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끔씩은
崔 秉 昌
세월의 마지막 끝에서
웃을 수만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봄은 시절에 두 눈을 뜨고
자세히 보아야 한다는 말이고
여름은 열리는 것처럼 무성하다는 말인데
가을과 겨울은 제 몸을 서서히 추스르며
지나간 연민처럼
찬찬히 드려다 보아야 한다는 시간이네
아픈 곳을 손가락으로 꾹꾹 찔러보아도
쉽지 않은 상처는 깊숙하게 출렁이고
이미 건널 수 없는 길목은 자꾸만 멀어지는데
늙어 가는 내 얼굴 속에서
익숙하게 사라져 가는
내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보네
그래서 가끔씩 가끔 씩은 아파야 하는 것이라고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은
나도 모르게 늦어버린 혁명을 뒤쳐져가고
우거지 같은 바람은 걸터앉을 시간도 없이
고단한 상처만을 기억해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갸륵한 상처는 여태껏 길을 찾지 못했네
변심이란 바람 같은 것이어서
흔들리는 버릇이 고정되어 있질 않아
가끔씩은
가끔씩은 아파야 한다는 달콤한 거짓말로
넘길 수만은 없어
이따금씩 눈을 감아도 보지만
시절은 하나도 달라지질 않았네
그래도 가끔씩
아주 가끔씩은
마음을 열고 웃을 수만 있다면
봄여름 가을 겨울 모두가
내 것이 되는 것을
시절의 마지막 끝에서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 2024. 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