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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용초오이회(용궁초등학교 52회 졸업생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윤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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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야구라는 스포츠가 최초로 공식 경기를 벌인 것은 1846년 6월19일로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뉴욕 니커보커스라는 팀과 뉴욕 나인 클럽이 뉴저지주 호보켄의 엘리시안필즈라는 공원에서 일전을 벌여 뉴욕 나인이 23-1로 대승을 거뒀습니다.
그 후 1869년에 처음으로 야구를 직업으로 하는 프로 야구팀이 생겼습니다. 신시내티 레드 스타킹스가 바로 최초의 프로야구팀입니다. 그리고 1871년에는 최초의 프로야구리그인 내셔널 어소시에이션이 결성되면서 야구는 전 미국의 스포츠로 급격히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최대 잔치라고 할 수 있는 월드시리즈(World Series 이하 WS)가 탄생한 것은 1903년이었습니다. 흔히 '가을의 고전(Fall Classic)'이라고 불리는 WS는 기존의 NL챔피언과 1901년에 새로 출범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AL의 챔피언이 시즌 후에 만나 왕중왕을 가리자는 아주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양 리그는 따로따로 운영됐고, 경기장에서는 전혀 만날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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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결에서 패하면서 자존심을 구긴 터줏대감 NL의 거부로 이듬해인 1904년 WS가 무산된 적이 있지만 1905년 곧바로 재개됐고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도 이 가을 잔치는 계속됐습니다. 1994년 선수 파업때문에 사상 두 번째로 WS가 취소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지난 100여 년간 가을마다 야구의 최강팀을 가렸던 이 대회는 미국인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1969년에는 MLB 팀이 24개로 늘어나면서 양대 리그는 두 지구씩으로 나뉘었고, 먼저 리그챔피언십을 치른 뒤 승자들이 WS에서 격돌하는 대진이 짜입니다. 야구의 인기몰이와 함께 팀은 계속 증가했고, 1995년부터는 3개 지구의 우승팀과 와일드카드 팀까지 양 리그에서 총 8개 팀이 출전하는 디비전시리즈 시스템이 도입됐습니다.
그 긴 역사 동안 MLB는 참으로 많은 명승부를 만들어냈습니다. 명승부뿐 아니라 짜릿한 순간을 선사한 극적인 홈런들도 많았습니다. 한방으로 경기와 시리즈의 흐름을 바꿔놓은, 그리고 야구의 역사마저 바꿔 놓은 홈런. MLB 가을 잔치의 전설이 된 홈런의 순간 톱10을 소개합니다.
1903년 WS 1차전(피츠버그-보스턴) 지미 세브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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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와 보스턴이 격돌한 사상 최초의 월드시리즈. 보스턴은 전설의 투수 싸이 영을 선발로 내세웠고, 피츠버그는 24승 투수 디컨 필립으로 맞섰습니다. 그러나 28승 투수 싸이 영은 1회부터 피츠버그 타자들에게 호되게 당했고, 그 와중에 세브링이 월드시리즈 사상 최초의 홈런을 쳤습니다.
그 시리즈에서 피츠버그는 홈런 1개, 보스턴은 패치 도어티가 혼자 2개를 때리는 등 모두 3개의 홈런이 기록됐습니다. 당시 월드시리즈는 9전5선승제였고, 보스턴이 5승3패로 정상에 오릅니다.
당시만 해도 홈런은 참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그 후 세 번의 월드시리즈에서는 단 한 개의 홈런도 나오지 않았고, 1920년까지 가장 홈런이 많았던 월드시리즈가 1909년의 4개였을 정도로 희귀했습니다.
1923년 (뉴욕 양키스-뉴욕 자이언츠) 베이스 루스
'밤비노' 루스를 빼놓고 홈런을 논할 수는 없지요.
루스가 처음 월드시리즈에 출전한 것은 1916년이었습니다. 하지만 타자가 아닌 투수였고 한 경기에서 14이닝 1실점 완투승을 기록합니다. 다시 보스턴 유니폼을 입고 월드시리즈에 나선 것이 1918년. 루스는 여전히 투수로 출전해 2경기에서 2승을 거둡니다. 투수 루스의 월드시리즈 성적은 3전 전승에 평균자책점 0.87이었습니다.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루스는 타자로 변신했고 1921년 다시 월드시리즈에 출전해 드디어 포스트시즌 첫 홈런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그 해의 활약은 미약했고 이듬해인1922년 월드시리즈에서도 홈런 없이 1할1푼8리로 극도로 부진했습니다.
루스가 대폭발 한 것은 1923년입니다. 뉴욕 자이언츠와 3년 연속으로 만난 이 월드시리즈에서 루스는 홈런 3개를 때리면서 3할6푼8리에 7타점, 8득점으로 양키스 최초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양키스타디움이 개장한 첫 시즌이라 기쁨이 두 배가 됐습니다. 루스의 3홈런과 함께 그 해 월드시리즈에선 사상 최초로 두자릿수 홈런이 터져나왔습니다. 6게임 동안 기록된 홈런이10개였습니다. 루스는 그 후 4번의 월드시리즈에 더 출전했고 11개의 홈런을 보탰습니다.
1960년 WS 7차전(피츠버그-뉴욕 양키스) 빌 마제로스키
아마도 WS 홈런 중 역사에 가장 짜릿하게 기억될 홈런이 아닐까 합니다. 이 홈런 이상으로 극적인 요소를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최강 뉴욕 양키스와 만난 언더독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양키스가 득점 55-27, 안타수 91-60으로 피츠버그를 압도했던 시리즈였지만 승부는 3승3패로 마지막 일전까지 갔습니다.
7차전 초반 피츠버그는 4-1로 앞서 나갔습니다. 그러나 양키스는 6회에 4점을 뽑아 경기를 뒤집었고 8회엔 7-4로 달아났습니다. 그런데 8회말 피츠버그가 매서운 반격으로 5득점하며 9-7로 재역전했습니다. 양키스가 9회초 다시 2점을 뽑아 9-9가 되는 숨 가쁜 승부.
드디어 홈팀 피츠버그의 마지막 공격 차례가 됐고 첫 타자는 피츠버그 2루수 빌 마제로스키였습니다. 정규 시즌에 타율 2할7푼3리, 11홈런 64타점을 기록했던 마제로스키는 양키스 투수 랄프 테리의 2구째에 방망이를 힘차게 돌렸고, 방향을 180도 바꾼 하얀 공은 순식간에 좌측 관중석으로 사라졌습니다.
아마 소설이었다면 허구가 너무 심하다고 핀잔을 받을 정도의 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WS 사상 최초의 7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은 그렇게 피츠버그의 밤하늘을 장식하며 파이어리츠 팬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순간과 추억을 선사했습니다.
1988년 WS 1차전(오클랜드-LA다저스) 커크 깁슨
이 WS는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승자가 결정된 분위기였습니다. 104승을 거둔 오클랜드를 막을 팀은 없어보였고, 내셔널리그에선 100승을 거둔 메츠가 아닌 94승의 다저스가 올라왔기 때문에 오클랜드는 왕관을 쓸 일만 남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홈런 한 방이 시리즈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1차전, 오클랜드는 4-3으로 앞선 채 9회말을 맞았고 최강 마무리 데니스 에커슬리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던 에커슬리는 그 시즌 45세이브를 기록했고 현재는 명예의 전당 멤버입니다.
투아웃에 주자는 1루. 다저스의 토미 라소다 감독은 벤치를 힐끗 쳐다봤습니다. 커크 깁슨은 손에 방망이를 들고 앉아 있었지만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심한 햄스트링 부상. 그러나 그 시즌 다저스의 내셔널리그 서부조 우승에는 4번 타자 깁슨의 투지와 공격 기여가 결정적이었습니다. 결국 라소다는 깁슨을 선택했습니다. 최강 에커슬리를 상대로 뒤집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경기, 노장의 투혼에 일말의 희망을 건 선택이었지만 사실 가능성은 '희박 내지는 제로'였습니다.
깁슨은 풀카운트까지 버티면서 계속 파울볼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기다리던 백도어 슬라이더가 들어오자 맘껏 방망이를 휘둘렀습니다. 우측 관중석으로 하얗게 날아가는 공과 절룩거리며 마운드를 도는 깁슨, 껑충껑충 뛰는 거구의 라소다가 오버랩 되는 순간.
오른손을 치켜들며 절룩절룩 다이아몬드를 도는 깁슨의 모습은 포스트시즌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이 됐습니다. 기세를 몰아 다저스는 오클랜드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다저스의 마지막 WS 우승이었습니다.
당시 신문사 행사 때문에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경기를 듣다가 받았던 짜릿한 충격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리플레이는 아마 100번도 더 본 적 같습니다. 다저스 역사상 가장 짜릿한 순간 중의 하나였습니다.
2004년 ALCS 4차전(보스턴-뉴욕 양키스) 데이빗 오티스
이 홈런을 기록하시는 분이 많으실 겁니다.
시리즈를 끝내는 극적인 홈런은 아니었지만 레드삭스 역사상 아마 이보다 중요한 홈런을 찾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라이벌 양키스에 이미 3연패를 당한 레드삭스는 4차전도 끌려가다가 9회에 겨우 동점을 만들어 연장전에 돌입했습니다.
12회까지 계속되던 경기는 '빅 파피' 오티스가 양키스 투수 폴 콴트릴의 투구를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으로 장식하며 끝났습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ALCS) 역사상 최장인 5시간2분의 혈투였습니다.
분위기는 반전됐고, 레드삭스는 오티스의 그 홈런 이후 7연승 가도를 달리며 1918년 이후 처음으로 WS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ALCS에서 3연패 후에 4연승을 거둔 팀도 레드삭스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승리 후 레드삭스는 현재까지도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세월과 함께 오티스의 기량은 기울고 있지만 그 홈런은 레드삭스 역사에, MLB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1975년 WS 6차전(신시내티-보스턴) 칼턴 피스크
이 장면을 직접 본 팬은 많지 않겠지만 동영상이나 리플레이로 본 팬은 아주 많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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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공은 마치 피스크의 소망을 전해들은 듯 그린 몬스터 왼쪽의 폴대를 때리면서 끝내기 홈런이 됐습니다.
3승3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레드삭스의 꿈은 그렇게 하루 더 연장됐지만 다음날 7차전에서 신시내티에 패하면서 결국 밤비노의 저주를 벗어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피스크의 절박한 심정이 담긴 그 홈런은 포스트시즌 역사에 오래도록 남을 명장면이었습니다.
1991년 WS 6차전(미네소타-애틀랜타) 커비 퍼켓
땅땅한 체구에 조금은 비대해 보이기까지 했던 퍼켓. 그러나 그는 트윈스의 중심 타선을 굳건히 지켰을 뿐 아니라 외야의 중심인 중견수로 활약했던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벌인 WS 명승부 6차전, 2승3패로 뒤지던 트윈스는 3-2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무승부를 이룬 채 연장전에 돌입했습니다. 그리고 11회말 퍼켓이 타석에 들어섰고 마운드에는 선발 투수이던 찰리 리브란트가 올라갔습니다. 공 3개를 흘려보낸 퍼켓이 4구째 휘두른 배트에 걸린 공은 좌중간 커튼 같은 외야펜스를 넘어 관중석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트윈스는 7차전에서도 연장전 끝에 1-0의 승리를 끌어내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WS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시리즈로 기억되는 명승부였습니다. 무려 5경기가 1점차 승부였고 3번의 연장전을 치렀으며 4경기가 마지막 타자의 끝내기 안타로 마무리됐습니다.
제겐 최초의 월드시리즈 취재였습니다. 퍼켓의 6차전 끝내기 홈런이 터지던 순간 메트로돔을 메운 함성은 경기가 끝나고 몇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귀가 먹먹할 정도였습니다.
1993년 WS 6차전(토론토-필라델피아) 조 카터
디펜딩 챔피언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NL 챔프 필리스를 맞아 3승2패로 리드한 가운데 6차전을 맞았습니다. 토론토는 1회에 3점을 뽑으며 앞서갔고, 6회까지 5-1로 순항, 2연패가 손쉽게 다가오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끈질긴 필리스는 7회초 대거 5득점하며 6-5의 리드를 잡았습니다.
그 점수로 계속 이어진 9회말. 필리스는 ‘와일드 씽’이라는 별명의, 독특한 투구 동작을 지닌 왼손 마무리 미치 윌리엄스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리키 핸더슨이 볼넷을 고르고 폴 몰리터가 안타를 쳐 1사 주자는 1,2루. 조 카터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그해 33홈런에 121타점으로 토론토를 이끈 카터를 맞아 윌리엄스는 정면 대결을 펼쳤습니다.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윌리엄스의 빠른 공이 날아들자 카터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좌측 관중석에 떨어지는 역전 끝내기 홈런. WS 사상 두 번째 시리즈 끝내기 홈런이었습니다. 카터의 홈런도 극적이었지만 마운드에서 좌절하던 미치 윌리엄스의 모습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2001년 WS(애리조나-뉴욕 양키스) 4,5차전 김병현
WS 마운드에서 좌절한 투수의 애절한 모습이라면 김병현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2001년 애리조나와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4차전.
3-1로 앞선 가운데 애리조나 브랜리 감독은 시즌 내내 마무리 역할을 충실히 해낸 BK를 8회부터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9회말 투아웃, 한 명만 더 잡으면 애리조나는 넉넉한 3승1패의 리드를 잡을 수 있는 순간. 그러나 김병현은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10회말 투아웃에 지터와 만난 김병현은 풀카운트의 접전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공 4개를 연속 파울로 걷어내던 지터는 특유의 밀어치기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WS 사상 12번째 끝내기 홈런이었습니다.
홈런 드라마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벌어진 5차전, 디백스는 전날과 똑같이 2점차의 리드를 안고 9회말에 돌입했고 브랜리 감독은 다시 마무리 BK를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투아웃을 잡은 후 김병현은 마치 전날 경기의 재방송이라도 보는 듯 스캇 브로셔스에게 동점 2점 홈런을 얻어맞았습니다. 순간 마운드에 주저앉았던 BK의 모습은 야구팬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3개의 홈런은 하나같이 극적이었고, 확률로 보면 불가능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티노는 2001년 WS에서 9타수 무안타 끝에 동점포를 터뜨렸고, 지터는 15타수 1안타의 부진을 역전 끝내기 홈런으로 반전시켰으며, 브로셔스의 포스트 시즌 타율은 1할5푼2리였습니다.
홈으로 돌아간 애리조나는 6,7차전에서 연거푸 승리하며 WS 챔피언에 올랐지만 김병현이 조연이던 양키스의 4,5차전 홈런 드라마는 영원히 남게 됐습니다.
2005년 NLDS 4차전(애틀랜타-휴스턴) 크리스 버크
이 홈런은 MLB 역사상 가장 길었던 포스트 시즌 경기를 끝낸 홈런으로 의의가 있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뒷얘기도 있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난 애스트로스는 8회초까지 6-1로 끌려가 패색이 짙었습니다. 그런데 8회말 애틀랜타 구원 투수 판스워스를 상대로 4점을 뽑으면서 6-5로 바짝 추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9회말 투아웃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포수 아스머스의 동점 홈런이 나오면서 경기는 연장전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양 팀 타선은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8이닝 연속 무득점에 18회초 브레이브스의 공격도 득점없이 끝났습니다. 경기는 이미 5시간을 훌쩍 넘겼고, 연장 18회말 마침내 두 루키의 대결이 이루어집니다. 애틀랜타는 6번째 투수 조이 드바인을 투입했고, 애스트로스의 타자는 10회말 대주자로 버크만 자리에 들어간 루키 크리스 버크. 볼카운트가 0-2로 유리해지자 버크는 드바인의 3구째를 힘껏 잡아당겼고, 그렇게 드라마는 끝이 났습니다.
18이닝, 5시간50분, 출전한 선수 23명(타이), 총투구수 553개, 만루홈런 2개. 이 모두가 포스트 시즌 신기록이었습니다. 이 극적인 승리와 함께 기세가 오른 애스트로스는 창단 44년 만에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화이트삭스에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그날 한 방송에서 이 경기 해설을 했습니다. 경기 시작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 대충 5시 반쯤에 경기가 끝나면 잠깐 눈을 붙이고 8시에 신문사에 출근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6시간 가까이 화장실도 못 간 채 헤드폰을 쓰고 있었고, 결국 회사는 늦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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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윌리엄 가메이라는 사람이 뉴욕 브루클린에 최초로 야구전용구장을 건립했습니다. 10센트의 입장료를 받아 야구를 처음으로 프로스포츠화한 큰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입장료를 받으려니 외야 쪽 텅 빈 곳으로 그냥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외야에 담장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그 담장을 넘기는 타구는 홈런으로 인정했습니다. 그것이 홈런의 효시라고 합니다.
야구에 홈런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큰 인기를 구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관련 링크>
[MLB.com] 2009 포스트시즌 경기일정
[MLB.com] 미네소타 vs 뉴욕Y 더보기
[MLB.com] 보스턴 vs LA에인절스 더보기
[MLB.com] 콜로라도 vs 필라델피아 더보기
[MLB.com] 세인트루이스 vs LA다저스 더보기