에 한번, 병원에서 봉사하며 마음이 겸손해지고 세상에서 혼탁해진 나 자신을 세탁하는 느낌마저 든다”며 “앞으로도 쭉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용복 전 성모병원 내과 교수는 고(故) 선우 원장의 3년 선배로 요셉의원과 계속 관계를 맺고 오랜 시간 다방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은퇴 후 일주일에 한번 요셉의원에서 진료봉사를 하는 고용복 교수는 이날 공로상을 받았다. 고용복 교수는 “병원에서는 직원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봉사를 하는 것이니 진료가 훨씬 즐겁고 편하다. 허리가 안 좋아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나오는 길이 쉽지 않지만 힘이 닿는 날까지 계속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요셉의원은 개원 25주년을 맞아 병원 내에 지난 2008년 선종한 고(故) 선우 원장의 발자취를 둘러볼 수 있는 기념관을 만들었다. 진료실 한 켠을 개조해 선우 원장의 자필 차트, 가족 사진을 비롯해 생전의 신앙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물품들과 요셉의원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책자 등을 전시했다.
병원을 찾은 지난 8월 30일 오후는 마침 25주년을 맞은 요셉의원의 내부 잔치 날이었다. 한동호 사무국장은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목요 나눔’ 시간에 대해 “병원 바로 옆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이 매주 목요일에 쉬기 때문에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특별 보양식과 함께 마련된 잔치상은 비가 오는 중에도 230여 명의 노숙인들이 함께 참여해 기쁨을 나눴다. 이렇듯 요셉의원이 하는 것은 ‘진료’만이 아니다. 병원 1층에는 이발소, 목욕탕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목욕을 한 노숙인들이 언제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도록 옷을 구비한 탈의실도 있다. 병원 4층에는 최근 도서관을 마련했다. 하루 10~20명 정도가 꾸준히 이용하고 있으며 이 공간에서 주 2회 알콜 중독 치료 모임을 자발적으로 시작했다. 목요일 1시에는 음악치료 시간도 열리고 있다. 한동호 사무국장은 “알콜 중독이신 분이 워낙 많고 위장약을 비롯해 소화기 계통 질병이 많다. 혈압이나 당뇨는 기본이다. 병원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자기 나이보다 10살에서 20살은 더 들어 보인다. 진료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방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요셉의원은 필리핀 현지에도 무료진료소를 열 계획이다. 지난 2월 마닐라 대교구장의 승낙을 받아 착한목자수녀회가 미혼모들을 돌보던 2층 건물을 무료 임대해 최근 리모델링을 거의 마쳤다. 필리핀 현지 의사와 간호사를 채용해 필리핀의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일반진료와 피부과, 치과 등의 진료를 제공할 계획이다. 요셉의원 내에 있는 필리핀 요셉의원 사무실에는 전국에서 기증한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사무실의 봉사자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신기하게 누군가 기증하고 어디선가 채워진다”고 말했다.
7개월째 매일 요셉의원 현관지기로 봉사 중인 민영진 씨. 그는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며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노숙인들 사이에 함께 계신다. 하느님께서 고(故) 선우경식 원장을 보내신 것처럼 이웃들을 이곳으로 보내신다”고 말했다. 노숙인들을 ‘내 동생들’이라고 부르는 그는 “현관지기는 기가 막힌 자리다. 나는, 지금 가장 있어야 할 곳에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요셉의원의 자원봉사자는 600여 명이고 재정도 100% 민간 후원이다. 100여 명의 의료진뿐만 아니라 주방, 청소, 세탁, 행정, 운전, 목욕, 이발 등이 모두 봉사자들의 손길로 채워진다. 선우경식 원장이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넘은 지금, 요셉의원에서는 여러 명의 선우경식들이 그 뜻을 이어 예수의 마음을 품고 이 땅의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과 삶을 나누고 있다. 성서는 이렇게 전한다.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더욱 작은 것이지만 심어놓으면 어떤 푸성귀보다도 더 크게 자라고 큰 가지가 뻗어서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된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지 못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