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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공자 선생께서는 후세들에게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공자 선생께서는 “나는 15세가 되어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했으며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 50세에는 하늘의 명을 알았다. 그리고 60세에는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70세에 이르러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후세들은 공자 선생의 이 말씀을 도덕으로 삼고 그렇게 살아야 인간의 도리를 다 하는 것 같은, 그런 보이지 않는 중압감에 몸부림을 치죠. 그런데 저는 15세에 학문을 버렸고, 30세에는 아무런 기초를 다져 놓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혹을 앞둔 지금도 유혹에 마구 흔들리는 것도 모자라 찾아다니고 있으니 공자 선생의 기준으로 본다면 저는 실패자죠.
이 대중음악계에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만큼 이치를 판단하면서 인생을 알아간다는 40을 넘어 불후의 명곡들을 발표한 아티스트가 참 많습니다.
그건 아마도 인생을 터득하면서 음악을 대하는 자세나 마음가짐이 진실에 접근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래서 이번에는 나이 40을 넘어서도 히트 곡을 배출해 꾸준한 인기를 얻은 가수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아닐까 합니다. 1901년 재즈의 본고장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루이 암스트롱은 63살에 'Hello Dolly'라는 곡으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해 팝 역사상 최고령 넘버원을 가진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루이 암스트롱은 70세이던 1971년에 심장병으로 영면했지만 1987년에 로빈 윌리암스(Robin Williams)가 주연한 영화 < 굿모닝 베트남 >에 그 유명한 'What a wonderful world'가 삽입돼서 1988년에 다시 인기 차트에 오른바 있죠. 이때까지 살아있었다면 87세였을 텐데요.
루이 암스트롱이 흑인 진영을 대표하는 재즈 아티스트라면 백인 쪽에서는 누가 뭐래도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죠.
물론 마피아와의 연관설과 정계와의 부적절한 커넥션 등 그가 비판받을 소지는 많지만 21세기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라는 점만은 분명하죠.
1915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프랭크 시나트라는 51살이던 1966년에 'Strangers in the night'란 멋진 곡으로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이듬해인 1967년에는 딸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와 함께 'Somethin' stupid'로 정상을 수복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엔 은퇴를 발표했다가 미련이 남았는지 은퇴를 번복해 1998년에 눈을 감을 때까지 정말이지 정력적인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공자 선생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의 인생을 살았던 거죠.
이번에는 40을 넘겨 그래미가 부활시킨 여가수들을 알아보겠습니다.
티나 터너(Tina Turner). 1938년에 태어난 그는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반에 남편이었던 아이크 터너(Ike Turner)와 함께 아이크 & 티나 터너(Ike & Tina Turner)라는 부부 듀오로 소울 역사에서 쉽게 지울 수 없는 자취를 남겼죠.
그러나 남편의 상습적인 구타로 1976년에 이혼을 하고 솔로활동을 펼치지만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1984년에 영국의 뉴웨이브 그룹 헤븐 17(Heaven 17)과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의 보컬리스트인 믹 재거(Mick Jagger),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제프 벡(Jeff Beck),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등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 Private Dancer >로 46살에 극적인 재기를 했죠.
알 그린(Al Green)의 원곡을 재해석한 'Let's stay together'를 비롯해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Better be good to me', 'Private dance' 등이 탑 40를 기록했고 그래미에서 올해의 레코드와 최우수 여가수, 최우수 여성 록 보컬 등을 수상하며 최고의 순간을 만끽합니다.
'What's love got to do with it'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사자 갈퀴 헤어스타일과 늘씬한 각선미를 뽐낸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연해 46살이라는 물리적인 나이를 되돌렸답니다. 한마디로 티나 터너는 '원조 몸짱 아줌마'인 셈이죠.
이 티나 터너만큼 그래미를 통해서 인상적인 재기에 성공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겐 낮선 보니 레이트(Bonnie Raitt)라는 블루스 여가수입니다.
1949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가수인 존 레이트(John Raitt)의 딸로 태어난 그는 보조개가 들어가는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남부의 진득한 블루스를 가슴 속 깊이 받아들여 1970년대 초반부터 음반을 발표했지만 대중의 가시권에서 한참을 벋어나 있었죠.
좌절한 그는 알코올에 몸을 담군 채 세월을 허비하다가 1989년에 유능한 프로듀서 돈 워즈(Don Was)와 공동으로 작업한 10번째 앨범 < Nick Of Time >이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여가수, 최우수 여성 록 부문을 수상하면서 비로써 대중가수가 됐습니다. 그때 나이가 정확히 40살이었죠.
이 보니 레이트보다 우울했던 블루스맨이 있었죠. 바로 여러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입니다. 물론 그는 20대이던 1960년대부터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았지만 사실 1980년대에는 뭔가를 보여주지 못했죠.
그러다가 47살이던 1992년에 'Tears in heaven'과 51살이 된 1996년에는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프로듀싱을 맡은 'Change the world'로 신세대 젊은이에게 '왕년의 스타'가 아닌 '현재의 뮤지션'으로 기억됐죠.
에릭 클랩튼처럼 기타 하나로 전 세계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든 왕년의 기타 명인이 2000년대에 부활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해 라틴 록을 창시한 산타나(Santana)입니다.
마음 좋게 생긴 산타나 아저씨는 1970년대까지 록의 명곡들을 꽤 발표했었지만 198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는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는데요.
52살이던 1999년 여름에 공개한 싱글 'Smooth'가 생애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올라 12주 동안 1위 자리를 지켰고 그 후속 곡인 'Maria Maria' 역시 10주라는 두 자리 숫자를 채우며 산타나의 인생에 최고의 순간을 선사했습니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 그런 화려한 결과를 얻은 건 아니었지만 그 반대로 산타나의 기타 연주 없이 롭 토마스(Rob Thomas)와 프로덕트 G&B(Product G&B)의 노래만으로 그만큼의 성과를 얻었을까요? 정말 'Viva Carlos Santan!'입니다.
이번엔 후배 가수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라이벌로 비춰진 여가수 두 명을 소개해 드릴게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과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
1942년에 태어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은 45살이던 1987년에 영국 출신의 까마득한 후배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과 함께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로 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요.
이를 본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 영국을 대표하는 소울 여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를 모셔와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를 발표해 1988년에 2위까지 랭크시키는 히트를 기록하죠. 그가 1939년생이니까 49살에 미국에서 가장 큰 히트 곡을 소유하게 된 거죠.
어쨌든 이 곡은 시기상으로 보나 게스트로 보나 명백하게 'I knew you were waiting (For me)'를 모델로 한 것 같죠?
이처럼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더스티 스프링필드는 인종적으로나 국적으로나 분명 선의의 경쟁상대임엔 틀림없습니다만 아레사 여왕은 최근까지 꾸준하게 활동하는 반면에 더스티 여사는 1999년에 유방암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번에는 더스티 스프링필드처럼 이젠 하늘나라에 계신 어르신 가수들을 소개해 드릴까요?
소설 < 마지막 잎새 >처럼 파르르 떨리는 창법과 성악가를 연상시키는 풍부한 성량으로 확실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한 로이 오비슨(Roy Orbison)은 1936년에 태어나 1960년대를 빛낸 로큰롤 싱어 송라이터 중 한 명인데요. 우리에겐 영화 < 귀여운 여인 >에 모티브를 제공한 'Oh pretty woman'으로 유명하죠.
그도 불행한 생을 살았는데 집의 화제로 두 아들을 잃었고 부인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니 에릭 클랩튼보다 더 큰 아픔을 견뎌야 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결국 1988년, 하늘나라에서 가족들과 재회했습니다. 그때 나이 52세. 그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후인 1989년 1월에 그의 마지막 히트 곡인 'You got it'이 싱글로 발표돼서 9위까지 오르는데요.
당시 국내에서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1990년대 중반에 영화 < Boys On The Side >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보니 레이트의 리메이크 버전이 애청되었습니다.
그래도 불혹은 물론 사후에 화제의 주인공이 된 가수는 레이 찰스(Ray Charles) 아닐까 합니다.
1930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레이 찰스는 7살 때 시력을 잃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뻔했지만 신은 그에게 시력을 담보로 음악적 재능을 하사했습니다.
그의 넘버원은 모두 1960년대에 나왔지만 1989년도 싱글 차트에서 샤카 칸(Chaka Khan), 제임스 인그램(James Ingram)과 함께 부른 'I'll be good to you'로 레이 찰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죠.
2004년에 공개한 마지막 정규 앨범 < Genius Loves Company >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과 올해의 레코드를 포함해 모두 8개의 트로피를 휩쓸었고 그해 자신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 < 레이 >가 호평을 받아 그의 마지막 길은 외롭지 않았을 겁니다.
레이 찰스의 별명은 잘 아시는 대로 '소울의 천재'인데요. 1960년대에 소울 창법으로 노래하는 백인 듀엣이 등장합니다. 영화 < 사랑과 영혼 >에 삽입돼서 1990년에 다시 엄청난 인기를 누린 'Unchained melody'의 주인공 라이처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죠.
여기서 두터운 바리톤 음색으로 노래를 부른 사람이 바로 어느 상황에서도 메들리를 잘 부를 것 같은 빌 메들리(Bill Medley)입니다. 1940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47살이던 1987년에 청아한 음색을 가진 제니퍼 원스와 함께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한 영화 < 더티 댄싱 >의 주제가 '(I've had) The time of my life'로 차트 정상은 물론 아카데미 주제가 부문과 그래미까지 수상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습니다.
1991년, 음악과 과학이 만난 싱글이 전 세계 대중음악계를 감동의 물결로 채웠는데 기억하시나요? 바로 스탠더드 재즈 보컬리스트 냇 킹 콜(Nat King Cole)과 그의 딸 나탈리 콜(Natalie Cole)이 함께 부른 'Unforgettable'인데요.
1965년에 눈을 감은 냇 킹 콜이 예전에 불렀던 노래에 나탈리 콜이 새로이 부른 버전을 교묘히 편집해서 마치 동시에 부른 것 같은 효과를 살린 노래였습니다. 이 당시 나탈리 콜의 나이가 41살이었는데 47살에 눈을 감은 아버지 냇 킹 콜의 심정을 이해하며 노래를 불렀기 때문일까요? 당시에 많은 사람이 감동했죠.
화려한 남성편력을 자랑하는 셰어(Cher) 여사 또한 50을 한참 넘긴 53세에 대박 히트 곡을 배출합니다. 보코더를 사용한 흥겨운 댄스곡 'Believe'가 바로 그 주인공인데요. 1999년에 4주 동안 정상을 지킨 이 곡은 1974년에 'Dark lady' 이후 무려 25년 만에 인치 차트 1위를 차지해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노래였죠.
하지만 위에 언급한 모든 가수들을 무릎 꿇게 한 어르신들이 계셨으니 그들이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멤버 분들입니다.
이분들께 존칭을 사용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고령의 뮤지션들이자 내공을 소유하신 분들인데요. 콤바이 세군도(Compay Segundo), 루벤 곤잘레스(Ruben Gonzalez), 오마라 포르투온도(Omara Porutuondo), 이브라임 페레르(Ibrahim Ferrer), 훌리오 페르난데스(Julio Fernandez) 등 모든 멤버가 당시 대중음악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을 나이였고 또 이중 많은 분들은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야말로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블루스 뮤지션 라이 쿠더(Ry Cooper)에 의해 199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그 구성원들이야말로 가장 겸손하며 진솔한 아티스트일겁니다.
위에 언급한 아티스트들은 공자 선생께서 세상의 유혹과 미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40세 혹은 그 이상의 나이에 많은 사람들을 음악의 유혹에 빠뜨렸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짜 이율배반 아닌가요?
2008/01 소승근(gicsucks@hanmail.net)
첫댓글 노익장을 과시한 뮤지션들의 히스토리, 허스토리 잘 봤습니다.
그중에서 화룡점정인 부에나 비스터 소셜 클럽의 오라버님들께 무릎을 꿇으며 존경의 예를 다합니다.
백세 시대에 40은 애덜이고 70은 되어야 비로소 어른 반열에^^
대단한 방장님 춘수님보다 여러노래를 잘아시는분은 우리카페에없을것 같습니다 방장님 화이팅
진짜루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방대한 지식량에
자칭, 타칭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랑 별명을 가진 저도 깨갱하고 꽁지를 내립니다.
증말루 으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