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말고 졸혼
요새 흔히 쓰는 택배라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 통용된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한국에 있을 때는 못 듣던 말이다. 사전에는
"우편물이나 짐, 상품 따위를 요구하는 장소까지 직접 배달해주
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 어원을 찾아 보니 택배는 원래
일본어에서 유래한 한자어로 물건을 수취인의 집 (宅)'까지 직
접 '배달(配)'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주로
신문, 우유, 조리된 음식(중국 음식, 피자 등) 가정 배달을 일
컫는 말로 한국의 택배와는 그 뜻이 조금 다르다. 이런 말까지
구태여 일본말을 그대로 베껴 써야 하는가 해서 씁쓸하지만 잠
시 되짚어 보면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한국에서 인기 있고
한국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있는 노래방의 원조는 일본
가라오케라는 것은 상식이다.원래 일본에서 전자업계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인데 한국에서 주요 오락시설로 자
리매김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의 언론 매체들 특히 TV
프로그램이 그 소재와 구성 심지어 제목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모방하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하물며 한국의 인기
과자 제품(새우깡, 빼빼로 등)이 일본 과자의 맛과 모양,포장
까지 베껴낸 '짝퉁'이라는 논란도 있었다.최근에는 졸혼(卒婚)이
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생겨나 한국으로 물 건너 온
수입품'이다. 2004년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졸혼을 권함
이라는 책을 펴내며 일본에서 유행되기 시작했다. 결혼을 졸업한
다는 말로 나이 든 부부가 법적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 서로 간
섭하지 않고 자유롭게 각자의 삶을 사는 새로운 형태의 부부관계
다. 한 집에 함께 살면서 서로 간섭하지 않거나,별거해 따로 살며
가끔 만나거나 하는 식이다.이혼은 하지 않고 남편과 아내로서의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각자의 여생을 자유롭게 사는 것을 뜻한
다. 부부간에 법적, 정서적, 경제적 관계는 유지한다는 점에서 이
혼이나 별거와 다르다. 한국에서는 지난 해 모 중견 연기인이 졸
혼을 선언하면서 화제가 되었고 최근에는 TV에 이제 각자삽시다
졸혼수업 등의 프로가 등장하며 널리 알려지고 있다. 백년해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체적, 심리적인 차이, 더구나 출생, 성장,교
육 환경이다른 두 개체가 서로간의 이질성을 극복해야 되기 때문
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 하고 단지 전통적 관습, 자녀들에 대한
의무감, 주위의 이목에 얽매여 늘그막에까지 불만족스런 결혼생
활을 지속하는 부부도 많다. 근래에는 한국에서 이런 울며 겨자
먹기 부부관계를 청산하는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최근 보도
된 이혼 통계자료(2016년)를 보면 50세 이상이 전체 이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년 전 19.7%에서 38.0%로 뛰었다.졸혼은
황혼이혼의 대안이다. 100세 시대, 노년의 삶의 질과 웰빙 등이
화두가 되면서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해 등장한 새로운 풍조라
고 할 것이다. 이제는 참고 사는 것이 미덕인 세상이 아니다. 특
히 여자의 입장에서 아직 한국 문화에 잔존하는 남존여비,부창
부수(夫唱婦隨)의 인습 때문에 수십 년을 남편 뒷바라지만 해온
삶에서 탈피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자기의 독립적 인생을 추
구하자는 것이다. 6~70 먹어도 물 한잔 자기가 안 떠먹고 집
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삼시세끼 차려다 바치기를 바라는
속칭 삼식이 집에서 TV나 보고 차려준 밥상 타박이나 하고 만
사에 불평만 일삼고 군림하려는 남편. 이쯤 되면 결혼생활은 적
막강산이다. 졸혼은 법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부부간에 졸혼
합의로 결혼을 졸업할 수있다. 서류에 도장 찍거나 서명할 일도
법원에 갈 일도 없고 물론 졸업증서도 없다. 간혹 졸혼서약서를
작성하기도 한다지만 어제까지 적막강산이었던 세상이 졸혼으
로 하루 아침에 만고강산이 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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