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교수, “고질적인 성의 이중성을 없애라”
“죽기전 진짜 야한 연애하고 싶어”
[일요 서울] 이광수 기자 | 3Dpizacu@ilyoseoul.co.kr">pizacu@ilyoseoul.co.kr
[987호] 승인 2013.04.01 09:34:16
합법적인 성노동자 일터 도입 시급
늙으니까 먼저 대쉬하는 제자도 없네......
<즐거운 사라>로 화두에 오른 마광수. 그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 받고, 연세대 교수직을 박탈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최근에는 학생들에게 도서를 강매했다는 논란과 이외수 작가 폄하
로 시대적 뭇매를 맞고 있지만, 언제나처럼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그의 눈을 통해 바
라본 세상은 어떠한지 진솔한 대화를 나눠봤다.
마 교수는 연세대 교수직에서 해직 된 지 3년이 흐른 뒤 1998년 복직하게 된다. 그러나 2000
년 국문과 동료 교수들의 집단따돌림으로 재임명 탈락 사건이 일어난다. 학생들의 거센 발발
로 학교 당국은 탈락을 보류하지만, 마광수 교수는 극심한 배신감으로 인한 외상성 (外傷性)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한다.
2002년 한 학기 동안 복직하여 강의하다가 우울증 악화로 학기 말에 다시 휴직하고 2004년부
터 건강을 간신히 회복하고 연세대에 복직한다. 머리가 많이 빠져 몰골이 흉하다며 모자를
쓴 마광수 교수는 성(性)의 아이콘이자 자유의 표상이며 시대를 앞서간 문학가이다. 그를 인
정하려 들지 않는 시대는 그를 철저하게 규탄하고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지독히 외로운 삶을
살아가게 했다.
19 금 작가의 비애
요즘 몸이 좋지 않다는 마광수 교수. 담배를 물고 입을 열었다. “내가 벌써 62세다. 환갑이
지나다 보니 아픈 곳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빨도 많이 뽑고, 얼마 전엔 위출혈로 졸도까지 했
다. 요즘 제일 고통 받는 건 비염이다. 숨을 못 쉴 정도다. 게다가 담배는 줄창 핀다. 그런데
의사들이 담배 피지 말란다. 이거 아니면 낙이 있어야지. 그렇다고 책이 팔리나 책도 안 팔린
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내 책 대부분이 앞뒤로 19금 붉은 딱지가 붙어버리니 사람들이 사려 하겠나. 19금 딱지는
작가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유독 내 저서에 19금을 많이 때리더라 표적수사나 다름없다.
검열관이 10여명인데 수천 권 책을 어떻게 다 읽겠어.” 마광수 교수는 1992년 10월 29일에 외
설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유죄판결 받은 지 20여 년 됐다.
“나에 대한 선입관들이 있다. 무조건 마광수 책은 들고 다니기 싫어한다. 심지어 연세대 학생
들도 도서관에서 내 책을 펼치면 놀린다. 원인이 뭐냐, <즐거운 사라>가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에 찍히면 죄인으로 몰고 간다.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제일 무섭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 냈다.
“책으로 재판을 할 수 없는 거다. 죄라는 건 행동이 있어야 하고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글이 어떻게 행동이냐 피해자가 있어야 되고, 가해자도 있어야 한다. 마치 상상을 재판하는
꼴이다. 기준이 없으니 판사 마음이다. 내가 오해를 많이 받는 건 일인칭 화법을 쓰기 때문이
다.
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마치 내가 한 것 마냥 속아 넘어간다. 재판에서도 ‘당신 해봤지’ 라고
물을 정도니. 반면에 미대에선 누드를 대놓고 그린다. 그러나 문학에선 글로써 표현하면 난리
법석들이다. ‘한 발짝 앞서가면 망하고 반 발짝 앞서나가면 괜찮다’ 이 말이 딱 나한테 해당되
는 거다”라며 비주류로 분류되는 자신의 글에 대한 아쉬움을 야기했다.
룸살롱은 무죄, 집창촌은 유죄?
마 교수는 최근 고위층 성상납 사건에 대해 “내가 말하는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성에 대
한 이중성이다. 입으로만 도덕을 외치지만, 숨어서 욕정을 풀어 버린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를 보는 듯하다. 이 문제점이 어디서 오나 여성부가 성매매 특별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로 인해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가는 집창촌의 창녀들. 나는 그들을 성노동자라 부른다. 그들
이 자살까지 하는 상황까지 치닫게 됐다. 또 이들이 해외로 가 성매매 까지 하니. 이게 무슨
국제 망신이냐”며 집장촌 등은 사회의 하수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흉악범죄도 성매매의 비
범죄화로 일정부분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 교수는“최근 통계를 보면,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성매매를 불법화하지 않는 나라들의 성
범죄율이 우리나라 보다 훨씬 적다. 지금 잇따르는 성범죄들로 형량을 높이고 있는 것은 의미
가 없다”며 성매매특별법을 폐지하고, 국가가 일정부분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식 용어인 ‘공창제’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며 ‘합법적 성노동자 일터’로 추진하자
고 촉구했다. 또 “국가가 성매매여성들을 등록하고, 세금을 부과해야 되며 정기적인 건강 검
진을 실시해 에이즈와 같은 성병 등이 번지지 않게 막아야 된다”고 설명했다.
성매매 특별법이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특별법과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말하며, 2004년 9월23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마치 유전무죄다. 비싼 곳,
룸살롱 같은데서 성행위를 하면 되고, 집창촌에서 하면 걸린다는 맥락과 다를 바 없다. 성자
성 어거스틴도 매춘을 찬성했다. 하수도가 없으면 남자들은 미친다. 남성들은 배설을 해야 한
다. 남자를 죽이기만 하는 여성부를 없애야 한다. 여성부 존재 자체가 남녀차별이다. 여성부
가 정식적으로 여성가족부다. 가족에서는 남자도 있다. 여성부에서 남성을 위해 한 것이 무엇
이 있냐”며 목청을 높였다.
외로운 독거노인이야
젊은 시절을 회상하던 마 교수는 28세 때 홍익대학교 재직 당시. 제자들과의 연애사를 꺼내
놓았다. “제자들과 연애를 하는 것을 바탕으로 나온 책이 <사랑의 학교>야. 그 당시에 여자
를 둘씩 끼고 다녔어. 그때가 내 인생의 황금기였는데”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연세대 와서도 제자들과 연애했다. 내 주변에도 제자와 결혼한 사이도 많다. 이들이 변태짓
을 하든 뭘 하든 상관없다. 그러나 강제성이 있으면 안된다. 합의하에 하면 상관없다”며 자신
의 연애사를 당당히 밝혔다.
“만나는 여자는 제자 밖에 없었다. 단 내가 먼저 제자에게 다가간 적은 없다. 그렇게 되면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나에게 대쉬하는 모든 제자들과 연애하는 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제
자만 받아 줬다. 늙으니깐 이제는 먼저 대쉬하는 제자들도 없다. 죽기 전에 진짜 야한 연애
를 하고 싶다”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우리 젊은이들, 청소년 때부터 피임운동을 시켜야 해. 성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쉿, 쉿 거리
는 세상이 너무나 우스워 ‘아는 것이 힘이다.’ 라면서 성 이야기만 나오면 ‘모르는 게 약이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피임운동에 힘을 실었다.
“요즘 재미없다. 이제 독거노인이다. 마누라도 자식도 없다. 결혼해보니 이혼할 때 너무 힘
들었다. 그 때문인지 내 평생 가장 후회되는 것이 결혼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프랑스처
럼 동거 후 결혼해야 한다.”
시대의 빛을 받지 못하고 항상 구설수에 올라 뭇매를 맞고 있는 마 교수는 반항정신을 가진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그는 오늘도 성에 대한 이중성을 뽑아내려고 혈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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